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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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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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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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02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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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제 17막. 어떤 음모.

DUMMY

* * *





지저귀는 새소리, 눈은 뜨지 않았지만 뺨을 타고 느껴지는 따스한 햇빛에 에드리안은 천천히 눈을 뜬다. 얼마나 또 잔 것일까? 확실히 자고 일어날 때마다 몸이 좋아지는 것은 느낀다.


다만, 문제는 눈을 이렇게 떴음에도 흐릿한 시야가 잡히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금 겁이 난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에드리안이다. 혹시나 눈이 안 좋아지면 어떡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절대로 이곳에 없을, 그토록 그리웠던 자신의 핏줄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드리안은 괜히 울컥했는지 콧등이 빨개진다. 그에 샤를리즈는 피식 웃고는 에드리안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묻는다.


“깼니?”


“네.”


“몸은 어때?”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무섭진 않았니? 주변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걸 본 건 처음이잖아. 거기다 죽을 뻔하기까지 했으니.”


“그랬죠. 하지만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그리고 누님도 보고.”


그에 샤를리즈는 한숨을 내쉰 뒤 에드리안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는 말한다.


“미안하게도 범인은 아직 잡지 못했어. 하지만 걱정 마. 그라니언도 빈트뮐러도 열심히 찾고 있으니.”


“걱정 안 해요. 누가 찾는 건데. 금방 찾겠죠. 다만, 그들이 불쌍하네요. 이 왕국에서 절대로 적으로 돌려선 안되는 두 이름을 건드린 셈이니.”


“그런 말이 나오는 걸 보니 살만은 한가보구나.”


샤를리즈가 짜증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모두 샤를리즈를 안심시키기 위한 허세임을 모를 리 없는 샤를리즈이다. 샤를리즈는 고개를 숙인 채 인상을 찌푸린다. 어떤 놈인지, 그리고 배후는 누구인지 반드시 밝혀내리라 다짐하며. 그 때 에드리안이 묻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나요?”


“뭐?”


“사고가 난지요. 죽은 기사들의 장례는 치러졌나요? 저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된 것인지라 저 또한 참석을 해야 할 텐데.”


“걱정하지 마. 각하께서 알아서 하시고, 각하께서 친히 참석하셨어. 네가 참석하는 것보다 훨씬 영광인 셈이지. 뭐, 죽은 자들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느냐마는. 벌써 열흘이 지났어. 내가 여기 도착한지 3일이 지나도록 넌 꼬박 잤었지. 야속하게도.”


“그랬나요? 그렇게 많이 잤어요? 어쩐지 몸이 꽤 좋아진 것 같더라니.”


“흥. 그래야지. 이 내가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약재들을 네게 쓰고 있는데. 당연히 그래야지.”


생색을 내듯 샤를리즈가 톡 쏘게 말하자 에드리안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 샤를리즈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한다.


“뭔가 듣고 싶은 얘기가 있니? 보아하니 말하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데.”


“글쎄요. 그러고 보니 누님이랑은 정말로 오랜만에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누님의 말대로 말할 힘조차 부족하네요. 그럼 누님이 어떻게 지냈는지 말해주세요. 에단 씨나 시릴 씨라든가 하는 그런 이야기들. 그리고 저하의 이야기도요.”


“에단이야 곧 올 테니 되었고. 시릴은... 여전히 내 성질을 긁고 다니지. 너도 알다시피 시릴은 나와 성질이 비슷한데다가 묘하게 정곡을 찔러서... 말해줬었던가? 시릴은 너와 내 관계를 알고 있다고. 사실 그래서 조금은 편하기도 해. 다른 이들과는 달리. 애증의 관계라고나 할까? 그 녀석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인정하긴 싫지만 그 녀석과 나는 닮은 점이 너무나 많아.”


무소불위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상단 총수의 자식으로 들어간 것도, 온갖 멸시를 당하면서도 기어이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도. 그리고 결국에는 란의 편에 선 것도. 모두 말이다. 살아온 환경도 살아갈 환경도 비슷하리라.


그래서인지 묘한 동지애도 있는 편이었고, 그래서 서로에게 조언도 할 수 있는 것이겠지. 결국 서로 짜증난다느니 싫다느니 말해도 결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점이 짜증나는 점이었지만. 샤를리즈는 웃으면서 말한다.


“그리고 저하, 그래 란. 그 사람과도 잘 지내고 있어. 그러고 보니 내가 네게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말해준 적이 없구나. 그 사람은 네가 봤던 태자 저하와 많이 닮았어. 그리고 성격도 조금 닮은 것 같아. 비록 내가 태자 저하의 성격을 알 길은 없지만, 그 사람은 다정다감하지. 하지만 때때로 자신의 신념이나 주장을 말할 때는 언제 다정하게 굴었냐는 듯 똑 부러지게 말해. 아는 것도 굉장히 많고, 사람도 잘 다루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출신 성분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가장 좋아. 나나 시릴 외에도 다른 서자들이나 평민들이 그를 따르고 있다고 들었어. 시릴의 말에 의하면, 목숨을 걸 수도 있다더라.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튼 그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겠지. 그래서 만일 그가 반정에 성공한다면, 그렇다면 네게도 소개를 해주고 싶어. 네게 좋은 벗이자 길잡이가 될 거야, 그 사람은.”


“그러니까 정말로 한 번 뵙고 싶네요. 저는 태자 저하와도 잘 맞았으니... 그 분과도 잘 맞겠죠?”


“세상에 어느 누가 너와 안 맞을 수 있겠니? 그런 이들이 있다면, 네 신분을 가지고 놀려대는 멍청이들이나 널 질투하는 바보들이겠지.”


샤를리즈의 말에 에드리안은 키득거리면서 웃다가 눈을 살짝 감는다. 조금씩 에드리안이 눈을 뜨는 주기가 길어지기 시작한다. 지금은 많이 자두는 편이 낫겠지. 샤를리즈는 서서히 잠이 드는 에드리안의 이마를 쓰다듬은 뒤 한숨을 내쉰다.


그러고 보면 여기에 도착하고, 에드리안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고집을 피운지 3일이 지났다. 그 동안 그녀 스스로도 잠 한 숨 제대로 못 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샤를리즈는 에드리안을 빤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제는 자신도 일을 하러 갈 시간이다. 상단의 일이야 다른 이들에게 맡겨두었지만, 에드리안에 관한 일은 맡겨둘 수 없으니... 그러고 보면 오랜만이다. 스스로가 직접 원한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


“나오시는 걸 보니, 에드리안 군은 일어났나봅니다.”


방문을 나서자 그 옆에 서 있던 에단이 책을 덮고 말을 건다. 샤를리즈는 곁눈질로 그가 읽고 있던 책을 바라본다. 병법서인가? 뭐, 시키는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 모양이다. 샤를리즈는 피식 웃은 뒤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방금 또 잠들었어. 15분 정도 깨어 있었나. 아무튼 큰 고비는 넘겼다니까 다행이지. 당신 안부를 묻더라고. 다음에 에드리안이 일어날 땐 당신도 함께 있는 편이 좋겠어.”


“저야 좋죠. 아무튼 다행입니다. 손님들이 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기력을 회복할 수 있을 테니.”


“손님들?”


샤를리즈가 걸음을 멈추고 되묻자 에단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아까 앨런 씨가 다녀갔습니다. 에드리안 군을 보기 위해 많은 귀족들이 내려오겠다고 나섰다더군요. 이 참에 줄이라도 대보겠다는 것이겠죠. 다행히 각하께서 단칼에 거절하고 있다지만 언제까지 그게 가능할지는 모를 일입니다. 게다가 에드리안 군과 친한 귀족들도 온다고 하는데... 그들은 각하께서도 거절하기 힘드시겠지요.”


“에드리안과 친한 귀족들이라고 하면?”


“스웨어 가문과 로즈퍼드 가문 말입니다. 특히 로즈퍼드 가문은 아시다시피 서류상으로는 에드리안 군의 외가가 아닙니까? 그래서 더 거절하기 애매한 게지요.”


“스웨어 가문에서야 엘루이즈, 그 도련님이 올 테고. 로즈퍼드 가문에서는... 클랜디스, 그 자가 오겠군.”


“예. 안 그래도 방금 파발이 도착했습니다. 그가 온다고요.”


“후. 나와 마주쳐서 좋을 인사는 아니야. 그가 올 때쯤이면 나는 남부 지부에 있어야겠군.”


“기억이나 하겠습니까? 가면무도회도 벌써 1년 전의 일 아닙니까?”


에단의 말에 샤를리즈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글쎄? 난봉꾼이라는데 설마 제가 본 여자를 기억하지 못할까? 게다가 나, 솔직히 껄끄러워. 그 자와 만나는 거. 엄청 불편해. 그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스웨어 가문의 도련님은 언제 오신다지? 그 사람은 만나보고 싶은데. 먼발치에서라도 말이야.”


“아마 제일 먼저 도착할 겁니다. 모레쯤? 그리고 그 댁 도련님만 오는 것이 아닐 걸요.”

“그럼? 설마하니 백작께서 직접 오신단 말이야?”


“아뇨. 그 댁 아가씨도 아마 같이 올 겁니다.”


그 말에 샤를리즈가 에단을 바라본 채 눈을 깜빡인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묻는다.


“그 댁 아가씨라면, 리제이나?”


“예.”


“용케도 허락을 받았나보네? 그 댁 아가씨... 가문 사람들이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잖아.”


“무언가 대가를 치른 것이겠지요. 실제로 요즈음에는 무슨 바람이 든 것인지 다른 여염집 여자들처럼 사교계에 관심을 가진다고 하더군요.”


“허어.”


샤를리즈가 턱을 매만지더니 눈썹을 까딱하곤 묻는다.


“설마하니 그 이유가 저 방에 계신 도련님은 아니겠지?”


“아닐까요?”


“풋. 귀여워라. 그 아가씨도 한 번 보고 싶네. 이래나 저래나 에드리안과 엮인 아가씨는 그 아가씨가 처음이니까. 그렇게 노력까지 한다면... 뭐, 빠지는 신붓감은 아니지. 가문도 탄탄하겠다, 지참금을 못 낼 가문도 아니니.”


“장사나 다름이 없군요.”


에단의 담백한 평에 샤를리즈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서로 마음이 있으니 나은 경우이지. 각하를 보면 알 수 있잖아?”


그에 에단은 왜 그 예를 생각하지 못했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샤를리즈는 어깨를 으쓱인 뒤 어느새 다다른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그 곳에는 뜻밖의 손님이 서 있었다. 샤를리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이다가 에단을 바라본다. 에단 또한 ‘왜 저 자가 여기 있는가?’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회색 눈을 껌뻑이고만 있다. 샤를리즈는 짜증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수도에서 내 일을 대신하고 있어야 할 당신이 왜 여기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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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제 16막. 왕을 위한 촌극. +4 14.01.11 897 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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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제 15막. 협상 테이블. +5 14.01.01 1,037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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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제 15막. 협상 테이블. +4 13.12.24 711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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