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독학(武功獨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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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운율
작품등록일 :
2024.08.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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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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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DUMMY

기우뚱거린 몸, 그 속에서 천진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감각을 받았다.


자주 접했던 집중의 순간일까, 그도 아니면 흔히 죽기 전에 겪는다는 주마등의 찰나일까,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니 주마등은 아닐 터.


천진은 흐르는 공기가 피부에 닿는 감촉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새의 갈라짐도, 선명하게 느껴졌고, 보였다.


‘이대로 죽는 건가? 내가?’


문뜩 저잣거리의 아이들이 행했던 조롱이 떠올랐다.


-나였다면 자살했을 터다. 다음 생을 기원하는 게 더 빠를 테니.


천진의 치아가 부러질 듯 짓씹어진다.


그럴 순 없다.

자신이 무엇을 했다고 죽어야 한단 말인가? 멸시만 받아오고, 아직 이룬 게 아무것도 없는 삶이거늘.


찰나에 이뤄진 생각은 판단을 낳았고, 곧 행동으로 옮겨졌다.


떨어지는 와중 다리를 뻗었다. 유소찬의 오금에 걸린 발등을 낫처럼 구부리며 녀석을 끌어당겼다.


“뭣?!”


녀석의 당황 섞인 음성이 들린다. 천진은 그대로 몸을 끌어당겨 녀석의 발목을 잡아채곤 절벽 아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올라가는 건 무리다. 어차피 녀석을 붙잡고 올라간다고 해도 그 시간 동안 녀석이 가만히 기다려 준다는 건 어불성설. 죽이지 않을 것이라면 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니 같이 떨어지자.

얕은 절벽이라고 해도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신이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릴 높이. 하지만 녀석을 방석 삼는다면? 그렇게 낙하의 충격을 최소한이라도 줄인다면 살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천진은 떨어지는 와중 녀석의 다리를 잡아당기며 몸을 밀착했다. 녀석도 자신이 무슨 수를 쓰는지 알아챘다는 듯 서둘러 떼어내려고 했다. 천진은 그럴수록 더욱 밀착하며 녀석이 검을 뽑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절벽의 밑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커억!”


“끄으···.”


한계까지 집중력을 끌어 올리고 있던 천진은 절묘한 순간에 녀석의 몸을 뒤집었고, 땅에 떨어지는 순간 녀석의 등이 먼저 지면에 닿았다. 천진은 간발의 차로 녀석의 배 위로 떨어지며 충격을 미약하게나마 줄였다.


그럼에도 뼈가 울리는 듯한 통증이 밀어닥친다.


근육은 터진 듯 욱신거리고 오른팔에선 말로 못 할 통증이 올라온다. 동공도 덜덜 떨려 오나 천진은 이를 꽉 깨물곤 정신을 다잡았다. 유소찬이 피를 토하면서도 비틀비틀 일어선 까닭이다.


“이 망할···놈이!”


내력으로 육신을 보호하고 있던 건지 즉사는 피한 듯하다. 하나 녀석의 안색도 파리하며 벌벌 떨리는 다리는 어쩌지 못하는 모양. 천진은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게 뭔 짓거리냐.”


“뭔 짓거리? 버러지를 구제하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단 말이냐.”


천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나 그의 기분은 알 바 아니라는 듯 녀석의 음성은 계속 이어졌다.


“천진. 곽씨객잔의 점소이. 내가 너를 모를 줄 알았더냐? 유명하더구나. 무성의 아이라고.”


“···알면서 접근한 것이었나.”


“아니. 처음에는 몰랐지. 수련하는 모습이 가상해 문하에 들이려고 알아봤더니 알게 되었다. 한데 네놈은 나에게 끝내 그를 말하지 않았지. 우롱하던 것 아니겠느냐?”


녀석의 입꼬리가 이죽거렸다. 파리한 안색 너머에서도 틀에 박힌 선민의식이 흘러나온다.


“아니면 제 주제를 알고 있었다든지.”


“······.”


“아버지께서 그러셨다. 마을 사람들을 잘 대해줘야 한다고. 신임을 얻어야 한다고. 하나 내가 보기에 너는 아니다. 무성이라면 벌레가 아닌가? 벌레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녀석이 검을 뽑아 들었다. 서슬 퍼런 예기를 발하던 진검이었다. 이따금 녀석이 자랑할 때에 몇 번 본 적이 있는 검이다.


‘···비틀거리고 있다. 낙하의 여파는 확실하다.’


천진은 스스로의 몸을 가늠했다. 오른팔을 타고 올라오는 끔찍한 고통은 확실히 부러진 듯하다. 전신 근육도 성한 곳이 없다. 이따금 사물이 분절되듯 형이 나뉘는 것을 보니 머리도 다친 모양. 그야말로 멀쩡한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은 녀석처럼 내가기공을 익힌 무인도 아니며, 그저 마보와 목검을 휘두르며 육체 단련에만 힘쓴 일반인이었으니.

그저 단련한 육신과 정신력으로만 버티고 있는 중이다.


‘정신 차리자.’


천진은 스스로의 혀를 씹었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감돌고, 통증이 정신을 일깨웠다.


일부러 오른 주먹을 꽉 쥐었다. 거기서 번지는 불에 달군 듯한 통증 덕에 조금이지만 사물을 분간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유소찬이 이죽거렸다.


“왜. 덤비기라도 할 생각이더냐?”


“그래.”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개죽음도 그런 개죽음이 없다. 그를 피하고자 노력하지 않았나.


천진의 머릿속으로 죽음이란 두 글자가 선명히 떠올랐다.


그는 죽음을 잘 안다. 칼날 위에 일신이 쌓아 올린 무로서 살아가는 무인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또래 아이 중에서는 많이 안다고 자부해도 좋을 터. 그는 여러 죽음을 보았다.


아직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그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많은 곳을 떠돌았다. 그리고 보았다. 낯선 거지의 시신에 날파리가 꼬이는 것도, 어젯밤까지 보았던 인물이 취한 무인의 칼에 유명을 달리한 것도.


그리고······ 가장 소중했던 어머니가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게 된 것도.


하니 그는 많은 죽음을 보았다 자부할 수 있었고, 선명히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의 죽음은······ 아직은 보이지 않았다.


“하압!”


유소찬이 기합을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망가진 육신을 내력으로 어떻게든 움직이듯, 움직임은 평소보다 부자연스러웠고, 삐걱거렸다.


하나 속도는 평소 비무를 벌이던 것보다 빨랐다. 아무래도 내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임하는 비무와는 비교할 수가 없을 터이니.


‘···뭐지?’


한데 천진은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녀석의 움직임이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집중 때문인가?’


아니, 다르다. 사물이 느릿하게 보이는 것은 평소에도 자주 겪던 일. 하나 지금 겪는 감각은 평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어디로 움직일지 예상할 수 있다.’


정확히는 녀석의 몸을 타고 흐르는 기묘한 흐름을 알 수 있었다. 그를 통해 어디를 노리는지, 검이 어디로 흐르는 지가 천진에게는 느껴졌다. 마치 강물의 흐름을 눈으로 보듯 말이다.


‘저게 진기의 흐름인가.’


천진의 허리가 비틀리며 사선으로 자신을 가르려는 검격을 피해냈다. 검식은 이미 자주 접했기에 알고 있다. 만들어 낸 목검의 한계만 아니었다면 비무에서 이기는 것은 자신이었을 터. 녀석은 그것도 모르고 항상 자신이 우위에 있는 줄 알더라.


지금은 내력까지 사용하는 싸움이지만, 상관없다. 그의 집중은 녀석이 검이 얼마나 빨라졌던 볼 수 있도록 도와줬으니.

또한 내력의 흐름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유소찬에게는 가망이 없었다.


‘팔꿈치와 무릎, 발목에 기묘하게 내력이 모인다. 검이 꺾이겠어.’


천진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유소찬의 검이 사선으로 치달았다가 돌연 몸을 팽이처럼 돌리며 그대로 천진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으니.


천진은 녀석보다 한 발짝 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앞으로 쓰러지듯 몸을 숙이며 녀석의 검을 피한 뒤 오금을 잡아 그대로 당겼다.


“억!”


뒤로 쿵 쓰러지며 지면에 뒤통수를 찧은 녀석의 위로 올라탔다. 쉽사리 검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양팔을 무릎으로 누르면서 주위 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내리쳤다.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기에.


퍽! 퍽! 퍽!


계속해서 강렬하게 내리쳤고, 곧 녀석의 눈가에 초점이 점차 사라졌다.


천진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녀석의 손에서 떨어진 검을 집어 들어 목을 찔렀다. 완전히 끝냈다 안심할 수 있도록.


이윽고 유소찬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흉부도 들썩거리지 않는다.


“하아··· 하아···.”


천진이 힘겨운 숨을 몰아쉬었다. 녀석의 목에서 빼낸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하곤 일어섰다. 오른팔에선 여전히 통증이 올라온다.


아우우우─!


그 순간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천진은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수풀 사이로 번뜩이는 안광들이 보였다.


“네놈들 먹이는 저거다.”


천진이 검으로 유소찬의 시신을 가리키며 뒷걸음질 쳤다. 수풀을 계속 노려보며 검을 쥐고 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행히 짐승들은 검이라는 위험 요소가 있는 자신에게는 관심을 끊은 모양이다.


녀석들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때야 천진은 뒤돌아 걸었다.


그냥 막연히 걸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서.



───



천진은 적당한 나뭇가지를 잘라 팔에 대고 여기저기서 끌어온 나무 덩굴로 팔을 고정했다. 조잡한 부목이었으나 조금이지만 통증이 가시는 듯하다.


‘숨을 장소가 필요하다.’


밤의 산은 위험하다. 숙련된 약초꾼이라 할지라도 짐승의 습격에서 자유로울 순 없으니.


세상천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천하를 통틀어도 열을 꼽기 힘들 터. 하물며 자신 같은 어린아이는 말할 것도 없다.


하여 천진은 몸을 숨길만 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적어도 이 몸 상태가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마을로 돌아가는 건 선택지에서 배제했다. 인근에서 가장 큰 위세를 떨치는 백응검문의 외아들을 죽였으니 화가 닥치는 건 시간문제일 터. 몸이 호전되기도 전에 백응검문주를 맞닥뜨려야 할 수도 있다.


“···틈이 보인다.”


그렇게 산을 뒤지던 천진은 절벽에서 미약하게 벌어진 공간을 보았다. 묘하게 인위적인 느낌이 감도는 공간이다. 적어도 자연적으로 만든 장소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자그마한 바위가 입구를 막고 있었고, 천진은 젖먹던 힘까지 짜내며 바위를 밀었다. 온몸이 한계를 부르짖었고, 왼손 하나만으로 하기에는 벅찼으나 끝끝내 밀어내고 말았다.


바위를 밀자 어린아이 하나 정도 들어갈 만한 틈이 보였다. 천진은 그 사이로 몸을 숙이면서 기어들어 갔다.


본능적으로 둘러봤으나 짐승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하긴 이런 장소에 누가 굴을 틀겠나.


“하아···.”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리면서 몸이 피로감에 물들었다. 쓰러지듯 몸을 뉜 천진의 눈꺼풀이 점차 닫혔다.


‘자면 안 되는데···.’


불도 때지 않았고 육신도 엉망진창이다. 눈을 감았다 뜨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한데도 수마는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오른팔에서 올라오는 통증으로도 감기는 눈꺼풀을 막을 수 없었으니.


천진의 시야가 어둑하니 물들었고, 바람이 불어 꺼진 촛불처럼 그의 정신도 뚝 끊겨버렸다.


그런 그의 얼굴 위로 동굴 천장에 맺혀 있던 물방울들이 똑, 똑, 떨어졌다. 피부를 타고 흐르던 그 물방울이 우연히 그의 입가에 들어섰다.


동시에 화한 기운이 번졌다.



───



천진의 눈꺼풀이 점차 들린다. 밖을 보니 아직 어둑한 밤의 산이 보이거늘, 얼마 자지 않았는데 몸 상태가 개운하기 그지없다.


“어?”


그와 함께 체내에서 느껴지는 미지의 감각에 그가 눈을 번쩍 떴다. 잠이 싹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을 보는 것 같은 감각. 동시에 오른팔에서 번지던 통증이 많이 줄어 있었다.


천진은 이게 본능적으로 자연지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소찬의 정제된 내력과는 다르나 느껴지는 기분은 분명 녀석의 체내를 질주하던 그 기운과 맞닿아 있었다.


‘그렇다면 이게···.’


말로만 듣던 기연. 그를 자신이 얻게 된 것이다.


천진은 아까보다 맑아진 정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 미처 보지 못한 길이 보였다.


꿀꺽. 천진이 마른 침을 삼키고선 일어나 벽을 짚고는 천천히 길을 걸었다. 청각에 집중했으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적어도 이 동굴엔 아무도 없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천진은 길의 끝까지 다다랐고, 그가 보게 된 것은 동굴의 입구처럼 자그마한 문이었다.


아까보다 수월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한 권의 서책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기연(奇緣)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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