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스포) 2차대전 동부전선 이야기
17세의 류드밀라는 한 손에 모신나강을 들고 눈이 소복히 쌓인 겨울 숲 속을 미친듯이 달리며 도망갔다.
“허억..헉..”
얼어붙은 공기에 폐가 터질 것 같았다. 뒤에서는 독일군의 오토바이 소리와 기관총 소리가 들려왔다.
드득 드드드득
총알이 나무에 부딪칠 때 마다 불빛이 번쩍거렸다.
“저 새끼 잡아!!!”
총알이 류드밀라의 왼쪽 팔을 스쳤다.
‘아악!!’
류드밀라는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고는 앞으로 내달렸다. 독일군의 오토바이는 류드밀라에게 겁을 주려고 계속해서 경적 소리를 울렸다.
“죽이면 일주일 휴가 생포하면 이주일 휴가다!!”
류디밀라가 달려가는 길에는 발자국에 핏자국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류드밀라는 공포심에 뇌에서 모든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찬 공기를 들이마셔서 코와 입에서 피를 토할 것 같았다. 뒤에서는 성난 독일군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얼마 전에 독일군한테 잡혀서 시체로 전시된 동료의 모습이 떠올랐다. 류드밀라는 총을 든 채로 마을로 뛰어 들어가서 한 작은 집의 문을 열었다.
타악!!
집에는 노부부가 식사를 하려다가 놀란 눈으로 류드밀라를 쳐다 보았다. 류드밀라가 구역질을 겨우 참고는 외쳤다.
“우..우욱..도..도와주세요!! 숨..숨겨주..”
노부부는 류드밀라에게 옷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류드밀라는 소총을 들고 옷장 안으로 숨어들어갔다. 작은 마을에 독일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새끼 잡으면 휴가에 1계급 특진이다!!”
류드밀라는 계속해서 옷장 안에서 숨을 헐떡거렸다. 심장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고 계속해서 신물이 올라왔다.
잠시 뒤, 누군가 거칠게 대문을 두드렸고, 노부부가 문을 열었다.
“누구 십니까?”
“이봐!! 할망구!! 파르티잔 못 봤나?”
할머니가 고개를 흔들었다. 독일 병사가 얼굴을 찌푸리며 건물 밖으로 나갔다.
“쳇!”
이장을 비롯해서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고 독일 병사들은 파르티잔 저격수가 이 마을에 숨어 들어왔다고 했다. 독일 장교가 이장에게 신신당부했다.
“혹시 놈이 마을에 숨어 있다면 바로 말하는 것이 좋을 거요.”
독일 군인들이 간 이후에도 마을 분위기는 바로 뒤숭숭해졌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젠장!! 어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넘겨 주라고!!”
낫을 들고 있는 한 농부가 소리쳤다.
“파르티잔 숨겨주는 집은 독일군이 아니라 나한테 뒤질 줄 알아라!!”
이장이 외쳤다.
“혹시 파르티잔 발견하면 바로 보고하십시오!!”
그 때, 한 청년이 노부부의 집을 두드렸다.
“어머니! 접니다!!”
할머니가 문을 열자 청년이 말했다.
“지금 파르티잔이 우리 마을에 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문 단속 잘 하시고..”
할아버지가 아들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알고 있다. 얼른 부인한테 가 보거라.”
옆 집에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한 여자가 문 앞에서 걱정되는 얼굴로 서 있었다. 청년이 자기 집으로 달려가서, 아내와 아이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
마을이 어둑해지고, 할머니가 옷장 문을 열고 음식과 마실 것을 주고 팔에 붕대를 감아 주었다. 류드밀라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제 친할머니 같아요.”
“일단 여기 계속 있어요.”
할머니는 류드밀라의 눈을 피하며 다시 옷장 문을 닫고 안방으로 갔다. 할아버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들키면 모두 죽을 수 있어!”
할머니가 말했다.
“아무도 안 볼 때 몰래 빠져나가게 해요. 저 아이를 내주었다간 독일군에게..”
할아버지는 창문 밖을 슬쩍 쳐다 보았다.
“올가, 저 여자는 어차피 죽을 운명이오. 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소? 우리만 죽는 것이 아니오. 우리 아들까지 위험할 수 있어!”
“그..그러면 어떻게..”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조용히 하라는 뜻에서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창문 밖으로 보니 아들은 계속 집 앞을 왔다갔다하며 경계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손을 흔들자 아들이 황급히 걸어왔다.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무슨..”
“쉬이···”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에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류드밀라는 허겁지겁 빵과 우유를 먹고 어두운 옷장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잠시 뒤, 옷장 문이 벌컥 열리고 독일 병사들이 총을 겨누었다.
“뭐야 여자였어?”
“이 파르티잔 시발년이!!”
“오늘은 재미 좀 보겠군!”
“얼굴은 패지마!”
류드밀라의 머리채가 잡혀서 문 밖으로 질질 끌려나갔다. 할아버지가 마을 이장과 독일 장교한테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저 여자가 집에 쳐들어와서 제 아내와 저를 총으로 협박했습니다!”
마을 이장이 말했다.
“이거 보십시오! 저희 마을은 파르티잔과 전혀 무관합니다!”
장교가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이 마을은 파르티잔으로부터 확실히 보호하겠습니다!”
할머니는 류드밀라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렇게 류드밀라는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서 한 낡은 건물 안에서 의자에 밧줄로 묶였다. 독일 병사들은 류드밀라를 보며 낄낄거렸다.
“이 년은 지 친구들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고는 있을까?”
그 때 문이 열리고 오토 파이퍼가 들어와서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모두 나가있게! 아니, 파울 자네는 통역 좀 해주게.”
병사들은 오토의 명령에 건물 밖으로 나가서 대기하며 담배를 피웠다. 오토는 예전에는 부하들에게 포로 심문을 맡겼지만, 몇몇 사건 이후로는 절대로 여자 포로 심문은 부하들에게 맡기지 않았다. 류드밀라는 오토 파이퍼를 보며 이를 갈았다.
“당신이 오토 파이퍼..”
오토는 계속해서 류드밀라의 눈을 피하며 의자에 앉아서 입을 열었다.
“나머지 파르티잔이 어디 있는지만 밝히면 후방으로 보내주겠다.”
류드밀라는 증오심에 가득 찬 눈으로 오토를 계속 바라보았다.
‘이 여자는 절대 입을 열지 않겠군..’
“이봐. 파르티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거지? 가족을 잃었나? 어머니 얼굴을 보고 싶지 않나?”
파울이 기계적으로 오토의 말을 통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드밀라는 입을 열지 않았다. 오토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봐 파르티잔. 나는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다. 내 부하 녀석들은 다른 생각이지만..잔당들이 어디 있는지만 밝히면 안전하게 후방 쪽으로 보내 주겠다.”
류드밀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훗날 내 동료들이 너희를 죽일 것 이다.”
파울이 잠시 멈칫하더니 류드밀라의 말을 그대로 통역해 주었다. 오토는 류드밀라의 말에 화가 나기보다는 도대체 왜 저러는지 궁금하기 시작했다.
“이보게. 파르티잔.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너희를 죽이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걸세. 도대체 네가 원하는 것은 뭐지?”
파울은 오토가 하는 말의 단어, 의미를 정확하게 통역해서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드밀라는 꿈쩍도 하지 않고 증오심에 말을 내뱉었다.
“내 가족들과 아이들의 피를 바쳐서라도 너희 파시스트를 죽일 수 있다면 한 방울도 남김없이 바칠 것 이다! 내 가족과 동료가 죽더라도 나는 두렵지 않다! 나를 죽여라! 이 파시스트 놈아!!”
파울이 류드밀라의 말을 정확히 번역해주었다. 오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앞에 있는 어린 여자에 대한 동정심이 싸그리 사라졌다. 오토는 류드밀라에게 다가와서 천천히 말했다.
“나는 파르티잔이고 파시스트고 그딴 거 몰라. 내 목숨이 중요하지. 이념이 뭐지? 그게 네 눈에는 보이나? 손으로 쥘 수는 있어? 죽음은 현실이야!! 네 동료 파르티잔들은 배 속에서 창자가 흘러나와서 죽었어! 그것은 손으로 만질 수도 있고 고약한 냄새도 나지! 아직도 죽음이 뭔지 모르나? 니 가족들이 죽으면 영원히 네 년 기억 속에 남을 거야!”
오토는 찬 물을 들이키고 마음을 진정했다. 류드밀라는 여전히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진정하자..이 년한테서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
“네 년이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면 내 부하들과 동료들이 너네 가족들을 불태워 죽일 걸세. 난 그 어리고 멍청한 녀석들을 통제할 수 없어. 자기 눈 앞에서 파르티잔에게 동료를 잃었거든! 그 놈들이 어린 아이들까지도 산채로 뜯어 죽일 거라고!!니 년의 그 지랄 같은 이념 때문에 어린 아이가 죽어도 상관 없나? 니 년은 동정심도 없는 건가?”
류드밀라가 태연하게 말했다.
“이념이 모든 것 보다 강하다.”
파울이 이 말을 통역하자 오토는 분노해서 유리컵을 벽으로 던졌다.
쨍그랑!!
오토는 고함을 지르며 방 안에 있는 식탁을 뒤집어 엎었다.
“으악!!!시발!!!”
류드밀라는 오토가 지랄발광을 해도 입에는 조소까지 품으며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오토가 말했다.
“이봐 네 년이 말만 하면 후방으로 보내지도 않고 그냥 풀어줄 수도 있네. 돈도 줄 수 있다고! 공산주의 그게 뭔데 그러는 건가? 담배 한 개피 가치도 안 된다고! 자, 이 지도에서 어느 쪽에 있는지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해.”
오토는 부들거리며 류드밀라의 눈 앞에 지도를 갖다 댔다. 류드밀라가 말했다.
“날 죽여라.”
그 순간 오토는 자신의 부하들이 여태까지 왜 그렇게 파르티잔 여성에게 잔인하게 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류드밀라의 눈동자 속에는 그 어떠한 두려움도 없었다. 이제 오토는 동정을 느끼는 쪽이 아니었다. 오토는 류드밀라의 푸른 눈동자 안에서 공포에 질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고, 이제 그 두려움은 오토의 온 몸을 휘감고 있었다.
오토는 자신의 부하들과 동료들이 파르티잔 여성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은 증오심 때문이라 생각하였고, 그들의 증오를 누그러뜨리려고 늘 노력했다. 하지만 그토록 순박하던 동료와 부하들이 여성을 산채로 죽이고 전시한 것은 증오가 아니라 이런 자들에 대한 공포였다.
류드밀라는 전혀 두려움 없는 눈으로 오토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날 죽여라.”
“그럴 순 없다. 너는 후방으로 옮겨질거다.”
“너희들에게 더러운 꼴을 당하긴 싫다. 날 여기서 죽여.”
이 때 건물 밖에서는 병사들이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새벽에 슬쩍 들어가볼까?”
“그러다 걸리면 뒤질텐데?”
“어차피 죽을텐데 즐기기라도 해 봐야지!”
순간, 건물 안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타앙!! 탕!!
“뭐!! 뭐야!!”
병사들이 건물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오토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오토가 말했다.
“이거 치우게.”
“네..넵! 알겠습니다!”
오토는 담배를 입에 물었는데 주머니 속에 라이터가 없었다. 파울이 오토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오토는 담뱃불에 자신의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는 것을 발견했다.
‘젠장..’
Commen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