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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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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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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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0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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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담는다는 건 닮는다는 거야(1)

DUMMY

코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아니면 이미 마비 되었던가.


들어올 때부터 계속 되었던 지독한 악취는 언제부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천장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일정한 리듬감으로 들렸고 내가 만들어낸 빛으로 겨우 보이는 바닥만이 내가 받아들이는 유일한 감각이었다.

이토록 깜깜한 와중에 그 녀석이 왜 이렇게 조용한지, 나는 그게 답답할 따름이었다.


"대체 뭐야."


나는 탓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탓한다고 해서 특별히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반 랜드레이는 이곳에 들어온 이래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대꾸라고 할만한 건 내보이지 않았다.


"정상적인 길을 놔두고 여기로 가는 이유가 뭐냐고. 말씀좀 해보세요, 용사님. 예?"


나는 바짝 붙어 있는 반 랜드레이를 힐끗 보았지만 녀석은 골똘히 생각할 게 있는 것처럼 거의 바닥을 보며 걷고 있었다.


"이번엔 빛이 있어서 다행이군."


녀석은 조금 갑작스럽게 그렇게 말했다.


"뭐라고?"


내가 지금 그걸 물었느냐, 하고 나는 되물었다.


"고맙다는 뜻이다."


허, 그것 참.


"그럼 그냥 그렇다고 말을 해, 제발. 스칸달른 사람은 다 그 모양인가?"


외국말보다도 더 어려운 화법이었다. 내가 알기로 스칸달른은 우리 왕국하고 쓰는 말이 거의 다르지 않아서 저 먼 내륙 사람이 아니고서야 따로 배우지 않아도 될 정도라던데. 이 녀석은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할 듯 싶었다.


"혼자 돌아다닐 때는 아무것도 없어서 좀 애를 먹었었거든."


"용사님은 마법을 배울 의향 같은 건 없으세요?"


"누구나 너처럼 그게 쉽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마라."


"아니 참 누가 들으면 내가 엄청 잘난 채 한 줄 알겠네. 기본만 하자고 기본만."


"아무리 쉽대도 그것마저 안맞는 사람이 있는 거다."


"그럼 어떻게 돌아다녔는데."


"벽을 짚고 다녔지."


반 랜드레이는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다가 최대한 소리가 들린 쪽으로 가게 된거고. 그 문을 찾게 된 거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 내가 그걸 열어줬구만."


내가 자랑스레 떠벌리자 반 랜드레이는 아니꼽기 그지없다는 것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간에 재미없는 녀석이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처음에 물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아니 근데 이게 아니라. 왜 밑에서 돌아다니는 거냐고."


프리실라가 반 랜드레이의 존재를 모르고 또 초대받지 않았다고 하더래도 이렇게까지 숨어다닐 이유는 없었다.


"영 꺼림칙하니까."


"꺼림칙하다니?"


"이상한 냄새가 난단 말이다."


반 랜드레이가 제 코 끝을 두드렸다.

난 냄새는 커녕 지금 내 후각이 제대로 살아있기는 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코가 썩어버린 건 아닌지 걱정인데 이 녀석은 이 시궁창에서 냄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이 녀석의 코는 가버린 게 아닐까. 저 먼 나라로 말이다.


"온통 시궁창 냄새뿐인데?"


"아니. 다른 냄새가 섞여있어."


나는 반 랜드레이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뭐냐."


녀석은 그게 아니꼽다는 듯 날을 세웠다.


"그걸 알아체는 게 대단하다 싶어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집중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거야."


"아 예예. 그러시겠죠."


되는 애들은 항상 그렇게 말했다. 하면 된다고. 거 누군 안 해봤겠느냐고.


...생각해보면, 냄새를 감별해내려는 시도는 해본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지금 해볼 생각도 없다.


할 줄 아는 녀석이 옆에 있는데 나까지 할 필요는 없잔아. 세상은 그렇게 사는거랬다.

이걸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걸 잘하는 사람이 있고 저걸 못하는 사람이 이것까지 못하진 않는다.

그런 식으로 집안 일도 형제끼리 나눠서 하면 처리는 금방이었다.


그즈음 나는 우리 개코 용사님이 대체 무슨 냄새를 맡은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냄새가 무슨 냄새인데."


"코를 찌를만큼 독하지만... 묘하게 이끌리는데."


"아니.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어. 뭐 비슷한 향이 있을거 아냐. 무슨 나무의 냄새다. 무슨 꽃의 냄새다. 하다 못해 개털 누린내 같다고라도 해주던가."


"박하나 계피보다 독하고. 잘 벼린 바늘처럼 코를 찌르는 날카로운 향이다. 이제 됐냐. 꿈동산 어린이?"


반 랜드레이가 비꼬듯 말했다.


"아니이이? 전혀 모르겠는데에?"


그렇다고하니 나는 정말 감도 안잡히는 김에 심기를 살살 긁는 말로 맞받아쳤다.


반 랜드레이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구겨진 얼굴로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멈췄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나는 대강 알아챌 수 있었다.


"안 보이지?"


내가 먼저 물었다.


"시간없다...!"


하여간 약한 소린 곧 죽어도 안하는 녀석이었다.


도대체 이 밑에서 뭘 하려고 했던건가 싶었더니 반 랜드레이는 자기가 맡은 냄새의 원인을 찾고자 했다.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하는 걸 무어라 할 생각은 없지만서도...

그걸 꼭 지금 해야하나 그런 생각도 들지만서도...

이 하수도의 크기가 과연 둘이서 뒤질 수 있는 걸까 그런 걱정도 들지만서도...


"레이크 아이힐데른."


이따금씩 이런 순간에 누군가 날 부르면 나는 혹시나 내 속마음이 남에게 들리는게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었다.


"왜?"


내가 말했다.

그런 의심은 어떻게 고민해봐도 이렇다 확신할 수 없는 법이다.


"빛, 이쪽이다."


반 랜드레이는 모퉁이 너머를 제대로 비춰달라는 것 같았다. 나는 약하게 만들어낸 광구를 반 랜드레이가 가리키는 곳에 가까이 대보았다. 모퉁이었다.


...아닌가.


나는 좀 더 안쪽으로 빛을 비춰보았다. 왼쪽으로 꺾어들어가는 통로인 줄 알았던 공간은 작은 틈새였다. 작다고는 원래 통로보다 작다는 것이지 사람 한 명은 거뜬히 지나다닐 그런 공간이었고 한 가운데로 작은 물꼬가 트여있었다.


"들어가봐."


반 랜드레이가 시원스레 틈 안쪽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그것 참 기막힌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여기서 동네 청년을 먼저 보낸다고? 이게 무슨, 너무하네 진짜."


물론 나는 반대부터 했다.


"빛을 내는 건 너잖아."


"빛을 낸다고 해서 사람을 반딪불이처럼 써먹으려고 하냐? 그리고 이거 잠깐은 떨어져 있을 수도 있어. 가져갈래?"


나는 손 위의 광구를 내밀었다.


"그러다가 꺼지면 또 만들어내서 또 넘겨주고?"


반 랜드레이는 그걸 받는 게 아니라 삐딱하게 보며 삐딱하게 말했다.


같은 일 여러번 하는 것은 서로 피곤하지 않느냐, 그거였다.

맞는 말이다. 이제와서 그 가증스런 글리 캐스트마냥, 어두운게 무서워, 이러고 거짓 아양이나 떨 이유는 없었다.


틈새 안은 일부러 만들어진 것 같았다. 용도와 의도를 정확히 알겠다는 건 아니지만 밖으로 빠져나가는 물길이라고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냄새가 옅어지는 건가."


좀 걸어나가는 와중에 반 랜드레이가 급작스럽게 말했다. 조금 뒤늦은 감이 있었다. 긴가민가하다가 이제야 확신을 가진 것이다.


"잘못왔다는 거야?"


"아니 일단 끝까지 가보지."


그래. 기왕 시작한다면 끝을 봐야 한다고, 나는 어쩌면 헛걸음 될지 모르는 길을 더 재촉했다.


그 틈새의 끝은 작은 배수구였다. 원형으로 주조 안쪽에 창살을 뜬 덮개로 막혀 바깥이 보이는 곳이었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어두운지라 잘 보이지는 않고 나무 같은게 어렴풋이 보였다.

이곳의 지리가 어떻더라.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도시의 뒤편, 기슭 아래에 강 같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저게 뭐지."


내가 돌아서는 찰나, 반 랜드레이가 말했다.


"뭐가?"


나는 다시 돌아서서 녀석이 가리키는 곳을 다시 보았다. 배수로의 끝에. 창살이 있는 곳에 거뭇거뭇한 천막이 있었다.

물이 빠지는 곳에 그런게 흘러들어 고여 있을 수도 있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거였다.


"아아, 그냥 천막인 거 같은데."


나는 모든 일이 한 번에 확실하게 해결되길 바라는 반 랜드레이를 위해 특별히 그 천막을 걷어주기로 했다. 하수도에 끼인 물건을 치워주다니, 착한 일을 하면 그 선행이 적립된다는 누구의 말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천막을 걷자 그 안에는 눈동자가 있었.


"으아악!"


나는 화들짝 놀라 천막을 집어던졌다. 풀어진 천막 안에선 사람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내 생에 그만큼 놀란적은 없을 것이다.


미친. 사람 머리라니 어떻게 세상에 그런 게 하수도 밑에 굴러다닐 수가 있단 말인가.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풍뎅이의 등에 잔디가 자라서 움직이는 잔디가 되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됐고 갓잡은 싱싱한 생선의 입에서 불꽃 화염탄이 날아가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됐다. 아무튼 말도 안 됐다.


"진정해!"


내 어깨 아래로 팔을 걸어 붙잡은 반 랜드레이가 아니었다면 난 혼자 날뛰다가 나자빠져을 것이다.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


말은 그리 해도 막상 꼼짝 못하게 붙잡혀버려 움직일 수 없게되니 그럭저럭 마음은 진정되어 갔다.

여전히 심장은 쿵쾅댔고 가쁜 숨 때문에 목구멍이 따끔거렸지만 어떻게, 그 천막을 다시 들춰볼 정도는 되었다.


나는 내 눈이 잘못되었길 빌며 집게 손가락으로 천막을 살짝 걷어냈다.

검은 머리카락이 먼저 보였고 작은 귀가 따라왔다.


"으이씨....!"


내 눈이 틀린 게 아니었다. 내가 다시 천막을 덮어버리자 반 랜드레이가 날 뒤로 끌어내고 자기가 앞으로 나섰다.

그걸 꼭 다시 보셔야 하는지 난 도무지 녀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래?"


내가 물었다.


"아무래도 아닌 거 같아서."


반 랜드레이는 날 힐끗 보면서도 들춰내는 천막에 집중했다.


"뭐가?"


"...사람 머리가 아닌거 같은데."


"내가 제대로 못 본 건 맞는데. 아무리 그래드으아..."


내가 만류해도 반 랜드레이는 끝내 천막 안에서 머리를 집어들었다. 검은 머리칼을 가진 소년의 머리였다.


"으... 넌 아무렇지도 않냐?"


난 뚫어져라 머리를 노려보고 있는 반 랜드레이에게 새삼 질려버리고 말았다.


"사람의 머리가 아니야. 너무 가벼워. 직접 봐라. 이건 가짜야."


그렇게 말하며 반 랜드레이는 그 머리를 내게 들이밀었다.


"아잇, 진짜!"


일단 비명은 질렀지만, 나는 반 랜드레이에게 머리채를 잡혀있는 머리를 다시 한 번 보았다.


분명 사람의 머리였다. 검정색 곱슬머리와 그것과 똑같이 검은 눈을 가졌고 아이답게 선이 굵지않고 여리여리한 인상을 주는, 그런 얼굴.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 이목구비며 눈동자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소년은 아주 잘생겼다는 말을 밥먹듯이 들을 정도로 매우 완벽했다.


그 순간 소년의 눈동자가 아주 살짝 움직였다.


"...야옹."





그리하여-


기절하지 않은 게 다행일 것이다. 아니 나는 이미 기절했고 내가 그 시궁창에서 거꾸로 들어가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기어올라 온 것이 꿈일수도 있었다.

아 차라리 그 쪽이 좀 더 말이 되는 거 같다고 생각할 무렵, 반 랜드레이가 우뚝 멈춰섰다.


"또 뭐야."


간이 벌써 두 번이나 떨어진지라 나는 조금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아니. 발소리가 난 줄 알았는데. 아닌 거 같군."


"너 지금 장난해? 누굴 진짜 죽일라고?"


이미 돌아와버렸다.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 소리를 내는 인형머리라니 꿈에도 안 나올 귀신이었다. 오늘 밤 나는 잠들 수 있을까. 암담하게도 여러가지 의미로 그러기 힘들 것 같았다.


인형이라고는 했지만 그게 정말 인형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람과 똑같이 생긴 인형은 처음봤다.

그쯤 되면 인형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라고 불러야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해괴한 물건이었다.


해괴한 기분.


그 검은 천막, 아무 천조각이 아니라 옷이었다. 오랜 시간 더러운 물에 잠겨 색을 잃고 시커매졌을 뿐. 내가 입고 있던 것과 비슷한 무늬를 가진 옷.


그걸 알았을 때, 난 그 조끼를 벗어버렸다. 그리고 반 랜드레이와 함께 그 시궁창을 좀 더 수색했다. 우리는 옷을 몇 벌 더 찾을 수 있었으며 그 인형의 몸의 일부도 찾았다. 왼손이 두 개였다. 그런게 한 두개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 뒤에 돌아온 탑은 전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외적으로는 투박하기 그지 없는 탑이 내부적으론 화려한 저택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다는 것 또한 새삼 더 큰 위화감으로 돌아왔다.

이런 곳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었다.


"갑자기 의욕적이군."


그게 어딘가 표시가 나기라도 하는 건지, 반 랜드레이가 심드렁히 말했다.


"너 같으면 여기 있고 싶겠냐. 그 사람, 나한테 머리카락을 달라고 했었다고!"


"흥. 그 프리실라라는 여자가 네 머리카락으로도 인형을 만드려고 했나보지."


"징그러운 소리 하지마!"


"그건 네가 뭘 몰라서 하는 소리야. 비싼 인형은 원래 사람 머리털을 쓰기도 해. 넌 여자들이 머리를 팔면 여태 그걸 어디다 쓴다고 생각한 거냐."


"그거야 뭐... 그쪽 사람들한테 새 삶을 주는 건줄 알았지."


"그쪽 사람들? 그건 뭐야."


"아 거 저기, 겨울에 추운 사람들 있잖아."


난 내 머리 주변을 빙빙 가리키며 말했다.


"뭐. 귀족들의 그 화려한 머리가 전부 자기 머리가 아니라는 것만 말해두지."


"내가 그런 사람을 봤어야 알지."


내가 아는 그쪽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트리샤였다. 하지만 그 트리샤도 돈이 엄청나게 많은 부자일뿐이지 귀족은 아니었다.

귀족이라, 어떤 느낌일까.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 왜인지 모르게 프리실라가 떠올랐지만 역시 모르겠다. 지금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반 랜드레이 녀석이 지금 이 이야기를 왜 하는 건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있어."


반 랜드레이가 말했다.


"알아. 누가 몰라? 너만 봐도 난 너 같은 사람이 존재할 거라고 상상도 못했어."


꽉 막히고, 다혈질이고, 정의감이 넘치는 건지 아니면 의무에 미친 건지 분간이 안 가는 그런 사람.


반 랜드레이는 날 아니꼽게 노려 보더니 하려던 말을 그대로 이어나갔다.


"사람 모양 인형에 고양이 소리를 넣는 경우는 없지. 고양이 인형엔 고양이 소리를 넣고 사람의 인형엔 사람의 소리를 넣는다."


"잘못 만들어져서 버렸나?"


"그랬다면 소리를 내는 부분만 바꾸거나 고치면 됐을 거야."


"그럼... 뭔데...?"


"글쎄, 정확한 건 직접 물어봐야 알겠지?"


하며 반 랜드레이는 살벌한 눈으로 픽 웃었다.

그즈음 녀석은 프리실라를 찾으려는 생각을 한 모양이지만 난 조금 달랐다.

우선 에반젤린과 야우라, 레샤를 빨리 찾아서 이곳을 나갈 생각뿐이었다.

용사님의 궁금증은 용사님이 해결하겠지.

그게 당연한 순리였다.


반 랜드레이가 멈춰섰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이후의 계획에 몰두했던 나는 대뜸 녀석에게 어깻죽지를 붙잡혀 벽에 딱 붙여졌다.

반 랜드레이 역시 마찬가지로 벽에 붙어서는 모퉁이 너머를 경계했다. 녀석은 그 방향의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덩달아 숨을 죽였고 반 랜드레이가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그 뒤를 따랐다.


모퉁이 너머의 발소리를 계속 가까워졌다. 뭔가 웅얼거리는 말소리도 들리는 듯 했다.

이대로라면 마주치는 것은 정해진 사실이었기에 나는 그 후에 어떻게 할까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래봤자 반 랜드레이 녀석에게 물러설 생각이 없을테니 별 의미는 없었겠지만.


우리가 벽의 모서리에 다다라 멈추었을 때 그 너머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아... 진짜 다 어디갔냐고..."


우리는 마침내 모퉁이를 돌아오는 얼굴을 마주했다.


"왁!"


어깨가 축 쳐져 걸어나오던 야우라가 우릴 보고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아무 생각없이 걷고 있었는데 웬 남정내 둘이 벽에 붙어서서 노려보고 있으면 놀라지 않을 수 없긴했다.


"야! 너 어디 갔었어!"


난 단박에 소리쳤다.

놀란거야 이해했지만 내 입장에선 또 나름대로 할 말이 많았다.


그 때 야우라의 표정이 정말 억울하다 못해, 세상이 정말 나에게 이럴 수 있나, 하는 사람처럼 서글퍼 보였다.


그것도 잠시, 암만 생각해도 저가 그런 처우를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나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어디 간 건 너지! 왜 나한테 그래!"


맞으라고 휘두른 건 아니었으므로 나는 가만히 서서 그 말을 곱씹어보았다.

...생각해보니 어디간건 야우라가 아니라 오히려 나인 것이 사실이었다.


"다른 애들은."


"나도 몰라! 지금 찾고 있는 거 안 보여?!"


"제발 혼자 다니지 좀 마. 왜 맨날 정신차려보면 혼자 떨어져 있는 거야? 아니면 말이라도 제대로 하던가. 말을 했으면 거기에만 있던가!"


"...너 나한테 왜 그래?"


화를 내고, 또 생각하면서도 서러운지 야우라는 거듭 궁시렁댔다.


"맨날 나한테만 뭐라 그러고... 나만 잘못했고. 에반젤린한텐 안 그러면서... 나만 보면 잡아먹을라 그러고... 때릴라 그러고... 무슨 일 생기면 맨날 나부터 찾고. 맨날 내가 그런 건 아니잖아. 맨날 맨날 맨날..."


돌이켜보면 그랬던 것도 같아서 나는 벙어리처럼 듣고만 있었다.


생각할수록 짜증이 복받쳐 오른 야우라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야! 너 나한테 사과해! 이것저것 합쳐서 사과해!"


침이 튀어라 하는 선언에 차라리 나는 고마웠다. 기회를 준 셈 아닌가.


"미안해."


내가 말했다.


"그래."


야우라는 툴툴대듯이 대꾸했다.

막상 사과하고나니 문득 나에게도 할 말이 몇가지 더 생겼다.


"그럼 너가 평소에 잘하던가."


"잘한다고 한거거든?"


"더 잘해."


"허! 완전 지맘대로야."


슬슬 파국의 조짐이 다시 보이자 반 랜드레이가 슬쩍 발소리를 내었다.


"너희 뭐하냐..."


"정산. 알아? 정산."


내가 말했다.


"그래, 그런거라고."


야우라도 톡 쏘았다.


"그래서 다른 애들은."


이제 싸우는 것도 지친 나는 얼른 원래 하려고 했던 이야기로 넘어가기로 했다.


"모른다니까. 아까 나도 찾는거라고 했잖아."


그러고보면 그랬다.


"근데 갑자기 왜? 뭐하려고?"


어느샌가 평소대로 돌아온 야우라는 두런두런 캐묻기 시작했다.


"다 찾아 모이는대로 얼른 가자."


나는 내 완벽한 계획의 종착점을 알려주었다.


"뭐하려는 건가 했더니 기껏한다는 게 집에 가는 거냐?"


설마 그럴 줄은 몰랐다는 것처럼, 반 랜드레이는 드물게도 화를 내며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질색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작가의말

즐거운 설 연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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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35. 기대는 기대게 돼(4) +4 18.12.31 159 8 18쪽
196 35. 기대는 기대게 돼(3) +2 18.11.25 155 6 19쪽
195 35. 기대는 기대게 돼(2) +2 18.11.19 147 6 15쪽
194 35. 기대는 기대게 돼(1) 18.11.06 174 7 16쪽
193 34. 헛것이야(12) +2 18.10.22 153 7 24쪽
192 34. 헛것이야(11) 18.10.22 148 6 16쪽
191 34. 헛것이야(10) +4 18.10.15 194 6 19쪽
190 34. 헛것이야(9) +1 18.10.10 205 4 16쪽
189 34. 헛것이야(8) +1 18.10.02 168 6 20쪽
188 34. 헛것이야(7) +2 18.09.29 177 4 19쪽
187 34. 헛것이야(6) +2 18.09.25 182 5 19쪽
186 34. 헛것이야(5) +1 18.09.18 172 5 20쪽
185 34. 헛것이야(4) +2 18.09.09 183 4 21쪽
184 34. 헛것이야(3) +2 18.09.06 186 6 20쪽
183 34. 헛것이야(2) +1 18.09.03 178 9 19쪽
182 34. 헛것이야(1) +2 18.08.30 194 7 15쪽
181 33. 헛것이 아니야(5) 18.08.28 203 8 20쪽
180 33. 헛것이 아니야(4) 18.08.27 146 9 13쪽
179 33. 헛것이 아니야(3) +1 18.08.21 181 7 17쪽
178 33. 헛것이 아니야(2) +1 18.08.18 195 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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