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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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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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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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5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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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담는다는 건 닮는다는 거야(9)

DUMMY

"이렇게 갑자기 결정해도 되는 겁니까...?! 나중에 큰 일 나는 거 아니에요...?"


방을 떠나면서도 레샤는 내내 불안해보였다. 그 애가 말하는 결정이란 에반젤린을 놔두고 와도 되느냐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대답을 나는 단언할 수 없었다.

확실히, 확신할 수 없다는 거였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미리 알고 있다면 고민할 이유도 없었고 누구를 걱정 시킬 필요도 없었다. 난 그렇게 가학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에반젤린을 위험할 거라 생각되는 곳에 두고 온 것도 아니다.


반 랜드레이가 있지 않은가. 글리 녀석도 지금은 프리실라에게 잔뜩 화가 난 듯 보였다. 아무리 변덕스럽다 해도 용사 님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진 않을 것이다.


그 정도.


대강 그런 느낌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느낌뿐이라는 것이기도 했다. 무책임하다면 무책임한 거고 과감하다면 과감한 거고. 무엇이든 이름 붙이기 나름이라고 하지 않던가. 내가 비셔스 경의 청소부인지 정원사인지 그건 부르기 나름인 것이다.


"근데! 반이 지면 어떡하지?"


내 어깨를 툭 치더니 야우라가 말했다.


"한 번 이겼는데 두 번은 못 하겠어? 그리고 글리 캐스트도 있잖아. 괜찮겠지."


사실 안 그러면 큰 일이었다.


"에엥? 걔는 영 믿음이 안 가는데?"


겉으로 보기와 같이 글리 캐스트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것인지 야우라가 눈썹을 구겼다.


"그런 것보단."


난 레샤와 야우라의 주의를 다시 불러모았다.


"어디로 갈 건지 생각이나 좀 해봐."


우리가 뒤쫓아 온 공방의 반대문은 계단과 이어져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고 나면 칙칙했던 지하가 아니라 방만큼은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던 지상이 나왔다. 수 많은 방 중 하나로 우리는 나올 수 있었다.


내 생각일뿐이지만 아마 잠겨 있는 방 중 몇 개는 이런 식으로 숨겨진 통로로 이용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그 방을 나온 후부터, 어디로 가야할지 정하는 건 순전히 우리 몫이었다. 자주 만나지만 항상 선택하기 어려운 그 문제. 갈림길.


복도는 문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뻗은 갈림길과 같았다. 그 두 방향을 모두 번갈아가며 보던 야우라가 대뜸 왼쪽을 가리켰다.


"음! 이쪽!"


"아무데나 좀 찍지 말고!"


그 속내가 텅 빈 게 훤했기에 나는 야우라의 등짝을 때렸다. 짝 소리나게 맞은 게 꽤나 억울한지 야우라는 뒤돌아서서 침부터 튀겼다.


"그러는 넌! 뭐 좋은 생각있어?!"


박치기를 할까말까한 거리에서 그 애는 거듭 밀어붙였다.


"있어?!"


좋은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달리 입은 절로 꾹 다물어졌다. 좋은 생각이 있었다면 야우라가 헛소리를 하기 전에 먼저 제안했겠지.

그러니 나는 저 이글거리는 눈을 보며 할 말이 없었다.


"있냐고!"


하지만 없는 게 잘못도 아니었다.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제멋대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원래 숲 깊은 곳도 마다하지 않고 사는 얘네들 하고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헛걸음이란 하느냐 안 하느냐가 차이가 매우 심한 중대 사안이었다.


"아니 좋은 생각이고 자시고 간에..."


"없지?!"


그래 네 말대로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막 하지말고..."


"없잖아아!"


"그래. 없다, 없어! 없어!"


"거봐!"


기어코 내가 인정해버리자 야우라는 그제야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뒤이어 본인 생각엔 영원한 자기 편인 레샤의 어깨에 들러붙었다.


"그런 의미에서. 레샤아아! 너한텐 뭔가 좋은 생각이 있지? 그렇지?"


짚어야할 스태프가 없는 레샤는 평소보다도 더 힘겨운 표정으로 야우라의 무게를 지탱하고 버텼다.


눈동자를 굴려 제 정수리 위에 턱을 대고 있는 야우라를 노려보던 레샤는 별 수 없다 생각한 것인지 한숨을 푹 쉬고는 그대로 손가락을 들어 왼쪽을 가리켰다.


"...저쪽이요."


"어? 진짜 있어?"


저가 묻고도 딱히 기대하진 않고 있던 야우라는 기대던 몸을 벌떡 일으켜 되물었다.

놀란 것도 잠시 야우라는 레샤에게 제 뺨을 부비고 머리를 무진장 쓰다듬어 댔다.


"거봐, 우리 레샤는 레이크 같은 거랑은 다르다니까?"


"아잇, 좀... 야우라아...!"


레샤가 역정을 내자 야우라는 그제야 떨어져서는 실실, 용서를 구하는, 웃음을 흘렸다.

거치적대는 것이 사라지자 레샤는 옷매무새를 다시 정리하고선 말을 이어나갔다.


"정령들이 저쪽을 가리켜요. 아무래도 그 인형, 역리적인 기운이 다른 것들하고는 좀 남 다른가봐요."


남 다르다는 건 또 뭐람. 궁금하지만 특별히 묻지는 않았다. 그에 대한 설명을 지금 듣는다고 해도 온전히 이해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런거지 뭐.


"근데 스태프도 없이 어떻게 알았어?"


내가 묻자 레샤는 눈을 내리뜨더니 그윽하게 날 노려봤다.

어라 내가 뭔가 실수했나.


"레이크. 제가 본체라고요...? 스태프가 없어도 그 정돈 할 수 있어요? 저, 정령술삽니다...?"


"아,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미안해. 어쨌든 저쪽이라는 거잖아. 맞지?"


내가 레샤가 가리켰던 곳을 다시 가리키자 그 애는 마지못해 고깝던 기색을 지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습이나 소리를 보고 들은지 꽤 되었음에도 정령들은 계속 레샤를 통해 방향을 점지해주었다. 걔네들이 말한 역리의 기운이란 게 뭔지는 몰라도 냄새나 흔적과 비슷해 계속 추적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젠 앞으로의 일도 생각해봐야했다.


"야, 레샤. 걔네들한테 대신 싸워달라고는 못 하냐?"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대화도 할 수 있는거, 이왕이면 말만 하지말고 나와서 지켜주면 좋지 않냐 이거지."


"제대로된 소환이 아니면 금방 형태를 잃고 사라질 겁니다... 저번에도 말해줬잖아요...!"


"아... 그래."


그 때는 시간이 다 되서 돌아간거였고 이번엔 소환된 적도 없으니까 혹시나 싶었지.


쫑알쫑알대던 레샤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왜?"


거듭 생각해보니 더 짜증이 나서 한 소리 하려는 건 아닐테고 내가 묻자 레샤는 어딘가에 귀를 기울이듯 고개를 숙이곤 집중했다.


"모르겠데요."


"에엥?"


뜻밖의 대꾸에 야우라가 맹한 소리를 냈다.


"여기서부터 갑자기 헷갈린데요. 기척이 양쪽으로 갈라져서..."


레샤는 모퉁이를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말꼬리를 흐리는 걸 보니 영 좋지 않은 신호라는 건 확실했다.


"그게 어떻게 갈라져. 아르센이란 인형은 하나잖아."


"아... 그... 사실대로 말하자면... 쫓고 있던 게 딱히 그 인형이라고 했던 적도 없으니까..."


"그럼 그거 얘 아니야?"


그렇게 말한 건 야우라였다.

얘가 아니냐니. 누굴 말하는 것인가. 나랑 레샤는 엉뚱한 소릴하는 야우라를 보았다가 그 뻗어진 팔을 보았고 그 끝의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았다.

그리고 웬 대머리 얼굴과 눈을 마주쳤다.


"으아악!"


소리를 지른 건 오히려 대머리, 오그리가 먼저였다.

비명의 대가 레샤는 너무 놀란 나머지 끽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애꿎은 내 발만 밟았다.


사색이 되어 벌벌떨던 오그리는 갑자기 귀퉁이에서 튀어나왔다.


"으아, 으아, 으아악!"


괴성을 지르는 녀석의 손에는 무기가 쥐어져 있었다.


쇠막대기?

모르겠다.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오그리와 내 사이에 야우라가 끼어들었다. 야우라는 자루를 잡은 검을 뽑지도 않고 위로 받쳐 들어 오그리를 막아냈다.

캉!

아아 소리를 들어보니 쇠막대기네.


"야! 위험하게?!"


야우라가 소리쳤다.


"어? 어어? 어어어?!"


뒤이어 불안한 소리가 이어졌다. 무게가 위로 쏠려 밀려난 야우라의 몸이 점점 뒤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 애의 단점이라면 역시 가볍다는 거겠지.


"야야야야! 밀어밀어밀어!"


나는 뒤에서 야우라의 등을 받쳤다. 레샤 한 손 보태 밀자 야우라는 점점 중심을 회복했고 이어 오그리를 완전히 밀어냈다.


"으랴!"


야우라의 괴상한 기합에 오그리는 물러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나자빠졌다.


"흐으... 흐으... 흐아아...!"


그리고는 아예 도망쳐버렸다.


"이씨. 저거 뭐야?!"


야우라가 성을 내었다.

때리고 도망가려는 녀석은 기분 나쁘게 보기에 충분했다. 잠시간 오그리의 뒷모습을 보던 야우라는 뭔가 떠오른 듯 아! 하고 탄성을 뱉었다.


"그러고보니까 쟤 레샤 스태프 들고 있던 놈이잖아!"


뒤이어 그 애는 쫓아 달려나갈 기세로 급히 검을 어깨에 매고 끈을 조였다.


"너희는 계속 쫓아가? 스태프는 이 언니가 금방 찾아올테니까! 딱 믿고 있어!"


"아니! 안 매고 있잖아!"


내가 소리쳤다.


오그리는 스태프를 매고 있지 않았다. 무기로 쓴 것도 단순한 부지깽이 같은 거였다. 아무래도 시간을 끌기 위해 이곳에 남아 숨어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야우라는 이미 오그리를 쫓아가버리고 없었다.

일단 정하면 빠르기는 엄청 빠르다.


하기사 아까처럼 계속 방해하기를 시도할 수도 있으니 이 기회에 잡아 묶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는 있었다.


눈앞에 없으면 제일 불안한 애가 사라져버린 건 흠이지만 그래도 믿어달라고 했을 땐 믿어줘야 나중에 후환이 없겠지?


"가자. 가던 방향 맞지?"


넋놓고 있던 레샤를 툭 건드리자 그 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예? 아? 아, 네! 맞아요...! 이쪽이요."


따지고보면 이제 정령의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프리실라는 도망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르센을 깨운다고 했으니 그렇게 멀리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오그리가 근처에 있다는 것이 이 가까운 곳에 프리실라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그건 곧 사실이 되었다. 우리는 제법 그럴듯한 문 앞에 서게 되었다. 그럴듯하다는 건 비싸보인다는 거였다. 론데미르 저택에서 봤던 것보단 못하지만 응접실 같은 곳이나 아니면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내어줄만한 그런 방의 문이었다.

나는 문의 손잡이에 손을 뻗었다. 그런 내 팔을 레샤가 덥썩 붙잡았다.


"그냥 들어가요...?"


못내 불안한듯 레샤가 속닥였다.


"야우라라던가... 그... 반 랜드레이라는 사람 기다리면... 안 되요...?"


둘이서만 가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괜찮아. 이 안에 있는 건 프리실라 혼자일 거야."


오그리는 야우라가 쫓아갔고 텐더가 있다면 오그리처럼 밖에서 시간을 끌었겠지.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잽싸게 들어가서 스태프를 가지고 나온다.


"그러니까 완벽한 계획이지 않아?"


"예에...? 아닌 거 같은데..."


그러면서도 팔은 놔주었기에 나는 그대로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그 안에는 프리실라가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레이크!"


있는 줄 알았는데 웬 사내녀석이 얼굴을 들이밀고 소리쳤다.

얼마나 놀랐으면 난 그 정체를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얼른 걷어차버렸다.


"쿠엑...!"


녀석은 괴성을 지르며 뒤로 날아가 고꾸라졌다.


"깜짝 놀랐잖아, 토토 란드!"


"이 자식... 비겁하게 기습을 하다니...!"


"기습은 네 얼굴이 기습이었지!"


난 꾸역꾸역 되살아나고 있는 녀석을 향해 소리쳤다.


"내 이름은... 게일... 라스펠트라고...!"


"알게 뭐야! 그리고 너 글리 따라다니는 애 아니었냐?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거야!"


진짜 알 바 아닌 녀석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사람 놀래키고 있었다.


"나는 글리 양에게 프리실라 님의 말을 따르라는 것밖에 못 들었으니까 그렇지... 그러는 너야말로 글리 양이 어디갔는지 알아...? 못 본지 한 참 됐는데..."


심지어 이 자식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아... 레이크구나? 오그리는?"


더 안쪽의 프리실라가 말했다.

토토 녀석은 못마땅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프리실라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자리를 비켜섰다.


"도망가던데요?"


"아... 혹시 위협 같은 걸 했니? 오그리는... 마음이 약해서 곧잘 놀라거든."


"위협은 그쪽이 했죠."


"아... 아니야... 누나는 그저... 레이크가 잘못돼지 말라고... 아, 그건 그렇고."


프리실라는 갑자기 손을 맞잡듯 작게 박수쳤다.


"아까 짧게 인사는 해뒀지? 이왕이면 다시 정식으로 인사를 했으면 좋겠어서. 아르센이랑."


프리실라는 낮은 테이블 위에 눕혀져 있던 아르센을 세워 앉혔다.

밑에서 봤을 때와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생각했을 찰나 인형이 번쩍 눈을 떴다.

나는 움찔 놀라 반걸음 물러섰다.


"힉...!"


나만큼이나 놀란 레샤가 숨을 삼켰다.


"자, 아르센. 인사해야지?"


프리실라가 말하자 아르센은 부들부들 떠는 것 같은 움직임으로 혼자서 테이블 아래로 내려와 섰다.


놀랄 것 없었다.

놀랄 필요 없었다.

놀랄 깜냥이 되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본 것이다.

나는 살짝 자리를 옮겨 레샤를 가리듯 섰다. 그리고는 등 뒤에 속닥였다.


"...스태프 찾아봐."


아르센은 바른 걸음 뚜벅뚜벅 걸어와서는 내 앞에 섰다. 서너 걸음정도 될까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섰던 그 인형은 크게 한 걸음 걸어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반갑습니다. 아르센 핸드메인이라고 해요. 처음 뵙는 것이죠?"


또박또박하고 창창하게 말한 아르센은 이어서 내게 손을 휙 내밀었다. 그건 악수를 권하는 거였다.


길 가다 이런 꼬맹이가 예의바르게 악수를 하자고 한다면 해주었겠지만 지금은 이상하게도 선듯 손이 가지 않았다.

그 약간의 사이 시간에 무엇을 느낀 것인지 아르센은 제 손을 거두었다.


"하긴.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악수를 하자고 하면 조금 이상하겠죠."


아니 처음보는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사람도 아니지. 이 인형, 좀 더 명랑하게 말하는 것뿐이지 슬리체와 목소리가 똑같았다.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할 수 있겠느냐고.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아르센은 무시에 가까운 내 태도는 아랑곳 하지 않고 거듭 말을 걸어왔다.


"이상하군요. 제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니."


"아르센?"


프리실라가 부르자 녀석은 처음과 같이 약간 부들부들 떠는 것 같은 모양새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날 보았다.


"실례했네요. 누구나 말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건데. 지나치기 쉬운 사실이죠. 신경쓰지 마세요. 저는 괜찮으니까."


아르센은 미소를 짓듯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는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이야기.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요."


같은 것들 말이다.

그저 집중되어 있을 뿐 아무도 관심 없는 이야기를 아르센은 계속했다.


"어떤 물감을 섞어야 멋진 색이 만들어지는지도 알고 있죠."


아르센은 어딘가 산책이라도 가는 것처럼 설렁설렁 걸었다.


"찻잎은 참을성 있게 긴 시간 우려야 깊은 맛이 나요."


한 번은 손으로 자기 목 근처를 슥 훑어내기도 했다.


"멋들어진 타이는 좋아하지만 매는 법은 아직 미숙하죠. 특별한 날이 되어 타이를 매게 되면 누나에게 부탁해요."


아르센은 이번엔 좀 더 자연스럽게 미소짓는 표정을 만들어냈다.


"가끔은 누나에게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하기도 해요 그러면 누나는 제가 잠들 때까지 제 옆에서 책을 읽어줘요."


아르센은 그 모든 일들을 직접 겪었던 것처럼 읊어나갔다.


"그런데."


녀석이 우뚝 멈춰섰다.


"그런데 왜 그래야하죠?"


그러고선 여태까지의 이야기들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그런 기억나지도 않는 것들을 왜 지켜야하죠? 왜 추억해야하죠? 왜... 왜?"


"아... 아르센....?"


프리실라가 부르는데도 아르센은 저 할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제 이름은 아르센 핸드메인. 그런데 왜 아르센 핸드메인이죠? 저는 정말 아르센 핸드메인인가요? 아니면... 아르센 핸드메인이라고 이름 붙여진 무언가인가요?"


거기까지 말한 아르센은 갑자기 프리실라를 돌아보았다.


"대답해주세요. 프리실라 핸드메인. 당신은 제 누나잖아요."


"아..."


프리실라는 숨이 잔뜩 들어간 탄식을 흘렸다. 아르센이 어떻게, 왜 저런 말을 하는 건지 본인도 모르는 듯 했다.


"너무 일찍 깨웠나? 아니면... 촉매로 썼던 스태프가 문제인가? 아니면...? 아."


무심결에 중얼거리던 프리실라가 제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아르센을 향해 푸근히 미소지었다.


"너무 걱정하지마. 누나가 고쳐줄게. 그러면 훨씬 나아질 거야."


아르센도 프리실라를 향해 똑같이 웃었다. 진짜 남매라고 해도 믿을 판이었다.


"아뇨. 누구도 아르센 핸드메인을 다치게 할 순 없어요. 그게 설령, 누나라고 하더라도."


다만 진짜 남매는 이런 대화를 하지 않겠지.


작가의말

날씨가 많이 더워졌네요 저는 잠깐씩 에어컨을 틀기도 해요 컴퓨터 앞은 특히 뜨끈뜨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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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34. 헛것이야(1) +2 18.08.30 194 7 15쪽
181 33. 헛것이 아니야(5) 18.08.28 202 8 20쪽
180 33. 헛것이 아니야(4) 18.08.27 145 9 13쪽
179 33. 헛것이 아니야(3) +1 18.08.21 180 7 17쪽
178 33. 헛것이 아니야(2) +1 18.08.18 194 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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