무공독학(武功獨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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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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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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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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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DUMMY

아직은 보법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그저 발걸음에 쾌속함만을 담아낸 어중간한 움직임이 발끝에서 움텄다.


단전에서 시작된 삼원일귀종의 내력이 순환하며 다리로 향한다. 천진의 육신을 앞으로 밀어주었다.


산길을 주파한다. 땅을 스치듯 옅게 체공하며 떨어질 때 다시금 땅을 박찼다. 천진은 모르겠지만 본인도 모르게 경공의 수법을 구사한 것이다.


“이게, 무슨······.”


마을에 진입하고 목도한 모습은 아직은 어린 천진의 동공을 떨리게 하기엔 충분했다. 심장이 쿵쾅 뛰고, 머리가 멍해졌다.


여기저기 시체가 가득하다. 아무리 많은 죽음을 보았다곤 하나, 이다지도 많은 시신을 본 적은 없었다. 하물며 불길이 이 순간에도 치솟으며 시신을 뒤덮는다. 탄 내가 코를 찌르며, 그보다 더한 혈향이 정신을 아득하게 했다.


천진은 혀를 깨물며 억지로 정신을 깨웠다. 지금은 솟구치는 화마에 정신을 잃을 때가 아니었다. 그가 걸음을 내디디며 아직은 불길에 휩싸이지 않은 시신을 바라보았다.


시체의 상흔을 살폈다. 여기저기 베인 흔적이 가득하다. 갈라진 상처의 깊이가 꽤 되었다. 검에 의한 검흔이다.


“······.”


천진은 묵묵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았다. 그가 알던 자들의 얼굴이 차가운 흙바닥에 놓이며 생을 달리해 있었다.


무성이라고 평소 면박을 주던 인물들. 그들의 죽음은 통쾌하기보단 씁쓸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어찌 되었든 그들도 하나의 생명이었으니.


‘···백응검문의 무사들의 시신도 있다.’


천진은 그들에게도 다가가 상흔을 살폈다. 마을 사람들과 똑같은 검흔이다.


그를 느낀 천진은 이상함을 느꼈다.


‘왜 검식이 같지?’


마을 사람들의 검흔도, 백응검문의 무인들에게 난 상흔도 모두 백응검문의 무공이었다. 유소찬의 검식을 보고 배웠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하물며 이상한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심장이 있어야 할 부위에 없다.’


마을 사람들 중 어린아이, 그리고 젊은 인물들의 심장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억지로 뽑아가기라도 한 듯 뻥 뚫린 가슴이 그를 증명했다. 백응검문의 무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


거기까지 생각한 천진은, 문뜩 곽 씨 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걸음이 절로 객잔으로 향했다. 이 참상에 그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를 빌며.


날쌔게 뛰어간 천진은 평소 머물던 장소가 불길에 휩싸여 무너진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앞에 쓰러진 곽 씨 아저씨의 모습도.


“아저씨!”


천진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며 곽 씨 아저씨에게 뛰어갔다. 그의 눈꺼풀이 조금씩 들리며 천진을 보았다.


“천진···이냐.”


“아저씨. 이게 대체 무슨······.”


“못 보고 갈 줄 알았건만··· 다행히 얼굴은 보고 가는구나······.”


“아저씨. 말하지 마세요. 일단 지혈부터···.”


“되었다. 내가 못 산다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


곽 씨 아저씨의 초점이 떨리며 힘겹게 두 눈에 천진을 담았다. 그가 피를 토하며 말을 내뱉었다.


“천진아······ 어서 이 마을을 빠져나가거라.”


“···어째서입니까.”


“백응검문주. 그자가······ 그자가 미쳤어.”


“미치다니요?”


천진은 백응검문주를 떠올렸다. 먼발치에서 보았으나 나쁜 인물은 아니었다. 유소찬도 그러지 않았던가?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얻기 위해 잘 대해 주라고.


비록 꿍꿍이가 있는 선의였으나, 일방적인 악의보다는 그게 나았다. 적어도 천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자가 갑자기 왜······.”


“나도 모르겠구나. 하나 위험하니··· 어서······.”


그 말을 끝으로 곽 씨 아저씨가 입을 여는 일은 없었다. 그의 눈동자에 초점이 흐릿해지며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


천진은 묵묵히 그의 시신을 받쳐 주었다. 한없이 가벼운 무게. 그동안 이런 무게로 자신을 돌봐준 것이다.


무겁고, 또 가벼워서 슬펐다.


‘···내가 바로 달려왔으면 살릴 수 있었을까.’


모른다.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타 마을 사람들의 상흔처럼 곽 씨 아저씨의 상흔도 얕지 않았으니.


주위 의원이라 할 만한 인물도 없으니 지혈한다고 해서 살릴 순 없었을 것이다. 하나, 비통함만은 절절하게 느껴졌다.


천진은 곽 씨 아저씨의 눈을 감겨 주곤 천천히 그의 육신을 들고 옮겼다. 불길이 닿지 않을 만한 곳을 찾아서.


그곳에 그를 눕혀 주고 천진은 두 눈을 감았다. 허리춤에 검의 무게가 느껴졌다.


‘···무림에서 은원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 했던가.’


백응검문주의 외아들을 죽였다. 그로 인해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른다. 백응검문의 무인들마저 죽일 이유는 없었을 테니.


하나 천진은 은원의 무게에 대한 것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싫어도 알게 되었다.


천진이 검파를 꽉 움켜쥐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눈을 감은 곽 씨 아저씨의 얼굴은 악몽이라도 꾸는 듯 찌푸려져 있었다.


“편히 눈 감으시길.”


곽 씨 아저씨를 일별하곤 천진이 몸을 돌렸다. 마을을 떠나는 방향이 아닌, 백응검문이 있는 곳을 향해.


지금껏 자신을 돌봐준 그의 안식을 위해, 미약한 몸이나마 은원을 갚기로 했다. 그게 무림인의 자세이자 앞으로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었으니.



───



백응검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름 없는 마을에서는 보지도 못할 법한 장원이 외각에 들어서 있었으니까.


비록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삼류 문파이나, 현에도 들지 못하는 이 마을에서 그들의 위세는 드높다. 저 장원이 그를 방증한다.


천진은 그를 멀찍이서 바라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가갈수록 의아함이 번진다.


‘기세가 느껴지지 않는다.’


장원의 입구에 거의 도달했는데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기세가 전무했다. 평소라면 입구를 지켜야 했을 무사들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죽은 것이겠지.’


천진의 얼굴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어째서 백응검문주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른다. 묻고 싶지도 않았다. 하나 죗값만큼은 필히 묻고 싶었다.


검파를 쥔 손에 오른손을 올렸다. 언제든 출수할 수 있도록 근육에 긴장을 상기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연스레 그의 걸음은 느릿해졌고, 백응검문을 눈에 담는 시간은 늘어갔다.


손님을 맞이하기라도 하듯 활짝 열린 대문이 보인다. 그리고 넓은 마당에 등을 보인 채 앉아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도.


‘백응검문주.’


천진이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마음을 비웠다. 죽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고수들의 기감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들었다. 자칫 시작도 전에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곽 씨 아저씨의 죽음이 아닌 다른 기억을 떠올리자 가까스로 출렁이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제야 천진은 백응검문주의 앞에 놓인 거대한 물체를 볼 수 있었다.


거대한 솥과 같은 그 단지는 연신 끓고 있는지 붉은 연기가 자욱하게 흘러나온다. 그게 장원의 마당을 가득 채울 기세로 자욱하니 주위를 붉게 물들인다.


‘···피 냄새.’


저게 코를 찌르는 혈향의 근원지다. 마을 사람들의 시신에서 흘러나오던 시취마저 가릴 정도로 짙었다.


그 냄새를 맡자 일순 마음이 울렁일 뻔했다. 뽑혀나간 마을 사람들의 심장. 그리고 붉은 연무.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천진은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유일하게 그가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을 때. 무성이라는 이유로 조바심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던 때.


이제는 돌아가지 못할 그때의 추억을 마음에 담으며 다시금 격랑치는 감정을 가라앉혔다.


‘···어떻게 해야 들어갈 수 있을까.’


백응검문이 비록 삼류 문파이나 그 문주마저 경시할 순 없다. 일문의 문주라는 것은 그러했으니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세상을 떠돌 때 많이 느꼈다. 골목에서 주름을 잡던 흑도들마저 자신의 문주에게는 순한 개가 되었으니. 문주라는 것은 모두를 통솔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어야 한다.


‘유소찬의 기파를 흉내 내 볼까.’


천진은 문뜩 유소찬이 발산했던 기파가 떠올랐다.


심법은 저마다 익힌 특색에 맞게 기운을 내뿜는바. 화산의 무공은 매화의 향을 머금었지 않던가. 백응검문도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녀석들 특유의 기파가 존재했다.


‘해보자.’


천진은 유소찬의 몸속을 흐르던 내력의 흐름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 흐름에 맞게 삼원일귀종의 내력을 운기했다.


기운의 특색은 익힌 심법의 구결에 의해 정제되며 결정 난다. 하나 그거야 고절한 무공들의 특징. 백응검문과 같은 삼류 문파는 그러한 고절함이 없다. 운기 행로의 차별점을 두어 기파의 특색을 더하는 것이다.


천진은 유소찬의 흐름을 떠올리며 똑같이 내력을 순환했다. 완전히 똑 닮은 운기의 경로는 같은 무공을 익힌 것처럼 차이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 기세가 비슷해질 뿐, 특색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니다. 삼원일귀종의 내력은 너무 정순해. 이것보다는 조금 더 탁하게, 그리고 예리하게.’


천진은 즉석에서 운기 행로를 바꾸며 시행착오를 거쳤고, 몇 차례 검증까지 마치자 유소찬과 기세가 거의 흡사하게 변했다. 많은 무림인들이 보았다면 기함했을 일이다.


하나 무림인으로서의 지식이 아직은 부족한 천진은 그러려니 했고, 준비되었단 생각에 굳게 마음을 먹고 백응검문의 장원 안으로 들어섰다.


“소찬이냐.”


백응검문주의 목소리가 천진의 귓가에 들렸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불과 장원에 들어서고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파를 바꾸는 것이야 가능해도, 목소리를 바꾸는 재주는 그에게 없었다. 어차피 대답하면 곧바로 들킬 일. 의심을 사더라도 조금이라도 늦게 사는 게 좋았다.


하나 백응검문주는 상관없다는 듯 말을 계속 이어갔다.


“어디서 뭘 하다 이제야 들어오는 게냐. 중요한 날이라 내 그렇게 일렀거늘.”


한 걸음. 두 걸음.


“뭐, 상관없는 일이겠지. 이미 대업은 시작되었으니.”


네 걸음. 다섯 걸음.


“이제 곧 대법이 완성된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익히 말했듯 심력을 기울여야 하니 방해하지 말고.”


여덟 걸음. 아홉 걸음.


점차 가까워지는 거리. 그와 함께 천진의 심장은 북을 울리는 듯 크게 두근거렸다.


걸리면 모든 게 끝장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고작 열두 걸음을 남겨 놓은 거리가 천릿길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그 순간에도 백응검문주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것만 완성된다면 우리도 이런 이름 없는 마을을 넘어, 무림에 이름을 떨치는 무인이 될 수 있겠지. 그날이 심히 기대되는구나.”


어느새 백응검문주와의 거리는 다섯 걸음까지 줄어들었다. 그럴수록 천진의 심장은 더더욱 요란하게 뛰었다. 혹시 이 박동으로 인해 일을 그르치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검파를 쥔 손에 땀이 맺힌다. 천진은 더더욱 세게 검파를 쥐었다. 혹여나 미끄러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허허. 그나저나 우리 아들이 참으로 효자구나. 아비가 심력을 쏟는다고 방해하지 않는 것을 보니.”


천진은 그 순간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한계까지 응축된 집중이 백응검문주의 어깨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무림인의 말은 혀끝에도 검을 숨겨놓았다고 했으니,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했다. 백응검문주가 드디어 의심을 품은 것이다.


그와의 남은 거리, 고작 세 걸음.


천진은 유소찬을 따라 하던 운기 행로를 틀었다. 삼원일귀종이 본래 가지고 있는 순환을 따라 돌린 그의 기파는 다시금 정심해졌고, 발끝으로 향한 내력의 흐름은 웅온했다.


그의 걸음이 백응검문의 마당에 족적을 새기며 미보를 밟았다. 동시에 꽉 움켜쥔 검파를 세차게 뽑았다. 진기의 경파가 그의 몸을 앞으로 밀어냈다.


유소찬의 검식이 떠오른다. 신묘한 묘리는 없으나 쾌속하게 휘두르던 검. 내력을 다루는 무인에게 진검의 무게는 무용하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진검은 그다지도 빨랐다.


그를 마음에 품으며, 천진은 검을 쥐고 뽑았다. 미보의 발걸음에 어울리는 쾌속한 발검이었다.


푸욱.


천진의 검이 백응검문주에게 꽂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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