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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작품등록일 :
2024.08.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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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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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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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 포악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놈.

DUMMY

무려 차기 재상감을 영입했음에도 난 멈추지 않았다.


왕건이 정신 차리기 전에 정비해야 한다는 압박감.


온전한 내 사람으로 조정을 꾸리고 싶다는 인재욕.


두 가지가 적절히 섞인 결과였다.


해서 김행도와 함께 레이더망에 걸려든 또 다른 월척을 찾아 나섰다. 이번에는 고래가 아니라 상어라고 해야 할까? 포악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놈이니 틀린 비유는 아니었다.


비룡성이라는 부서가 있다.


원봉성이 후대를 위한 부서라고 한다면 비룡성은 철저히 현대만을 위한 곳이었다. 바로 내가 타는 말, 수레, 마구 등을 관장하는 게 주 업무였으니 말이다.


물론, 여기까지만 봐서는 개인 마부 집단을 거창하게 꾸린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태봉의 지배력이 미치는 모든 땅의 목축까지 담당하는 부서였다.


뭐, 넓은 의미로 환경부 같은 느낌이었다.


사회적으로 군사적으로 말이 가지는 값어치를 생각한다면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부서이기도 했다. 그러니 근무하는 인원도 다른 곳에 비해 상당히 많은 편이었는데.


“미륵 폐하를 뵈옵니다!”

“폐하! 어인 일로 예까지 행차하셨사옵니까!”


날 반기는 목소리에 귀청이 떨어질 뻔했다.


우락부락한 사내 놈들이 형님 모시듯 달려온다.


적당히 받아주고는 누군가의 이름을 말했다.


“황공하옵니다만, 어······. 그, 왜 찾으시는지 연유를 여쭈어도 되겠사옵니까?”

“놈!”


장소가 장소니만큼 수행원은 박술희였다.


내군 부장이라는 직책이 타 부서의 구성원보다 절대 아래가 아니었으니, 호통치며 그들을 나무랐다.


“감히 어명에 반문하는 것이냐?”

“송······. 송구하옵나이다, 폐하.”

“괜찮으니 행방이나 어서 말해주겠는가?”


사내는 머뭇거리며 겨우 입을 뗐다.


“저쪽 모퉁이를 돌아가시면 건초를 관리하는 구역이 나옵니다. 아마 그곳에서 농땡이를 피우고 있을 것이옵니다.”

“하?”


난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헛웃음을 흘렸다.


어쩐지 놀라는 초점이 묘하게 이상했었다.


왕이 자신들의 말단 관리를 찾는다는 것에 놀라기보다는, 왜 하필 그자를 찾는지 의문이 가득해 보였기 때문이다. 해석하자면 그런 폐급을 찾는 자도 있네? 라는 반응이랄까.


공공연하게 농땡이를 피워도 간섭하지 않을 정도면 이미 비룡성 내에서 유명 인사라는 소리와 같았다.


“저놈인가 보군.”


아니나 다를까.


애초에 녀석은 숨어서 쉬려는 의지도 없었다.


건초 더미를 침구류 삼아 퍼질러 있었다. 웃긴 건 그 와중에도 다른 영역은 깔끔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단 거였다.


“죽고 싶지 않거든 일어나거라.”


박술희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내가 옆에 없었다면 단칼에 베어버렸을 기세였다. 분노로 몸을 떠는 것만 봐도 얼마나 진심인지 느껴졌다. 그러나 상대방의 반응도 보통은 아니었다.


“음?”


녀석은 나와 박술희를 보고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단잠을 방해받았다는 얼굴로 느릿느릿 정리할 뿐이었다.


“김홍술.”


내가 제 이름을 알고 있을 리 없다고 여겼던 걸까.


심드렁한 얼굴을 유지하던 녀석이 잠시 움찔거렸다.


“소인 김홍술, 미륵 폐하를 뵙나이다.”


의례적으로 예를 갖추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김홍술 / 자존심, 기마술, 쾌도난마, 장악력, 다혈질』


장소나 직위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즐비했다.


김홍술이 이처럼 삐뚤어진 건 사회에 대한 불만보다는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허탈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김행도가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면.


김홍술은 나름의 방법으로 반항하며 버틴 셈이다.


누군가 제 가치를 알아줄 때까지 말이지.


“형편없군.”


그러나 기를 살려줄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한심하기도 했고.


“난 빛을 보지 못한 인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 그런데 보이는 것이라고는 젖도 떼지 못한 유아뿐이군. 배를 곯으면서도 동냥질도 하지 않으려 하니 굶어 죽는 수밖에.”


신랄한 비난.


방귀깨나 뀌었을 재능을 지닌 김홍술인 만큼 생전 처음 듣는 평가일 터였다. 아니, 일부로 폐급을 자처한 비룡성 내에서는 들었을지 몰라도 그들과 나는 달랐다.


언젠가 밑에 깔아야 할 존재들.


그곳까지 끌어올려 줄 주군.


하지만 유일한 동아줄이라 생각했던 내가 밧줄을 끊으려 한다. 반박도 못 할 정곡일뿐더러 함부로 입을 놀릴 수도 없다. 김홍술은 엎드린 자세 그대로 호흡을 거칠게 내뱉었다.


“젖만 못 뗀 줄 알았더니, 말도 트이지 않은 놈이었나? 막지 않을 테니 할 말이 있으면 남자답게 해보도록 하라.”

“······소인 김홍술은.”


판을 깔아주자, 제 이야기를 시작해 나갔다.


포부를 품고 입관했고, 가진 역량이라면 태봉에 큰 힘이 되리라 믿었으며, 멸도를 땅 위에서 지우는 일에 일조하리라 다짐했다는 말로 서두를 열었다.


하지만 전혀 생뚱맞은 곳에 배속된 것이 화근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진가를 알아줄 만한 부서가 아니라고 여겼단다. 물론, 내부적으로 언행은 문제가 되었을지라도 일 처리는 완벽하게 완수했다고 변명했다.


자신의 이상은 더 높은 곳에 있다.


내게 힘이 되어줄 능력이 있다.


“믿어만 주신다면 절대 실망 시켜 드리지······.”

“오늘부터 네 직위는 마군 대장군이다.”

“예?”

“폐하!”


밥 한 끼 사준다는 듯이 툭 던진 임명.


파급력을 깨닫기까지는 김홍술도 박술희도 적잖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사실 김홍술이 어떤 사연을 말했어도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말마따나 여기서 썩기에는 아깝지 않은가.


다만 우위를 먹고 들어가고 싶었을 뿐이다.


김홍술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다시 엎드리지도 못한 채 멈춰있었다. 배포가 큰 줄 알았더니 쯧쯧.


그러나 박술희는 굳은 얼굴로 내 앞에 부복했다.


“폐하!”

“왜 자꾸 부르는 게냐.”

“신 박술희, 폐하의 명령이라면 불길도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들겠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은 폐하의 안위와도 연결되어 있으니,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연유를 듣고자 합니다.”


하긴.


마군은 태봉의 전력 중에서도 가장 상위를 차지하는 부대였다. 그런데 딱 봐도 군기 빠진 놈에게 그러한 중책을 맡긴다니까 불안해 보였을 터였다.


김행도 못지않게 고지식한 게 박술희다.


반대하고 나서리란 건 당연히 예상했던 바다.


“특급 승진은 괜찮은 부분인가 봐?”

“그건.”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하지는 않을 테니, 실력만 확실하다면 끝나는 문제군. 어때, 직접 증명해 보겠나?”


게임 한 판 해볼까?


**


규칙은 아주 간단하다.


내가 제시할 종목은 세 가지.


이 중 하나라도 박술희가 이긴다면 임명은 취소된다.


그렇다.


건초 관리인이 1판이라도 따내면 승리하는 게 아니라, 내군 부장이 1판이라도 따낸다면 승리한다는 말이다. 박술희는 자신을 열세로 보는 것에 짐짓 자존심이 상한 눈치였다.


하지만 상대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줄 몰랐다며 능청 부리자, 불만은 쏙 들어갔다. 규칙이 어떻든 간에 폐급은 막아야겠다는 의지. 확실히 박술희의 가치관은 명예보다 실리였다.


반대로 종목을 들은 김홍술은 이미 이긴 기색이었다.


아무래도 마군 대장군을 뽑는 자리다 보니 기마 능력을 검증하지 않을 수 없었고, 대놓고 관심법에 기마술이 적혀 있는 김홍술로서는 자신감이 넘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물론, 규칙이 아무리 불리하더라도 불평 부릴 성격도 아니긴 했다. 괜히 트집 잡힐 바에야 확실히 꺾어버리려 들 테니.


“준비됐나?”


첫 번째 종목은 아주 간단하게 경마였다.


하지만 도성을 몇 바퀴 돈다든가 하는 수준은 식상하다.


산악 지형이 주를 이룬 태봉답게 미리 기획해 둔 험한 코스를 발표했다. 산 넘고, 물 건너, 여차저차 2시간은 꼬박 달려야 하는 수준으로 말이다.


“······.”


그러나 승부는 접전은커녕 경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김홍술이 결승선에 도착하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박술희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충격을 넘어 절망에 빠진 얼굴이었다. 시간 차로 봤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등만 보고 달렸으리라.


아니, 어느 순간부터는 시야에서도 사라져 홀로 달리는 경주라고 느꼈을 수도 있다.


더 치욕스러운 건.


자신은 늘 호흡을 맞추던 말과 함께 달렸지만, 김홍술을 마구간에서 돌보던 아이 중 아무나 데리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수고했다.”


경주가 끝난 후 연신 털을 손질해 주던 김홍술을 바라보는 눈빛이 바뀐 건 그때부터였다.


“승부도 좋지만,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라.”


두 번째는 실전과도 관계가 있는 종목이었다.


짚단 허수아비를 돌파하며 달리는 마상 질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창술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려 함이었다. 사이사이에 아군의 표식이 달린 허수아비를 섞어 분별력까지 시험할 수 있었다.


이쯤에서 한 번 짚고 넘어가자면 박술희의 강점은 대인 전투와 훈련이다. 내군의 특성상 말을 탈 일이 적으니, 아무래도 약한 분야에 속했다.


“라는 걸 본인도 알아야 할 텐데.”


괜히 시켰나?


녀석의 관심법을 읽기에도 겁이 났다.


“······.”


박술희의 자신감이 결여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격차와 함께 져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속도 뿐만이 아니라 완력과 침착함에서도 완패였다.


김홍술이 훑고 간 영역은 적군 표식의 허수아비만 깔끔하게 구멍이 뚫어진 반면, 박술희는 2/3지점에서 거칠게 찢긴 허수아비를 바라보며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손바닥이 뚫린 아군 표식의 허수아비도 1기 존재했다.


“다음은 무엇입니까?”


의외인 건 김홍술의 행동이었다.


도발도, 환호도 없었다.


건들건들한 모습은 사라지고 진중함만 갖춘 장군의 행색이었다. 그래서인지 박술희가 조금은 더 비참해 보였다.


“마지막 종목은.”


자율 퍼포먼스다.


지금까지는 내가 평가할 잣대만 들이밀었으니, 무엇이든 자신 있는 걸 보여달라는 의미였다. 박술희가 고민에 빠진 사이에 김홍술이 먼저 하겠다며 나섰다.


“오늘 같은 날을 기다려왔던 모양입니다.”


박술희도 이제는 반 감상 모드로 진입했다.


궁리해야만 하는 자신과.


자신있게 준비된 장기를 보여줄 수 있는 자.


이미 시작 전부터 결과는 정해진 거라 볼 수 있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김홍술은 말을 두 필을 준비하고는 각각 3발씩 담긴 전통을 매달았다. 이내 어깨에 활을 건 채 두 번째 종목의 경기장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거리가 멀어 내 신호는 필요 없었다.


본인이 알아서 출발하여 내달렸고 곧바로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목표는 아직 멀쩡히 서 있는 짚단. 아군의 표식이 달린 허수아비의 머리였다.


“왜 진작에 발견되지 않았을까요?”


박술희의 의문은 내게 다행으로 다가왔다.


저 녀석마저 왕건의 품에 안겼다면.


음.


상상도 하기 싫다.


아무튼, 조준에만 치중하여 질주 속도가 줄지도, 균형을 잡지 못해 빗나가는 일도 없었다. 제자리에서 쏘아 맞히듯이 완벽한 적중률을 자랑했다.


급기야 묘기까지 보여주었다.


3발을 다 소진한 김홍술이 다른 말로 옮겨타는 게 아닌가.


보기에는 위험천만해 보이지만, 본인은 평지에서 한 걸음 이동하는 듯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안착하고는 미리 걸어둔 전통으로 다시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내가 졌네.”


위풍당당 도착한 김홍술을 맞이한 박술희의 첫 마디였다.


“행색이 추레하다 하여 확인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얕잡아 본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네. 받아주겠는가?”


김홍술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진심이 전해지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닙니다. 제 언행에 문제가 있었다는 건 느끼고 있는바, 소인도 그 부분에 대해 사죄드리겠습니다.”

“지상에선 나도 밀리지만은 않을 테니, 언제고 겨뤄보세.”

“한 수 배우기 위해 찾아가겠습니다.”


박술희의 진가가 바로 이 점이었다.


자존심을 부리지 않고 무엇이든 포용하는 능력.


누구에게라도 배움의 장을 열 수 있는 능력.


『박술희 / 절개, 교관, 잠재력, 담력, 청렴』


잠재력이 붙어있는 이유라 생각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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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 하나의 도움, 하나의 증명, 하나의 확인. NEW +1 7시간 전 49 5 13쪽
23 23화 - 바닷길을 통한 교역. +2 24.09.18 90 8 12쪽
» 22화 - 포악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놈. +1 24.09.17 118 9 12쪽
21 21화 - 직구만 던지는 미친 강속구 투수. +1 24.09.16 126 9 13쪽
20 20화 - 대체 그놈은 정체가 뭡니까? +1 24.09.16 136 9 12쪽
19 19화 – 태봉은 건재하다. +1 24.09.15 136 9 12쪽
18 18화 - 채 펴지 못한 새싹을 그대로 밟아주리라 마음먹었다. +3 24.09.14 151 10 11쪽
17 17화 - 몸은 묘소에, 마음은 전장에. +2 24.09.13 139 10 12쪽
16 16화 - 말이 통하지 않는 말을 붙잡고 말싸움을 해대는 사내. +1 24.09.12 140 10 12쪽
15 15화 - 내심 걱정이 됐다. +1 24.09.11 150 7 11쪽
14 14화 - 산적들이 점점 군인이 되어감을 느꼈다. +1 24.09.10 155 7 12쪽
13 13화 - 인재라 해도 짝을 잘 만나야 한다. +1 24.09.09 168 8 11쪽
12 12화 - 어전이란 본디. +1 24.09.08 173 10 12쪽
11 11화 - 홍유, 배현경, 신숭겸. 그리고 복지겸. +2 24.09.07 179 10 11쪽
10 10화 - 축제로구나! +3 24.09.06 170 10 11쪽
9 9화 - 사람 심리가 그렇다. +2 24.09.06 173 10 12쪽
8 8화 - 미륵상 소실은 인재입니다. +2 24.09.05 176 9 11쪽
7 7화 - 이번 사건의 배후에 왕건이 있다. +1 24.09.04 181 8 12쪽
6 6화 - 왕건이 원하는 것. +1 24.09.03 195 7 12쪽
5 5화 - 대놓고 천명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인물. +1 24.09.02 186 7 12쪽
4 4화 - 땀, 술, 추억. 그리고 소탈함. +1 24.09.01 187 7 12쪽
3 3화 - 비상사태다. +1 24.08.31 203 8 12쪽
2 2화 –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과거의 나. +2 24.08.30 231 9 9쪽
1 1화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1 24.08.30 251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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