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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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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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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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27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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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헛것이 아니야(4)

DUMMY

빗줄기가 얼마나 굵은지 천을 두껍게 덧대어 만든 외투를 둘러써도 물방울이 머리와 등 어께를 두드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천보다도 훨씬 두꺼울 구름이 하늘을 덮어 바깥은 꼭 밤 같았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말겠다던 헬레나는 그 빗줄기를 뚫어가며 앞서 걸었다. 신입 제자 에반젤린이 그 뒤를 따랐고 야우라는 나랑 서로를 의지해 비바람을 헤쳐 나아갔다. 이런 나오는 게 아닌데, 괜히 끌려나오고 말았다.


바람이 휙 불 때면 비가 땅을 치는 소리가 매서웠다. 그러니 의지할 곳 없는 둘이 서로 돕는 수밖에.

언제서부턴가 천둥번개도 치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잠깐만 입을 벌리고 있어도 목을 축일만큼 많은 비가 얼굴을 때렸다.

이런 날 나가는 건 정말 미친 짓이다 싶은데 갑자기 야우라가 후드를 벗어 맨얼굴로 비를 맞이했다.


"우와아아아아!"


그것도 모자라 괴성까지 지르며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는 점점 비에 젖어 물을 머금고 입을 헹구는 소리처럼 변해갔다.

나는 야우라의 후드를 확 당겨 강제로 씌워버렸다.


"뭐하냐?!"


빗소리가 너무 거세서 작게 말하면 들리지도 않았다.


"그냥! 재밌잖아!"


대차게 말한 야우라는 고개를 탈탈 털었다. 이미 나온 거 즐기기로 한 모양이었다.


야우라는 후드도 벗고 옷 안쪽으로 말려들어가있던 머리칼도 바깥으로 빼내 아예 본격적으로 비를 맞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하늘을 향해 헤벌쭉 입까지 벌려 빗물을 받고 있었다.


개구리나 한 마리 확 들어가라. 난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 빗속에 머리칼을 저렇게 칠렐레 팔렐레하고 다니는 건 영락없는 미친여자였다.


무심코 뒤를 본 에반젤린이 그걸 발견했을 땐 아연실색할 정도였다.


"야우라 자매님! 그러다 감기 걸려요!"


"괜찮아! 뛰어다니면 따뜻해질 거야!"


에반젤린이 모자를 씌우러 오자 오히려 야우라는 피해 달아났다.


한동안 야우라를 잡으러 따라다녀보던 에반젤린은 빗길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것도 알아채지 못한 야우라는 뭐라뭐라 소리지르면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아예 헬레나한테까지 그쪽에다 말을 걸었다.


결국은 내가 가서 에반젤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앗... 아이구..."


어쩐지 할머니 같은 소릴 내던 에반젤린은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괜찮아?"


내가 물었다.


"저는 괜찮은데 망토가 걱정이에요. 진흙으로 더러워졌을텐데..."


에반젤린은 이리저리 몸이나 고개를 틀었다. 하지만 암만 그래도 자기 뒤를 볼 수는 없었다. 아예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아보던 에반젤린은 날 보며 '안 되네요.

' 라고 말하듯 멋쩍게 미소지었다.


"이 정도 비면 진흙도 씼겨 내려가겠지."


"그럴까요? 후훗."


"그건 그렇고... 저 아줌마는 어디가는 거야?"


나는 시커먼 옷차림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 헬레나를 힐끔 가리켜 물었다.


"글쎄요. 사실 헬레나 선생님은 저한테 직접 가르쳐주시진 않아요. 제가 스스로 깨닫게 유도하려고 하시는 편이죠. 본인도 그렇게 배우셨데요."


가르칠 게 없어서 애두르는 건 아니고?

난 그렇게 되묻지 않았다.

너무하잖아.


"근데. 저 사람 말이 맞으면 난 최악의 결혼을 하게 될텐데."


"그건 너무 걱정마세요!"


에반젤린은 응원하듯 힘주어 말했다.


"운명이란 건 바꿀 수 있는 거니까요. 아무리 용한 점쟁이라도 점괘가 항상 들어 맞는 것도 아니고요."


맞다. 나는 운명을 거스른 남자였다. 어쩌면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 수도 있고. 운명이란 건 그런거였다. 어차피 닥치기 전엔 알 수가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레이크 님은 분명 좋은 신랑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분명히!"


차라리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좋은 신랑.

좋은 신랑이라는 게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다는 거 보니 좋은 거겠지 뭐.

그런데 그렇게 생각해보니 또 상당히 어렵게 느껴졌다.

좋은 신랑은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화도 안 내는 대인배에다가 낙방 이력 같은 건 없겠지.


음...


"나보다는 에반젤린 같은 사람이 더 좋은 신부가 되지 않을까..."


무심결에 말했던 나는 아차 싶었다.


"아. 너는 사제 님이라서 결혼을 못 하나? 아니 뭐 놀리겠다고 그런 건 아니고..."


"아뇨!"


에반젤린이 덥썩 내 손을 잡았다.


"사제라고 해서 결혼을 못하는 건 아니에요!"


그 굉장한 기세에 오히려 내가 놀라버렸다.


"아... 그래?"


사제라고 해서 다들 결혼은 안 하는 건 아니었구나. 어렴풋이 결혼을 안하겠거니 싶었는데 하는 사람들은 또 하는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슬슬 손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 그런데 손 좀..."


그제야 자신이 내 손가락을 비틀어져라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에반젤린이 퍼뜩 손을 놓았다.


"괜찮아. 그렇게 안 아팠으니까..."


"아, 네? 아, 네!"


얼굴을 붉히며 서로 맞댄 손가락이 어쩔 줄 모르는 게 내가 다 무안했다.


"야! 빨리 와! 다 왔데!"


어색한 적막은 야우라의 도움으로 오래가지 않았다. 멀찍이서 손을 흔들고 있는 그 모습이 어찌나 반가운지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헬레나와 야우라가 기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하여 어디로 갔는가함은-


그곳은 검은 산들이 가득 들어찬 곳이었다.

움직이면서 본다면 울툴불퉁하게 펄럭이는 거대한 장막들이 연속이어 이어져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런 부드러운 게 아니었다. 좀 더 거칠고 투박하고 딱딱한 무언가였다.


대부분은 부서진 나무였고 빗물에 씻긴 톱밥이 탁하게 흘러내리는 것들이었다.

가끔은 고철도 있고 말이다.


여기는...?

뭔가 드럽게 익숙한 곳인데.


"여기는 왜요?"


괜한 익숙함은 한 수 접어두고, 나는 헬레나에게 물었다.


"질문은 나중에 하고, 일단 따라들어오기나 해."


검은 옷을 뒤집어 쓰고 있어 가뜩이나 수상해 보이는 헬레나는 더 수상하게 들릴 말을 하며 훈련소 안으로 들어갔다.


쓰레기 더미들을 지나면서 헬레나는 거듭 중얼거렸다. 무슨 기운이 어떻다느니 흐름이 어떻다느니 몽환적이게 들리는 말을 하며 분위기를 잡았다.


잡동사니의 배치며 높이 구조 그리고 그것들이 치워진 길의 모양이 모두 지표라는 것이다.

글쎄 나는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인데, 헬레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이다.


"이 불쾌하기 짝이없는 것들을 좀 봐."


헬레나가 어둠 속에서 눈을 희번뜩 떴다.

안 그래도 좀 무섭게 생겼는데 지금은 완전 마귀 할멈이었다.


"이 불규칙한 조형들은 뭘 의미하는 걸까..."


무서운 아줌마는 의미심장하게 허공에 읊조렸지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직접 말하지는 않았다.


"여, 여기에도 불미스러운 뭔가가 있었던건가요?"


에반젤린이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서 초를 치기도 뭐했다. 대체 쌓여있는 잡동사니들의 모양새가 어떻다고 불쾌하고 불미스럽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나는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에반젤린은 쉽사리 경계를 거두지 않았고 또 걱정하고 있었다.


"불미스럽다기 보단 누가봐도 일부러 옮겨서 만들어 놓은거 같지 않아?"


"누군가 열심히 옮겼으니까 그렇겠죠."


듣다못해 한 마디 하자 헬레나는 피식 비웃었다.


"누가 그렇게 쓸데 없는 짓을?"


"이게 왜 쓸데 없는 짓이에요!"


나는 울컥 소리쳤다. 쓸데 없는 짓이라니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열심히 치운 사람이 너무 슬퍼서 대성통곡을 해도 모자른 소리였다. 앙심을 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 앙심으로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는 것이지...


잠시 그렇게 노려보고 있는데 에반젤린의 얼굴을 불쑥 나타났다. 갑자기 뭔가 싶었는데 눈을 댕그랗게 떠선 내 후드 안을 들여다보는 거였다.


"어디 아프세요? 왜 얼굴을 찡그리세요?"


"가끔 이러고 싶을 때가 있어..."


"그러다가 주름 생겨요."


에반젤린은 농담처럼 말했다.


"그래. 남아있는 관상이라도 관리해야지."


그리고 헬레나는 악담처럼 말했다.


"아 그건 전문분야라도 아니라면서요!"


"전문 분야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는 알 수 있어."


근데 이거 옮긴 사람은 왜 가늠하지 못하시는 걸까. 정말, 차아아암 궁금한데 말이다.


"그것뿐이야. 최근에도 계속 이 산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


"소문 맞아요?"


사실이 아니고?


"헉!"


그 말을 들은 에반젤린은 퍼뜩 놀라더니 내 팔을 살살 흔들었다. 그리고는 슬며시 속삭였다.


"레이크 님 말고도 이 산에 손대는 사람이 있나봐요."


아 그런 거였구나! 그런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나 말고 여기 와서 쓰레기 산을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니.


그럴리가 있겠냐고!


...하며 나는 소리치지 않았다.

대신 저만치서 혼자 놀며 순박한 소녀 행세를 하는 야우라를 보며 마음을 안정시켜보려고 했다.


비를 만끽하는 아줌, 아니 소녀는 홀로 외딴 밤을 걸으며 개구리를 잡고 있었다. 잡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당겨보기도 하고 몸통을 꽉 쥐어보기도 하고 뒷다리만 잡고 흔들어대기도 하는...

마음의 안정은 커녕 저게 뭔가 하는 측은함만 들었다. 괜히봤다.


"더 무서운 건 저 저택이야."


우리가 집중하지 않는 동안 뭔가 더 말하고 있던 헬레나가 이어서 저 먼 곳을 가리켰다.


"저택이요?"


여기 저택 같은 게 있을리가 없는데... 하면서 본 곳엔 역시나 관사가 있었다.


"저 저택에서 뭔가 음울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어. 음울할뿐만 아니라... 차갑고... 소름끼치는 기운이..."


"이제야 좀 이해할만한 얘길 하시네."


헬레나가 느낀 기운이 왠지 가기 싫고 멀리 하고 싶은 기운이라면 완벽하게 들어맞는 이야기였다.


"내가 너흴 여기에 데려온 것도 저 저택 때문이야. 최근 흉흉한 소문이 돌거든."


"소문이요?"


에반젤린이 되물었다.


"저 저택에서 가끔 미친듯이 웃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있어서 나에게 꼭 한 번 봐달라고 하던 사람들이 있었거든. 무슨 악령인지는 몰라도 이 검은 무녀에게 걸렸으니 운이 아주 안좋은거지... 우후후후후흐흐...!"


헬레나는 관사를 향해 걸어가며 음흉하게 중얼거렸다.


지금. 좋은 일 하러 가는 거... 맞지?



관사 안은 다른 곳보다도 어둑침침했다. 원래 커튼이 쳐져 있는 곳이기도 했고 촛불 하나 밝혀놓지 않아 바닥과 벽, 사물이 구분되지 않았다.

우리가 가져 온 등불 빛만 반딪불이마냥 대롱대롱 떠다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익숙할 나조차도 괜히 위화감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건 저 앞에서 이상한 주문을 중얼거리는 아줌마 때문일 수도 있고 개구리를 잃어버렸다며 홀연히 밖으로 가버린 야우라 때문일 수도 있었다.


헬레나는 하늘그림에서 그랬던 것처럼 알 수 없는 기도문을 외우거나 탐정처럼 벽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어둡기짝이 없는 실내에서 뭐가 보이겠냐만은 본인에겐 뭔가 보인다니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건 그렇고 소문 속의 웃음소리란 게 대체 뭘까.

이 관사에서 여자라고 한다면 비셔스 경밖에 없었다. 그 비셔스 경이 암만 특이한 사람이래도 '미친듯이' 웃을 사람은 아니었다. 스렌에게 여자 목소리를 내는 능력이 있을 리도 없고, 달리 짐작가는 것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는 너무 오래걸리겠어."


헬레나가 갑자기 우리에게 말했다.


"나눠서 찾도록 하지. 나는 이 쪽으로 갈테니까 너희는 계속 이 방향으로 가도록 해."


그 아줌마는 반대방향을 가리키며 자기가 그 쪽으로 가겠다고 했다.

우리. 아니 에반젤린은 어떨지 몰라도 나한텐 기가막힌 소리였다.


"아니 우리한테 가라고 한들 뭐가 보인다고요."


나는 따져물었다.


"괜찮아. 에반젤린도 아주 기초적인 것정돈 배웠으니까. 그렇지?"


배웠다고?

내가 돌아보자 에반젤린은 뭔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랑스럽지만 아직은 미숙한 수강생 뭐 그런 걸까.


헬레나가 가버리고난 뒤엔 아까와 비슷한 탐색의 연속이었다. 에반젤린은 얼굴을 찡그릴 정도로 눈에 힘을 팍 주고 이곳저곳을 살폈다.


"뭐가 보이긴 해?"


왠지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좀 더 집중하면 뭔가 보일 것 같기도 하고요. 흐릿한 선 같은 게..."


그런 건 속눈썹에 먼지가 올라가도 보였다.


"앗! 보여요!"


별안간 에반젤린이 소리쳤다.

나는 깜짝 놀라 그 애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빛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그 뒤의 어둠속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뭔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나는 아까 에반젤린이 그런 것처럼 눈을 게슴츠레 뜨고 어둠 속을 보았다.


정말 뭔가 보였다. 뭔가... 시커멓고 구부정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시커멓고 구부정하고. 점점 다가오면서 그것의 형체는 분명해져갔다. 시커멓고 구부정하고 팔과 다리가 달린 그것이 마침내 빛 안으로 들어왔을 때 우리는 그것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작가의말

조금 있다가 뒷부분을 마무리 수정짓고 또 올리겠습니다 애매하게 자르게 되서 죄송하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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