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05>
이미 고수의 반열에 올라있는 위현룡이었다.
어쩌면 자신의 무공을 능가할 지도 모르는 고수 앞에서 방심을 하고 있었다는 자체가 큰 착각이 아니겠는가.
위현룡은 드러난 그 자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광대뼈가 불룩 튀어나온 긴 얼굴에 이마에서 입술부근까지 긴 검상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모르는 놈이구나. 허나 십성에 도달한 귀혼검초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피해냈다는 것은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저런 몸놀림은 솔직히 나라고 해도 자신이 없을 정도니 말이다.]
여간해서는 자신보다 뛰어난 고수라고 말하지 않는 홍후인도 이때만큼은 인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괴인의 움직임이 귀신같았던 것이다.
위현룡의 두 눈에서 무서운 분노가 번뜩였다.
"단대인을 해한 네 놈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괴인은 그의 눈초리를 받으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이 정도 무위를 지닌 자라면 내가 모르는 자가 없을 텐데...분명 마교의 인물은 절대 아니다...)
의문을 표출하던 그가 위현룡에게 입을 열었다.
"단중은 내가 해치지 않았다. 난 방금 그를 해한 대천마교의 고수를 쫓아냈을 뿐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요?"
위현룡은 반신반의하는 어투로 물었다.
그러나 그는 질문을 회피한 채 낮은 음성으로 이렇게 대꾸하였다.
"아직 단중이 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만...그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가 손쓸 기회를 놓쳐버릴까 안타깝구나."
괴인의 이 말은 위현룡의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정신을 단번에 풀어주었다.
위현룡은 불길한 눈초리로 쓰러져있는 단중을 주시했다.
얼른 그의 상처를 살피고 싶었지만 눈앞에 있는 자의 정체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었다.
"단중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셈인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위현룡에게 그의 말이 비수가 되어 찔러왔다.
[가만있거라!! 저 놈의 심중을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단 말이다!]
살벌한 무림에서의 경험이 많은 홍후인이 신중론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단중의 상태는 꺼져 가는 등불처럼 급박해 보였고 이는 위현룡의 냉정한 판단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단대인!!"
위현룡은 자신도 모르고 허리를 살짝 숙이면서 단중에게 한발자국 다가갔다.
그때.
[위험하다!!]
홍후인의 비명소리가 귀청을 찢고 들어왔다.
깜짝 놀란 위현룡은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움직였다.
암습을 위한 괴인의 검이 위현룡의 왼쪽 어깨를 훑으며 지나갔다.
치유가 빠른 위현룡에게는 그리 큰 상처가 아니었으나, 일시적으로 화끈한 통증을 느낀 나머지 그만 균형을 잃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내가 뭐라 했느냐!!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하지 않았더냐!!]
길길이 날뛴 홍후인은 다급한 소리로 계속 외쳤다.
[어서 일어나라!! 저 놈이 또 다시 암습을 가해온다!!]
괴인은 아예 끝장을 볼 생각으로 위현룡의 목에 있는 천돌혈로 일검을 쭉 뻗으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잘 가거라..."
그러나 그 순간 불안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위현룡의 상체가 기묘하게 꺾이면서 괴인의 겨드랑이쪽으로 귀혼검법 중 단조로우면서 가장 출수가 빠른 삼초식을 내질렀다.
"이런..."
괴인의 입가에서 탄성 비슷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확실히 위현룡의 이 공격법은 매우 적절한 임기응변이었다.
왜냐하면 괴인이 조금이라도 힘을 가할 시 위현룡을 즉사시킬 수가 있겠지만, 그럴 경우 그 자신도 위현룡의 검초에 심각한 중상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하밀성의 비급을 소유하고 있는 그로써는 괜한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괴인은 급히 공격을 거두면서 위현룡의 검초를 피하며 물러났다.
허나 그는 위현룡의 끈덕진 성격을 간과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한발 물러났다는 것은 집요한 위현룡에게 공격기회를 고스란히 넘겨준 것과 진배없었다.
이때부터 위현룡의 폭풍과도 같은 공세가 시작되었다.
괴인은 경악스러운 얼굴로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귀혼검초들을 미친 듯이 막아냈다.
귀혼검법은 방어보다 공격이 우선적인 검법이었고, 이는 위현룡에게 유리하게 작용되고 있었다.
[계속 몰아쳐라! 저런 상대에게는 절대로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위현룡이 매우 훌륭하게 잘 싸우고 있자 신이 난 홍후인이 곁에서 응원을 펼쳤다.
괴인은 마치 악몽이라도 꾸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무서운 놈을 봤나!! 이러다가 정말 큰일나겠다!)
원래부터 무학에 자긍심이 강하고, 오랫동안 호적수를 만나지 못했던 그였다.
이게 얼마 만이던가. 목숨의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호각지세로 싸워본 게 말이다.
이십여 초식동안 변변한 공격한번 못해보고 밀리던 그는 점차 위현룡의 검법에 익숙해져 갔다.
사실 위현룡은 좀 더 심도(深度)있는 수련이 필요했다.
귀혼심법 10성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무쌍한 귀혼검법의 장점을 모두 터득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귀혼내력이 소모되는 것을 늘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검초는 한정되고, 극에 달하는 변화를 바탕으로 과감한 공격을 펼칠 수가 없는 것이 큰 문제점이었다.
이 때문에 괴인은 위현룡의 검법이 매우 극렬하나 뭔가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정확하게 짚어낼 수는 없었지만, 어떤 공격의 노련함이나 검초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돌연 괴인이 위현룡의 일검을 힘껏 쳐내면서 반격을 시작했다.
한동안 힘을 비축하면서 귀혼검법을 유심히 살피던 그는 물레방아 돌아가듯 단순하고 비슷한 위현룡의 검초들속에서 뜻밖의 약점들을 찾아냈다.
괴인의 전력이 급상승하자 전투경험이 일천한 위현룡은 당황하면서 순식간에 열세로 들어섰다. 홍후인의 입이 충격으로 크게 벌어졌다.
[귀혼심법 10성이면 다 될 줄 알았더니만 이게 웬 날벼락이냐!!]
괴인의 신형에서 막강한 무형지기가 폭발하듯 휘몰아쳤다.
최선을 다한 전력투구였다.
[아이고! 현룡아! 조심하거라!!]
그러나 한동안 밀리면서 고전하는 것처럼 보였던 위현룡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 역시 괴인처럼 방어를 취하면서 기회와 약점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으압!"
위현룡의 묵직한 기합이 떨어지자마자 귀혼검초는 다시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괴인에게 익숙하게 느껴졌던 검초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검초들이 배합되었다. 괴인은 더욱 난해해진 위현룡의 검법에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 그럼 그렇지!! 현룡이 잘한다!!]
잠시 움츠렸던 홍후인이 다시 기세를 올렸다.
위현룡과 괴인은 초인적인 잠력까지 끌어올리면서 오십여 초식동안 피 튀기듯 일진일퇴(一進一退)를 거듭했다.
너무나도 살벌하였기에, 기가 팍 죽은 홍후인은 입을 크게 벌린 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이제는 누가 우세인지 열세인지 뚜렷이 구별되지도 않을 만큼 치열한 공방(攻防)이 이어지고 있었다.
(무서운 상대다!!)
대적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똑같은 생각이 반복되었다.
서로의 무학에 대해 경외감과 두려움이 함께 들었던 것이다.
[현룡아! 귀혼내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홍후인은 낙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게 되자 불안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20초식 가량 지나면 귀혼내력은 고갈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귀혼내력이 감소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자를 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만큼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괴인의 무공이 출중했던 것이다.
앞으로 몇 백 초를 더 접전한다고 해도 쉽게 결판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이는 위현룡뿐만 아니라 괴인에게도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다가 겨우 이긴다고 한들 그때는 체력과 내력이 고갈될 것이 뻔했다
겨우 비급을 손에 넣은 상태에서 이런 결말이란, 죽도 밥도 아닌 최악의 상황과 같은 것이었다. 특히 대천마교 무사들이 즐비한 협철곡 안에서는 말이다.
"단중을 아예 죽일 셈인가!!"
괴인이 일검을 날리는 와중에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얼굴이 굳어진 위현룡은 잠자코 그의 공격을 받아냈다.
그러자 그 자가 다시 소리쳤다.
"난 그만 싸움을 중지하고 사라질 테니 나를 배후에서 공격하려면 그렇게 하거라. 허나 그때는 이미 단중의 목숨을 구하겠다는 미련을 버려야 할 것이다!"
갑자기 오초식 가량 무섭게 몰아치던 괴인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도피를 시도했다.
[어라! 저 놈이 정말 도망치는구나!]
하지만 위현룡은 그를 쫓지 못했다.
대신 그 자가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단중에게 몸을 날렸다.
"단대인!!"
얼른 단중의 코에 귀를 가져다댔다.
다행스럽게도 희미한 숨소리가 느껴지고 있었다.
"선배님!! 어서 단대인의 상태 좀 살펴보십시오!"
위현룡이 급히 소리지르자 인상을 찡그린 홍후인이 마지못해 단중의 몸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어떻습니까!! 단대인의 상태가 위중하십니까?"
[이 놈아! 시끄럽다! 보채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봐라!]
퉁명스런 어조로 위현룡을 나무란 홍후인은 신경을 집중하고는 단중의 상태를 진단해보았다. 홍후인의 얼굴이 굳어지면서 위현룡에게 다급히 말했다.
[어서 단중의 명문혈로 내력을 불어넣어 보거라!!]
위현룡은 얼른 단중의 척추부근에 있는 명문혈로 한 손을 밀착시켰다.
[천천히!! 조금씩 해야한다. 안 그러면 큰일 날 수가 있어!]
위현룡의 귀혼내력은 따뜻한 숨결처럼 단중의 차가워진 몸에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렇지....살살...조금씩 넣어라! 귀혼내력은 워낙 강해서 기력이 쇠한 단중이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일각동안 위현룡은 마음을 졸이면서 홍후인의 말에 따라 단중을 치료하였다.
그때 단중이 심한 기침을 하면서 경련 하였다.
"단대인! 정신이 드십니까!!"
기적적으로 단중이 의식을 되찾자 위현룡은 뛸 듯 기뻐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단중을 부축하였다.
위현룡의 품속에서 깊은숨을 몰아쉬던 단중은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 동안 위현룡은 그의 전신을 부드럽게 주무르면서 혈색을 되찾게 도왔다.
"현룡이...아니더냐..."
실눈을 뜬 단중이 뜨거운 목소리로 위현룡을 부르고 있었다.
"단대인!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눈물이 글썽해진 위현룡이 감정에 북받쳐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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