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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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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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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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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평범한 동생(5)

DUMMY

홍백전은 그렇게 0대0으로 끝이 났다. 나는 서둘러서 마무리한 다음 빠르게 짐을 챙겼다.


“방성우, 너 아까 말한 거-”


“아,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핸드폰을 보니 어느덧 7시를 꽤 넘긴 시간. 이렇게 노력을 해도 약간은 늦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보다.


밤이 되기 직전의 붉은 노을이 저 너머로 지고 있었다. 평소 같았다면 느긋하게 걸으며 노을을 감상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노을 배경으로 달리는 게 어째 ‘달려라 하x’가 생각나는군.


“안 늦었겠지?”


“늦었어. 30분이나 지났거든.”


끼익-


막 교문 앞을 지나는 순간이었다. 나를 불러세운 것은 바로 시내에서 기다린다고 했던 신지혜의 목소리였다.


“뭐야. 시내에서 기다린다며.”


어쩐지 너무 오버해서 노력을 한 기분이다. 이미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공을 던지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지금까지도 그 2이닝 동안 집중해서 던지느냐고 피곤한 감이 남아있었다.


“응? 네가 너무 안 와서 여기까지 다시 걸어온 건데?”


아.


“늦어서 미안.”


나는 멋쩍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그 사과를 받았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신지혜는 말없이 따라오라는 손짓을 내게 보내고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도로에서는 차들이 빵빵거리면서 빠르게 달려나갔다. 신호들이 어지럽게 반짝이고 사람들은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도 그중 하나였다.


“그나저나 완전 단둘이 걷는 건 오랜만인 거 같네.”


말없이 걸어가고 있던 와중 문득 신지혜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대로 대답했다.


“그러게.”


어릴 때야 마냥 몰려다녔겠지만, 중학생이 되고 나서도 예전처럼 똑같이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더욱 그럴 것이다. 당연한 얘기였다.


“요즘은 바쁘니까 말이야.”


“우리 형이랑은 잘만 다니더만.”


나는 말을 마치고 나서 아차 싶었다. 뭔가 모양새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닌데. 피곤해서 그런지 말이 그냥 막 나오는군.


“뭐, 집이 가까우니까. 하교할 때마다 우성 오빠하고 마주칠 일이 많더라.”


호오. 그 우성 오빠란 사람은 나랑 집이 같은데 말이지. 게다가 학교도 중학교와 고등학교 차이인데도 나보다 마주칠 일이 많다라. 어쩐지 형의 비밀을 하나 캔 기분이었다.


“그건 그렇겠지.”


나는 그 비밀을 지켜주기로 마음먹었다.


신지혜는 그런 쪽에서 둔감한 편이긴 하다. 예전에 옆에서 봤을 때 아예 대놓고 좋아하는 티를 내던 친구가 있었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전부 나눠주고, 어디 들어가면 문도 열어주고, 길을 걸어가면 안쪽으로 걷게 하고. 그러고 나서 잘난 체를 하며 생색을 내곤 했다. 옆에서 보는데 어디서 본 건 많아서 아주 그냥 꼴불견이었다.


그런데 그때 신지혜가 나한테 했던 얘기가 아주 가관이었다.


‘쟤 왜 저래?’


‘...그러게.’


나는 그 말을 듣고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애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한 말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친구의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재수는 없지만, 그때만큼 불쌍해 보일 때가 없었는데. 잘 있으려나?


“옛날에 너 좋다고 따라다녔던 그 친구 혹시 기억나냐?”


나는 혹시 몰라서 물어봤다. 어쩌면 그땐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니까.


“응? 그런 사람이 있었어?”


허허. 여전히 불쌍한 친구이다.


그렇게 사소한 잡담을 나누며 우리는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나는 문득 생각했다.


심부름 때문에 날 부른 걸 테니까 마트려나?


옆을 보니 자주 이용하는 대형마트가 있었다. 그러나 신지혜는 그대로 그곳을 지나쳤다.


음, 마트도 아니고. 그러면 철물점? 예전에도 쟤네 아빠가 갑자기 집에서 뭔갈 만든다고 나를 꼬드겨서 같이 다녀 오라는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시대가 아니니까. 그냥 배달시키면 뚝딱인데 뭔가 만들 필요가 딱히 없는 것이다. 역시 철물점도 지나쳤다.


그러면 대체 어디지? 내가 머릿속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그 결론은 나지 않았다. 대체 뭐를 시키려고 나를 시내까지 데려온 거지?


그리고 문득 고개를 들어 도착한 곳을 바라보자 굉장히 의외의 장소가 나타났다. 익숙하고도, 그리운 곳이었다.


“뭐야, 오락실?”


“그래.”


굉장히 오래된 오락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퀴퀴한 냄새와 함께 귀를 어지럽히는 게임 소리. 이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나는 걸음을 빠르게 해서 서둘러 신지혜와 함께 더욱 내부에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나는 가끔 오는걸.”


초록색 그물망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 안에는 색이 바랜 야구장 필드 그림과 투수 그림이 그려진 야구 베팅 연습장이 있었다.


“그나저나 야구하고 다녀와서 야구 연습장이라니.”


“너는 그렇겠지만 나는 야구 할 곳이 여기 밖에 없다고.”


신지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야구가 하고 싶으면 그냥 우리 야구부에 와서 조금 해보고 싶다고 하면 시켜줄 텐데. 다들 좋아할걸?”


아마 엄청나게 좋아할 것이다. 신지혜는 우리 야구부 얘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야구 좋아하는 여자가 자기 취향이라면서. 오히려 너무 분위기가 과열되면 어쩔까 싶지만... 그건 난 잘 모르겠고.


“훈련에 방해되잖아. 그러면 미안하지.”


여전히 고지식하기도 한 모양이다. 하지만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언젠가 한 번은 직접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흐음. 그래서 여기서 어떤 심부름을 시킨 거지?”


아무리 봐도 뭔가 할 게 없는 것 같은데. 뭐 공 줍는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건가? 그러자 신지혜는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뭔 심부름?”


응? 심부름이 아니야? 그럼 대체 나를 여기까지 왜 부른 거지?


“그냥 놀려고 부른 거야?”


나는 왠지 모르게 순간 긴장하며 물었다.


“아니, 그건 아닌데.”


휴. 난 또 뭐라고. 뭔가 일이 있으니까 나를 부른 것이 틀림없다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신지혜는 드물게도 뜸을 들이고는 이내 내게 멋쩍은 기색으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네가 저번에 야구 그만둔다고 했잖아.”


생각보다도 뜬금없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아니, 완전히 뜬금없지는 않겠지만. 저번에 내가 말했을 때는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생각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내 예상과는 다르게 신지혜도 나름 뭔가를 고민하고 있었나 보다.


“음... 그랬지.”


“그래서 뭔가 고민이 있을 것 같아서 부른 거였는데.”


신지혜는 그리고 다음 말을 주저 없이 내뱉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딱히 더 고민할 필요 없어 보이더라.”


“고민할 필요가 없다니?”


상당히 의아한 말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지 무척 궁금했다. 혹시 녀석의 말에 정답이 있지 않을지.


“그야 너. 오늘 야구 경기를 하면서 무척 즐거워 보였는걸.”


“뭐야, 보고 있었어?”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부끄러웠다. 형이 던지는 공을 자주 봐오던 녀석의 눈으로는 내 공은 상당히 허점투성이였을 것이다. 어차피 땜빵 용 투수로 들어간 것뿐이었지만. 당연하지만. 그런데도 뭔가가 좀 그랬다.


“근데 내가 즐거워하고 있었다고?”


이상하다. 분명 꽤 굳은 표정으로 경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하나하나 투구 동작에만 신경 써야 했으니까. 아마 주자라도 하나 나갔으면 나는 완전 울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냥 내 눈으로 보기에는 그랬다고.”


글쎄. 나는 잘 모르겠지만 주위 눈으로는 그렇게 보였나 보다. 계속 묻기만 하는 것도 뭐 해서 우선 나도 돈을 넣고 타석에 들어섰다. 시속 110km/s의 공.


휙-


깡!


“흠. 파울.”


휙-


깡!


“투수 정면.”


휙-


깡!


“좌중간 안타.”


저거 묘하게 신경 쓰이네.


“뭐하냐...?”


“응? 심판 보는데?”


“아, 그래.”


나는 다시 동작을 고치고 있는 힘껏 세차게 날아드는 배팅볼을 향해 알루미늄 배트를 휘둘렀다.


휙-


깡!


“6-4-3 병살. 이닝 종료. 총 5이닝쯤에 점수 3점 냈네.”


아오, 진짜.


그렇게 잠시 치고 타석에서 나온 뒤, 나는 녀석이 얼마나 잘 치는지 보려고 일부러 그물망 바로 뒤에 섰다.


하지만 신지혜는 그런 내 위치 선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대로 자세를 잡고 공을 기다렸다. 생각보다 제대로 된 자세였다.


뭐, 자세뿐이겠지. 실제로 타격도 잘할지는...


휙-


까앙!


배트에 정통으로 맞은 공이 세차게 그물망의 위를 때리고 떨어졌다. 음...


“심판. 판정은?”


“...홈런.”


신지혜는 내 판정을 듣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좋았어, 1점.”


나는 녀석이 그러는 모습을 보면 짜증이 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의외로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저렇게 좋아하니까.


휙-


깡!


“지금꺼는?”


스스로도 잘 맞았다고 생각하며 신나게 뒤를 도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다.


“우익수 플라이.”


“그럴 리가!”


“아마 내가 있으니까 잡았을걸?”


“너가 있으면 에러 아니야?”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우리는 1시간가량 배팅장에서 공을 쳤다.




***




“곧 있으면 10시인데.”


내가 휴대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슬슬 갈 시간이었다. 솔직히 좀 늦은 시간이어서 쫄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이제 집으로 가자고 신지혜를 부르려고 했는데, 녀석이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뭐해?”


“응? 아니, 여기 구속 측정도 된다고 해서 한 번 던져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신지혜가 손가락으로 위쪽에 구속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달린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2천 원에 여섯 구라... 우리 반반씩만 던져보고 갈래?”


눈빛을 반짝이며 신지혜가 말했다. 흠, 뭐 잠깐은 괜찮겠지. 나는 알겠다고 수락을 했고 먼저 신지혜가 던졌다.


신지혜도 평소에 형이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투구 강의를 들어왔던 터라 던지는 방법 정도는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대충대충 듣던 나도 기억날 정도니 말이다.


휙-


푹.


공이 날아가 스크린 같은 것에 부딪히며 힘없이 떨어졌다.


구속은 72km/s 정도가 나왔다.


신지혜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던져보았지만, 나머지 두 번의 기회도 고만고만하게 나왔다.


“그러고 보니까 너 오늘 공 엄청 잘 던지던데 구속 보통 몇쯤 나와?”


“글쎄? 측정을 안 해봐서 모르는데.”


경기에서 투수를 맡은 것도 처음이니 말이다. 오늘은 정신이 없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나는 어느 정도 던질 수 있는 걸까?


무척 피곤했지만, 나는 다시 한번 전력투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공의 실밥을 잘 감기게 잡은 뒤, 호흡을 잠시 가다듬었다. 그리고 전의 경기에서 던졌던 그 감각을 되새기며 있는 힘껏 공을 던졌다.


훅!


퍼억!


스크린이 마구 흔들렸다. 그러고 나서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는데.


툭.


갑자기 온 사방이 캄캄해졌다. 뭐, 뭐지.


“혹시 사람 있으면 대답해주십시오! 10시 이후엔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돌아서는 관리의 모습. 우리들은 어리둥절하게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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