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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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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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3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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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 17막. 어떤 음모.

DUMMY

시릴은 주변을 살폈다. 한 번에는 결코 볼 수 없는 귀족들이 모인, 셰르먼드 후작가의 연회에 참석하게 된 것은 모두 프랜시스 드 블라레트 덕분이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블라레트 가문이 왜인지 모를 이유-라고는 하지만 다들 눈치는 채고 있었다.-로 조금씩 세력을 찾기 시작했고, 덕분에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이런 중앙의 고위 귀족의 저택에도 방문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런 프랜시스 드 블라레트 덕분에 시릴 또한 이곳에 온 것이고. 살다 살다 별 호강을 다해본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는 평소라면 꿈도 못 꿀 와인이 담긴 잔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올려 주변을 바라본다. 프랜시스야 여느 미혼 남성 귀족과 다를 것 없이 귀족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귀족 여성들 또한, 이제 신세를 펴게 된 고위 귀족 가문의 장남 프랜시스에게 관심이 없을 리 없었다. 게다가 꽤 봐줄만하게 생기기도 했고. 시릴은 혀를 끌끌 찬다. 저 프랜시스는 아스피트 가문의 막내딸과 비밀리에 약혼을 했다는 걸 바로 밝혀버리면 프랜시스의 반응이 어떻게 될지 조금은 궁금하다고, 시릴은 생각했다.


그러면 적어도 저 세상 모든 남자들보다 자신이 가장 잘났다는 표정은 일그러뜨릴 수 있을 텐데.


“들으셨어요? 오늘 여기에 클랜디스 드 로즈퍼드가 온다더군요.”


근처의 귀부인이 자신들의 무리와 하는 이야기가 갑자기 귀에 꽂힌다. 클랜디스 드 로즈퍼드. 비록 귀족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비주류 인물들이 모이는 곳에는 자주 가는 시릴이었는데, 그런 곳에서조차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클랜디스의 이름이었다.


아주 어마어마한 놈이라지. 그 놈이 만약 계집애였다면 아마 이 나라뿐만 아니라 주변 여러 나라를 후렸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평이었다. 그만큼 외모면 외모, 언변이면 언변, 그 무엇 하나 사람 홀리는데 빠지는 것이 없다고


“어머? 그럴 리가. 이 댁 부인과 그 자가 어떤 사이인지 모르는 이가 없는데. 적어도 이 댁 주인도 아실 텐데요?”


“그래도 요즈음 소문 때문에 불러들이신 거 아니겠어요? 새로운 줄 하나 만들어보겠다는 심산이겠지. 용한 점쟁이의 말에 의하면 지금 공작부인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아드님이라고 하던데. 그렇게 되면 꽤 복잡해지지 않겠어요?”


“하, 아무리 집안일에 관심이 없다는 그라니언 각하께서 설마하니 제 씨도 아닌 자식을 가문에 올릴까. 게다가 작은 그라니언이 있는데.”


“그래서 지금 그 작은 그라니언에게 해가 가해진 거 아니겠어요? 모르긴 몰라도 작은 그라니언이 어떻게 되고, 공작부인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이라고 한다면 꽤 복잡해지지. 설마하니 그 멍청한 프리실라 양이 작위를 이어받진 않을 테고.”


“데릴사위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요. 뭐, 프리실라 양도 그 가문의 적통이라는 전제 하이겠지만.”


“어머! 설마하니 프리실라 양 마저 다른 남자의 씨겠어요? 그 고고한 여자가. 항상 품위를 지키라고 강조하던 그 여자가?”


“뭐, 지금 뱃속에 있는 아기도 다른 씨라는데 프리실라양이라고 다를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러니 요즈음 프리실라 양도 조용히 있는 거 아닌가요? 어쩌면 정말인 거 아닌지 몰라. 본인은 알고 있을 지도 모르지.”


그 말에 여자들이 꺄르륵 웃으며 부채로 입을 일제히 가린다. 가관이구만. 시릴은 생각했다. 앞에서는 분명 설설 길 거면서 뒤에서는 이렇게 깐다 이건가? 하긴, 그런 걸로 욕을 할 수는 없으니 할 말은 없다.


다만, 그라니언 가문 이야기는 꽤 충격적이다. 인원수도 적은 가문이면서 화기애애하게나 지낼 것이지. 하긴, 샤를리즈 빈트뮐러의 성격을 보면, 그 가문 일원들도 얼마나 성격이 더러울지 예상이 갔으므로 화기애애한 것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겠지.


“그건 그렇고 늦네요, 클랜디스 씨.”


“어머? 그렇게 아니꼽게 말씀하시고는 클랜디스 씨를 기다리셨나 봐요?”


“뭐, 얼굴만은 봐줄만하니까.”


그러더니 또 꺄르륵거린다. 얼마나 대단한 얼굴이기에 저런 식인지. 이 쯤 되니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그 때였다. 꺄르륵거리던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일순 멈췄다. 그리고 좌중의 시선이 모두 한 곳으로 향한다.


시릴 또한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고, 순간 저도 모르게 눈을 깜빡인다. 한 남자가 이곳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평범한 옷차림-그러니까 조금 값싼 옷차림-을 한 채 연회장에 입장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저건 클랜디스 드 로즈퍼드였다. 저런 옷차림을 하고도 주변의 시선을 모조리 빼앗을 수 있다니. 물건은 물건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항상 헤실거린다는 소문과는 달리 표정이 약간, 굳어 있었다. 마치 예의상 온 것이라는 듯. 그는 곧장 셰르먼드 후작에게 가 무어라 말한 뒤 다른 귀족들-거기에는 프랜시스 드 블라레트도 포함되어 있었다.-에게 형식적으로 인사한 뒤 연회장을 다시 빠져나갔다.


그에 모두들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저 놀기 좋아하는 클랜디스가 그냥 연회장을 빠져나가다니? 시릴 또한 고개를 까딱이고는 이내 관심을 거두고 잔을 비운 뒤 프랜시스에게 걸어간다. 막 다른 고위 귀족들과 이야기가 끝난 프랜시스는 그제야 자신이 데려온 시릴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온다.


“미안하네. 나도 이런 연회는 거의 처음이나 다름이 없어서 흥분했어. 그래서 자네를 잊었군.”


“뭘, 그러실 수도 있지요. 거기다 언감생심 저 같은 신분이 이런 연회에 올 수나 있었겠습니까? 다 프랜시스 씨 덕분이지요.”


말의 내용에서부터 말투에서까지 나오는 빈정거림에 프랜시스는 껄끄럽게 웃은 뒤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아, 아까 클랜디스라는 청년을 보았나?”


“여기 사람들은 다들 그 청년에게 관심을 가지더군요. 뭐, 외모는 아주 뛰어나긴 하더라만 왜 그렇게 다들 그 청년을 주시하는 겐지. 거기다 하는 행실이 영락없는 난봉꾼 아닙니까? 제 어머니 나이와 비슷한 여자와 정분이 나서 애까지 임신시킨...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니까.”


“그, 그런 소리 하지 말게!”


프랜시스가 다급하게 외치자 시릴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는 ‘뭐냐?’는 듯 그를 바라본다. 그러자 프랜시스는 아랫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말한다.


“내 아버지께 들은 바로는 그 자의 어머니가... 그러니까....”


“뭡니까?‘


“아, 아닐세. 아직까지 확실시 된 것도 아닌 것을 말했다가 괜히 봉변당할 수는 없으니. 거기다 그 청년이 이렇게 주목받는 이유도 그 이유는 아니니까. 아무튼 아무리 난봉꾼이라 해도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은 아주 갸륵한 청년이더군. 곧장 그라니우스로 간다고 하는 걸 보니.”


“그거야 모를 일이지요. 솔직히 공작부인의 뱃속의 아이가 아들이라고 가정한다면, 에드리안 드 그라니언의 죽음으로 가장 수혜를 입을 자는 클랜디스 드 로즈퍼드 아닙니까?”


“그런 소리는 하지 말래도! 설령 그렇다 한들 누가 그 아기를 그라니언으로 인정하겠는가? 그라니언 공작조차도 인정하지 않은 그 아기를. 차라리 프리실라 양이 더 유력하지.”


프랜시스의 말에 시릴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샤를리즈 빈트뮐러를 선택하는 것이 낫지.’라고. 프리실라가 만일 란과 결혼을 하게 되어 왕비가 된다면, 그러면서 공작의 작위를 하사받게 된다면 사실상 그라니우스는 왕가에 복속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바보 같은 프리실라가 왕비로 있으면서 그라니우스를 잘 운영할 리는 없었고 결국 왕이자 자신의 남편인 란에게 조언을 얻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공작이 모를 리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카드는 결국 샤를리즈 빈트뮐러밖에 없는 셈이다. 물론 리스크는 엄청나다.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서자라는 이유로 멸시받는 에드리안이다. 그런데 여자인 샤를리즈라면?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로 무시 받고, 천대받을 것이다. 뭐, 그 정도로 기죽을 계집애는 아니지만. 아무튼 프리실라는 아니라는 뜻이다. 적어도 시릴은 그렇게 생각했다. 시릴은 괜히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 프랜시스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클랜디스에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무엇이 저 프랜시스 드 블라레트를 당황하게 만든 것인가? 한미한 가문의 출신이고, 모친은 그 출신조차 알 수 없는 난봉꾼 클랜디스에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이건 개인적으로 알아봐야겠다고, 시릴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는다.






* * *






“개인적으로 사람을 풀어 외할아버지의 동태를 좀 살펴봐.”


막 연회장에서 빠져나온 클랜디스가 자신의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며, 자신의 시종에게 말하자 시종은 고개를 끄덕인다. 클랜디스 보기 드물게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중얼거렸다.


“기사단 일로 수도를 비운 사이에 이 일이 벌어졌다는 건 아주 의심스럽지. 에드리안은 괜찮다고 했나?”


“예. 얼마 전에 깨어났다고 했습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들었으니 차차 괜찮아지시겠지요. 아무튼 나리께서 걱정하실 일은 아니신...”


“됐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내가 그라니우스에 가서 에드리안을 보고 오는 동안 넌 내 외할아버지를 잘 감시해둬야 할 거다.”


“예.”


시종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이자 클랜디스는 빠르게 셰르먼드 후작의 저택을 빠져나간다. 그 뒤를 따르던 시종이 갑자기 입을 연다.


“그런데 나리.”


그에 클랜디스가 멈춰선 뒤 시종을 바라보았다. 시종이 물었다.


“만일 이 사건에... 나리의 외조부님께서 연루되어 있다고 하신다면...”


“그 때는.”


클랜디스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외할아버지라 해도 가만히 둘 수는 없지. 내가 분명히 경고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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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여러 시선. +8 14.03.09 1,007 3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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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제 16막. 왕을 위한 촌극. +4 14.01.11 897 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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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제 15막. 협상 테이블. +5 14.01.01 1,037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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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제 15막. 협상 테이블. +5 13.12.27 829 24 11쪽
185 제 15막. 협상 테이블. +4 13.12.24 711 25 12쪽
184 제 15막. 협상 테이블. +5 13.12.16 765 2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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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제 15막. 협상 테이블. +5 13.12.08 974 2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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