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고 뺏기기
한스의 전차 부대가 영국군의 교전 참호를 점령한 이 때, 베테랑 영국 상병 골드스미스는 5분째 무인지대 포탄 구덩이 속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지금 수 많은 독일군의 군홧발이 영국군의 참호로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수의 영국 병사들이 무인지대에 쓰러져서 죽거나 신음하고 있었다. 현재 영국군의 참호를 지킬 수 있는 병사들은 별로 없을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가면 완전한 패배야!’
골드스미스는 슬그머니 고개를 빼들었다. A7V 전차 한 대, 그리고 독일군의 노획 마크 전차 5대가 영국군의 참호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독일 보병들이 전차를 따라서 교전 참호로 달려가고 있었고, 영국 병사들은 조만간 정리될 것이 분명했다.
‘안돼!!’
지금 무인지대에는 여기저기 포탄구덩이가 패여 있었다. 골드스미스는 전투 때마다 포탄 구덩이를 늘 유용하게 활용했다. 일단 근처에 있는 포탄 구덩이로 잽싸게 슬라이딩한 다음, 고개만 빼꼼 내밀고 다음에 점령할 포탄 구덩이를 정해 둔다. 그리고 적의 기관총 소리가 멎었을 때, 재빨리 다음 포탄 구덩이로 달려가는 식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골드스미스는 동료들과 수류탄을 동시에 던져서 적 기관총 사수를 해치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까 전에 독일군의 전차를 목격한 이후로 골드스미스는 두려워서 차마 발을 땔 수가 없었다. 포탄 구덩이 밖에서는 계속해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어! 보슈 놈들한테 이대로 질 수는 없어!!’
소총을 쥔 골드스미스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골드스미스는 손이 터져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세게 소총을 잡았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고 오 분 넘게 버티고 있던 포탄 구덩이에서 뛰쳐 나왔다.
“와아아아!!!!”
골드스미스는 미리 봐두었던 포탄 구덩이 안으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빼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지금 골드스미스를 노리는 적은 없었다. 독일군은 자신들의 전차가 영국군의 교전 참호를 점령하고 있자,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고 그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크라우트 자식들..’
가급적 백병전은 피해야 했다. 골드스미스는 눈치를 보다가 잽싸게 또 앞 쪽에 있는 포탄 구덩이로 달려가서 안으로 미끄러졌다.
철퍽!
골드스미스는 썩은 물이 고여 있는 포탄 구덩이에 자빠졌다.
“으윽!!”
“아악!!”
포탄 구덩이 안에는 겁에 질린 어린 영국 신병이 있었다. 그 멍청한 놈은 돌격 명령을 거부하고 포탄 구덩이 속에 숨어 있었던 것 이다. 만약 엄격한 장교가 이 신병을 봤다면 멱살을 잡고 끌어냈을 것이 분명했다. 그 얼뜨기 같은 새끼는 골드스미스가 자신에게 돌격 명령을 내릴까봐 벌벌 떨며 눈치를 보았다. 골드스미스는 한심한 눈으로 그 신병을 쳐다보고는, 구덩이에서 빠져 나와서 다음 구덩이로 달려 갔다.
이 때, 한스의 티거는 서서히 영국군의 지원 참호로 다가가고 있었다.
끼기기긱 끼기긱
참호 속에 있는 영국 병사들이 고개를 빼끔 내밀고는 외쳤다.
“적 전차야!!”
많은 영국 병사들이 지원 참호에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독일군에게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멍청한 실수를 저질렀다.
“아아악!!”
“살려줘!”
티거를 따라오던 독일 병사들은 도망가는 영국 병사들의 등을 겨냥하고 기관단총을 긁어댔다.
츠킁! 츠킁! 츠킁!
“으아악!”
아직 지원 참호를 지키고 있는 영국 병사들은 엉거주춤 허리를 숙이고, 소총을 허공을 향해 치켜 든 채로 벌벌 떨고 있었다. 한 영국 병사가 조준 사격을 위해 고개를 빼들었다. 그 순간, 독일 정예 병사 로버트가 기관단총을 긁어댔다.
츠킁! 츠킁!
참호 속에 있던 영국 병사들은 자신의 동료가 총알을 맞고, 참호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으아악!!”
하지만 영국 병사들은 도망가지 않고 착검된 소총을 높이 하늘로 쳐들고 있었다. 이게 생각보다 유용한 것이, 적군이 참호로 뛰어들 때 그 쪽을 향해 소총을 겨누기만 하면, 달려오던 적이 알아서 검에 꽂혀서 쉽게 헤치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크 전차가 끼기긱거리며 다가오는 소리와 독일 병사들의 고함 소리, 기관단총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끼기긱 끼기기긱
한 영국 병사의 눈에는, 전차 앞 부분이 참호 벽에 쌓아둔 모래주머니를 넘어 빼꼼히 넘어오는 것이 보였다.
“전차다! 전차가 건너오고 있어!”
만약 전차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모래주머니가 쓰러진다면, 참호 속에 쭈그려 있는 그 영국 병사는 그대로 압사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 영국 병사는 동료들을 밀치고 도망갔다.
“아아악!! 저리 비켜!!!”
타앙! 탕!
다른 영국 병사들은 조금 물러서서 티거의 관측창으로 소총을 쏘아댔다. 한 병사가 외쳤다.
“소용 없어! 도망가!”
결국 영국 병사들은 참호 반대편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때,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윗쪽을 가리켰다.
“화염방사기야!!”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있던 칼로스가 화염방사기를 참호 안 쪽으로 발사했다. 영국 병사들은 자신을 향해서 엄청난 화염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
“아악!! 아아악!!!”
한스의 티거가 지원 참호를 건너는 동안, 그렇게 칼로스는 화염방사기로 참호 속에 있는 적 병사 9명을 한 번에 화염방사기로 쓸어 버렸다. 몸부림치는 영국 병사들은 조만간 시커멓게 그슬린 시체가 될 것이 분명했다.
화르르륵
칼로스는 독일인답게 매우 꼼꼼하게 영국군 참호를 정리했다. 지그재그형 참호에서 화염이 닿지 않아 살아남은 영국군이 있는지도 위에서 자세히 살펴보고, 화염이 닿지 않은 쪽으로 가서도 깨끗이 정리를 해 주었다. 그렇게 칼로스가 참호 사각 지대를 살피고 있을 때, 골드스미스가 한스의 티거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루이스가 이 모습을 관측창에서 보고 외쳤다.
“영국 병사가 수류탄을 들고 오고 있습니다!”
한스도 잽싸게 해치를 잡았다. 그런데, 반대쪽에서 거세게 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한스가 외쳤다.
“놈이 해치를 열려고 하고 있다!”
골드스미스는 티거 위에 올라타서 해치를 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젠장! 빌어먹을!!”
근처에서는 독일 병사들과 영국 병사들은 치열한 백병전을 펼치고 있었다. 뒤늦게 참호 속으로 들어온 독일 병사들과 영국 병사들은 서로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패고, 철모를 서로에게 집어 던지고 이리 저리 섞이고 뒤에서 밀고 난리도 아니었다. 어떤 영국 병사는 참호 안에서 빠져나와 용감하게도 칼로스의 다리를 잡아당겼다.
한스는 온 힘들 다해서 해치를 당겼다.
“시발!!”
하지만 골드스미스는 부대에서도 팔씨름 1등을 할 정도로 팔 힘이 좋았다. 벌써부터 해치 사이로 조금씩 빈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돼!!!”
루이스가 이 모습을 보고 돕겠다며 달려들었다.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루이스는 멍청하게도 오일에 미끄러져서 자빠졌다.
“아아악!!”
한스도 이걸 보고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해치를 놓아 버렸다. 골드스미스도 자기가 당기던 해치가 갑자기 활짝 열리자, 뒤로 발라당 자빠졌다.
퍼억!
“아이쿠! 아악!!”
골드스미스는 마크 전차 상부 장갑에 머리와 팔꿈치를 부딪친 상태로 신음했다. 마크 전차는 진동이 엄청났기 때문에 골드스미스가 전차 밑으로 미끄러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골드스미스는 자신의 이빨이랑 두개골까지 마크 전차의 엔진 진동을 따라 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 순간 칼로스는 자신의 발목을 붙잡은 영국 병사의 얼굴을 뒷발로 후드려 치고 벗어난 상태였다. 칼로스는 티거 위에 골드스미스가 올라와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골드스미스는 재빨리 밀즈 수류탄을 허리춤에서 꺼냈다. 그리고 핀을 뽑을 준비를 하며 외쳤다.
“크라우트 놈들! 모두 박살내 주겠어!”
그 순간, 해치 속에서 권총이 튀어나왔다.
타앙!
“아악!!”
권총의 총알이 골드스미스의 손을 관통했고, 핀이 뽑히지 않은 수류탄이 참호 속으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독일 정예병 로버트가 뒤늦게 마크 전차 위로 올라와서 골드스미스의 멱살을 붙잡고 잡아 당겨서 참호 속으로 끌어내린 다음 기관단총의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때려서 기절시켰다.
퍽!
한스는 후들거리며 다시 해치를 닫고는 외쳤다.
“전진! 앞으로 계속 전진한다!”
그 때, 헤이든이 외쳤다.
“젠장! 우측 궤도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빌어먹을!”
결국 한스의 티거는 지원 참호에서 멈춘 상태로, 나머지 전차들이 영국 군의 예비참호까지 점령해서 독일군은 대승리를 거두었다. 빌이 티거를 정비하고는 말했다.
“이거 궤도 교체해도 앞으로 오래 쓰긴 힘들 거야. 엔진이 거의 맛이 갔어.”
한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티거..’
티거만 상태가 안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 동안 한스 기갑 부대에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던 판터, 푸마도 더 이상 쓰기는 힘들 것 같았다. 빌이 말했다.
“여태까지 별탈 없었던 것이 기적이야.”
한스는 착잡한 마음으로 티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번에 영국 놈들의 전차를 4대나 노획했으니까.”
이번 전투에서 독일군은 마크 IV 전차 3대와 마크 V 전차 1대를 노획할 수 있었다. 한스는 마크 V 전차를 지휘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놈들은 도대체 어떤 획기적인 기어박스를 쓴 걸까?’
그런데 한스는 베르너 대위에게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마크 V 전차는 연구용으로 다른 곳으로 보내진다는 것 이었다. 한스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혹시..연구가 끝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베르너 대위가 말했다.
“아, 그거! 다른 부대로 보내진다고 하더군! 하지만 자네는 마크 IV 전차를 쓰면 되지 않나?”
베르너 대위는 이번 전투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한스는 참호 안에 떨어져 있는 곤봉을 주워서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며 베르너 대위의 대가리를 후려치는 상상을 했다.
‘으아아악!!!! 으아악!!!’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스는 화를 풀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이것은 베르너 대위의 탓은 아니었다. 마크 V 전차는 귀족 출신의 장교 전차장의 차지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한스에 비해서 전차전 경험도 없는 애송이일테지만, 한스는 물론이고 베르너 대위도 이 상황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망할 독일 같으니라고..프랑스도 영국도 좋은 성능의 전차를 만드는데 제대로 된 전차도 안 만들어서 남의 나라 전차나 노획하게 해? 이딴 좆 같은 독일 망하라고 해!’
한스는 자신의 철십자 훈장을 참호 구석에 던져버릴까도 생각했다.
‘시발!!’
- 작가의말
후원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삽화는 이전 에피소드에서 전복된 A7V 군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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