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멸망에서 만난 그녀."
“설마.. 그녀를 업혀달라는 건가? 그녀를 자네 등에 업혀 달라고 하는 건가?”
태민은 안아 든 그녀를 등으로 돌리려 하지만 계속 버둥거리는 그녀 때문에, 떨어트리고 다시 안아 들기를 반복하며 두 사람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그런 태민의 모습을 보며 아현은 그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대장 원정 갔던 별종이 돌아옵니다. 근데 저거 확인 좀 하셔야겠는데요.”
경계 당번인 민수가 태민 일행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만상에게 무전을 보낸다.
‘치이익!’
[[ 왜? 또 무슨 일인데? 이번에는 뭐 괴물이라도 달고 왔냐? ]]
만상의 물음에 뭐라 답을 할 말이 없는 민수는
“그냥 나오셔서 보시는 게 빠르겠어요,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민수의 호들갑에 궁금증이 샘솟은 주만과 주상병, 창수 일행도 따라 정문으로 나선다.
“이번에는 또 뭔데 저래? 뭐야? 뭐 아무것도 없구만.”
진입로를 걸어 올라오는 태민과 그 뒤에 아현과 한씨가 보인다.
특별히 달고 온 생존자나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아 보이자 무전을 날린다.
‘치익’
“야 민수! 뭘 보라는 거야? 이번에는 뭐 달라진 게 없잖아!”
‘치이익’
[[ 별종 형님 등 뒤를 자세히 보세요, ]]
민수의 말에 태민을 향해 걸어가는 만상과 일행은 놀란다.
그의 등에 업혀 있는 건지 묶여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버둥거리며 매달려 있다.
“대장, 뒤에 혹시.. 좀비 아니에요?”
창수의 말에 만상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 뭐라 답하지 못한다.
그리고 지척에 와서야 태민의 등에 매달린 존재의 정체를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여자, 그것도 좀비가 되어 팔다리가 으스러져 버둥거리고 있는 좀비.
태민의 뒤에서 걸어오던 아현과 한씨에게 의문의 눈빛을 건내는 일행을 향해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아현을 보고 만상과 주만은 알 수있었다.
태민이 원정을 떠나던 이유, 좀비들을 따라다니며 여자 좀비만을 확인하던 이유.
“우어어어어어”
마중 나온 만상과 일행을 보며 다가와 서는 태민은 왠지 슬퍼 보인다.
“이 친구, 드디어 찾아냈구나, 정말 찾아냈어, 영혼이 비어 있으면서도 애타게 찾아다니더니 결국 해내고 말았네, 씨바 내가 왜 찡하냐?”
만상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얘기들이 진짜였어요? 다들 그냥 꾸며낸 얘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도 안 돼!”
창수와 주상병이 입을 떡 벌리고 태민과 등에 묶어 놓은 은지를 번갈아 보며 놀란다.
아현이 놀란 일행의 곁으로 다가와 태민을 보며
“그가 울었어요! 그것도 한참을.. 다 말라버린 눈물일텐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어요!”
아현은 태민을 아련하게 바라본다.
“일단 옥상에 비어 있는 탄약 창고 한 곳에 데려다줘라, 주만아!”
“네 대장! 별종씨 이리로 와요! 그분 내려 놓을 수 있게 안내해 줄게요!”
주만이 태민의 손을 잡고 시청으로 향하자 주만이 이끄는데로 시청 건물로 들어서는 태민.
태민이 입구로 들어서자 각자 일을 하던 군인들과 생존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태민을 쫓아 옥상으로 향한다.
“저..저 저거 좀비 아니에요? 좀비를 건물 안으로 들이면 안되는 거 아니에요? 저러다 공격이라도 하면 어쩌려구..”
누군가 태민의 등에 업혀 있는 은지를 보며 한마디 던진다.
그 한마디는 생존자 중 일부에게 불안감을 싹틔우고.
****
옥상의 작은 방으로 들어간 태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서 있다.
문 앞에는 일행과 태민의 모습을 보려 몰려든 생존자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그냥 저렇게 세워 둬도 괜찮습니까? 뭐 풀어서 내려놓던지, 따로 격리하던지 해야되는 거 아닐까요?”
생존자들의 불안해하는 반응에 창수가 만상에게 조용히 묻는다.
“우리중에 누가 그를 격리 할 수 있는데? 아니 격리한다고 한들 별종이 가만히 있을까? 그리고 여기 그가 원정을 다니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있나? 난 지금 저 상황에 다른 짓은 못한다.”
미정도 희망이를 안고 등에 업혀 있는 은지가 버둥거리는 바람에 이리저리 발을 딛으며 중심을 잡는 태민을 보며 눈물을 보인다.
“대장, 내가 묶여 있는 줄이라도 풀어 줄까요?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엄청 힘들어 보이는데.”
주만이 만상의 앞으로 나서며 묻는다.
“아마 혼자는 힘들 거다 누가 같이 들어가서 저 여자를 내려주고 별종을 데리고 나와.”
주만과 공이병, 주상병이 나서서 태민이 서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이거 풀어 줄게요, 편안하게 앉아서 둘이서 시간을 보내요!”
주만이 손을 내밀어 묶여 있는 매듭을 풀려고 하자
“크르르르르”
뒤로 물러서며 적의를 드러내는 태민.
“어머머! 저봐! 저 좀비를 데려왔다고 이제 막 이빨을 보이잖아! 저러다 저 여자 좀비 풀어 주고 우리한테 덤비면 어떡해?”
나이가 지긋한 중년 아주머니의 말에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래! 맞아요, 저 여자 좀비도 밖에 다른 좀비처럼 내보내야죠.”
“저 별종의 사연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여기 모두가 불안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저 좀비를 내보내세.”
중년을 중심으로 불안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선다.
주만이 다시 줄을 풀어주려 다가가자 방의 안 쪽 구석으로 물러서며 태민은 더 강하게 저항한다.
‘쿠웅’
“크으으으으”
발을 굴려 충격을 주자 옥상이 살짝 흔들린다.
“아.. 알았어요, 손대지 않을게요.”
주만과 공이병, 주상병이 뒤로 물러나며 방을 나온다.
“어떡해요? 대장.”
그때 아현이 앞으로 나선다.
“지금 뭣들 하시는 거죠? 누구 덕에 지금 이렇게 안전하게 이곳에 있을 수 있는지 잊었나요?
여러분 누구를 따라 이곳에 왔는지 어떻게 여러분을 찾게 됐는지 다 잊으신 거에요?”
‘크흠.. 큼큼!’
헛기침하며 아현의 시선을 회피하는 중년 그룹.
“여러분의 모습이 지금 어른의 모습인지 묻고 싶네요, 저 별종씨는 저 여자 좀비를 찾으려고 이 지랄맞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여러분을 구해주고 이렇게 안전한 장소까지 데려 와 줬는데 겨우 여자 좀비 한 명 들어왔다고 이렇게 금방 배척할 수 있어요?”
아현의 말에 딴짓하며 말을 돌리는 사람들.
“아이고, 할 일이 태산이네, 어서 내려갑시다. 일해야지 일!”
눈치보며 슬슬 자리를 뜨는 중년 그룹.
“그만해! 저들도 불안해서 그렇겠지, 그만하면 됐어!”
한씨가 아현의 등을 두드려주며 달랜다.
“아현씨 말이 틀린 거 하나 없네요.”
민수와 종호를 비롯해 젊은 군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만상, 한씨, 기계실 트리오와 영자 아주머니, 동근 부부는 고개를 흔들고
“참나, 어른으로서 부끄럽네, 우리 어른들의 이런 이기심이 이런 세상을 불러온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
영자 아주머니가 아현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주며 미안함을 표한다.
“저기 아현아! 나랑 둘이 들어가서 줄을 풀어 줘 볼까? 희망이 안고 가면 혹시 화 안낼지도 모르니까.”
미정이 아현에게 묻고 아현은 고개를 끄덕인다.
“누가 저 여자 떨어지지 않게 함께 잡아주실 분?”
주만과 주상병이 다시 나선다.
미정이 희망이를 앞세워 방으로 들어서고 아현이 뒤를 따라 들어간다.
“저기 희망이 좀 안아 줄래요?”
태민은 미정을 보고 앞으로 나와 희망이를 받아 안는다.
“뒤에 그 여자분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그분이죠? 그분 편하게 내려주면 안 될까요?”
미정이 태민에게 다가가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말하자 적의를 거두는 태민.
아현이 미정의 옆으로 가 함께 태민의 몸에 묶여 있는 줄의 매듭을 풀려고 손을 천천히 올리고, 태민은 잠시 움찔하지만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미정과 아현을 보며 가슴의 매듭을 내어준다.
‘촤르르륵! 스르륵’
‘터억!’
매듭을 풀자 등에서 떨어져 내리는 은지를 주만과 주상병이 양쪽 겨드랑이를 받쳐 들고 조심히 바닥에 눕힌다.
“키아아앙”
은지가 몸을 비틀며 주만과 주이병을 물려고 꿈틀거리고 두 사람은 빠르게 뒤로 물러난다.
남아있는 한쪽 팔을 이용해 바닥을 당겨 두 사람에게 기어가려는 은지의 앞에 태민이 막아선다.
“크아아아악!”
태민이 나무라듯 은지에게 뭐라고 하자 움찔하며 그대로 멈추는 은지.
태민은 희망이를 다시 미정에게 안겨주며 은지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우리는 나가죠,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모두 방에서 빠져나와 문을 닫아 둘만 남겨두고 옥상 한쪽으로 가 모인다.
“그나저나 먹는 걸 해결해야 할텐데 뭘 줘야 하는 거지?“
만상의 고민에 한씨가 입을 열고
”작은 짐승들을 잡아서 산체로 줘야 하지 않을까? 별종처럼 사람 음식을 못 먹을텐데.“
한씨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일행은 사냥팀을 꾸리고 급히 장비를 챙겨 근처 야산으로 향한다.
반나절이 지나고 토끼와 들쥐등을 잡아 돌아 온 일행은 옥상으로 향하고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민수와 종호에게
”그동안 별일 없었어? 뭐 문제 되는 행동은 하지 않았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민수.
”그런데 너무 조용한 게 더 불안해요. 별종 형님 방에서 한번도 안 나오고 희망이 보러 가지도 않아요.“
민수의 말에 아현과 만상, 한씨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인다.
”뭐 첫날이니까 곁에 있고 싶을 수 있지.“
케이스에서 꿈틀대는 토끼와 들쥐를 들고 태민이 있는 창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일행은 그 자리에 벼락을 맞은 듯 멈춰서 꼼작하지도 못 한 체 방안의 광경에 그대로 얼어붙는다.
”저렇게까지 해서 지키고 싶은 건가? 그녀가 누군지 알고 저렇게 하고 있을까?“
만상의 질문과 두 좀비의 모습에 눈을 돌리는 아현은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시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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