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종말(7) - 마지막화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마를 짚으며 일어나는데 다리가 휘청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려 애를 쓰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러다가 쿵, 머리에 뭐가 부닥쳤다.
"아야."
지하실에 이리저리 얽혀 있는 배관이었다.
머리에 난 혹을 문지르며 지하실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구석에서 경계하는 듯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래, 지하실로 뛰쳐 들어온 것은 고양이가 맞았다.
토끼 같은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대체 무슨 꿈을 꾼거야?
나는 목줄을 끌고 지하실을 나왔다.
여전히 태풍이 불고 있었지만 오전보다는 많이 잦아들어 있었다.
멀리서 은은하게 울리는 천둥소리를 들으며 방으로 돌아왔다.
어쩐지 몸이 피곤하여 침대에 누우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요즘은 일에 치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 그런 것인지 아무 것에도 흥미가 없었다.
애시당초 꿈이나 목표 같은 게 없었던 터라 그저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예전에는 게임이라도 열심히 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게임을 하는 것보다는 남이 하는 걸 보는 게 더 좋았다.
개인방송으로 게임을 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을 볼 때에면 괜히 부아가 치밀고 그랬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문득 휴대폰 동영상을 켜서 나를 찍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쓸데없는 말들을 지껄인 후, 노트북으로 옮겨 편집을 시작했다.
아이쿠야,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막상 영상을 보니 말하는 것도 어눌하고 표정도 어색하고 내용도 산만했다.
게다가 영상편집 프로그램을 다뤄본 적도 없어서 한참을 낑낑대야만 했다.
어느덧 날이 저물 때가 되어서 한가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구나.
노트북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지난 날을 천천히 되돌아 보았다.
어렸을 때 나의 꿈은 무엇이었나.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잊고 지내던 것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운동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고, 음악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고, 좋은 대학을 가고 싶어했던 적이 있었다.
좋은 회사, 능력있는 회사원 같은 것들이 뒤이어 떠올랐다.
순수하게 열정을 다해 게임을 하던 시절이 있었고, 미래를 걱정하며 현실적인 무언가를 찾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미래를 걱정하며 찾은 현실적 대안이 지금의 모습이었고, 스스로 그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잘하던 것과 좋아하던 것, 못하던 것과 싫어하던 것이 하나씩 구분이 되었다.
아직 서른 둘. 공공기관 계약직.
나는 외롭게 혼자 지내고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 만큼 자유로운 상황도 없을 터였다.
현실을 걱정하며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경력만 쌓고 있는 지금의 모습으로부터 10년, 20년 후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어딘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같은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을 내가 보였다.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을 따져보았다.
내 욕심에 차지 않았다.
이때 하나를 깨달았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적어도 회사원이 벌 수 있는 수준은 아득히 넘어선 정도의 돈을 벌고 싶었다.
억눌러왔던 욕망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일견 유치하고 사소했지만, 그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시선에서 조금 엇나가 있는 것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신경쓰이지 않았다.
나의 욕망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감정보다는 저걸 이루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솟아났다.
-그래, 세속적 욕망이 나쁜 것은 아니야. 그걸 나쁘게 이용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분출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지.
-아닌 척 하며 뒤에서 꿍꿍이를 꾸미고 수작질 하는 것이 진자 나쁜 거다.
-내 욕망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걸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겠어.
나는 내 안의 욕망을 차분히 그리고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미래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
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다소 엉뚱하게 시작되어 황당한 판타지 세계를 거쳐 산만하게 이어져왔다.
끝을 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100화라는 구체적 목표를 잡고 긴 이야기에 도전했고, 목표에 미치진 못했지만 결국 끝을 내고야 말았다.
초심자가 준비없이 써내려간 글은 정돈되지 못하여 지저분할 따름이지만, 지난 일년여 간의 여정은 나의 감정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고,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신나게 썼고, 도중에 부러지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나 끝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재밌는 글이 되지는 못했지만, 누군가 이 글을 끝까지 읽고 따라와주었다면, 무언가 인생의 깨달음 하나를 얻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룬대륙에서 소외받았지만 세상을 위해 나섰던 뱀파이어와 다크메이지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불태웠던 테스트처럼, 누구에게나 빛나는 부분이 있다고 믿어주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는 감정을 지나치게 억압하고, 다그치며, 점잖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회에서 자라온 우리는 감정 표현에 서툴어지고, 마음은 삐뚤어져 버렸다.
모든 감정과 욕망이 소중한 것인데, 그러한 것을 드러내면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거나 뒤에서 수근거린다.
우리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회의 시선을 배우고, 그것에 젖어들어간다.
나 역시 그랬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그러한 분위기에 압도되었고, 남에게 사회의 시선을 강요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이 글을 참고 끝까지 읽어낸 독자가 있다면, 부디 하나의 깨달음을 얻고 용감하게 나아가기를 바란다.
주인공이 마법사 아이작의 가르침을 뛰어넘어 기존의 관념을 깨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듯, 세상이 가르치는 모든 것엔 정답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깨부수려는 시도를 할 때, 아이작이 보였던 것처럼 부정적인 태도에 맞딱뜨리게 될 것이다.
그것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연한 것이고,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인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그것을 깨뜨렸을 때, 세상에 통쾌한 복수가 되는 셈이 아닌가.
혹은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이 틀린 것으로 결론지어지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틀렸을 때 빠르게 인정하는 유연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어도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보았던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이 쉽게 가질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재미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준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엔 지금보다 성장한 모습으로,
재밌는 소설을 쓰도록 노력할게요.
정말 감사 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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