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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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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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기대는 기대게 돼(4)

DUMMY

"그걸! 대체! 어디다! 뒀다는 건데요...!"


레샤가 불평하는 소리가 비둘기가 목 흔들듯 박자감 있게 요동쳤다. 화를 꾹꾹 눌러 담아 각진 발음에 숨까지 거친 것이 보통 화가난 게 아닌 듯 했다. 사실 레샤가 숨을 몰아쉬는 건 화가난 것보다도 힘든 게 더 큰 이유 같았다. 온 방을 뒤지고 물건을 헤집는 것, 어질르는 것도 막상 해보면 편하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니이... 그게... 분명히 여기 근처에다 놨는데... 진짜로..."


야우라는 레샤의 눈치를 거듭 보며 중얼거렸다. 손 한 번 움직이고 눈치보고 또 손을 한 번 움직이고 나면 눈치를 보니 허둥지둥 바쁘기 그지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돌아오자마자 방에서 구슬 찾기나 하게된 레샤가 화를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한 마디 한 마디 불호령이 떨어질 때마다 야우라는 입술에 강력한 풀이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꾹 입을 말아물었다.


"그러게 제가 그런 건 얼른 레이크한테 돌려주라고 했잖아요."


"아니... 자기 전엔 그렇게 생각해도 아침에 자꾸 까먹어서..."


"자기 전에라도 생각이 나면 가져다 주면 되잖아요."


그래 자주 깜빡하는 성격이라면 그런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었다.

잠깐만.


"아니 왜 야밤에 잘 자고 있을 내 생각은 안 해?"


지극히 합당했던 불만이었다. 그러나 내 의견은 순식간에 묵살되다 못해 파묻혀버렸다.


"아 찾았다!"


구슬을 발견한 야우라가 귀가 쨍하도록 크게 소리쳤기 때문이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해낸게 그렇게도 자랑스러운지 야우라는 빙글빙글 돌아 화려한 발걸음으로 내게 오더니 푸르스름한 빛이 흐르는 구슬을 앞에다 대고 흔들어댔다. 보물찾기 놀이에서 가장 먼저 보물을 찾은 애도 얘만큼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지금 저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걸 알텐데.


나는 눈하나 깜짝 안 하고 잠자코 손만 내밀었다. 이윽고 제 잘못을 다시금 되새긴 야우라는 내 손 위에 구슬을 올려놓았다.


"...그래도 내가 가지고 있었으니까 안 뺐겼잖아."


조용하기까지 했으면 완벽했을텐데 약간은 억울한 마음이 있는지 그래주지는 않았다.


"덕분에 돌만 뺐기면 되는 걸 온 방을 거덜나게 했지."


"그건 내가 아니라 그 요상한 여자가 잘못한 거잖아!"


그래! 하고 야우라는 거듭 외쳤다.


"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어떻게 할거냐. 결정해라. 레이크 아이힐데른."


반 랜드레이는 야우라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허! 왜 내 말 무시해?!"


야우라가 무어라고 떠들든, 날뛰든, 얼굴을 들이밀든.

시선과 관심을 끌기 위한 모든 행동에 전혀 개의치 않는 그 모습에, 나는 처음으로 용사에게 존경심이란게 생길 지경이었다.


"레샤아! 쟤들이 나 구박해!"


별 수 없이 야우라는, 본인 생각에, 영원히 제 편인 레샤에게 달려들었다.


"아닛, 그럼 거기다 대고 얘기하지 그걸 왜 저한테에이아악...!"


나는 우직한 용사의 모습을 본받아 아예 몸을 틀어 그 꼬라지를 보지 않기로 했다. 침대 위에서 야우라한테 깔린 레샤가 지르는 비명이 배경 삼기에 좋은 소리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마무리 지을 건 지어야했다.


"재촉하면 뭐가 좀 나아지냐?"


마무리 지어야한다곤 해도 성급히 결정할 사안도 아니었다.


글리는 내게 미력의 돌을 가지고 쪽지에 적힌 곳으로 오라고 했다. 적힌 곳은 클리펜즈, 듣기로는 델루람과 가까운 곳이라고 했다. 찝찝한 일이었다. 불러낸 곳의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에 관한 것 말이다. 쪽지라니. 언제 그런 걸 쓸 여유가 있었다고. 처음부터 준비되어 있었다는 의미다.


그럼 미력의 돌을 찾았더라도 날 불러낼 생각이었다는 걸까. 속내를 알 수가 없으니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설마하니 잃어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어줘서 고맙다고 사례를 하려는 건 아닐거고.


"글리 캐스트는 널 따로 불러냈다. 짐작가는 이유 같은 건 없는거냐?"


반 랜드레이도 내가 걱정하는 부분을 미심쩍어하고 있었다.


"글쎄. 난 걔가 뭐하는 앤지도 잘 모르는데."


매번 볼 때마다 말과 행동이 달랐다. 정상적인 정신세계를 가졌다고 볼 수도 없었고, 목적도 불분명했다.


"내가 알아본 글래 캐스트의 행보도 마찬가지였다.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어. 그래서 이 참에 널 이용해서 좀 알아볼까 싶은데."


말을 해도 꼭 저렇게 해야하는 걸까. 좀 더 부드러운 표현이 있잖아.

어... 그 왜... 그... 음...

아니다. 아니었다. 난 반 랜드레이가 나에게 잘 대해주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기로했다. 그런 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됐다.


남이사 속으로 무어라 생각하든 반 랜드레이는 제안을 계속했다.

제안이랄까, 결국은 날 빌미로 글리 캐스트를 잡고 싶다는 말이었다. 용사님의 추적을 받는 범죄자라니. 걔도 꽤나 출세했다.


잠깐, 나 이거 잘못 물린 거 아니야?


유난히 시끄럽고 사납게 짖던 개를 찾아가보니 남의 집 똥개가 아니라 들개 무리였다면 그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막상 그런 생각이 들자 눈살 찌푸리게 만들던 화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좀 더 냉정하고 좀 이성적이고 좀 더 차분하게.

차분하게 생각하고 싶었다.


"아아! 미안해! 미안해! 안 할게, 안 할게! 옆구리 꼬집지마앗...!


무슨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인지 신나게 부대끼고 밀치고 앵겨가며 레샤를 괴롭히던 야우라는 대뜸 상황을 역전 당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레이크! 레샤좀 어떻게 좀 해줘!"


새삼 나보고 어쩌라는건지 모르겠다.


어떻게 또 뿌리칠 수는 있었던 건지 야우라는 레샤에게서 도망쳐 나를 벽삼아 숨어버렸다.


"아아! 내가 잘못했다니까!"


어깨 뒤편에서 목청을 키운 소리가 귓구멍을 찔렀다.


"아잇...! 왜 나한테 와서 그래!"


나는 뱀마냥 모가지를 쑥 내밀고 있는 야우라에 귓전에다 대고 똑같이 소리쳐주었다.


"뭐어. 좀 도와줄 수도 있지!"


도움이라면 나 같은 사람보다 훨씬 좋고 잘하고 당연하게 해야할 녀석이 하나 있었다. 그 이름도 어마무시한 스칸달른의 용사.


"그럼 저기 용사님한테 도와달라 그래."


나는 반 랜드레이를 가리켰다.


"쟤는 진짜 화낸단 말이야."


말도 말라는 듯 야우라는 손사래쳤다. 그런게 날 화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 내가 지금 소리지르는 건 너 안 들릴까봐 그러는 거냐!?"


"에이 또 그런다. 그러지 말고오."


야우라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내 어깨를 주물러댔다. 부자연스럽게 하얀 이를 드러내고 거짓웃음을 짓는 것이 가증스럽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거라고 친절히 내게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일찍 죽으면 다 너 때문인줄 알아!"


"네가 일찍 죽으면 그건 네 망한 생활 습관 탓이지 그거를... 아! 농담농담농담!"


내가 손을 번쩍 들자 야우라는 그것보다도 더 빠르게 양팔로 머리를 가렸다. 때릴 구석 없이 나름 완벽한 방어자세였다.

항상 자신있다 큰소리치는 빠른 반응은 이럴 때만 소용이 있는 거냐고.


굳어 서있던 야우라는 몰래 숨어 관찰하기라도 하듯 교차된 팔 사이로 눈동자를 내비쳤다. 내가 더 다가오는지 그렇지 않은지 보는 것이다.

특별히 그럴 생각은 없었기에 들었던 손을 내리자 야우라는 따라 팔을 내리더니 떵떵거리며 웃었다.

피해낸 자신이 그리도 대견한 모양이다.


"그래서 어떡할건데."


쳐웃던 야우라가 대뜸 물어왔다.


"뭘."


뭘 어떻게 해달라는걸까.

지금이라도 가서 때려달라는 걸까. 바라는 게 그거라면 기꺼이 해줄 수 있었다. 기쁘게 해줄 수도 있었고, 신성한 의무처럼 경건히 해줄 수도 있었다.


"갈거냐고 안 갈거냐고."


"어디를."


갑자기 어딜간다는 건지 모르겠다.


"어디기는! 당연히 글리 캐스트를 혼내주러 가는 얘기 아니겠어?"


맞아. 잠깐 정신이 팔려서 그렇지 우리는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놓고 시끄러운 녀석 하나하고 조용한 척하면서 시끄러운 녀석 하나 때문에 하마터면 깜빡할 뻔 했다. 방해란 방해는 있는대로 다 하면서 대뜸 입 싹 닦고 혼자 정신 차린 척은 왜 이렇게 잘하는 걸까. 이것도 능력인가.


"뭐야. 그 시선은 뭐야. 또 날 보면서 폭력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그지?!"


눈치도 좋다.


"그런 불만을 나 말고 진짜 적에게 분출하란 말이야."


진짜 적이라. 진짜 적. 잘 모르겠다. 평생 적이란 걸 만들만한 짓을 한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어쩌다 시선이 그리로 향한 것인지 나는 떨구었던 눈동자를 들었다가 야우라와 눈이 딱 마주쳤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 딱히 그런 의도로 본 건 아니었는데...


"왜 날 봐! 왜 날 보는 거냐고!"


순식간에 달려온 야우라가 내 머리카락을 붙잡고 마구 휘저었다.


"아야야야야 아니 뭐. 내가 뭐라고 했어?"


"했어! 했어! 눈으로 말했어! 얼굴로 말했어!"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었다.


"사과해! 사과해!"


"아이 뭔 사과야! 좀 안 가?!"


내가 팔을 휘젓자 야우라는 깔깔깔 웃으면서 또 도망쳤다. 저만치 문앞까지 가서 깐족대는 모습이, 정말 사람한테 이런 말을 쓰게 될줄은 몰랐는데 모기 같았다. 야우라는 모기 같은 사람이었다. 언젠가 박멸하고야 말리라.


그런 내 마음을 신께서도 알아주신 모양인지 문짝으로 야우라의 엉덩이를 힘껏 걷어차주셨다.

야우라는 갑자기 열려버린 문에 떠밀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으이엑! 하는 그 비명이 어찌나 통쾌했는지 달콤한 선율이라는 구절이 뜻하는 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물론 아니겠지만.


"잘 됐다."


난 신음을 흘리며 바닥을 기는 야우라를 비웃었다.


"진짜 못 됬어..."


못 되긴 누가 못됐다고. 누가 더 못되먹었는진 다음에 따지기로 하고 난 난데없이 문을 박차고 쳐들어온 녀석이 누구인가 한 번 보기로했다. 배로 바닥을 청소하는 야우라는 레샤가 잘 주워 챙길 것이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웬 짐뭉치였다. 그것도 꽤 커다란 것. 밧줄로 묶은 곳이 경계선이 되어 삐져나올 것처럼 부풀만큼 커다란 짐이었다.


짐은 꾸물꾸물 움직이는가 싶더니 조금씩 조금씩 방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이 황당하니까 대체 무슨 일인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 물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도와줘야하는 건지 아니면 들어오는 걸 막아야하는지 그런 판단조차 내릴 수가 없던 것이다.

그저 꾸물꾸물 밀려 들어오는 짐덩이를 보고만 있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짐더미가 문턱을 지날즈음엔 난 그걸 옮기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건 에반젤린이었다.

그러니 더더욱이 굳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가끔 이상하긴 해도 정말 이상한 짓은 안 하던 애가 지금 정말 이상한 짓을 하고 있으니 나도 이상해져버릴 거 같았다.

우린, 누구에게 우리라고 엮어야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린 좀 더 침착할 필요가 있었다.

침착 침착 침착.


"레이크님!"


갖잖은 침착은 그 한 마디에 부숴져 버렸다.

에반젤린은 아주 단단히 결심한 듯 눈에 힘을 가득 주고 말했다. 문제는 뭘 결심한 건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는 거였다.

조금씩 가까이 오는 것도 왠지 무서웠다.


"우리, 가요!"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무서웠다.


"어, 어디를...?"


정답이 뭔지 알 것 같았어도 나는 물어보기로 했다.


"어디긴요. 당연히 레이크님 물건을 찾으러 가야죠!"


역시나일까.

그렇게 말하며 에반젤린은 내 방의 물건 몇가지를 짐꾸러미 안에 추가로 더 넣기 시작했다.


"아니... 그거 꼭 되찾거나 할 필요는 없는데..."


내 의견이 퍽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에반젤린이 휙 돌아섰다. 그리곤 단호히 외쳤다.


"아니요!"


화가 나긴 단단히 난 모양이었기에 같이 척을 지기보단 일단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편이 좋을성 싶었다.


"어. 뭐... 아닐수도 있지."


수그렸단 뜻이다.


"그 동전이 레이크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저는 잘 알고 있어요!"


"그것도 아닐 수도 있고..."


"얼마나 애지중지 했으면 그 덤벙대는 레이크 님이 그렇게 작은 물건을 잃어버리지도 않고..."


"아니 뭐 어디 꺼내거나 할 일이 없는 거니까..."


"그렇게 돈 타령하실 때도 마지막 하나만큼은 안 바꾸셨잖아요!"


"그건 시기를 놓쳐서..."


"그랬는데! 그걸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강탈해가다니!"


"뭐, 걔는 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거 같더라고."


"그럴 순 없는 거예요! 레이크님은 그냥 쫓아오시기만 해도 되요. 제가 따끔하게 한 마디 해서 되돌려받을테니까!"


마음을 먹어도 아주 단단히 먹은 것인지 에반젤린은 계획에 필요한 물건을 챙기길 계속했다.


저래가지고선 한 동안은 무슨 말을 해도 고집을 꺽지 않을 것이다.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나라고 해서 속없이 사는 놈은 아니었다. 가능하면 순탄하게 지내고 싶었을 뿐이다. 순탄하게. 좋잖아.


"...레이크."


어떻게 하면 그 순탄을 잘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하기 바쁜 와중에 레샤가 특유의 낮고 작은 목소리로 목뒤를 간질였다.

흡사 무슨 벌레가 기어 지나간 것 같은 느낌에 나는 몸을 비틀었다. 대꾸를 할래도 그 다음에야 할 수 있었다.


"왜?"


"그런 걸 왜 여태 가지고 있었어요?"


아니 왜냐니.

그야 뭐 별 거 없었다.

별 거 없었지.


"그냥. 혹시 안 되더라도 내가 이런 걸 했었구나, 하고 기억이나 좀 하려고 했지. 왜."


혹시나 증거가 필요하면 유용하게 쓰일라기도 하고. 참 별 게 다 궁금하시네.


"레이크."


제법 퉁명스럽게 대했는데도 레샤는 왜인지 내 이름을 또 불렀다.


"왜에."


"레이크는 이 다음에 결혼하면 분명 부인한테 잡혀 살거예요"


"남이사...!"


무슨 중매쟁이야?



그리하여-


에반젤린의 주도면밀함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도면밀함이랄까, 그것하곤 약간 다를 수 있었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것이 모두 미리 준비된 잇속계산을 통해서라고 말한다면 그건 심술이었다. 이건 평소 행실을 통해 얻은 결실인 것이다.


평소에 고분고분하던 사람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면 당황해서라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간곡한 부탁 끝에 가는 길을 약간 수정하게 된 마구상 험블 씨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를 태워다주기 위해 짐도 몇 개 빼주시고 따지고보면 그렇게 크게 경로를 바꾼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돌아가는 돌아가는 거였다.


하여 오랫동안 마차 뒷칸에 얻어 타 레샤의 '내가 그 곳을 가면 안되는 이유' 라는 연설과 야우라의 '네가 그 곳을 가야 하는 이유' 라는 연설을 번갈아 듣는 동안 우리는 글리 캐스트가 말했던, 아니 정확히는 적어두었던 클리펜즈에 도착하게 되었다. 마을 입구에 우릴 내려준 험블 씨는 일정이 늘어진만큼 더 바삐 갈길을 재촉했다.


친절한 마구상을 배웅하고난 뒤 우리는 다소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있게 되었는데 공간 형편상 에반젤린이 꾸렸던 짐은 거진 다 두고 오게 되어 사람만 넷 덩그러니 남아 뒤쫓아오던 반 랜드레이를 기다리게 된 것이다.


원래 자기들의 이동수단이었던 말을 타고 따라오겠다던 스칸달른의 용사님은 무슨 볼 일이 있으셨는지 우리보다는 약간 늦게 도착했다.


입성하게된 클리펜즈의 모습은 왠지 상상하고는 조금 달랐다. 도자기로 유명한 장인의 도시 델루람의 근처라고 해서 더 활기찰 줄 알았는데 멋지고 큼직하게 지어진 건물들에 비해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도시 한 가운데에 있는 높은 석조 탑이 괴상한 분위기만 더하고 있었다.


"원래 큰 도시 옆에 붙은 작은 도시는 겉만 요란해지는 법이지."


반 랜드레이가 흘리듯 말했다.


"뭘 그렇게 의미심장하게 말해. 여기 사람들은 다 야행성인가보지 뭐."


짧지 않은 여정으로 불편했던 나는 괜스레 한 번 퉁겨보았다.


"그치만, 이미 어둑해지고 있는 걸요?"


늘 사실만을 말하는 에반젤린이 이번에도 사실로 내 말문을 닫게 만들었다.

그래 날씨는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우선 오늘은 하루 묵을만한 장소를 찾아보고 뭘 하든지 내일부터 하는 게 좋을 성 싶었다.


"그러네. 벌써 어둡네."


나는 기분좋게 말했다.


"레이크님. 또 내일부터 하자고 하시려는거죠."


"아니 어둡잖아요. 사제님? 앞이 안 보인다고요. 나 사실 어두운 거 무서워 해."


평소같은 잔소리에 난 대놓고 질색했다.

그 외에도 댈 핑계는 더 있었다.


"...그 왜, 여독이란게 있기도 하고. 그. 아! 레샤가 힘들어서 더 못 걷겠데!"


나는 가장 그럴듯한 걸로 하나 대보았다.


"거기서 왜 제 이름을 팔아요!"


저 손해보는 일은 곧 죽어도 싫은 레샤가 바로 선을 그어버렸다.

하여튼 도움이 안 된다 도움이.


"넌 맨날 그러면서 내가 어쩌다 한 번 파는 걸 가지고 뭐라 그러냐!"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예에?! 언제!"


말을 말자 말을 말아.

이쯤되면 이제 다른 핑곗거리를 찾아봐야했는데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반 랜드레이가 콧방귀 소리로 흐름을 깨놓았다.


"숙소라면 챠라가 찾을 거다. 넌 네가 할 일만 하면 돼."


"뭔데. 대체 내가 해야할 일이란 게 뭐냐고. 난 진짜 하나도 모르겠다. 이 세상은 너무 어려워."


"글리 캐스트가 원했던대로 너 혼자 여길 방문해야지."


그러니 그 말인즉슨 지금부터 나 혼자 이 거리를 떠돌으라는 의미였다.


"걔가 혼자 오라곤 안 했어. 그냥 오라고만 했지."


"남자답게 굴어라. 레이크 아이힐데른."


"아니 사실이 그렇다고..."


그렇지 않았던가. 정말 그렇게 말했다.

꼭 그렇게 방이 털려서 슬픈 동네 청년을 혼자 길거리로 떠밀고 싶은 걸까. 용사들이란 알려진 것보다 더 잔혹한 성정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얘만 그런 것일수도 있었고.

내가 다음 핑곗거리를 찾는 동안 오묘한 시선들이 날 점점 억눌렀다.

모르는 사람이 그러면 이해를 하겠는데 다 아는 녀석들이 그러니까 더 얄미웠다.


"아잇. 진짜 그렇게 말했다니까?"


정말인데 아무도 내 말을 안 믿어주나.


"알았으니까, 빨리 해!"


잠자코 있던 야우라가 더는 못 참겠는지 내 등을 확 밀쳤다.


작가의말

최근 몇 달간은 개인적인 일이 좀 많았습니다.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 문제인데 어느정도냐면 제가 이걸 써야한다는 걸 까먹을정도 였어요. 지금은 거의 다 정리되었습니다. 다시 제가 제 글에 적응하는 시간을 조금 가지면서 페이스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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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기대는 기대게 돼(4) +4 18.12.31 159 8 18쪽
196 35. 기대는 기대게 돼(3) +2 18.11.25 155 6 19쪽
195 35. 기대는 기대게 돼(2) +2 18.11.19 147 6 15쪽
194 35. 기대는 기대게 돼(1) 18.11.06 174 7 16쪽
193 34. 헛것이야(12) +2 18.10.22 153 7 24쪽
192 34. 헛것이야(11) 18.10.22 147 6 16쪽
191 34. 헛것이야(10) +4 18.10.15 193 6 19쪽
190 34. 헛것이야(9) +1 18.10.10 204 4 16쪽
189 34. 헛것이야(8) +1 18.10.02 168 6 20쪽
188 34. 헛것이야(7) +2 18.09.29 177 4 19쪽
187 34. 헛것이야(6) +2 18.09.25 181 5 19쪽
186 34. 헛것이야(5) +1 18.09.18 172 5 20쪽
185 34. 헛것이야(4) +2 18.09.09 182 4 21쪽
184 34. 헛것이야(3) +2 18.09.06 185 6 20쪽
183 34. 헛것이야(2) +1 18.09.03 178 9 19쪽
182 34. 헛것이야(1) +2 18.08.30 194 7 15쪽
181 33. 헛것이 아니야(5) 18.08.28 202 8 20쪽
180 33. 헛것이 아니야(4) 18.08.27 145 9 13쪽
179 33. 헛것이 아니야(3) +1 18.08.21 180 7 17쪽
178 33. 헛것이 아니야(2) +1 18.08.18 194 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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