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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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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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1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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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 17막. 어떤 음모.

DUMMY

항상 수도에서 머물며 학자들과의 인맥을 쌓던 에드리안이 그라니우스로 불려간 것은 며칠 전의 일이었다. 이제는 슬슬 그라니우스에서 실무 또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아버지의 뜻이었고, 그것은 에드리안 또한 동의했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이 모두 갑작스럽게 이루어져서 에드리안은 자신의 친구들-물론, 에드리안이 마음을 터놓는 친구라곤 셋뿐이었지만.-은 물론 누이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채 그라니우스로 내려오게 되었다.


누이는 이미 정보통을 통해 알고 있을 테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 사실을 모를 테니, 좀 서운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고, 에드리안은 생각했다. 그래서 에드리안은 나름대로 그들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그라니우스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을 몇 개 구하였다. 모쪼록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사실 제인이나 클랜디스는 몰라도 엘루이즈는 면전에서 불평을 할 것이 뻔했으므로 그 누구보다도 엘루이즈의 선물을 고르는데 가장 신경을 썼다. 제인이야 이상하게 뭘 받든 좋아해줬고, 클랜디스도 마찬가지였다.


“도련님, 여기가 그라니우스의 경계입니다. 이렇게 오신 적은 처음이시죠?”


그를 따르던 기사의 말에 에드리안은 자신의 말을 멈춰 세운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벌써 가을이 되었다. 그것을 알리기라도 하는지 이제 곧 그들이 들어갈 숲은 이미 갈색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고, 그라니우스로 들어가는 길목에 펼쳐진 갈대밭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에드리안은 제 붉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


“그러네요. 수도로 올 때는 아버지께서 마차를 타고 가라 하셨는데. 이렇게 말을 타고 오니까 영 다르네요. 저 숲을 건너면 어디죠?”


“블라레트 령입니다. 요즈음 활기를 되찾고 있으니 아마 환대를 받을 겁니다. 워낙 난리지 않습니까? 선왕 폐하의 아드님이 돌아오셨다는 소문 때문에 말입니다. 그 분이 돌아오시면, 블라레트에게 틀림없이 관심을 표해주실 것이라 믿더군요.”


“그런가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기사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에드리안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기사가 그를 툭툭 치거나 눈치를 주었고, 그것을 알아챈 기사는 괜히 멋쩍은 듯 고개를 숙인다. 그에 에드리안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궁금할 만하죠. 선왕 폐하의 총애를 받으신 아버지라지만, 마찬가지로 현왕 폐하의 총애 또한 받으신지라. 다들 궁금해 하는 모양이더라고요.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라니우스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언제나 그랬듯이.”


“하, 하긴. 왕가가 무너진다 한들 그라니우스는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요?”


“예.”


에드리안이 웃으며 말하자 나머지 기사들도 안도한다는 듯 미소를 띠었다. 그래, 다들 불안한 것이겠지. 그랬기에 그라니우스로 에드리안이 돌아왔을 때 그를 반기는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 모르게 어수선했다. 현왕에게서 쫓겨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 때문에 말이다.


사람들이 불안해지면 별 의미 없는 행동에도 괜히 의미를 부여하고, 그래서 더욱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에드리안의 행동 또한 작위를 물려받기 위한 포석이었고, 다른 때라면 당연히 그렇구나, 라고 받아들여졌을 행동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공작이 그라니우스를 벗어나는 일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실제로 그는 한 해에 두 어 번 정도만 수도를 방문할 뿐이었다.- 지금은 공작이 수도를 가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에드리안이 말했듯, 그라니우스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모든 것을 다 계산해두었으니까.


현왕이 퇴위하자마자 그 또한 작위를 에드리안에게 물려줄 예정이라고 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 정도 했으면 현왕에 대한 의리도 지킨 셈이었고, 선왕에게 진 빚도 갚은 셈이라고 했지만, 이미 그는 많이 지쳐있었고, 그랬기에 이젠 좀 쉬고 싶어 하고 있었다. 적어도 에드리안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에드리안은 그 뜻을 따를 생각이었다. 공작이 아니었을 적 그의 아버지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적어도 공작의 자리가 그의 아버지를 좀먹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니까. 아버지를 위해서도, 누이를 위해서도 그게 가장 행복한 일이겠지. 설령 자신이 힘들어지더라도.


“도련님.”


그를 보필하던 기사의 부름에 에드리안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기사가 말했다.


“숲길은 좁아서 대형을 잠깐 바꿀 겁니다. 혹시나 불안해 하실까봐...”


그 말에 에드리안은 조금씩 대형을 바꾸는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들어갈 숲은 유독 나무가 우거진 곳인지라 여러 사람들이 일렬로 가기에는 어려웠고, 그랬기에 대형을 바꾸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렇게 대형을 바꾸면 자연스레 에드리안이 조금 더 많이 노출되는 형태가 되었고, 그것 때문에 에드리안이 불안해 할까봐 미리 말하는 것이다. 에드리안은 배려가 고맙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불안해하지 않아요. 그라니언의 깃발을 든 기수가 가장 앞에 서 있는데 감히 누가 덤벼들려고요.”


그에 기사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차기 공작을 호위하는 기사들의 수는 생각보다 적었는데 그것은 에드리안이 말한 대로 ‘그라니언의 깃발을 든 기수가 선 무리들에게는 그 누구도 감히 덤비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래라면 이것보다 배는 많았을 호위병들이 점차 줄어들어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방심이었고, 그 방심의 대가를 오늘 치르게 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 * *






“이 책, 읽어봤어요?”


한창 차를 마시면서 책을 읽고 있던 샤를리즈에게 란이 물었다. 그에 샤를리즈는 그제야 책에서 시선을 떼고 그를 바라본다. 연회 이후로 그들은 자주 이렇게 만나서 함께 책을 보곤 했다. 물론 각자 다른 책을 말이다.


책을 읽었기에 어색한 침묵은 덜 수 있었고,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색함은 사라졌기에 샤를리즈도 편했다. 그리고 란의 말에 의하면 요즈음 너무 바빠서 이렇게라도 일부로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편하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샤를리즈는 어차피 란과 계속 만나야 한다면 이렇게 만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항상 비슷하지만, 감정이 더 나아가지는 않는 그런 만남이라면 말이다. 샤를리즈는 란이 건넨 책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꽤 오래 전에 읽었지만, 기억나요.”


란에 건넨 책은 아주 오래 전에 출판되었고, 책을 읽는 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책이기도 했다. 샤를리즈는 그 책을 딱 한 번만 읽고 다시는 읽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그 줄거리는 기억이 났다.


왜냐하면 그 줄거리는 이상하게도 샤를리즈와 에드리안의 관계를 묘사한 것처럼 비슷했으니까. 샤를리즈가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을 뒤집어 놓으며 말했다.


“가난한 평민인 잭과 그 누이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자신처럼 가난하게 살지 않도록 그 누이를 부잣집에 시집보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잭. 뭐, 이 정도로 간추릴 수 있겠죠.”


“어떻게 생각해요?”


“음?”


“잭 말이에요.”


그에 샤를리즈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고 자시고도 없었다. 괜히 자신의 치부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킨 것처럼 샤를리즈는 그 책을 읽자마자 불쾌해졌고, 더 이상 그 책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란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어렸을 때 읽었을 때는 잭이 굉장히 대단하게 느껴졌거든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한다는 거,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래서 나는 잭이 굉장히 제 누이를 사랑했다고 생각했어요. 사랑하지 않으면 희생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최근에 다시 한 번 읽었는데 생각이 달라졌어요.”


“어떻게요?”


“잭이 순수하게만은 희생하지 않았다는 느낌이랄까?”


그 말에 샤를리즈는 눈을 깜빡이다가 제대로 각을 잡고 앉는다. 그리고는 묻는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책에서 나온 잭은 평범하고, 가난하고, 글도 모르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성공하기 힘들잖아요. 반면, 그의 누이는 가난하지만 아름다웠고, 상냥했고, 재주도 많았죠. 상대적으로 그의 누이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던 거예요. 그래서 잭은 제 누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한 것 같은 느낌이라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니, 어렸을 때 생각했던 순수한 희생은 아니라고 생각되더군요.”


이상하게도 그 말이 자신을 겨냥한 것마냥 느껴져 샤를리즈의 귀가 달아올랐고, 그것을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알아챈 샤를리즈는 자신의 붉은 머리칼을 귀 위로 내렸다. 그럼에도 가라앉지 않는, 치부를 들킨 듯한 그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샤를리즈가 조금 까칠하게 말했다.


“어쩌면 순수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탓할 이유는 없어요.”


“아, 탓하고자 하는 건 아닌데요.”


갑자기 샤를리즈가 까칠해진 연유를 알 리 없는 란이 방어적으로 대답한다. 그에 샤를리즈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었다. 여기서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시간 낭비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물론, 그런 과거, 이야기할 생각도 없었고, 해서도 안 되었지만 말이다.


“그럼요? 갑자기 이 책을 들고 온 이유가 뭐에요? 보아하니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아...”


“뭔데요?”


“눈치가 너무 빠른 것도 문제라니까.”


란이 기운 빠진다는 듯 힘없이 웃는다.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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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여러 시선. +8 14.03.09 1,008 3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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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제 16막. 왕을 위한 촌극. +4 14.01.11 898 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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