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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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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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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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01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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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DUMMY

에단의 어색한 대답에 에드리안은 클랜디스를 더 변호해야할까, 생각하다가 이내 관둔다. 어차피 친하지 않은 이들이 보는 클랜디스는 그러했으니까. 함께 자주 대화를 나누다보면 클랜디스는 어딘가가 결핍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애의 어머니가 그 애를 낳자마자 죽었고, 아버지라고 하는 로즈퍼드 자작은 아들이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의 저택에 있는 방에서 나오지를 않는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가 아는 귀족들 가운데 로즈퍼드 자작의 얼굴을 아는 이는 없었고, 있다 한들 20년 전의 얼굴만을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서류상으로 에드리안의 친모이자 클랜디스의 친척인 그 여자는 돈을 흥청망청 쓰기 바빠 그라니언에서 쥐어준 돈을 벌써 다 썼다고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잘 자라주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럼에도 클랜디스는 꽤 잘 자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적어도 에드리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클랜디스의 말을 빌리자면, 그에게는 의지가 되는 친척 노인이 있다고 했다. 그는 그라니언 공작만큼이나 뛰어난 학식을 가지고 있었고, 매우 다재다능하고, 언변이 훌륭했다고 했다.


클랜디스는 그 노인에 대해서 오래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가끔씩 흘리듯 그 말을 할 때면 정말로 존경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드리안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많은 안 좋은 여건 속에서 클랜디스를 정상적으로 키워낸 것은 그였으니까. 그 이름이 뭐라고 했던가? 아마...


“샤를리즈 님이 온 모양이군요.”


“네?”


에단의 말에 에드리안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에단이 창밖을 엄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마차요. 샤를리즈 님의 마차가 돌아왔습니다. 곧 이리로 오겠군요.”


그 말에 에드리안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에단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샤를리즈 님이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두 분, 아주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요.”


“그런가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런 것도 같네요. 이왕이면 좋은 일로 봤으면 좋을 텐데...”


“뭐, 둘 사이에 좋은 일로 볼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아, 빈정거린 건 아닙니다. 다만, 이제 앞으로 좋은 일로 굳이 만날 일이라고 해봐야 샤를리즈 님이 결혼을 한다든가 아니면 에드리안 군이 약혼을 한다든가 뭐, 그런 일 뿐이겠죠.”


“은근슬쩍 에단 씨는 빼시네요.”


에드리안의 뼈 있는 말에 에단은 저도 모르게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전 독신주의자입니다.”


“그러시겠죠.”


뭘 새삼 말하냐는 듯, 에드리안이 말하자 에단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에드리안을 보았다.


“뭡니까, 그 말투는?”


“그냥 한 말이에요.”


에드리안이 정말로 장난이었다는 듯 키득거리며 웃자 에단은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 에드리안의 머리를 꾹 눌렀다. 그에 에드리안은 겨우 웃음을 멈춘 채, 조금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저... 누님이랑 이야기할 때는 좀 비켜주시겠어요?”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저택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 딱 봐도 알 수 있을 테니.”


“네. 죄송해요. 나중에 누님이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다면, 제가 에단 씨에게 말할 게요. 뭐,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뭐, 그러시던가요. 그럼 이만 저는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곧 오실 거예요.”


수고하라는 듯 에단이 다시 한 번 에드리안의 머리를 헝큰 뒤, 샤를리즈의 방에서 나갔다. 홀로 남은 에드리안은 헝클어진 제 머리칼을 다듬으면서 생각했다.


샤를리즈가 과연 공작의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대답을 모를 리 없었다. 에드리안이 어리고, 아직 세상의 때가 많이 묻지 않았다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멍청하지는 않았다. 샤를리즈가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에드리안의 입지가 얼마나 불리할지 모를 에드리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리안은 샤를리즈가 그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했다. 자신의 입지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까. 에드리안은 세상의 그 누구보다 샤를리즈가 감내해왔던 희생을 잘 알았다. 그리고 그 희생을 단 한 번도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언젠가는 누이에게 갚아야 할, 거대한 빚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면 했었지 말이다.


그리고 때로는 차라리 샤를리즈가 남자로, 자신이 여자로 태어났으면 더 행복했을지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샤를리즈는 자신보다도 더 권력을 위한 혹은 가문을 위한 투쟁에 잘 어울렸으니까. 한 마디로 샤를리즈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그라니언을 이끌, 공작이 가진 그러한 재능을 말이다.


한 남자의 아내로써의 재능보다는 한 무리를 이끌고, 그 무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을 그런 재능 말이다. 하지만 에드리안은 아니었다. 에드리안은 학구적인 면에 있어서는 틀림없이 재능이 있었지만,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남을 밟고, 짓이기는 데는 소질이 없었다.


어쩌면 환경 탓일 수도 있겠지. 샤를리즈는 항상 내몰리는 삶을 살아왔고, 그러한 그녀의 희생 덕분에 에드리안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제는 더 큰 온실이 그를 지켜줄 테니까. 그렇다면, 과연 그는 그의 가문에게 필요한 존재인가? 자신의 누이보다?


“에드리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샤를리즈의 모습에 에드리안은 희미하게 웃었다. 울었구나. 아무도 못 알아챌, 샤를리즈의 약간 충혈 된 눈과 조금 붉어진 콧방울을 보며, 에드리안은 생각했다.


그것은 정말로 알아차리기 힘든 표식이었다. 특히나 샤를리즈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생겨서 더욱이 말이다. 그리고 울었다는 것은 그 제안을 거절한 것이겠지. 에드리안은 고개를 까딱인 뒤 말했다.


“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상단에 들렀어요. 내일까지 아무 일도 없어서 오늘은 상단에서 자려고요. 위험한 건 알지만 그래도 옛날 생각이 나서. 요즘 힘든 일이 많거든요. 뭐, 들으셨겠지만...”


에드리안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하자 샤를리즈는 눈을 깜빡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암묵적으로 에드리안이 ‘오늘 저택에서 있었던 일은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셈이었고, 샤를리즈는 ‘그러마.’라고 대답한 셈이었다. 부모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세상에서 살아온 둘이었다. 이러한 행동적인 약속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샤를리즈는 눈썹을 까딱이며 말했다.


“그래, 너를 괴롭히는 이들이 있다는 소식은 들은 적 있어. 괜찮은 거지? 우리 모두 그런 상황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었잖아.”


“네. 제 편도 많으니까요.”


“그건 다행이네. 하긴,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 이들이라면 네 편이 되지 않고는 못 배길 거야. 넌 좋은 애니까. 내가 그렇게 키웠고 말이야.”


샤를리즈가 웃으며 말하자 에드리안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리고는 걸어가 소파에 걸터앉았다. 샤를리즈는 여전히 선 채로 말했다.


“네가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건 알아. 그리고 내가 도와줄 수 없다는 것도. 네가 이겨내야 할 몫이지. 그러니 앞으로 힘든 일이 있다 해서 이렇게 상단으로 오지 마. 그들은 네 뒤를 밟아서라도 네 약점을 찾아내려고 안달이 나 있을 테니.”


그에 에드리안은 고개를 들어 샤를리즈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달래주려고 온 것인데, 오히려 조언을 받고 있다. 에드리안은 힘없이 고개를 숙인다. 샤를리즈가 정말로 이기적이어서 차라리 지금 이 순간 자신을 탓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만 없었더라면 나도 인정받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뭐, 그래도 오늘 이렇게 왔으니까 어쩔 수 없죠.”


“그래.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는 거야. 너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저녁은 먹었니?”


“아뇨. 같이 먹으려고 여태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래? 다행이네. 나도 못 먹었거든. 사실 오늘은 저녁 안 먹으려고 했는데, 네가 와서 어쩔 수 없이 먹어야겠어. 혼자 식사하게 놔둘 수는 없으니. 에단도 갑자기 마담이 부른다고 해서 가버렸지 뭐야.”


그렇게 변명했구나, 에단은. 에드리안은 웃음을 터뜨린 뒤 말했다.


“그럼 오랜만에 둘이서 저녁 먹겠네요. 할 얘기가 엄청 많은데. 아, 아까 시릴 슈드레거가 여기 왔었어요. 재미있는 사람 같던데.”


“재미있다고? 말도 마. 얼마나 성질이 불같은지. 그래도 양심은 있나보네. 오늘까지 일을 끝내놓으라고 했는데 정말로 끝냈나봐.”


샤를리즈가 자신의 재킷을 벗으며 말을 이었다.


“성질이 더럽고 가끔씩 무능력한 걸 빼면, 그래도 괜찮은 녀석이야. 공부는 꽤 잘했나보더라고. 언젠가 네가 만나보면 좋을 것 같아. 너도 가끔씩은 괴짜들을 만나봐야 면역이 될 테니까. 난 면역이 없어서 그런지 그 자식만 보면 짜증이 나.”


“그런가요? 안 그래도 에단 씨가 그렇게 말하긴 하더라고요.”


“흥. 에단, 엄청 즐거워하면서 이야기했겠지. 생각해보면 에단도 내 성질을 건드리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단 말이야. 좋지 않은 징조야.”


“그럴 리가요.”


에드리안이 말도 안 된다며 웃자 샤를리즈는 빙긋 웃은 뒤 문 앞으로 걸어갔다.


“식사를 갖다 달라고 말하고 올게. 잠깐만 기다려.”


“네.”


샤를리즈는 문을 열었고, 나갔다. 그러나 반쯤 그녀의 몸이 나갔다가 다시 방 안으로 슬쩍 들어와 에드리안을 불렀다.


“에드리안.”


“네?”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에드리안이 뭐라 변명이라도 하려고 입을 벙긋거렸지만, 문은 이미 닫혔다. 에드리안은 큰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쯤 자신은 누이의 보호를 받지 않고, 누이를 지킬 수 있는 커다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작가의말

일이 생겨서 잠수를 탔습니다. 죄송합니다.

14막.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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