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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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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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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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0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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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제 15막. 협상 테이블.

DUMMY

“그걸로 된 겁니까?”


란의 물음에 샤를리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뭘 그렇게 간단하게 받아 들이냐?’는 듯 그를 바라본다. 그에 란은 호기롭게 말했던 것과는 달리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어느새 잡힌 미간의 주름을 검지로 피며 말했다.


“보통은 넘는 걸 바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본래는 하나만 요구할 생각이었고, 차차 때를 봐가면서 다른 걸 요구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란 씨가 먼저 많은 걸 바랐잖아요. 아, 그리고 또 하나 더 있는데.”


“또요?”


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고, 샤를리즈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네. 당신이 우리 상단의 병사들을 원했잖아요. 그 때 지휘관은 우리 쪽 사람으로 하고 싶거든요.”


“그거야 당신 쪽에서 요구한다면 어쩔 수 없이 들어줘야 하는 사항이겠죠. 그런데 점찍어 둔 누군가가 있는가보군요.”


“그렇다기보다는 그런 중대한 문제에 믿음직스럽지 못하는 이가 갔다가 우리 상단의 이미지가 나빠지면 곤란하잖아요. 게다가 쓸데없는 욕심이 있는 자가 그 일을 맡았다가 우리 상단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행동을 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러니 이왕이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겠죠. 마침 적합한 사람이 있고요.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신해요.”


“그렇다면야.”


샤를리즈가 어디 빈 말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란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이제 거래는 성사되었다는 듯 샤를리즈가 일어서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쩌면 꽤 어려운 대가가 될 지도 몰라요. 내가 원했던 것들은.”


“그럴 테죠. 아마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르죠. 하지만 길게 보면 이 왕국에도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토를 달지 않은 겁니다. 당신이 원했던 것은 분명 당신의 상단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어줄 테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 나라 또한 부강하게 만들어줄 초석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게다가 애초에 가당치도 않은 걸 바란 것도 아니었으니.”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은 편해지네요. 그럼 조만간 에단을 통해 이것과 관련된 계약서를 넘겨드릴게요.”


그렇게 말한 뒤 샤를리즈와 란은 악수를 했다. 이로 인해 거래는 성사된 것이었다. 그들의 손이 떨어졌고, 란이 말했다.


“조만간 내 동료들에게 당신을 소개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럴 테죠. 아, 하지만 내 정체를 모두 말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상단의 대리인 정도면 좋을 것 같네요.”


“그럼 그들이 별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당신을 볼 지도 몰라요. 아무래도 모두 다 남자인데다가 상인인 당신을 곱게 봐줄 리 없죠.”


정말로 미안하다는 듯 말하는 란에게 샤를리즈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는 별 것도 아닌 것을 걱정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글쎄요. 아마 당신의 동료들 가운데에는 그라니언 공도 있을 텐데. 그 분 곁에 붙어 있죠, 뭐. 그리고 당신 생각과는 다르게 난 꽤 발이 넓답니다. 프랜시스 경도 거기 있을 테고, 시모어 경도 거기 있을 테죠. 거기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당신도 있으니 감히 당신의 동료들이 날 무시할 것 같진 않네요.”


사실 란이나 칼라일 시모어, 프랜시스 드 블라레트를 안다는 것보다는 그라니언 공작을 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될 테지만. 적어도 그가 핍박받는 그녀를 모른 척 할 리는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대놓고 아끼지는 않을 것이니 꽤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의 반응을 보는 것은 말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란의 말대로 다른 이들의 눈치를 좀 봐야겠지만, 어렸을 적 하인들에게 받은 핍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테지. 그런 상황이라면 익숙했다. 적어도 샤를리즈, 그 자신에게는 말이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용건은 끝난 것 같으니.”


샤를리즈가 짐을 챙기며 말하자 란은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모양인지 머뭇거린다. 그에 샤를리즈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는 용건이 뭐냐는 듯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에 란은 입을 비죽이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별 거 아닙니다. 시릴의 말을 들으니 당신 이름이 새삼 길구나, 싶어서요.”


“뭐...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여태까지 내 이름은 부르지도 않아 놓고서는. 아니, 네 음절밖에 되지 않는 이름이 뭐가 길다고 그러는 건지 이해가 안 되네요. 나와 10년은 넘게 같이 지낸 에단도 그런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요.”


“에단 씨도 그렇단 말이죠.”


“그래요. 이게 다 시릴 그 자식 때문에. 아무튼 가볼게요. 시릴에게 한 소리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가봐야겠네요. 나중에 모임이 언젠지 따로 연락 줘요.”


샤를리즈가 빠르게 재킷을 들고 말하자 란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 샤를리즈는 고개를 까딱인 뒤, 방에서 나와 복도를 걷는다. 시릴, 시릴, 시릴, 시릴! 왜 쓸데없는 말을 해서 쓸데없는 일로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 것인지.


차라리 그 녀석의 유산을 그냥 빼앗는 한이 있더라도 슈드레거를 망가뜨려 그 녀석과 볼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낫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요즈음 그는 그녀의 성질을 건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샤를리즈가 시릴에게 해코지를 직접적으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녀는 오늘 시릴에게 내줄 숙제를 최대한 많이 내주고, 해온 숙제에 대해 최대한 트집 잡으리라 다짐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걸음이 빨라져 빠르게 계단을 내려온 뒤 로비를 건너 입구로 간다.


문을 여니 아니나 다를까 에단이 자신의 검집을 매만지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저런 걸 보면 정말로 충실하다고, 샤를리즈는 생각했다. 샤를리즈가 나오자 에단은 언제나 그래왔듯 손을 내밀었고, 샤를리즈는 그 손에 자신의 짐을 맡긴다.


“많이 기다렸어?”


“별로요. 표정을 보아하니 거래는 잘 된 모양이군요.”


“그런 셈이지. 그런데 이게 득인지 실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그가 많은 걸 요구했거든. 마차에 타고 나서 얘기하자.”


그 말에 에단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먼저 걸어가 마차의 문을 연다. 샤를리즈가 마차에 오르고, 에단 또한 오른 뒤 마차의 문을 닫자 채찍소리가 들린다. 한바탕 마차가 덜커덩 하더니 이내 움직이기 시작했고, 샤를리즈는 지친다는 듯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란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었어. 벌써 이렇게 지치네.”


“그렇겠죠. 한 나라의 왕이 될 남자라고 하는데 대단하지 않으면 실망할 판 아닙니까?”


“그래도. 나와는 정말로 다른 사람이야. 어디까지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봐. 하긴, 한 나라를 이끌려면 그 정도 선구안은 있어야겠지? 그런 걸 보면 난 절대로 왕 같은 건 될 수 없을 거야. 뭐, 그 정도의 야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지만 에드리안은 그와 비슷한 길을 걸으니, 그 애가 꽤 힘들겠다 싶어. 새삼 말이야.”


샤를리즈가 걱정이 된다는 듯 턱을 괴고 말하자 에단은 고개를 끄덕인다.


“안 그래도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이긴 하더군요. 시모어 경의 저택에 들렀다가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지쳐 보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에드리안 군이 해내야 할 일이죠. 애초에 사람이 만든 일이고, 그라니언 공작도 그 길을 걷는 걸 보면 에드리안 군이라고 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지.”


에단의 조리 있는 말에 샤를리즈는 괴고 있던 턱을 손에서 뗀 뒤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에단을 빤히 바라본다. 짐을 다 정리하고 이제야 여유가 생긴 에단은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 샤를리즈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눈빛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뭡니까?”


“뭐가?”


“뭔가 시키려고 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것도 꽤 어려운.”


“어머? 귀신이네.”


“몇 년을 같이 지냈는데 그걸 모를까 봐요?”


아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에단이 말하자 샤를리즈는 눈동자를 굴린다. 그러다가 그녀의 눈동자가 에단의 검에 멈췄다.


“에단, 그 검 아주 오래 썼지?”


“뭐... 그렇죠.”


“그런데 그 검 별로 안 좋잖아. 아주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이제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바꾸면 좋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내 돈 들여서 바꿀 이유는 없어서요. 불편하지도 않고, 손에 익은데다가...”


“에단의 돈을 들일 이유는 없다는 거라... 그럼 내가 사주면 받을려나?”


샤를리즈가 빙긋 웃으며 묻자 에단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이내 멈춘다. 그리고는 경계를 하며 묻는다.


“뭡니까, 진짜?”


“아니, 뭐가?”


“생전 뭔가 사주려고 한 적도 없는 양반이 갑자기 실실 웃으면서 좋은 걸 사주겠다고 하니까 의심이 들죠. 그것도 계산은 칼 같은 양반이 말입니다.”


“와, 심하네. 오랜 동업자에게 그 정도 호의도 못 베풀까봐?”


“그런 양반이죠, 당신은.”


에단이 단호하게 말하자 샤를리즈는 졌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난 그런 양반이야.”


“그래, 무슨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겁니까?”


“그냥. 이제 에단이 상단의 일에서 손을 뗄 때가 된 것 같아서.”


샤를리즈가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으나, 에단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그런 에단의 반응은 샤를리즈에게도 의외였는지 뭐냐는 듯 에단을 바라본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고, 그들 사이에는 마차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에단은 샤를리즈를 노려보며 말했다.


“상단에서 쫓아낼 생각이십니까?”


그 어이없는 물음에 샤를리즈는 반사적으로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소리쳤다.


“뭐?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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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제 16막. 왕을 위한 촌극. +4 14.01.11 897 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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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제 15막. 협상 테이블. +5 13.12.08 974 26 9쪽
181 제 15막. 협상 테이블. +3 13.12.05 1,061 2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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