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판타지

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최근연재일 :
2023.06.27 01:06
연재수 :
327 회
조회수 :
102,793
추천수 :
2,395
글자수 :
2,515,552

작성
18.08.21 23:44
조회
180
추천
7
글자
17쪽

33. 헛것이 아니야(3)

DUMMY

삶은 사건의 연속이었다. 눈을 뜰 때부터 눈을 감을 때까지, 또 작은 것에서부터 아주 큰 것까지. 그 중 걸어왔던 판도를 완전히 뒤집을 정도로 큰 사건들을 우린 중대사라고 불렀다.


중대사, 듣기만해도 무진장 중요하다고 냄새를 풍기는 이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너는 세상을 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드는 것 같은 거 말이다.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함께 가정을 이루어 살 사람을 결정하는 결혼 또한 당연히 그 중대사 중 하나였다.

그 중 하나라기보다 중대사에 가장 걸맞는다고 할 수도 있지.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뭘 아느냐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강렬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낸시 누나의 결혼식 날은 잊혀지지가 않았다. 코찔찔이마냥 어렸는데도 다들 정신없이 바쁘고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던 것은 내 마음 속에 혼란한 이미지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어디다 쓰는지도 모르겠는 것들을 나르느라 바빴고 집은 식재료 투성이에 마당은 꽃투성이였다.

온 마을 사람들도 죄다 튀어나와 함께 마시고, 먹고, 즐겼다. 그 날은 누나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그만큼 소중한 날이었을 것이다.


야우라는 지금 그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별로 하기 싫은데. 그거 꼭 해야되는 거야?"


그 애가 말했다.


"왜? 하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오히려 헬레나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하기사 야우라는 겉으로 보기에도 행동으로 보기에도 그 무어로 보든 간에 수도자로 보이진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결혼은 당연히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짝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였다. 가정은 마음의 평화와 안녕을 가져다준다고 그 누가 그랬던가.


"방랑자한테 가정은 뭔가 이상하잖아?"


...그러고보면 얘는 그런 주장을 하고 있었지.


"방랑자라니. 아가씨는 방랑 같은 건 못할 거 같은데. 지금도 여기서 일하고 있고."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거고. 빚만 다 갚고 나면 떠날거야."


내가 생각하기에 그 빚, 늘어나지나 않았으면 다행이었다. 거기다 만약 클로에가 이자를 붙이고 있기까지면 야우라는 평생 일자리가 보장된 셈이었다.


"뭐 그런 건 나야 상관없지만. 지금 나한테 보이는 건 아가씨가 결혼을 일찍할 운명이라는 거야."


"일찍이라는 게 언제쯤인데?"


"귀인을 만난다면... 머지않아..."


헬레나는 그게 무슨 대단한 대답이라도 되는 것인냥 무게 잡아 읊조렸다.

귀인을 만나면 이루어진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그럼 그 귀인이 누구이지를 알려줘야 점을 쳐준거지 그걸 안 알려주고 귀인이라고만 하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거 완전 사기꾼 단골 코스 아닙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스쳐가는 귀인을 만난 것, 아무 일도 없으면 귀인을 못 만난 것, 하는 식으로 빠져나가는 그거잖아요...!"


그래! 내 말이 바로 그거였다. 저런 식으로 말하면 맞추든 못 맞추든 점쟁이는 핑계댈 여지가 잔뜩 남아있는 것이다.


누가 이렇게 내 마음을 대변해줬는가 하니 어느샌가 레샤가 우리 쪽, 야우라와 헬레나가 마주 앉은 테이블에서 서너걸음 떨어진 벽 구석진 곳에 와서 그늘 가득한 눈으로 둘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오늘 아침에 어딨었냐?"


속 시원히 말해준 건 말해준 거고, 나는 내가 궁금했던 걸 물었다.

조금 뜬금없게 들렸겠지만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었다.


"...제 방에 있었는데요?"


레샤는, 대체 왜 묻는 거지? 하는 경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었다.


"오늘 그 모험가들 간다고 했잖아. 근데 왜 안 나왔어?"


"그 사람들이 가는 게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인사정돈 해야지. 서로 도움받은 정이 있는데."


"인사... 했는데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레샤는 눈을 피했다.


"난 못 봤는데?"


"레이크는 못 봐도 되는 거잖아요..."


"아니. 그 사람들도 못 봤을 걸?"


왜냐면 그 사람들한테서 너 어딨냐는 질문이 나왔거든.


"제 나름대로 다 했습니다...!"


"너만의 방식으로 하든말든 들을 사람이 들어야 의미가 있는 거 아냐."


"엑."


뻐끔뻐끔 말을 이어가려던 레샤는 말보다도 먼저 내 옆구리를 때렸다.


"알았어요!"


그리고는 한 대 때렸다.


"알았다구요...! 다음부터는 하면 되잖아요...! 그리고! 그러는 레이크는 뭘 잘했다고 갑자기 설굡니까, 예에...?!"


설교는 무슨. 그냥 놀려 먹는거지.

나는 옆구리를 문지르며 속으로만 생각했다.


"거기 들러리들! 지금 언니 심각한거 안보여?!"


소란스러운 게 못내 아니꼬웠던 것인지 야우라는 벌컥 소리쳤다. 아무튼 마흔 둘 아주머니께서 조용히 하길 바라시니 우린 그에 맞춰주기로 했다.

들러리가 무슨 뜻인지 모르느냐고 물으려던 걸 겨우 참은 것이다.


"사실 난 별로 결혼 같은 거 하고 싶지 않거든."


야우라는 그게 엄청난 고백인 것처럼 망설여 말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방랑자가 가정을 가지는 건 뭔가 이상하잖아. 서로한테 못 할 짓인거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말야, 라고 덧붙이며 야우라는 양팔을 활짝 벌렸다.


저 몸짓은...

자신의 장대한 계획을 펼칠 때.

자신의 위대한 착안을 알릴 때.

자신의 굳건한 신념을 고수할 때 등등...

여하튼 그다지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만인의 연인 같은 거. 멋지지 않아?"


야우라는 그렇게 첫 운을 띄웠다.


"그 뭐랄까. 항상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그런 느낌? 좋아하기는 한데, 막 쉽게 다가갈 수는 없는 그런 거 말야."


뭔가 멀리서 동경하지만 손댈 수 없는 어떤 고고한 존재가 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 게 되고 싶으면 평소에 입다물고 다리나 꼬고 앉아있으면 될텐데. 가끔씩 턱을 괴고 창가나 쳐다봐주고. 의미 모를 시구까지 읊어주면 금상첨화였다.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시선이라는 게 얼마나 독한 건데..."


새삼 야우라라는 사람이 신기한 듯 레샤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별 일 있겠어? 지금도 혼자 살고 있는데."


그정도 딴지에 야우라는 굴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야우라가 젊으니까 그렇죠. 만약 더 나이를 먹어서 무릎이나 허리가 예전같지 않다고 생각해봐요. 혼자라고요? 어쩌면 오늘도 노숙을 해야할 처지일지 모르는데, 저녁 식사도 구해야하고 아직 잠자리도 마련 못한 것도 모자라... 야생동물 경계도 해야해요. 그런데 혼자라고요...?"


"그 정돈 괜찮아... 방랑자라면 감수해야지..."


야우라가 뜻을 굽히지 않자 레샤는 한 걸음 더 나갔다.


"만약 더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해봐요...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되어서 늦은밤엔 눈도 잘 안 보이고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온 몸에서 비명을 지르는 그런 할머니요. 이젠 방랑도 할 수 없어서 별 수 없이 변두리에 작은 집을 구해서 사는 겁니다. 방랑하던 시절에 운이 좋게도 꽤 괜찮은 보물을 얻게 되어서 먹고 사는데는 문제가 없다고 쳐요... 밤에 등도 밝힐 수 있고 뜨개질 같은 소일거리도 할 수 있고..."


뜬금없이 머리속으로 늙은 야우라가 뜨개질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질 정도로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묘사였다.


"그런데 의자 아래로 실뭉치가 떨어진 겁니다. 가만히 앉아선 손이 안 닿는다고요? 금방 잡았으면 좋을텐데 늦어서 실뭉치는 점점 멀리 굴러갈거예요... 데굴데굴... 어둠 속에 가려질 때까지..."


하여 그 끝은.


"그런데 혼자라고요? 아무도 안 주워줘요? 직접 가야한다고요? 뼈마디가 시리고 쑤시는데 직접, 일어나서, 걸어서, 허리를 숙였다가 실뭉치를 줍고 다시 허리를 펴서 걸어서 돌아가서 앉아야 한다고요? 그게 끝이 아닙니다? 뜨개질은 한참 남았고 자려고 해도 침대까지는 열걸음 남짓. 물 한 잔이 마시고 싶어도..."


"으아아악! 그마아안...!"


야우라는 귀구멍을 막고 울부짖었다. 게다가 이미 이야기에 잔뜩 이입해서는 미래의 자신에게 한탄했다.

왜 하인을 부릴만큼 값어치나가는 보물을 발견하지 못했느냐니 왜 몸관리를 하지 않았느냐니 어째서 뜨개질 같은 폼 안 나는 취미를 가지고 난리냐느니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지나치게 몰입하고 있었다.


말만으로 야우라를 저만큼 몰아세우다니. 나는 아직도 자그맣게 중얼거리고 있는 레샤를 내려다보았다.

문득 그런 시선을 느낀 것인지 레샤가 반짝 고개를 들었다.


"뭔가요, 갑자기...?"


퉁명스레 말하는 것을 보니 뭔가 불쾌했던가 싶다.


"그렇게 잘 아는 애가 왜..."


내가 말을 체 끝내기도 전에 레샤가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요, 갑자기. 그거 무슨 뜻으로 말하는 겁니까...!"


"정령술사는 친화력이 중요하다면서?"


"그건 전에도 얘기했잖아요...!"


레샤는 주먹을 질렀고 나는 그걸 막았다. 막는 것뿐만 아니라 아예 붙잡아버렸다. 오른손이 막히자 레샤는 곧장 왼손을 질렀다. 난 그것도 잡았다.


손목을 붙잡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된 레샤는 낑낑대면서 어떻게든 움직여보려 했지만 어림없었다.


"한 두번 맞아주니까 계속 때릴 수 있을 줄 알았나본데. 한참 멀었다, 한참 멀었어."


그리고 실실 웃으면서 약올렸다. 에반젤린이 말려도 소용없었다. 이건 강자의 권리인 것이다. 강자의 권리.

실실 웃으며 레샤를 약올리던 나는 갑자기 정강이에 찌르는 통증을 느꼈다. 레샤가 신발코로 힘껏 차버린 것이다.


"오악!"


불시의 기습을 당한 나는 정강이를 쭈그려 앉아 정강이를 감싸 문질렀다.

이래서 방심을 하면 안 되는 녀석이라니까...


"업보입니다, 업보...!"


상황이 반전되자 레샤는 콧바람을 불며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야 레이크!"


내가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 사이, 야우라도 날 찾았다.


"넌 나이 먹어도 우리집에 놀러올 거지? 와서 실뭉치정돈 주워줄거지?"


그러고선 한다는 얘기가 그거였다.


"야! 네가 꼬부랑 할머니면 난 어떻겠냐? 실뭉치는 커녕 땅 속에 묻혀있겠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나는 버럭 소리쳤다.


"그래서 못 와주겠다는 거야, 지금?"


"죽었다고! 없는 사람이라고 그 땐!"


"뭐야. 그런 거야?"


뒤통수를 크게 맞은 것처럼 야우라의 입이 벌어졌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보니 지금 머리 속에서 어떤 그림이 짜맞추고 있었다.

그리하여 한참만에 내린 결론은.


"그러네! 그 땐 레이크도 레샤도 사제 님도 없겠네!"


"거참 빨리도 깨달아주셨다!"


"레이크 너, 조금만 더 오래 살면 안 돼?"


"그게 내 맘대로 되겠어요?"


"왜 이렇게 일찍 죽는 거야! 내 계획대로라면 넌 백 년은 더 살아야 돼!"


"백 년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리고! 내가 백 년을 살든 천 년을 살든 그 나이 먹고 너희 집을 왜 놀러가냐!"


"그야 당연히...!"


당연스레 받아치려던 야우라는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후로도 거듭 당연히... 당연히... 중얼거리며 머뭇대는 걸 보니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표정을 보면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 정도가 아닌 것 같았다.


"한 번도 깊이 생각 안 해봤어. 그러네, 우리... 계속 같이 있는 게 아니구나..."


야우라의 목소리는 공허했다.


"빚 다 갚으면 떠난다, 빚 다갚으면 떠난다, 노래를 부르더니 이제와서 뭔 소리래?"


"나랑 같이 가는게 아니었어..."


"아줌마. 끔찍한 소리 하실거면 가서 푹 주무세요, 예?"


내가 아줌마라고 부르기까지 했는데도 야우라는 발끈하지 않았다. 도리어 담담히 내 이름을 불렀다.


"레이크."


"왜!"


"나랑 결혼할래?"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릴하는지 모르겠다.


"그럴거면, 가서 자라고!"


"왜! 너 내가 싫어?"


화끈한 거절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야우라도 화끈하게 일어나 손가락질부터 했다.


"뭐?! 나정도 되는 사람이 결혼하자고 하면 아이구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들여야지!"


"아줌마 술 먹었어요?"


"너 일로 와봐!"


야우라는 다짜고짜 내 옷깃을 잡아끌어 헬레나 앞에 앉혔다. 뿐만 아니라 아예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말라는 것처럼 어께를 꽉 잡아 눌렀다.


"얘 얼굴도 좀 자세히 봐봐."


야우라가 헬레나에게 말했다.


"아까 봐줬잖아. 별 일 없을거라고."


헬레나는 시큰둥한 눈으로 날 힐끗 보았다.


"그런 거 말고 결혼 같은 거 말이야!"


"연애운 같은 거?"


"그래 그런거 말이야아!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랑 결혼할 운명이기에 이렇게 비싸게구나 한 번 보자고."


야우라는 내 목을 겨드랑이에 끼고 양손으로 이마와 턱을 감싸 안듯 붙잡았다.

꼼짝 못하게 된 건 둘째치고 자세가 불편하고 아팠다. 조금만 움직이면 목이 꺾여 부러져버릴 거 같은 압박이 느껴졌다. 실제로 그정도겠냐만은 그 순간만큼은 그랬다.


"아니야잇...! 헤세!"


나는 다급하게 헤세를 찾았다. 그러나 태평하게 날 보고 있었다.


"와아, 좋겠다. 나도 미녀 엘프 옆구리에 한 번 끼어봤으면 좋겠다아."


그리고는 마음에도 없을 소리나 하면서 실실대고 있었다.


"바꿀래?!"


"아니. 난 잠이나 자러 갈랜다. 날씨가 흐리니 기운도 안나네."


"너 기운 맨날 안 나잖아!"


친구의 다급함 외침에도 헤세는 건들건들 계단을 올라가버렸다.

저 자식 혹시나 진짜 붙잡힐까봐 도망가는 거였다. 야우라에게 여러번 당해봤으니 진저리가 날만도하지.

치고 빠질 줄을 아는 헤세가 가버리고, 나는 다음 구원자를 찾았다. 클로에는 바빴고 레샤는 싸워봐야 질거고, 아저씨는 믿음이 안 가고! 남은 건 한 명 뿐이었다.


덜컥.


유일한 희망은 에반젤린을 불러보기도 전에 옆에서 의자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간신히 눈동자만 굴려 누가 온 건지봤다. 에반젤린이었다.


"어떤가요?"


에반젤린이 말했다.

어떠냐니 이 꼴을 보고서 기분에 묻는다면 그건 너무나도 악랄한 것이었다.


"어떤 분이랑 결혼을 하게 될지 보이시나요?"


다행이도, 결과적으로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도 그건 나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그게 왜 궁금하신데요..."


어쨌거나 내가 붙잡힌 것엔 관심이 없다는 의미였으므로 나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중요하죠, 당연히."


에반젤린은 단호히 말했다.


"레이크 님과 교제하실 분은 먼저 저한테 면접부터 보셔야하니까요."


"왜...?"


결혼은 내가 하는 건데 왜 허가는 사제 님에게서 나와요? 하고 물었건만 이야기는 나 없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난 그 자리에 얼굴 표본으로만 있는 셈이다.


"음... 좀 오래 들여다보니 알겠어."


헬레나는 목소리를 걸죽하게 깔았다.


"최악의 결혼이군."


초장부터 욕짓거리였다.


"아니 뭣...!"


홧김에 들은 고개는 야우라에게 막혀 도로 내려갔다. 살짝 움찔한게 다였다. 그 야우라는 아주 흥미진진하게 다음을 물었다.


"왜? 왜? 왜왜왜왜? 왜 최악이야?"


아주 신났다.


"글쎄, 나는 미래를 보는 게 아니니까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


아니 이 아줌마가 보자보자하니까 드는대로 생가갛고 나오는대로 말하고 있었다.


"아니 이봐요!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거든요?! 대체 뭔데 남의 결혼이 최악이라마라야!"


"야 레이크! 아까 나랑 할 걸 그랬지, 그치! 최악이래! 최악! 핳핳햐!"


야우라는 내 목마저 놓고 자지러 웃었다.


"최악이래봐야 네 남편만 하겠냐!"


드디어 해방된 난 야우라의 뒷목을 잡아 눌렀다.


"아아악! 농담인 거 알잖아! 농담! 동네 사람들! 농담 하나로 사람 잡는다앍!"


야우라랑 나의 상황은 역전되고 에반젤린이 우릴 말리는 동안 잠자코 있던 헬레나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엎치락 뒤치락하던 우리는 존재감 커다란 몸뚱이의 움직임에 의도치않게 주목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날 믿지 못하는 거 같군."


헬레나는 고깝게 눈을 내리떠서 말했다.


"나에게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어. 내 전문분야를 보여주도록 하지."


자칭 검은 무녀께서는 그대로 옷걸이에 가서 걸어뒀던 검은 로브를 다시 걸쳤다. 그 때까지도 우리가 가만히 있자 헬레나는 고개를 까닥여 문 바깥을 가리켰다.


"뭐해. 따라오지 않고."


따라오라고? 밖으로? 비가 이렇게 오는데?


"이런 날이야 말로 내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날이지."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헬레나는 먼저 문을 열었다.


쏴아아하는 소리와 함께 비가 들이치는 게 눈으로도 꽤 거샜다.


"꼭 가야해?"


"그러게."


회의적인 나와 야우라의 머리 위로 에반젤린이 가져다 준 두꺼운 외투가 툭 떨어졌다.


작가의말

눈치 채셨겠지만 의미없는 에피소드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7 40. 연꽃이 자라는 곳(1) +7 19.07.28 128 4 20쪽
226 P.S 몽롱하고 선명해 19.07.22 94 4 12쪽
225 39. 고리 안에 넣고 당겨(6) +1 19.07.20 101 5 21쪽
224 39. 고리 안에 넣고 당겨(5) +2 19.07.19 95 5 14쪽
223 39. 고리 안에 넣고 당겨(4) 19.07.15 99 4 20쪽
222 39. 고리 안에 넣고 당겨(3) +2 19.07.02 110 6 14쪽
221 39. 고리 안에 넣고 당겨(2) 19.06.30 92 6 17쪽
220 39. 고리 안에 넣고 당겨(1) 19.06.27 128 6 15쪽
219 38. 물주지 않아도 돼(5) 19.06.23 115 6 19쪽
218 38. 물주지 않아도 돼(4) +4 19.06.17 103 5 17쪽
217 38. 물주지 않아도 돼(3) 19.06.15 97 5 14쪽
216 38. 물주지 않아도 돼(2) 19.06.08 88 6 19쪽
215 38. 물주지 않아도 돼(1) 19.06.05 87 5 16쪽
214 37. 담는다는 건 닮는다는 거야(11) 19.06.02 103 6 18쪽
213 37. 담는다는 건 닮는다는 거야(10) 19.05.30 87 5 20쪽
212 37. 담는다는 건 닮는다는 거야(9) 19.05.25 102 5 17쪽
211 37. 담는다는 건 닮는다는 거야(8) 19.05.20 94 5 19쪽
210 37. 담는다는 건 닮는다는 거야(7) +1 19.05.10 113 5 16쪽
209 37. 담는다는 건 닮는다는 거야(6) 19.05.09 115 6 20쪽
208 37. 담는다는 건 닮는다는 거야(5) +6 19.04.30 110 5 16쪽
207 37. 담는다는 건 닮는다는 거야(4) 19.04.27 100 6 19쪽
206 37. 담는다는 건 닮는다는 거야(3) +3 19.04.15 121 6 19쪽
205 37. 담는다는 건 닮는다는 거야(2) +1 19.02.12 145 6 20쪽
204 37. 담는다는 건 닮는다는 거야(1) +1 19.02.05 170 7 19쪽
203 36. 아니래도 소용없어(5) +1 19.01.29 135 6 19쪽
202 36. 아니래도 소용없어(4) 19.01.24 129 5 18쪽
201 36. 아니래도 소용없어(3) 19.01.19 145 7 17쪽
200 36. 아니래도 소용없어(2) +6 19.01.14 178 7 15쪽
199 36. 아니래도 소용없어(1) 19.01.07 154 7 17쪽
198 35. 기대는 기대게 돼(5) 19.01.04 149 6 18쪽
197 35. 기대는 기대게 돼(4) +4 18.12.31 159 8 18쪽
196 35. 기대는 기대게 돼(3) +2 18.11.25 155 6 19쪽
195 35. 기대는 기대게 돼(2) +2 18.11.19 147 6 15쪽
194 35. 기대는 기대게 돼(1) 18.11.06 174 7 16쪽
193 34. 헛것이야(12) +2 18.10.22 153 7 24쪽
192 34. 헛것이야(11) 18.10.22 147 6 16쪽
191 34. 헛것이야(10) +4 18.10.15 194 6 19쪽
190 34. 헛것이야(9) +1 18.10.10 204 4 16쪽
189 34. 헛것이야(8) +1 18.10.02 168 6 20쪽
188 34. 헛것이야(7) +2 18.09.29 177 4 19쪽
187 34. 헛것이야(6) +2 18.09.25 182 5 19쪽
186 34. 헛것이야(5) +1 18.09.18 172 5 20쪽
185 34. 헛것이야(4) +2 18.09.09 183 4 21쪽
184 34. 헛것이야(3) +2 18.09.06 186 6 20쪽
183 34. 헛것이야(2) +1 18.09.03 178 9 19쪽
182 34. 헛것이야(1) +2 18.08.30 194 7 15쪽
181 33. 헛것이 아니야(5) 18.08.28 202 8 20쪽
180 33. 헛것이 아니야(4) 18.08.27 145 9 13쪽
» 33. 헛것이 아니야(3) +1 18.08.21 181 7 17쪽
178 33. 헛것이 아니야(2) +1 18.08.18 194 7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