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째 세상을 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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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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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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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게이트(1)

DUMMY

 신우가 대한민국 용사 협회에 소속되고 2주가 지났다.

 그동안 더 많은 용사가 돌아왔지만 신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집에서 국가가 주는 돈으로 음식을 사 와 술을 마실뿐.


 회귀하면서 깨달은 건데 진지하게 살든, 놀면서 살든 할 일만 하면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할 일만 한다면 말이다.


 깻잎에 초장을 찍은 회와 쌈장을 찍은 마늘을 올리고 쌈을 싸 먹고 있을 때 신우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신우 씨.”


 강민준 협회장이었다.


 능력을 확인한 뒤로 강민준은 신우에 관한 모든 일은 본인이 맡아서 처리하기 시작했다.

 협회장이 직접 마크할 정도로 신우의 능력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지만, 이것 또한 신우가 노린 것이었다.


 대충 능력을 보여줬을 때는 협회장이 아닌 협회 직원이 신우를 맡았었고 그러다 보니 일 처리가 굉장히 느려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그 뒤로 신우는 협회장의 도움을 받기 위해 능력을 보여줄 때는 확실히 보여주기 시작했다.


 “저번에 부탁하셨던 대장장이 용사와 과학의 용사 말인데요.”

 “네.”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거 같습니다.”


 민준의 목소리에서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협회에 실망하지 말아 달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아! 어떻게 해서든 만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신우의 목소리에서 아무런 책망이 느껴지지 않자 민준은 특유의 열정을 발휘해 무슨 일이 있어도 첫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저한테 바로 말하세요!”

 “네.”


 전화가 끊기고 신우는 소주를 한잔 마셨다.


 “역시 이번에도 안되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지금 신우가 대장장이 용사와 과학의 용사를 만나면 곧 러시아에서 열릴 게이트에서 더 많은 시민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해도 러시아에서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대장장이 용사와 과학의 용사를 만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한번은 그냥 쳐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때는 엄청난 외교 문제로 번져 한국을 곤란하게 만든 적이 있다.


 그다음은 몰래 찾아갔지만, 도저히 만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힘을 쓰면 만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또 외교 문제로 번질 테고, 상황이 좋지 않아 포기했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협회를 통해 만나는 건데··· 이건 항상 사람들이 피해를 받는 방법이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신우는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니다.

 몇천번을 회귀하면서 할만한 건 다 해본 상태였고, 더 이상 방법이 존재하지 않자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류를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숭고한 희생으로.


 “피해는 최소한으로 해야겠지.”


 달력을 넘겨 6월을 확인했다.

 1일, 2일, 3일··· 신우의 눈은 20일에 멈췄다.


 6월 20일.

 인류에 최초로 게이트가 생긴 날이고, 용사와 마왕군과의 전쟁이 시작된 날.


 신우는 옆에 있는 빨간 펜을 들어 18일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날은 신우가 러시아로 향하는 날이다.

 아직 강민준 협회장한테 말한 건 아니지만, 항상 이날이었다.


 신우는 소주를 한잔 마시고 회를 초장에 찍어 먹은 다음 담배에 불을 붙이며 책장에서 세계지도를 가져왔다.


 “이번에도 엄청나게 돌아다녀야겠네.”


 신우는 세계지도를 펼치고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씩 그려지던 빨간색 동그라미가 31개가 됐을 때 신우의 손이 멈췄다.


 “이런 것들도 필요하니 버릴 수가 없단 말이야.”


 신우가 지도에 표시한 동그라미는 숨어있는 용사들이 있는 곳이었다.


 러시아에 게이트가 열리고 나서 숨어있던 용사들은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협회에 모이기 시작했다.

 용사로서 당연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용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을 하지 않는 용사들도 있었다.


 신우는 1000번이 넘는 회귀를 했을 때 이 사실을 알게 됐고, 분노했다.


 용사가 세계를 버리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데 그 힘을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니··· 그런 용사가 존재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신우는 그 용사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몇백번의 회귀로 용사로서 행동하지 않는 자들을 찾아냈고, 신우는 힘으로 그들을 눌러 싸우게 했다.


 처음엔 대화로 설득을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되지 않았다.


 이유는 지쳤다는 것.

 이세계를 구하고 왔는데 또다시 싸우는 건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용사를 보며 신우는 그때부터 힘으로 그들을 설득했다.


 자신은 이 싸움을 몇천번째 반복하고 있는데 겨우 하나의 세계를 구하는 한 번의 싸움만 해놓고선 지쳤다고?

 이 말이 신우를 열받게 했지만, 화가 났지만··· 필요했다.


 생각이 썪어빠져 있어도 용사는 용사.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진 자들이 한명이라도 더 필요했다.

 끝까지 싸우기를 거부했던 용사들은 결국 열받은 신우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엔 몇 명이나 숨어있으려나.”


 지도에 표시된 31곳 전부에 용사가 있는 건 아니다.


 회귀할 때마다 이 세계로 돌아오는 용사가 똑같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지도에 표시돼있는 곳을 돌아다녀야 한다.

 가보지 않으면 모르니까.


 신우는 표시된 지도를 보며 항상 같은 생각을 했다.

 언젠가 자신이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있지 않을까 하고.


 신우는 씁쓸한 표정으로 천장을 보며 담배를 빨아들인 뒤 내뱉었다.


 “후우.”


 지금 할 수 있는 준비는 전부 끝났다.

 솔직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아직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테니까.


 처음 이 기분을 느꼈을 때는 초조했다.

 다음은 어이가 없었고, 그다음은 씁쓸했다.

 몇천번이고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아무렇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어떤 기분이 들지만 그걸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기분은 이 상황을 바꾸는 데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고, 신우는 모든 상황에서 그런 건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기분을 무시할 때가 많았다.


 신우는 마지막 남은 소주를 비우고 그 상태로 소파에 누웠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눈은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다.


 ***


 “협회장님.”

 “신우 씨.”


 신우의 전화에 강민준 협회장이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로부터 거의 2달이 지났다.

 협회는 야근을 하며 밤낮없이 최선을 다했지만, 아직 신우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강민준은 신우가 그 일을 물을까 봐 초조해했다.

 신우가 물어보면 마땅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무능해 보일까.


 “무슨 일로 먼저 전화했어요?”


 먼저 전화하던 일이 없던 신우가 전화를 해서 그런지 민준의 불안감은 심장을 미친 듯이 뛰게 했다.


 “저···.”


 꿀꺽


 침을 너무 크게 삼켜서 민준의 침 삼키는 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신우에게도 전해졌다.


 “별거 아니니까 긴장하지 마세요.”

 “아하하···.”


 신우의 말에 민준은 머쓱해 하며 웃었지만, 별거 아니라는 말에 불안감도 어느 정도 사라시기 시작했다.


 “러시아로 보내주세요.”

 “네, 러시아··· 네?!”


 별거 아니라고 했잖아!

 민준의 속마음이었다.

 사라지기 시작했던 불안감이 아까보다 더 크게 생기기 시작했다.


 “러, 러시아는 왜요?!”

 “저번에 말했던 거 있잖아요.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고. 그것 때문에 그래요.”

 “···일단 협회로 와서 얘기합시다. 지금 당장 차를 보낼게요.”


 조금 기다리자 초인종이 울렸다.

 전화를 끊은 지 1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민준은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다.


 신우가 문을 열자 정장이 아닌 평상복의 직원이 서 있었다.

 썩은 표정과 함께.


 ‘아, 깜빡했다. 이렇게 말하면 휴가 간 사람을 보내는데···.’


 “신우 씨··· 준비되셨나요?”


 썩은 표정에서도 간신히 미소를 유지하는 직원을 보며 신우는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집으로 오는 직원이 달랐는데, 휴가 간 직원을 보낼 때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게 미안해서 최대한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말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그러다 보니 이런 식으로 큰일이 생길 것처럼 말하면 휴가 간 직원을 보낸다는 걸 까먹고 있었다.


 “미안해요···.”

 “아니에요. 신우 씨는 잘못이 없어요···. 하하··· 출발합시다.”


 신우는 조용히 여행 가기 전 끌려온 직원을 따라 차를 탔다.

 둘은 차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요함을 유지하던 차는 용사 협회에 도착했고, 멀리서 뛰어오는 강민준이 보였다.


 “저 개색···.”


 순간 직원의 입에서 욕이 들린 거 같았지만, 신우는 모른척했다.

 이건 욕먹어도 쌌으니까.


 “신우 씨!”


 신우가 문을 열고 나오자 강민준은 대체 무슨 일이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쳐다봤다.


 “일단 올라가서 얘기할까요?”

 “아, 네! 여기서 말하긴 좀 그렇죠?”


 강민준이랑은 달리 너무 많이 겪어서 여유가 있던 신우가 상황을 리드했다.


 협회장실에 들어오자 강민준은 신우를 똑바로 쳐다봤다.

 빨리 무슨 일인지 말해달라는 뜻이었다.


 “얼마 전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 기분이 러시아로 향했어요.”

 “기분이 향해요?”


 강민준은 기분이 향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기분이 들면 든거지 향한다는 건 뭘까?

 그리고 이건 신우도 몰랐다.

 그냥 적당히 아무 말이나 한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말해도 용사라는 것에 그냥 넘어갈 걸 아니까.


 “아, 뭐 용사는 일반인이랑 다르니까요. 그 기분이 러시아로 향했다는 게 러시아에 문제가 생긴다는 건가요?”

 “이세계와 똑같다면 그럴 거예요.”

 “흠···.”


 한손으로 턱을 만지며 생각하던 민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러시아에 알리면 안 될까요? 굳이 신우 씨가 직접 갈 필요는 없잖아요.”


 민준이 한 말은 협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말 중에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하지만 이미 신우는 이 방법의 끝이 안 좋을걸 안다.


 러시아는 대한민국 협회의 말을 무시하고 결국 큰 피해를 입는다.

 이게 몇천번의 데이터에서 나온 결과였다.


 “혹시 모르잖아요.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말했다가 혼란만 일으키게 된다면 한국은 외교적으로 러시아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신우의 말도 일리가 있어서 민준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이걸 아는 신우는 민준의 걱정을 날려주는 말을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 절대 귀화하지 않을 테니까. 협회에서 만든 신분으로 러시아에 들어간 다음 아무 일 없으면 조용히 나올게요. 전 저희 가족이 살았던 이 땅을 정말 사랑해요.”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몇천번을 싸워오고 있는데요.’


 민준은 어쩔 수 없이 신우를 러시아로 보내기로 했다.

 괜히 안된다고 막았다가 오히려 신우를 자극하는 일이 벌어졌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판단에서였다.


 ***


 신우를 러시아로 보내기 위한 방법은 빠르게 진행됐고, 6월 18일 신우는 모스크바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럼 가볼까.”


 신우는 익숙한 듯 호텔로 향했다.

 이 호텔은 협회에서 잡아준 곳으로 항상 똑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게이트가 생기는 곳과 가까웠다.


 인류 최초의 게이트는 6월 20일 모스크바에 생긴다.

 수도에 생긴 게이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게 된다.

 부랴부랴 용사들이 나서 막았지만, 피해는 너무나 컸다.

 그 뒤로 인류는 힘을 합치기 시작한다.


 신우는 방안에서 그날의 일을 생각하며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이제 곧 더럽혀질 손을.


 ***


 시간이 흘러 6월 20일 오후 4시 9분.

 모스크바의 광장에 검은색 게이트가 생겼다.


 호기심의 눈으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던 사람들의 얼굴은 그 안에서 나온 마왕군으로 인해 순식간에 공포와 두려움에 삼켜졌다.


 “꺄아악!”


 마왕군이 죽음을 뿌리기 시작했을 때 신우는 호텔 방안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더···.”


 신우의 귀로 소리가 들렸다.


 “%$^%$!”

 “%$%$#^&$^%$^!”

 “#$,#$%#$%#$%##$%!”


 100명, 200명, 300명 목소리가 타올랐다가 꺼지고 마침내, 그 숫자가 500명을 넘었을 때 굉음과 함께 건물이 부서지고 마왕군의 상반신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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