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째 세상을 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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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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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선택받은 용사들(2)

DUMMY

 “도와줄게요.”


 은발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새하얀 손을 뻗는 여자.

 얼음의 용사였다.


 “집게 좀 주시겠어요?”


 느껴지는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따뜻한 목소리.

 신우는 빤히 쳐다보더니 옆의 집게를 건넸다.


 “구해줘서 고마워요.”


 신우의 말에 얼음의 용사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먼저 구해줬잖아요.”


 1군단장과 싸울 때 신우가 자신의 팔을 버리면서 구한 용사가 얼음의 용사였다.


 “아···.”


 신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신우를 보며 얼음의 용사는 미소를 지은 채 혼자서 말을 이어갔다.


 “그때 저 때문에 다친 게 계속 생각났어요. 말은 안 했지만 너무 미안해서 찾아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만나네요.”

 “···.”


 얼음의 용사가 아무 말 없는 신우를 빤히 쳐다봤다.


 “혹시 그때 일로 아직도 화난 거예요? 아니면 제가 다른 잘못을 했나요?”


 눈이 마주치고 신우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아니에요.”

 “흐음, 그런데 왜 저만 다르게 대해요?”

 “그런 적 없어요.”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는데요.”


 얼음의 용사의 말이 맞았다.

 신우는 10명의 용사 중 얼음의 용사를 다르게 대하고 있었다.


 “착각이에요.”

 “눈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다시 눈이 마주치고 신우가 얼굴을 돌리려 하자 얼음의 용사가 신우의 양 볼을 잡았다.


 “왜 그런 눈으로 저를 보는 거에요?”

 “어떤 눈인데요?”

 “말로 표현은 못 하겠지만 다른 용사를 볼 때와는 다른 눈이에요.”

 “···.”


 신우가 얼음의 용사를 보는 눈에는 그리움과 미안함, 슬픔, 애정이 담겨 있었다.


 17번째 회귀를 했을 때 신우와 얼음의 용사는 처음 만났다.

 그때의 신우는 가족의 장례를 17번을 치러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그런 신우를 얼음의 용사는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신기했다.

 얼음의 용사가 자신 주위에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따뜻했으니까.


 둘은 사랑에 빠졌고, 신우는 얼음의 용사와의 미래를 보기 위해서라도 세계를 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신우가 보게 된 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자신을 혐오했다.


 보고 싶다.

 신우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살했다.

 가족과 다르게 얼음의 용사는 회귀하면 다시 볼 수 있었으니까.

 이때부터 신우는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쁨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


 회귀 할 때마다 둘은 사랑을 나눴다.

 그런 운명인 것처럼 만나면 서로를 사랑했다.

 하지만 이내 이건 저주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우는 세상을 구하는 데 계속 실패했고 그때마다 얼음의 용사의 죽음을 목격했다.

 얼마나 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게 됐을 때 신우는 자신의 능력을 저주했다.


 회귀하는 게 무서워졌다.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봐야 할까 봐.


 신우는 두려움에 얼음의 용사를 멀리했다.

 멀리하다 보면 이 마음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얼음의 용사는 어떤 심한 말을 해도 신우에게 다가왔고, 신우는 그걸 뿌리치지 못했다.


 보지 않으려 해도 어느 순간 자신의 눈은 얼음의 용사를 찾았고, 멀어지려 해도 어느 순간 자신의 옆에 있었다.

 그 결과 신우는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못한 상태로 지금까지 지내왔다.


 “제 이름은 리네아예요. 신우 씨, 불편한 게 있으면 말해줘요.”


 리네아는 그 말을 끝으로 고기를 접시에 담아 용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신우는 뒷모습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이번엔 제발 자신의 눈앞에서 죽지 말아 달라고.


 ***


 대장장이 용사와 과학의 용사는 빠르게 용사들이 훈련할 곳을 만들었고, 용사들은 그곳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두 용사는 이제야 좀 쉬겠다는 생각을 하며 오랜만의 여유를 느끼고 있을 때 신우가 찾아왔다.


 “이제 시간 많죠?”


 신우의 한마디에 두 용사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다가왔다.


 “없어! 시간 없어!”

 “신우 씨도 훈련이나 하러 가요! 여기 오지 말고!”


 신우는 두 용사의 말을 무시한 채 종이를 하나 꺼냈다.


 “이게 필요해요.”


 신우가 꺼낸 종이에는 커다란 선박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좀 특이한 모양이었다.

 그 모양에 두 용사가 관심을 가졌다.


 “이거 선박이야?”

 “모양이 조금 특이하네요.”


 단순히 커다란 직사각형의 모양을 한 선박.

 공격무기 같은 건 없고, 오로지 뭔가를 싣기 위해서 만든 거 같았다.


 “이번에 열릴 보라색 게이트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열릴 거예요.”


 신우의 말에 두 용사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용사들이 훈련에 들어간 지 별로 안 됐잖아.”

 “근데 벌써 열려요?”

 “아, 지금 열린다는 건 아니에요.”


 두 용사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종이를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이걸 발판으로 사용하려는 거죠?”

 “맞아요. 바다에서 싸우는 건 우리에게 너무 불리해요. 불리함을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선 발을 디딜 수 있는 배가 필요해요.”


 대장장이 용사가 한숨을 내뱉었다.


 “용사와 군대가 쓸 만큼을 만들려면 얼마나 만들어야 되는 거야?”

 “최대한 많이요. 아무리 단단하게 만들어도 분명히 부서질 거예요. 그러니까 예비로 쓸 것까지 필요해요.”


 대장장이 용사와 과학의 용사가 힘든 건 안다.

 용사들의 훈련장소와 무기와 방어구의 개량을 위해 잠도 줄여가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시간은 인류의 편이 아니니.


 “협회에 이미 말해놨으니까 지금 바로 울산으로 출발하시면 돼요.”


 너무 갑작스러운 말에 두 용사가 신우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미안해요··· 시간이 없어요.”


 두 용사는 한숨을 내쉬더니 신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과하지 마. 너도 어쩔 수 없는 건데.”

 “저희를 괴롭히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잖아요. 모두 이 세계를 위해서 그런 건데.”


 신우가 고개를 숙였다.


 이 둘은 매번 최선을 다해서 신우가 원하는 걸 만들어줬다.

 하지만 신우는 그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이제는 필요하면 사람도 죽이고 희생시키는 신우였지만, 이 둘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뭘 고개까지 숙여. 다 도우면서 사는 거지.”

 “맞아요. 울산이란 곳에 가보고 좋죠. 최대한 많이 만들어놓을 테니까 승리나 가져오세요.”


 그렇게 말하고 두 용사는 울산으로 출발했다.


 “스읍, 후.”


 신우는 텅 비어버린 연구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우리보고는 훈련하라면서 본인은 아무것도 안 하네요?”


 그때 문이 열리며 마법의 용사가 들어왔고, 신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눈을 한번 마주친 뒤 다시 담배를 피웠다.


 “궁금한 게 있어서 왔어요.”

 “뭔데요?”


 마법의 용사는 알아볼 수 없는 글들과 그림이 그려져 있는 종이를 내밀었다.


 “이거 읽을 수 있어요?”

 “···아니요. 이게 뭔데요?”

 “흐음, 이상하네···.”


 혼잣말을 하던 마법의 용사는 종이를 치우고 신우의 앞에 앉았다.


 “다시 물을게요. 그때 마법진을 여러 개 만들라고 한 거. 어떻게 된 거예요?”

 “말했잖아요. 그냥 웹소설이나 웹툰에 나온 거 보고 혹시나 해서 말한 거라고.”

 “거짓말 하지 마요.”


 마법의 용사는 신우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순히 마법진의 수를 늘리라는 말을 해서가 아니었다.


 마법의 용사가 구했던 세계에서 마법진이란 마법의 주체가 되는 것.

 어떤 마법진을 사용하는지, 얼마나 잘 사용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마법이 나오고, 같은 마법이라도 그 위력이 다르게 나타난다.


 소수에게만 전해지는 마법진이 있고, 희귀한 마법진은 비싼 가격에 거래될 만큼 마법진은 중요하다.

 하지만 신우는 이 사실을 모른다.

 물론 마법의 주체가 마법진인지 모르는 사람도 마법진의 수를 늘리라는 말은 할 수 있다.


 마법의 용사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왜 눈보라를 없앨 때만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였다.


 실제로 눈보라를 없애서 그 위력을 봤으면 당연히 마법진의 개수를 늘려서 군단장을 공격하라고 말하는 게 맞는 것 아닐까?

 하지만 신우는 그 뒤로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상하잖아요. 마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 이렇게 물어온 적이 없었는데 왜 이러는 걸까.


 “표정이 왜 그래요?”


 신우의 표정이 좋지 않은걸 보고 마법의 용사가 기분 나쁘다는 티를 냈다.


 “기분이 나빠야 할 건 저죠. 처음 보는 사람이 나에 대해 알고 있는데.”

 “하···.”


 한숨을 내쉰 신우는 마법의 용사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네?”

 “우리에게 중요한 건 게이트에서 나오는 마왕군에게서 인류를 지키고 마왕을 죽이는 것. 아닌가요?”

 “그게 중요하긴 한데. 이건···.”

 “그럼 궁금증은 잠시 넣어두고 시키는 대로 해요. 나도 설명 못 하는걸 어떡하라고.”


 조금 강압적으로 나온 신우를 보며 마법의 용사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공포? 두려움? 아니다.

 그런 게 아닌 이상한 감정이었다.

 제대로 설명은 못 하겠지만 딱하나 확실한 건 어두운 감정이라는 것.


 “···지금은 당신 말대로 하지만 저는 꼭 알아낼 거예요.”


 마법의 용사가 돌아가고 신우는 다시 담배를 피우며 지금 상황을 생각했다.


 “이번에도 바뀌었어.”


 지금까지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당황한 신우는 조금 강압적으로 나갔고, 다행히 마법의 용사는 돌아갔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 게 걱정이었다.

 사소하지만 자신이 아는 것과 다른 행동을 하는 용사들.


 용사들을 통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신우에게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안돼··· 그러면 안 돼.”


 자칫 잘못하면 생각보다 일찍 이번 회차를 끝내야 할 수도 있다.

 통제하지 못하는 용사들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수많은 회귀 중 한번 용사들을 통제하지 못했던 회차가 있다.

 신우는 그 회차를 잊을 수가 없다.


 통제되지 않은 용사들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불리한 상황에서 싸웠고, 결국 용사들은 전부 죽음을 맞이했다.


 그걸 겪은 뒤로 신우는 알게 모르게 용사들이 불리한 상황에 뛰어들지 않게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것이 사람들을 희생하는 일일지라도.


 “하··· 그냥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면 정말 좋을 텐데.”


 신우는 청소하기 위해 움직이는 연구실 안의 로봇을 가만히 지켜봤다.


 ***


 “신우! 무슨 일이야?”


 다음날 신우는 에반을 찾아갔다.


 “법칙의 용사를 만나려고 왔는데 어딨어요?”

 “화장실 갔어. 곧 올 거야.”


 에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법칙의 용사가 들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볼수록 이해할 수가 없다.


 근육이라곤 없는 몸.

 평균보다도 작은 키.

 그런 걸 다 떠나 겁이 많은 거 같은 성격.

 어떻게 저런 사람이 용사가 되고 세계를 구했을까.


 신우는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법칙의 용사는 뒤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에반을 본 뒤 떨리는 손으로 신우의 손을 잡았다.


 “네···.”


 둘은 훈련장을 나와 연구소로 들어왔다.


 “커피 드릴까요? 아니면 차?”

 “커, 커피 주세요···.”


 신우는 커피를 2잔 탄 뒤 법칙의 용사 앞에 앉았다.


 “첫 번째 보라색 게이트가 열렸을 때는 왜 오지 않은 거에요? 에반에게 들으니 능력을 사용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던데.”

 “아, 그, 그게 제가 능력을 사용하려면 그 세계의 법칙과 동화가 되어야 해서요··· 그게 시간이 좀 걸려요.”

 “동화? 능력이 정확히 뭐에요?”


 신우의 말에 법칙의 용사는 두 손을 뻗어 초록빛과 검붉은 빛을 만들었다.


 “제 능력은 원하는 범위나 생명체에게 버프와 디버프를 주는 거예요.”


 역시나 처음 보는 능력이었다.


 “흐음··· 법칙에 동화된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아, 제가 버프나 디버프를 하려면 그 세계의 법칙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해요. 그게 동화에요. 이게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러니까···.”

 “대충 알 거 같아요. 당신의 능력을 사용하려면 이 세계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 이런 거죠?”

 “마, 맞아요!”


 법칙의 용사의 능력은 이미 경험했다.

 정말 좋은 능력이고 신우에게 필요한 능력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불러들인 거다.


 ‘미안하지만 난 너를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어.’


 법칙의 용사의 불행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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