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
한스가 말했다.
“대성당 쪽에 가보게! 그 곳에서 수녀분들이 치료를 해주고 있네!”
한스의 말에 거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으로 걸어갔다.
“여긴 멀쩡하네.”
다행히도 사크레쾨르 대성당 건물은 포격에도 크게 피해를 입지 않았다. 내부에는 수 많은 부상자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다리를 절단한 부상병, 얼굴에 포탄 파편을 뒤집어 쓴 부상병, 복부에 치명상을 입은 부상병 등등 거너는 이 끔찍한 광경에 얼굴을 돌렸다.
“여기 치우게.”
위생병의 말에 담가병들은 시체에 천을 씌우고 들것에 담아서 어딘가로 가지고 갔다.
‘괜히 왔네..’
거너가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한 수녀가 프랑스어로 말했다.
“필요한거라도 있으신가요?”
거너는 그 수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그..그것이..”
거너를 성당 바닥에 앉힌 후에 팔을 소독해주고 치료를 받으며 그 수녀의 얼굴을 슬쩍 훔쳐보았다.
‘검은 머리..’
전쟁터에서 맡던 화약 냄새, 오물 냄새, 피 냄새와는 다른 은은한 향이 거너의 코를 찔렀다. 소독을 마치고 수녀가 거너의 팔에 붕대를 다시 감아주었다. 거너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수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 되었습니다.”
밤색 눈동자가 거너의 눈과 마주쳤다. 거너는 움찔하며 고개를 숙이고 일어나서는 성당 밖으로 달려갔다.
이 시각, 에밀라는 성당에서 한스가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한스의 어머니, 엠마는 신문에 나온 한스의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한스..내 아들..”
한편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로 인해서 해외 언론 등에서 독일군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독일군 포병대 쪽에서는 자신들은 시테 섬으로 좌표를 잡지 않았고 자신들은 그 쪽이 포격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붉은 남작의 플라잉 서커스단 또한 당연히 노트르담 성당 쪽에는 포탄을 떨어트린 적이 없고 프랑스군 군사 시설 쪽만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망할 포병 놈들!! 우리에게 덮어씌우다니!!”
디터도 화를 냈다.
“기사도 정신도 없는 녀석들일세!”
미하엘도 중얼거렸다.
“문화재를 파괴하는 것은 너무한 것 같네.”
붉은 남작 또한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우리 항공대의 모든 편대가 시테 섬 쪽으로는 아예 안가지 않았나?”
“네! 우리 편대는 그 쪽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포병대 쪽에 소형 폭탄을 떨어트렸습니다!”
“우리 편대도 그 쪽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편대를 이탈한 녀석도 없었습니다!”
그 말에 미하엘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호..혹시? 내가?’
후고가 말했다.
“소형 폭탄 한 개 정도로는 노트르담 성당이 불타오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갖고 있는 소형 폭탄을 한 곳에 다 쏟아버리지 않는 한은 그렇게 불 탈 수는 없을 텐데요?”
“성당 안에 탄약을 잔뜩 보관해뒀다고 하네.”
미하엘에 손에서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그 때 내가 한 곳에 다 떨어트렸는데..서..설마? 그러고보니 떨어트릴 때 강이 보였는데..’
그 때 미하엘이 속했던 편대의 편대장이 물었다.
“아, 미하엘 자네가 잠시 이탈했었지 않나?”
“네..넵!!”
미하엘은 속이 울렁이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태연한척 대답했다.
“자네 혹시 뭐 본거 있나?”
“저..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붉은 남작이 말했다.
“이번 일은 우리 항공대대의 명예가 달린 걸세. 우리 쪽이랑 무관하다고 언론사에 전달하겠네!”
미하엘은 식은 땀을 뻘뻘 흘렸다.
“그..그..전쟁 중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거라 금방 잊히지 않을까요?”
“이 정도 일이 잊혀질 것 같냐? 정말 고약한 일일세! 문화재가 이렇게 소실되다니!”
“나중에 조사하면 포탄 파편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미하엘이 식은 땀을 흘리며 말했다.
“그..대성당에 탄약을 보관해놨으니 결과적으로는 폭파된 것이 잘 된 것 아닌가?”
하지만 아무도 미하엘의 말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 땅개 포병 녀석들!!”
해외 언론에서는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할 것 인지에 대해 대문짝만하게 보도되었다. 또한 불타오르는 노트르담 성당, 개선문을 통해 진입하는 한스의 사진 또한 1면에 인쇄되었다. 파리 센강 남부 쪽에 있는 프랑스 군은 불타오르는 노트르담 성당을 보며 증오를 삼켰다.
‘이 에펠탑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한 프랑스 병사가 외쳤다.
“차라리 다리들을 모두 끊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앜!!!”
그 말에 소대장이 그 병사의 머리를 쳤다.
“멍청한 놈!! 조민간 우리가 다시 차지해야 할 것 아니냐!!”
한편 센강을 중심에 두고 양 쪽에서 확성기로 제각기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온갖 선전을 떠들어댔다. 거대한 깔대기를 귀에 꽂고 적 비행기가 오는지 청음 중인 병사에게 다른 병사들이 물었다.
“저 새끼들 뭐라고 외치는 거야?”
“조만간 강철 사냥꾼의 목을 가지러 온다고 하네”
한스는 자신을 향한 프랑스의 증오에 이빨을 덜덜 떨었다.
‘내..내가 뭘 잘못했다고? 난 그냥 위에서 하라는대로 한거 밖에 없는데?’
한스는 적 정찰기가 공중에서 뿌린 삐라를 읽어 보았다.
[강철 사냥꾼의 목을 내놓아라!]
‘그..그냥 휴전하면 안되나?’
그 때 한스의 눈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돌프! 자네 아닌가?!”
전령 아돌프 히틀러가 한스에게 와서 경례를 했다. 한스가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그럴 필요 없네! 사석에서는 말을 놓게!”
한스는 예전에 히틀러의 목숨을 구해준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히틀러가 말했다.
“정말 대단해! 자네라면 해낼 줄 알았네!!”
“고맙네!”
히틀러는 기쁘면서도 씁쓸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건축물들은 아쉽군..”
“민간인 피해도 생각보다 심하더군.”
“인간은 동정할 필요 없네. 동정의 가치가 있는 것은 인류가 창조한 문명, 예술 그 뿐이지.”
평상시에 그런 말을 들었다면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생각했을 테지만 몇 년간의 전쟁을 겪고 나서는 한스도 그 말에 약간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범하고 순박해보이던 농부, 회계사, 고등학생도 막상 전쟁터에서는 살기 위해 누구나 사냥꾼이 되었다.
‘인간은 결국 다 살인자가 되는걸···동정할 필요가 없는 것은 맞지..하긴 나도 전차 개발 때문에 이러고 있는데..’
“조만간 전쟁이 끝나면 다들 돌아가서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을 걸세.”
한스의 말에 히틀러가 입을 열었다.
“난 전쟁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네.”
“왜?”
“평범하게 남들 다 하는 일이나 하고 살면서 의미없이 늙어가고 땅에 묻히는 것 보다는 언젠가 파멸을 맞이하더라도 인류 역사에 무언가를 남기는 것이 좋지 않겠나?”
히틀러의 말에 한스도 약간은 수긍했다.
“뭐 그 생각도 일리는 있네.”
한스는 왜 히틀러가 전쟁이 끝나기를 원치 않는지 알 것 같았다. 한스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늘 외톨이였다. 하지만 아무리 사회성이 없는 한스조차도 서로를 믿어야 하는 전쟁터에서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던 것 이다. 전투 직전, 티거 외에 쐐기 대형으로 늘어선 다른 전차들을 바라보면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었다.
전투 중에는 동료 전차가 잘 싸워줄 것이라 믿고 자리를 잡으러 가야 한다. 이제 한스에게는 전쟁터가 집과 학교보다 편안했고, 전쟁이 끝나고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의구심을 갖고는 했었다.
잠시 뒤, 히틀러가 떠나고 한스는 사크레쾨르 대성당 근처에 있는 2층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스의 전차 대대는 이 곳을 대대 지휘소로 쓰고 있었고, 바로 옆에 있는 여러 건물들에 병사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맨날 상위부대 오면 숙영지 뺏기곤 했는데..’
바이스 중위가 한스에게 경례를 했다.
‘이제 나도 대대장님에게 직접 전술을 배울 수 있다!!’
한스는 여태까지 자신이 고안해온 전차전 전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르노 FT 전차의 전차장들에게 기존 전차병들과 수시로 워게임을 하면서 전술 훈련을 하라고 명령했다. 바이스 중위가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이번 전투로 독일군은 2개의 생샤몽, 1대의 슈네데르 CA를 노획할 수 있었고, 조만간 노획 마크 전차 8대로 이루어진 전차 중대도 도착할 예정이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솔직히 파리 남부까지 점령하는 것은 무리다..어떻게던 휴전이 되어야 할텐데..’
이 때, 거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서성이다가 자신을 치료해준 수녀가 성당 밖으로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저..저기..”
그 수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거너를 바라보았고 거너는 우물쭈물거렸다.
‘제..젠장..나도 불어를 잘 했으면..’
거너는 주머니 속에서 고급 통조림을 하나 내밀었다.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저..이거라도..”
‘아..맞다! 바닷가재 통조림도 있었지!’
거너가 손짓으로 자신과 동료들이 머무는 작은 집을 가리켰다.
“저 쪽에 가면 더 좋은 통조림이 있습니다!”
수녀는 독일 군인인 거너가 다소 두려웠지만 별다른 악의는 없어보여서 따라갔다.
‘혹시 다른 환자가 있나?’
거너가 문을 열자 때마침 동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다들 어디 간 거지?’
거너는 자신의 가방을 뒤적여서 바닷가재 통조림을 꺼내 수녀에게 내밀었다.
“선물입니다!”
수녀는 미소를 지으며 거너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거너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더 말을 걸었다.
“저는 거너에요. 거너. 당신은 이름이?”
검은 머리에 밤색 눈에 수녀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쉬잔. 쉬잔.”
거너는 웃으며 이름을 입으로 중얼거렸다.
“쉬잔 참 예쁜 이름이네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쉬잔이 걸어나가려던 순간, 바닥에 흘러져 있던 술에 미끄러져서 넘어졌다.
“꺄앗!!”
그리고 쉬잔은 바닥에 쓰러지면서 의자에 머리를 박았다.
쿠당!!
“괘..괜찮으십니까?”
하지만 쉬잔은 그만 머리에 충격을 받아서 기절해있었고 거너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그 순간, 밖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신 요나스, 에밋, 헤이든이 들어왔다. 요나스가 말했다.
“뭐..뭐야 지금??”
거너가 말했다.
“그..아까 치료해준 수녀분에게 통조림을 줬는데 미끄러져서 그만!!”
술에 잔뜩 취한 헤이든이 말했다.
“거너 네 놈 때문에 숙녀분이 놀랐잖아!!”
“그..그게 아니라니까!!”
요나스가 말했다.
“뭣들 하는 거야!! 빨리 숙녀분 부축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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