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기
호르스트가 고개를 들어올리자 새로 들어온 독일군 신병들이 포격으로 난장판이 된 참호를 정비하고 있었고, 여기저기 시체가 널려 있었다. 호르스트가 외쳤다.
“이봐! 거기!!”
야전삽으로 참호를 정비하던 신병 둘이 고개를 돌려보고, 흙 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는 호르스트를 보고 기겁을 했다.
“으아악!!!”
“아악!!!”
호르스트가 외쳤다.
“나 좀 구해줘!!”
하지만 호르스트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신병 둘은 얼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참이 딴짓 절대 하지 말고 빨리 참호를 복구하라고 했던 것 이다. 호르스트가 외쳤다.
“망할 새끼들아! 빨리 이 주변을 파라고!”
“네! 넵!”
호르스트의 말에 신병들은 삽으로 주변을 파기 시작했다. 호르스트는 르노 전차의 해치 위로 고개를 내밀고 담배를 피우며 탈출을 기다렸다.
“야 거 좀 빨리 빨리 파라고!”
한편 독일군은 영국군 마크 IV전차를 2대를 노획했고, 격파된 마크 전차들에서도 예비 궤도 7개를 구할 수 있었다. 요나스가 소리쳤다.
“이제 궤도 나가도 걱정 없겠어!”
독일군은 이번에 빼앗은 영국 참호의 후방 쪽에서 영국군이 물품 보급용으로 쓰던 마크 I 전차도 두 대 발견했다. 그 마크 I 전차는 보급용으로 써먹기 위해서 양 쪽에 포탑을 때어내어 양 측면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 상태였다. 마치 전차병들이 훈련용으로 처음 타보는 뼈만 있는 전차와도 비슷했다. 마크 I 전차를 차지하게 된 보급병들은 싱글벙글하며 이 전차들을 구경하였다.
“이게 우리 꺼라니!!”
“기분 째진다!”
“전차병 놈들은 유독가스 때문에 골치 아프다는데 우리는 구멍이 있어서 괜찮아!”
“이름 지어주는 것은 어때?”
보급병들은 두 마크 I 전차에 제각기 노새를 뜻하는 마울티어, 낙타를 뜻하는 카멜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고는 페인트로 철십자기를 그리고 이름까지 써주며 애지중지했다.
한스와 티거의 전차병들은 이 모습을 지켜 보았다.
“우리도 처음엔 저랬지..”
한편 독일군은 여기저기 무인지대에 널려 있는 포로들을 옮기고 치료해주었다. 군견은 아주 유능했다. 부상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짖으면 담가병들이 들것을 가져와서 부상병을 옮길 수 있었다. 의무병과 담가병들이 매우 부족한 상태였다. 한 의무병이 쉬고 있는 전차병들에게 외쳤다.
“이봐! 자네들 좀 도와줘!”
전차병들은 의무병의 부탁에 무인지대로 가서 들것으로 부상자들을 옮기는 것을 돕기로 하였다. 처참한 부상자들의 상태를 보고 거너가 기겁을 했다.
“으···으익..”
거너, 에밋, 헤이든 등등은 부상자가 불쌍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자 바그너가 들것을 가지고 가서 부상자를 조심스럽게 들 것 위에 옮기고는 외쳤다.
“이봐! 한 명만 와서 반대쪽 들어주라고!”
바그너의 말에 주저하던 헤이든이 가서 같이 부상자를 옮겨 주었다. 에밋과 거너도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다리 한 쪽이 날라간 한 부상병을 들것으로 옮겨 주기로 하였다. 에밋은 그 부상병의 다리 쪽을 안 보려고 노력하면서 겨우겨우 들것에 옮겼다. 부상병이 중얼거렸다.
“물···물 좀···”
거너가 수통으로 부상병의 입에 물을 따라 주었다. 부상병이 물을 겨우 마시고는 중얼거렸다.
“내 왼쪽 발가락이 왜 이렇게 가렵지?”
하지만 그 부상병은 왼쪽 다리가 없는 상태였다. 에밋과 거너가 서로를 쳐다보며 눈치만 보자 부상병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들어 아래를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내 다리!!다리가 없어!!찾아줘!!찾아달라고!!”
에밋과 거너는 들것을 들어올리고 부상병을 이동시켰다. 부상병이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내 다리! 다리를 찾아야 해!!”
에밋이 부상병에게 말했다.
“이봐 그래도 자네가 최악은 아니네! 머리가 없어진 친구, 창자가 없어진 친구도 많다고!”
거너도 말했다.
“오늘 자네는 영국군의 통조림을 먹을 수 있다고! 저기 저 쪽에 한 무더기 쌓여 있는 친구들은 이제 밥도 못 먹는다네! 어쩌면 고기 스프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말일세!”
그 말에 부상병은 더욱 더 비명을 질렀다.
“아악!!으아악!!!내 총을 줘!!”
에밋이 속으로 생각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전차 정비나 할걸!’
한편, 영국 병사 놀란은 치료를 받고 동료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 있었다. 독일 병사들이 영국 포로들에게 작은 순무 빵을 하나씩 던져 주었다. 놀란도 배가 고팠던 지라 순무 빵을 재빨리 입으로 물었다.
“우웩! 이게 무슨 맛이야!”
영국 포로 존이 킁킁거리며 순무 빵의 냄새를 맡아보고는 혀에 갖다 대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이건 빵이 아니라..톱밥인데?”
“우리가 소화시킬 수 있을까?
한편 독일 병사들은 그릇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마지막으로 혀로 핥아 먹으며 고기 스프를 즐겼다. 신나게 고기 스프를 즐기던 독일 병사들은 영국 포로들의 시선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무시하고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영국 포로 존이 작은 목소리로 쑥덕거렸다.
“크라우트 자식들..”
좀 나이가 많은 포로 스미스가 말했다.
“그래도 조만간 포로 교환을 할 텐데 그러면 살아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 아닌가? 자네들은 어려 보이는데 돌아가면 하고 싶은 일 없나?”
고기 스프에서 눈을 때지 못하는 놀란이 중얼거렸다.
“저는 영화를 만들 겁니다..”
“어떤 영화?”
“크라우트 놈들을 엿 먹이는 전쟁 영화요!”
그 때 순무 빵을 억지로 씹던 존이 주변을 살펴보다가 독일군이 치우는 시체 무더기를 보고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저 친구들보단 낫잖아.”
아직은 조금 싸늘한 3월 햇살이 갓 죽은 시체들을 무심하게 비춰 주고 있었다. 영국 포로들의 눈이 조금 흐려졌다.
한편, 동부 전선 출신 정예병들과 신병들은 같이 시체를 치우고 있었다. 로버트가 말했다.
“이 친구 똥은 푸지근하게 싸고 갔군!”
프란츠는 얼굴을 찌푸렸다.
‘으으···’
그렇게 병사들은 시체를 모두 한 곳에 쌓아둔 다음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캬아 술 맛 좋다!!”
“왠일로 멀쩡한 술을 보급했지?”
“조만간 공세가 있을 테니까.”
칼로스가 시체 무더기를 보면서 말했다.
“이 친구들도 술을 마시고 싶을 것 같은데?”
칼로스가 시체들에게 술을 조금 따라주었다. 프리츠는 이 모습에 경악을 했다.
‘뭐..뭐 하는 거지?’
칼로스는 영국군의 시체 무더기에도 술을 조금 따라주며 말했다.
“영국 친구들도 들라고!”
브랜틀리가 소리쳤다.
“니 새끼는 영국 놈들한테 술을 주냐?”
칼로스가 말했다.
“같은 노예끼리 술 좀 줄 수도 있지!”
“노예? 뭔 좆 같은 소리야?”
“우리는 독일의 노예, 이 친구들은 영국의 노예”
“그래도 저 새끼들은 나중에 책에 용맹하게 죽은 영웅으로 나오겠지! 우리는 인간쓰레기 크라우트로 나올 거야!”
“왜? 우리도 용감하게 싸웠잖아!”
“저 새끼들은 이기고 우리는 질 테니까!”
칼로스의 말에 브랜틀리가 수긍했다.
“그건 그렇지.”
로버트가 표정을 잔뜩 찌푸리더니 말했다.
“근데 역사책에 우리가 똥오줌 지린 것도 나올까?”
브랜틀리가 로버트의 머리를 퍽하고 치자, 로버트가 소리쳤다.
“왜 때려 십새끼야!”
브랜틀리가 말했다.
“병신아 똥오줌 지린게 책에 나오면 어떤 등신이 입대하겠냐?”
브랜틀리가 술을 한 모금 더 마시고는 한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친구 팔이 낑겼잖아!”
필립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걸어가서는 시체의 접힌 팔을 펴주었다.
“이제는 편안하지?”
술을 잔뜩 마신 로버트가 뭔가 불만이 있다는 표정으로 시체 무더기를 바라보았다. 필립이 로버트에게 소리쳤다.
“자넨 또 뭐가 불만이야?”
로버트가 말했다.
“묘비가 없잖아!”
필립은 자신의 담배를 한 개피 꺼내더니 시체 무더기 제일 위에 있는 입에 물려주었다.
“전우들 미안하네! 묘비는 무리야!”
술에 취한 정예병들은 다들 곯아 떨어졌다. 프란츠 만이 술 한 방울도 마시지 않은 채로 이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뭐..뭐야..’
독일군의 시체 무더기, 영국군의 시체 무더기가 두 개의 피라미드처럼 쌓여 있었고 한 독일군의 시체는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 프란츠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이게 죽음?’
프란츠는 김나지움에서 문학 수업을 가장 좋아했었다. 죽음에 관해서 묘사한 소설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리고 프란츠는 장례식에 가 본 적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프란츠 앞에 실존하는 이 시체무더기 앞에서 인간이 만들어 낸 그 모든 문명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한 병사가 지나가다가 독일 병사의 시체 입에 물려져 있는 담배를 보고는 실소를 터트렸다.
“뭐야 저거 어떤 새끼가 장난쳤냐?”
지나가던 몇 병사들은 시체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벌써부터 파리가 꼬이기 시작했다. 프란츠는 그 시체 무더기가 마치 포탄 구덩이에 하나씩 있는 똥 덩어리 같이 느껴졌다.
‘이러다 정신이 이상해지겠어!’
프란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 때, 저 쪽에서 또 새로운 신병들이 구호에 맞춰 걸어오고 있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프란츠는 괜히 귀찮아질까봐 눈치껏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 때, 부사관 한 명이 프란츠를 불러 세웠다.
“이봐! 자네!”
“넵! 프란츠 이병입니다!”
“이 신병들 교육 좀 시키게!”
‘젠장..’
프란츠는 신병들에게 참호 구조를 가르쳐주고 대피호로 데리고 갔다. 대피호에는 고참들이 바닥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한 고참이 신병들이 온 것을 보고 말했다.
“아 신병들이군! 집처럼 편히 있으라고!”
신병들은 고참들이 없는 구석으로 가서 겨우 쭈그리고 앉았다. 일주일 전에 들어왔던 신병 울리가 동료 보리스에게 투덜거렸다.
“젠장! 자리가 좁아지잖아!”
보리스가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멍청아! 똥 치우는거 이제 저 새끼들 시키면 되잖아!”
울리와 보리스는 번갈아 가면서 대피호에 똥 싸는 양동이를 비우고 오는 일을 맡고 있었던 것 이다. 보리스의 말에 울리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오늘 들어온 신병들은 지나오면서 시체 무더기를 본 터라 다들 잔뜩 쫄아 있었다. 울리가 속으로 생각했다.
‘병신 새끼들 밖에 없군. 부려먹기 쉽겠는데?’
그 때, 울리와 보리스의 동기 쿠르트가 심드렁하게 속삭였다.
“니들도 신병인데 가오 잡으려고?”
보리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첫 전투에서 안 뒤지면 베테랑이지..”
갑자기 울리, 보리스, 쿠르트는 같은 시기에 들어온 신병들 중에 절반이 죽은 것을 떠올리고는 침울해졌다.
‘뭐 내가 알 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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