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째 세상을 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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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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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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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사(1)

DUMMY

 “아이고! 벌써 가면 어떡해!”


 타오르는 향.

 뒤에 놓여 있는 3개의 사진.

 그 앞에서 곡소리가 들렸다.


 “네가 사람이야! 네 가족이 죽었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어!”


 통곡하던 중년의 여성은 상주 완장을 차고 있는 남성의 멱살을 잡으며 화를 냈다.


 여성의 말대로 남성은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성이 잡고 흔들었지만 익숙한 듯 눈은 천장과 벽 그 사이 어딘가에 고정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짐승 같은 놈.”


 여성은 쓰레기를 보는 눈으로 남성을 흘기며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이 닫히고 나서야 남성은 입을 열었다.


 “아···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이 말을 누가 들었다면 남성을 패륜아로 봤을 거다.

 자신의 부모와 여동생의 장례를 치르는데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많지도 적지도 않은 사람이 왔다 갔고 그들이 남성을 보고 든 생각은 전부 똑같았다.

 사이코패스.


 “신우야.”


 단 한 사람만 빼고.


 “상심이 크지···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중년의 남성은 신우의 손을 잡았다.

 표정을 보니 정말 이 상황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거 같았다.


 “···아저씨, 괜찮아요.”


 신우는 자신의 손을 잡은 중년의 남성을 보며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아저씨한테 말해.”

 “괜찮아요.”

 “괜찮다고만 하지 말고. 누가 뭐라 하던 나쁜 생각 하지 말고 아저씨한테 꼭 말해. 알았지?”


 신우는 정말 괜찮았지만,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 걸 알기에 남성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네, 감사합니다.”


 남성은 원하는 대답을 들은 뒤에 봉투를 신우의 주머니에 넣었다.


 “네 아버지. 내 친구 한준혁이가 나한테 갚은 돈이야. 이 돈 너한테 주마. 다음에 만나면 또 줄게.”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줄게··· 신우는 이뤄지지 않을 거란걸 안다.

 앞으로 아저씨를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장례식이 끝나고 신우는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을 잃은 신발들이 보였지만, 신우는 익숙하다는 듯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소파에 앉아 티비를 켰다.


 -또다시 실종된 사람이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돌아온 사람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요···.


 뉴스에서는 요새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고 있는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이제 곧, 다시 시작인가.”


 그 내용을 보며 신우는 한숨을 내뱉었다.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거야. 매번 더 나아졌으니까.”


 신우의 말에서 지쳤지만 포기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읍 후우.”


 담배 연기가 거실을 채우자 신우는 눈을 감고 티비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그렇게 마왕을 무찌르자 이세계에서 돌아올 수 있었어요.

 -그럼 당신은 용사였던 건가요?

 -네. 용사였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용사.

 세계를 구하기 위해 선택받은 사람.


 약 3개월 전 미국에서 실종된 사람이 돌아왔다.

 처음 실종됐을 때 마법처럼 갑자기 사라진 터라 갑자기 돌아온 사람에게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시선이 모였다.


 “전 이세계로 갔었고, 그곳에서 용사가 되어 마왕을 무찔렀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전 세계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고 미쳤다고 생각했다.

 실종으로 인한 뇌의 손상이라고.

 하지만 여론이 바뀌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신을 용사라고 말했던 사람은 실시간으로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줬고, 그것을 확인한 전 세계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전 세계에서 실종됐던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그들은 모두 이세계를 구했다고 말했다.


 -이세계에서의 추억도 많지만 역시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들을 보니 좋네요.


 “돌아오는 게 좋은 선택은 아닌데.”


 신우는 인터뷰 내용을 들으며 불쌍하다는 듯이 말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와서 기뻐하는 모습이라니.

 그냥 그곳에서 살지.


 “슬슬 준비해야지.”


 냉장고에서 소주 두병을 꺼낸 뒤 소파로 돌아온 신우는 소주 한 병을 그대로 원샷해버렸다.

 안주도 없이 그대로 한 병을 다 마셨으니 그 쓴맛이 온몸을 덮치기 시작했다.


 “으··· 몇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맛이야.”


 신우는 담배를 피우며 취기가 올라오길 기다렸다.

 취기가 어느 정도 오르자 나머지 병을 까서 그대로 한 번에 입에 털었다.


 “윽.”


 두병의 취기가 완전히 오를 때쯤 신우가 자신의 왼쪽 눈에 손을 갖다 대며 고통에 신음하기 시작했다.


 “크윽···.”


 신우는 소파를 쥐어 잡으며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고통스러운 이 시간을 버텼다.


 “크아악!”


 취기로 인해 그나마 버틸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왼쪽 눈에서 손 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며 커다란 고통이 느껴졌다.


 “허억··· 허억···.”


 신우는 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쉰 후 옆에 있는 거울을 들어 얼굴을 확인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평소와 똑같았지만 딱 하나 다른 게 있었다.

 바로 왼쪽 눈에 생긴 이상한 표식.


 눈썹과 눈 사이부터 시작해서 눈동자, 애교살, 눈 밑 지방을 지나 눈꼬리까지 이어지는 빨간색의 이상한 표식.

 하지만 신우는 이번에도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아 했다.


 “지금까지랑 다른 게 없네.”


 그때 신우의 눈앞에 파란 창의 메시지가 떴다.


 “그래··· 이게 시작이었지.”


 왼쪽 눈의 빨간 표식, 파란 창의 메시지.

 이게 시작이었고, 이것으로 인해 신우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용사들이 돌아오고 각 국가는 용사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용사의 힘은 그 자체로 귀중한 전력이며 무기였으니까.


 국가는 용사의 의지는 묻지 않은 채 자신들끼리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더 강한 용사를 가진 나라일수록 발언권이 세졌고, 전문가들은 용사들로 인해 지구에 새로운 질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전문가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앞으로 3달 뒤 생길 검은색 게이트.


 갑자기 생긴 게이트에서 나온 마왕군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때 세계 각지의 용사들이 모여 마왕군을 무찔렀고, 마왕군과 용사들의 지구를 건 전쟁이 시작됐다.


 역시 공통의 적이 생기니 사람들은 뭉치기 시작했다.


 각 국가들은 용사들을 위한 협회를 만들었다.

 UN의 관리하에 용사들을 관리하며 전쟁이나 국가의 이득을 위해 그 힘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선서했고, 용사들은 개인을 위함이 아닌 오직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만 힘을 사용할 것을 약속했다.


 그 뒤로는 좋았다.

 게이트가 생기고 마왕군이 나타나긴 했지만, 용사들의 힘으로 무사히 지구를 지킬 수 있었으니까.


 몇번의 게이트를 막아내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만화나 소설 속에서만 나오던 허구의 인물들.

 그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되니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 시간이 계속됐으면 좋았겠지만, 역시나 해피엔딩은 어려운 법이었다.


 어느 날 필리핀에 지금까지의 게이트랑 달리 보라색으로 빛나는 게이트가 나타났다.

 그곳에서 나온 마왕군은 검은색 게이트에서 나왔던 지금까지의 마왕군이랑은 달랐다.


 보라색 게이트에서 나온 마왕군은 더 강했고, 삽시간에 많은 사람을 죽여갔다.

 그래도 용사들이 필리핀에 도착하자 마왕군은 밀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마왕군보다 좀 더 강하긴 해도 용사들이라면 상대할 수 있었다.

 게이트에서 군단장이 나오기 전까진.


 보라색 게이트는 마왕군의 군단장이 나타나는 게이트였다.

 처음 모습을 나타낸 마왕군 군단장.


 용사들은 군단장을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진짜 전쟁은 이제 시작됐다는걸.


 군단장은 압도적인 힘으로 필리핀을 부수며 용사들을 죽여갔다.

 그 싸움은 일주일 동안 계속됐고, 세계 각지에서 모인 용사들은 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군단장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그 뒤로는 다시 검은색 게이트가 열렸고, 용사들은 그곳에서 나오는 마왕군과 싸워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다시 보라색 게이트가 등장했다.


 용사들은 다시 힘을 모아 군단장과 그 휘하의 마왕군과 싸웠다.

 사람들은 용사들을 믿었다.

 이세계를 구하고 온 영웅들이니 자신들의 세계도 지켜줄 거라고.

 하지만 그 믿음은 한순간에 부서져 버렸다.


 용사들은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싸웠지만 결국 패배해 후퇴했고, 인간들은 다른 존재한테 땅을 잃었다.

 인류가 생긴 이래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때는 처음이라 다들 잘 몰랐지.”


 신우는 그날을 생각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군단장을 쓰러트린 건 그냥 기적이었어.”


 후퇴했던 용사들은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군단장과 싸웠다.


 용사들과 군단장이 싸우기 시작한 곳은 모든 것이 부서졌다.

 아늑한 보금자리인 집도, 인류의 번영을 보여주는 높은 빌딩도, 과거의 지혜를 보여주던 유적도, 꿈과 희망이 넘치던 테마파크까지.


 인간의 문명이 부서진 다음은 자연이었다.

 동물들의 터전인 숲과 산, 자연의 신비로움을 보여주는 여러 경관, 자연이 인간에게 선물한 아름다운 풍경.

 무엇하나 남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용사들은 결국 군단장을 쓰러트렸다.

 너무 많은 것을 구하지 못한 채로.


 사람들은 보라색 게이트가 나타날 때마다 많은 것들을 잃었고, 그때를 분기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신우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때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나아가는 길이 달라졌으니까.


 용사들은 자신들이 구하지 못한 것을 보며 분노했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잃은 것을 보며 슬퍼했다.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기분을 느꼈지만, 용사들과 사람들은 같은 바람을 가졌다.


 “보라색 게이트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과는 반대로 시간이 지나 보라색 게이트는 다시 나타났고, 또다시 모든 것을 부수기 시작했다.


 용사들은 전장으로 향하면서 이번에는 저번과 다를 것이라고 다짐했고, 정말로 저번과 달랐다.


 저번과 달리 결국 군단장을 쓰러트리지 못했고, 용사들은 지구를 지키지 못했다.


 신우는 그때를 떠올리며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세 번째 군단장을 쓰러트리는 데 얼마나 걸렸더라.”


 신우는 용사다.

 가족들은 죽었지만, 이 땅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의 추억을 지키고 위해 용사들과 같이 군단장과 싸웠다.


 하지만 그 끝은 죽음이었고, 신우는 자신이 죽음으로써 세상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또 다른 능력을 알기 전까진.


 신우의 또 다른 능력은 회귀.

 죽으면 특정 시간으로 회귀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신우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갔다.


 “처음엔 화가 많이 났는데.”


 군단장과 싸우다 죽고 회귀하는 시점은 항상 가족들이 죽어 장례를 치르고 있을 때.


 처음 회귀했을 때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또다시 죽고 가족들의 장례를 치를 때는 분노했다.

 이 능력은 왜 가족들을 살리지 못하게 하는 걸까.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고 어느덧 신우는 가족들의 장례에도 무덤덤해졌고, 오직 군단장을 쓰러트리는 것만 생각하게 됐다.


 항상 실패했던 세 번째 군단장.

 신우는 세 번째 군단장을 쓰러트리기 위해 천번을 넘게 회귀했다.

 신우가 몇천번을 회귀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매번 더 나아졌고, 불가능할 거 같았던 일도 몇천번을 도전하니 결국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몇 번 째지.”


 이제는 세는 걸 포기했다.

 몇번을 회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몇천번은 회귀했다는 것.


 중간중간 미쳐버릴 거 같았지만, 그때마다 군단장을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군단장을 죽이기 위해 회귀하는 거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무한의 회귀 속에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만약에 이세계처럼 지구에 위기가 닥친다면 싸울 건가요?

 -당연하죠! 전 용사니까요!


 신우는 인터뷰하는 용사를 보며 피식 웃었다.


 “너희들로는 불가능해.”


 신우의 말이 맞았다.

 되돌아온 용사들은 전부 이세계의 용사였고, 이 세계의 용사는 오직 신우 한명뿐이었으니까.


 [당신은 선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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