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중대, 오토바이를 받다
이번 전투로 독일군은 마크 V 전차 3대, 롤스로이스 장갑차 1대, 그 외 여러 야포들을 노획했다. 최근 전투에서 노획한 마크 V 전차들은 재생공장에서 독일군이 사용할 수 있는 포로 교체하기 위해 회수되었다. 대신에 다른 전투에서 노획해서 재생공장에서 이미 포가 교체된 마크 V 전차들을 한스의 전차 중대가 사용하기로 했다.
측면 장갑에 커다랗게 구멍이 뚫린 레오파드를 보며 빌이 말했다.
“엔진이나 주요 부품은 이상 없으니 장갑만 덧대면 문제 없을 걸세.”
한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장교들이 쓰는 방으로 돌아가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전과 :
- 전차 9대 격파 (Mk.V)
- 야포 7문 격파
- 보병 다수 사살
- 전차 3대 노획 (Mk.V)
- 장갑차 1대 노획
아군 장비 손실 :
- 마크 IV 전차 1대가 철갑탄에 측면 관통, 회수되어 정비 중대가 수리 예정
아군 인원 손실 :
- 전사 2명, 중상 1명, 경상 4명(부대 잔류)
‘왜 베르너 자식이 어지간한 부상으로는 부대 잔류 시켰는지 알 것 같군..’
보고서에는 부상병이 부대에 잔류했는지, 경상인지 중상인지 적어야 했다. 그러니 베르너 입장에서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왠만해선 병사들의 부상을 경상으로 분류하고 부대에 잔류 시키고 싶었을 것이 분명했다. 한스는 보고서 작성을 마치고 눈을 감았다 떴다.
그 때 프란츠가 급하게 한스를 찾아왔다.
“주..중대장님!!”
십분 전, 전차병들은 넓은 대피호에서 노획한 술과 마커너키 통조림을 먹고 있었다. 그 때 다른 보병 부대가 와서 말했다.
“이봐! 이 대피호는 우리가 쓰고 싶은데?”
느닷없는 소리에 요나스가 반발했다.
“뭔 소리야? 우리가 먼저 차지했다고!”
“우리가 상위 부대니까 이 곳은 우리가 쓰는게 맞네! 얼른 비키라고!”
전차병들은 어처구니 없는 보병들의 주장에 씩씩거렸다. 그래서 프란츠가 한스를 불러온 것 이었다. 한스가 말했다.
“우리 중대가 먼저 이 곳을 차지했으니 자네들이 다른 대피호로 가는 것이 맞지 않나?”
싸가지 없던 보병들은 한스를 보자 우물쭈물했다.
“죄..죄송합니다..”
보병 부대가 다른 곳으로 떠났고 한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지금 쓰는 마크 V는 재생 공장에서 포를 교체할 걸세. 대신에 재생 공장에서 이미 포가 교체된 마크 V를 우리 부대에..”
그 때, 한 보병 대위가 대피호를 찾아왔다.
“파이퍼 중위, 잠시 이야기 좀 합세.”
잠시 뒤, 한스의 전차병들은 다른 대피호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보병들은 신이 나서 넓은 대피호에 자리를 잡았고, 전차병들은 냄새 나고 지저분한 대피호로 짐을 옮겼다. 요나스가 이를 갈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망할 새끼들..”
요나스는 착하고 순박하고 겁 많고 탄피를 주워서 트렌치 아트를 만드는 것이나 즐기던 녀석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도 많이 변해 있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하긴 예수도 전쟁에 참전했다면 괴물이 되었을지도..’
요나스가 한스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한스, 구호소 가서 패트릭 녀석 좀 봐야겠네. 얼굴의 파편은 다 빼냈는데 놈이 권총으로 자살 시도를 해서 위생병 녀석들이 묶어뒀다는군.”
다른 전차병이 말했다.
“거 죽지 않아서 다행인데 배가 불렀군.”
“내일에는 후방으로 이송될거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전차병들은 패트릭에게 위로가 될 만한 통조림, 선물 등을 가지고 구호소를 찾아갔다. 구호소에는 부상병이 워낙 많았기에 찾기가 힘들었다. 욘트가 외쳤다.
“이봐 패트릭! 중대장님 오셨.. 허..허억..”
욘트는 패트릭의 얼굴을 보고 사색이 되었다. 다른 전차병들도 패트릭의 얼굴을 보고 기겁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인사했다.
“패트릭 몸은 좀 괜찮나?”
패트릭은 멍하니 앞을 보고 있었다. 닐스가 선물 꾸러미를 패트릭에게 보여줬다.
“널 위해서 모은 걸세!”
패트릭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고마워. 침대 밑에 놔두게.”
한스는 패트릭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에 애써 머리를 굴리다가 겨우 한 마디 내뱉었다.
“자네 덕분에 그동안 우리 중대가 승리를 거듭할 수 있었네. 그동안 수고했네.”
“감사합니다.”
“전쟁 끝나면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한스가 말했다.
“뭐 필요한 것 있나?”
“면도칼이요.”
동료들이 다들 서로 눈치만 보며 우물쭈물하자 패트릭이 말을 이었다.
“정말 면도할 때 쓸 겁니다.”
잠시 뒤 전차병들이 구호소 밖으로 나왔다.
“저 녀석은 자기 처지가 좋은 줄도 모르고 말이야.”
“맞아! 목숨은 건졌잖아!”
“패트릭도 집에 돌아가서 가족과 만나면 생각이 바뀌겠지!”
그 때, 요나스가 한스에게 말했다.
“한스. 잠시 애기 좀 하세.”
“무슨 일인가?”
요나스는 한스를 데리고 어딘가로 걸어갔다. 요나스는 무심코 걸음을 내딛다가 포로 버나드의 발을 밟았고 버나드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어이쿠!!”
요나스가 영어로 사과했다.
“미안하네.”
요나스는 주변에 아무도 안 듣는지 확인하고는 한스에게 말했다.
“이봐 한스. 저격수들 말일세.”
“아, 저격수 앞으로도 조심해야 할 걸세.”
“실력 좋은 놈들은 붙잡히기 전에 소총도 버리고 저격수라는 것을 숨기지 않나?”
“그렇다고 들었네.”
요나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네가 죽인 그 녀석 말일세..그 놈이 정말 니클라스를 죽인 녀석이 맞을까?”
한스는 영국군이 저격수를 여러 명 배치했을 것이고 자신이 죽인 어린 병사가 니클라스를 사살한 저격수일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마..맞겠지. 갑자기 그게 왜 중요한가?”
한스는 요나스에게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참았다.
‘죽인건 내가 죽였지만 고문한건 네 녀석들이잖아!!’
요나스가 말했다.
“움직이는 전차 안에 전차장을 맞출 정도면 실력이 좋아야 할 텐데 그렇게 실력 좋은 녀석이 저격수라는 것을 숨기지도 못하고 잡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네. 어쩌면 그 자식은 경험 전혀 없는 애송..”
한스가 요나스의 말을 끊었다.
“그 녀석이 맞을 걸세. 보병들이 그러지 않았나.”
“역시 그렇겠지? 한스, 그런데 자네 그 녀석을 왜 총으로 쏜 건가?”
요나스의 물음에 한스는 말문이 막혔다. 자기 자신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것 이다.
“나..나도 모르겠네..”
“이보게 한스..니클라스의 죽음 때문인지 몰라도 아직 비극이 시작도 안 했다는 생각이 드네···우리 중대는 계속 전투에서 승리하고 있는데 문제는..”
한스는 더 이상 요나스의 헛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다시 말을 끊었다.
“몇 달만 잘 참으면 모든 것이 끝날 걸세.”
한스는 요나스와 대화를 마친 후 장교들이 머무는 방으로 돌아와서 책상에 앉았다.
‘편지라도 쓸까..’
한스는 펜을 들었다.
[어머니,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
한스는 잠시 멈칫하고는 3분 동안을 펜을 움직이지 않았다. 한스는 10살 이후로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던 어머니한테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서 견디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어머니한테 이렇게 울부짖고 싶었다.
[아무리 전투를 해도 끝이 없습니다. 여태까지 죽인 사람 수를 셀 수조차 없습니다. 제가 끔찍한 곳에 있어서 걱정된다고 하셨습니까? 왜 당신 아들이 이렇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무방비 상태의 포로도 직접 쏘아 죽였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도 저를 집에 받아줄 수 있습니까?
오늘 이등병 시절부터 알고 지낸 동료 하나가 죽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술주정을 부리면 늘 어머니가 절 숨겨줬는데 이 곳에서는 제가 중대를 책임져야 합니다. 멍청한 동료들은 무능력하고 저만 믿고 있습니다. 다음 전투에서 어떻게 버텨야 할지 아무 생각이 안 떠오릅니다. 오늘 죽은 녀석은 그래도 고통 없이 죽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우리 중대가 산채로 불타 죽을지도 모릅니다.
전 아무것도 모르는데 위에서 맘대로 훈장을 수여하고 중대를 맡겼습니다. 시발 놈들이 무기도 좆 같은 것을 주고 싸우라고 합니다. 그 좆 같은 새끼들이 잠 잘 시간도 주지 않습니다. 영국이나 프랑스는 훨씬 좋은 무기를 쓰는데 우리가 쓰는 무기가 제일 좆 같습니다. 매일 전투마다 죽음이 턱 밑까지 다가옵니다.
궤도 수리할 때 한 쪽 손을 밑에 넣고 실수인척 손을 부러뜨려서라도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죽고 싶지 않습니다. 총알이 두렵습니다. 저는 자식이 태어나는 것도 못 보고 전쟁터에서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뒤지겠죠. 이 세상이 어떤지도 모르고 태어나는 멍청한 자식 같으니라고..그래서 인간이 태어날 때 울부짖나 봅니다. 어머니 저를 왜 이 엿 같은 세상에 낳으셨습니까? 하필이면 독일인으로? 시발!!!!!!!!!!!!!]
하지만 한스는 편지에 딱 두 문장만을 썼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돈을 보낼 테니 생활비에 보태십시오.]
그 때 하르트만 소령이 한스를 찾아왔다.
“파이퍼 중위,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받게 된 것을 축하하네!!”
“네···넵??”
“또한 자네 중대에 오토바이병 둘을 보충해주겠네!”
그 날 오후 한스는 병사들 앞에서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받게 되었다.
“한스 파이퍼 중위에게 어쩌구 저쩌구 숭고한 정신으로 어쩌구 저쩌구 적에 맞서 어쩌구 저쩌구 독일 제국에 어쩌구 저쩌구 많은 귀감이 되어 어쩌구 저쩌구 수 많은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이에 따라 국법에 의해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수여한다!”
후티어 장군이 직접 한스에게 훈장을 달아주며 격려했다.
“축하하네 파이퍼 중위! 지금처럼만 하면 아미앵 철도역에서의 전투도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걸세!”
한스는 각 잡힌 자세로 경례를 했지만 머리 속에는 앞으로의 전투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철도역이면 시가지 쪽인데 그 쪽에서 전차전이라..건물에서 대전차 수류탄을 던지면 작살날 텐데..저격수들도 전차장을 저격하기 더 유리할테고 놈들이 고층에서 약한 전차의 상부 장갑을 노리면..’
제프 디트리히, 욘트 등 다른 전차병들 또한 1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지만 이를 자축할 틈도 없이 또 이동해야 했다.
슐츠의 중대 또한 아미앵 쪽으로 가야 해서 이동을 준비하는데 저격수 맥스가 잠시 구호소에 들려서 영국군 부상병들을 둘러보다가 버나드가 있는 쪽으로 와서 영어로 말을 걸며 담배를 권했다.
“한 대 피울텐가?”
버나드가 거절했다.
“됐네.”
하지만 맥스는 계속해서 버나드에게 말을 걸었다.
“자넨 포병인가? 보병? 공병?”
버나드는 애써 태연한척 맥스의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취사병일세.”
“취사병이 여기까지 온다고?”
“장교의 식사를 담당하네.”
“흐음..그런가..난 자네가 저격수인줄 알았네.”
버나드는 흠칫했지만 아무 표정 변화가 없이 대꾸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맥스가 대답했다.
“내가 저격수인데 적을 사살해야 할 때는 쇄골 아래 가슴팍을 쏜다네. 하지만 미끼를 만들 때는 오른쪽 어깨를 쏘거든. 내가 저격수 한 명의 오른쪽 어깨를 쐈는데 말이야. 그게 자네가 아닌가 했네.”
버나드가 대답했다.
“나는 아닐세.”
“그래. 자네는 아니었나보군. 전차병 녀석들이 저격수 하나 죽였던데 그 녀석이겠지.”
맥스는 버나드를 빤히 쳐다보다가 구호소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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