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의 새 임무
이 때, 전차부대의 정비병 빌은 격파된 영국 마크 전차에 달려 있는 신호기를 때어내어 한스의 전차 부대에 설치하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한스가 외쳤다.
“좋았어! 프란츠! 앞으로 자네가 신호기를 조작하는 임무를 맡게나!”
프란츠는 속으로 생각했다.
‘신호기 조작 업무면 앞으로 위험한 전령 임무는 맡지 않아도 되는 건가?’
전투 도중에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전차에 가서 쪽지를 전달하는 것 보다는 훨씬 안전한 일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완전 꿀이잖아? 좋았어!’
프란츠는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충성심 넘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프란츠는 전차에 들어가서 신호기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한스가 두 시간에 걸쳐서 작업한 신호와 그신호의 의미가 적혀 있는 종이를 프란츠에게 건네 주면서 소리쳤다.
“앞으로 전진”
프란츠는 종이에 적혀 있는 대로 신호기를 조작했다. 한스가 다시 외쳤다.
“정지하고 적 공격!”
프란츠는 다시 신호기를 조작했다. 한스가 말했다.
“전투 중에는 신호를 빨리 조작해야 하니 이 표를 모두 암기하도록!”
“넵! 알겠습니다!”
프란츠는 표를 가만히 보다가 옆에 있는 빌에게 물었다.
“신호기의 색을 교체할 때는 어떤 것을 돌려야 합니까?”
“돌리는게 아니라 밖에서 직접 자네가 바꿔야 하는데?”
“네..넵??”
빌이 프란츠를 데리고 전차 밖으로 나가서 신호기 색을 바꾸는 것을 시범으로 보여 주었다.
“전차 안에서는 이걸 회전시키는 것 밖에 할 수 없네. 자네가 간간히 밖으로 나와서 이걸 바꿔줘야 하네!”
프란츠의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스가 말했다.
“조금 위험한 일이지만 정예 병사들이 자네를 확실히 지켜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프란츠의 얼굴이 새하얗게 되었다. 옆에서 구경하던 에밋이 말했다.
“근데 적군 보병들도 신호기부터 작살내지 않을까요? 동부전선 출신 정예병들이 실력이 좋지만 여럿이랑 동시에 전투할 수는 없는데... 뭐 그래도 프란츠도 운이 좋으면 살아남을 수도 악!”
바그너가 에밋의 머리를 치고는 한스에게 말했다.
“지금이야 임시로 이 신호기를 써야겠지만 중간에 전차병이 나가는 것은 너무 위험할 것 같습니다! 전차 내부에서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신호기가 있다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한스도 동의했다.
“빠른 시일 내로 전차 내부에서 조작 가능한 신호기를 만들어달라고 건의를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프란츠, 너무 걱정할 것 없네. 중요한 신호들은 초록색 빨간색 두 가지 색상만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내가 차트를 만들었네. 어지간하면 자네가 밖에 나가서 조작할 일은 없을 걸세!”
마침 그 날 병사들은 집에서 온 편지를 받을 수 있었다. 전차병들은 모두 둘러앉아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동부 전선 출신 정예병들은 전차병들로부터 10m 쯤 떨어진 곳에서 편지를 읽고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스도 뮐러씨에게서 온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지금은 무전기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네! 전차병들이 쓰다가 수명이 다 된 노획 마크 전차를 이용하고 있지. 전차들 간에 무전이 가능하다면 독일의 전차 부대가 규모는 작지만 전술적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
한스의 편지를 든 손이 부들거렸다.
‘수명이 다 된 노획 마크 전차??혹시??’
한스는 편지를 꺼낸 봉투 안에 두꺼운 종이가 추가로 들어있는 것을 느꼈다. 한스는 그것을 꺼내 보았다. 티거를 이용해서 무전기 실험을 하는 사진이었다.
‘티거!!!’
한스가 소리를 질렀다.
“좋았어!!”
한스는 계속해서 뮐러 씨의 편지를 읽었다.
[이 노획 전차를 이용해서 마크 전차의 방호력을 검증하는 실험을 해보자는 의견도 있었다네. 이 전차의 장갑이 포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하여 알아보자고 하더군···]
한스가 비명을 질렀다.
“나인!!!!(안돼!!!)”
모두가 한스를 쳐다보았다. 한스는 계속해서 편지를 읽었다.
[하지만 무전기 개발이 지금 훨씬 중요하지 않겠나? 그래서 운이 좋게도 이 멋진 전차가 박살 나지 않을 수 있었네! 그리고 내 사업은 무척이나 잘 되고 있네. 여성용 위생용품을 판매 중인데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이 제품을 무척이나 애용하고 있지! 그나저나 자네는 한 번도 가족 이야기는 하지 않던데 잘 지내고 있나? ]
한스는 그 다음 이야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스는 연구 중인 무전기를 달고 있는 티거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수 많은 총알 자국과 포탄 파편에 의한 자국들이 장갑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전차병들과 수 많은 전투를 함께 한 백전 노장의 흔적이었다. 한스는 사진을 어루만졌다.
‘이 총알 자국들이 모두 우리의 역사 아닌가!’
니클라스가 걱정하는 눈빛으로 한스에게 말했다.
“이보게. 자네 괜찮은가?”
한스가 전차병들에게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거 보게나! 티거가 살아있네!”
“재생공장으로 갈 줄 알았는데!”
전차병들도 다 같이 환호했다. 힘이 난 한스는 뮐러 씨에게 전차 내부에서 전부 조작이 가능한 신호기를 만들어 달라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바그너씨가 전차병들에게 자신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아내한테 월급을 모두 보내고 있는데 그걸로도 요새 근근이 먹고 산다고 하더군. 내 자식들이 걱정일세!”
요나스가 말했다.
“저도 제 어머니에게 돈을 모조리 보내는데 어머니 말로는 시장에 가도 먹지 못할 음식 밖에 없다고 합니다!”
니클라스가 말했다.
“이보게 한스! 자네 가족은 어떤가?”
한스는 니클라스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자..잘 지낸다고 하더군!”
한스는 그 때서야 전쟁에 와서 처음으로 어머니를 생각했다.
‘돈이라도 부쳐줄까..’
여태 한스는 딱히 월급을 쓸 곳도 없었기에 그대로 묵혀 두고 있었다.
‘돈만 보내주면 되겠지? 굳이 편지를 쓸 필요는..’
한스는 자신이 군에서 수 많은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서는 에밀라한테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에밀라는 한스가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전차 궤도로 시체들과 병사들을 짓이겨 죽였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 이었다. 그것을 에밀라가 알게 되면 이전과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주지 않을 것이라고 한스는 생각했다.
‘내가 하는 짓을 에밀라만은 몰라야 해..’
하지만 왠지 어머니라면 이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자신을 감싸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스는 뮐러 씨에게 쓰는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어머니한테 쓰는 것은 티거 안에 들어가서 해야지..’
“정비 좀 하고 오겠네!”
오스카 바르크만을 포함한 동부 전선 정예병들은 티거 근처에서 원 모양으로 둘러 앉아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한스가 말했다.
“들어가겠네!”
정예병들은 한스가 티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조금씩 비켜 주었다. 한스는 티거 안에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예병들은 한스가 내부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줄 알고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내 아내가 적군 뼈 한 조각만 소포로 보내달래!”
“뭐? 뼈?”
“그걸로 수프라도 끓여먹는데?”
“아니, 이 년이 동네 여자들 사이에서 자랑하고 싶다는군!”
한스는 동부전선 정예병들의 이 충격적인 대화에 멈칫했다.
‘아니, 남편한테 그런 것을 부탁한다고?’
정예병들은 한스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도 모르고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무슨 여자가 그렇게 잔인한 것을 좋아해?”
말이 없던 오스카 바르크만 하사가 입을 열었다.
“여자가 잔인하지 않다고? 나는 어릴 때부터 늘 죽도록 어머니한테 얻어 맞았다네.”
바르크만 하사의 말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내 애미는 날 그냥 두들겨 패는 것이 아니라 물통에 물을 받아놓고 내 머리를 거기다 쳐 박곤 했어. 그래도 그 년이 식사를 차려줄 때면 늘 기분이 좋았고 안심했지. 난 늘 어릴 때부터 그 빌어먹을 악마 같은 년에게 복종했던 거야.”
바르크만 하사가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벨기에에서 내 인생을 바꾼 일이 있었지?”
“벨기에에서 말입니까?”
“그래. 민간인을 죽였어. 애가 있던 년이었는데 그 때 나는 진정 내 자유를 찾았지.”
“자유라니요?”
“난 그 이전까지는 나를 두들겨 패던 애미년한테 늘 복종하고 월급을 보냈다네. 군대에서는 그 년을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는데도 그 썩을 년이 보내는 편지를 기다렸지. 하지만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그 악마 같은 년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 이후로는 월급을 안 보내셨습니까?”
오스카 바르크만 하사가 실소를 터트렸다.
“월급?월급이라고? 우하핫!!휴가 때 말이야..오랜만에 나의 어머니를 보러 갔다네.”
정예병들이 모두 귀를 기울였다.
“그..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바르크만 하사가 말했다.
“오래 전에 집을 나갔던 내 애비까지 마침 있더군. 운이 좋았지.”
바르크만 하사가 술을 한 모금 더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사냥감이 둘이었던 거야. 내 애미 애비한테 푹신한 방석을 들고 있으라고 했어. 몇 대 못 팼는데 죽어 버리면 안 되니까 말일세.”
바르크만 하사가 하늘을 보며 그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마치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은 자유를 느꼈다네. 그 날 이후 내가 보는 하늘은 예전과 같은 잿빛이 아니었지. 무한히 자유로운 창공으로 보였다네. 어릴 때는 늘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서 알 수 없었지.”
한 정예병이 물었다.
“그들은 죽었나요? 하사님이 두들겨 팼으면···”
“맘대로 생각해!”
동부 전선 정예병들은 계속해서 술을 마시더니 다들 고주망태가 되는 것 같았다. 티거 안에서 한스는 이마에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머니한테 쓰던 편지는 이미 땀으로 젖어 있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저 새끼랑 뭐가 다르지?’
한스는 전쟁이 끝난 후 집을 찾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예전처럼 아버지한테 맞지는 않을 것 이다. 하지만 한스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새끼를 죽이지 않을 수 있을까?’
한스는 오스카 바르크만의 얼굴을 떠올렸다. 약간 한스랑 닮은 듯한 외모였다. 한스는 쓰던 편지를 구겨 버리고 전차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스는 똥이 있는 포탄 구덩이 안에 그 편지를 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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