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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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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5 00:21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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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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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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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잠시, 대회 전의 일

DUMMY

“경기를 정말로 잘 치러 주었다. 그 승매중을 상대로 말이야. 경기 분석은 내일 진행하겠다. 다들 피곤할 테니까 다른 데 가지 말고 집으로들 가라. 해산!”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우리 팀은 빠르게 경기를 마무리하고 해산되었다. 돌아가는 와중에 저쪽에서는 감독의 노발대발하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뭐, 솔직히 우리 기경중같은 약팀을 상대로 무득점, 심지어 1실점을 하고 패배까지 기록했으니 혼날 만하지.”


수영이가 낄낄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고작 연습경기인데 너무 호들갑 떠는 거 아니야? 대회 예선 같은 거였으면 몰라도.”


솔직히 우리가 이번에 이겼다고 해서 변하는 것도 없고 말이다. 그야말로 고작 연습경기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리고 오늘의 승매중학교는 그렇게 게임을 대충하지도 않았어. 전력을 다한 경기에서 우리가 승리를 가져온 거는 충분히 의미가 있어.”


김수영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음 말을 덧붙였다.


“우리 팀도 이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거지. 특히 수비 부분에서. 네가 보여준 피칭은 대단했으니까.”


어쩐지 낯간지러운 말이었지만 수영이는 굉장히 자신 있게 힘주어서 말했다.


“그렇구나.”


나는 멋쩍은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막 승매 중학교의 교문을 빠져나갈 때, 관중석에서 경기를 구경하고 있던 신지혜가 우릴 발견하고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하이.”


“하이.”


나와 신지혜는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쩐지 요즘 이 녀석을 교문 밖으로 빠져나갈 때 마주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응? 신지혜? 우리 경기를 보러 와 준 거야?”


김수영은 신지혜를 보고는 놀랍다는 듯 말했다. 나는 갑자기 뭔가 찔리는 느낌이 있었다. 내가 녀석을 불러냈기 때문이었다. 잘못된 것도, 이상한 마음이 있던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설마 얘기 안 하겠지?


“아니, 얘가 경기를 보러 와달라기에 어쩔 수 없이 온 거야.”


신지혜가 나의 기대를 배신하고 갑자기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게다가 어쩔 수 없이 라니.


“흐음.”


느껴지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


“뭐.”


“아니, 그냥.”


젠장. 아무래도 딱 걸린 모양이었다. 한동안은 이걸로 수영이에게 놀림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티격태격하면서 걸어가고 있을 때 문득 신지혜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우리 둘은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셋이서 걷는 것도 오랜만이네.”


듣고 보니 그렇네. 정말 새삼스러운 이야기였기에, 우리 둘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그러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과거의 여느 때와 같은 길이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여름의 태양은 혹시 지옥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한여름에 길을 걷다가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내리쬐는 태양이 아스팔트 바닥을 달아오르게 했고, 그 열기는 곧장 신발 밑창을 달구어 마치 불판 위를 걷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여름이겠지.


나는 이런 더위에 야구를 하러 가야 한다. 왜냐하면, 야구부원이고, 곧 있으면 대회 예선 날이 다가오기 때문에.


진짜 죽겠네. 왜 이렇게 덥나?


토요일 오전 훈련은 기본적으로 자율이라는 단서가 달려있었다. 평소엔 귀찮아서 안 갔지만, 최근에는 토요일 훈련도 참가하게 되었다.


“오, 왔냐?”


운동장에 들어서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태범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티셔츠가 땀에 절어있는 모습을 보니 아마도 운동장을 달리던 도중이었던 모양이다.


“뭐, 다들 이때쯤이면 오잖아? 곧 있으면 대회 예선이고.”


어차피 다들 오니까 내가 토요일에 훈련하러 오는 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긴. 10일 남았는데 안 나오는 게 더 이상하지.”


한태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 어쩐지 최근 들어 굉장히 열정적인 기분이 드는데. 그때 홈런치고 뭔가 깨달았나?


운동장 안으로 더욱 들어가자 다들 훈련이 한창이었다. 저 멀리서 코치가 직접 펑고를 치며 수비 훈련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자, 1루!”


타악!


공이 1루수 쪽으로 향했고 그대로 안정적으로 잡아낸 1루수가 직접 커버를 했다.


“2루!”


약간 2루에서 벗어난 타구를 잡아낸 유격수가 2루를 향해 송구했다. 그리고 2루수는 빠르게 1루를 향해 송구를 했다.


6-4-3 상황 더블 플레이. 나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다들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곱씹을 수 있었다.


나는 우선 가볍게 운동장 러닝을 뛴 후, 2학년 좌완 투수 김경식과 함께 가볍게 공을 주고받았다. 적당히 던지다가 멀리서도 던져보고, 가까이서 리듬을 살리면서 빠르게 주고받고.


적당히 공을 주고받으니 대충 몸이 풀렸다는 기분이 들었다.


“야, 수영아! 어딨냐?”


하지만 수영이는 나오지 않았다. 뭐야, 어디 갔어.


“경식아, 얘 안 나왔어?”


안 나올 애가 아닌데 말이야. 그러자 경식이는 운동장 한쪽을 가리켰다.


“아마 저기서 놀고 있을걸요? 친구가 왔다면서.”


“뭐, 친구? 대회가 거의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이 녀석이, 빠져 가지고! 나는 녀석을 혼내주기 위해 경식이가 가리킨 방향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야, 김수영! 지금 대체 무엇을... 응? 형?”


“오, 드디어 왔네. 방성우.”


참 뜬금없게도 수영이는 우리 형의 공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 서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는 놀랍게도 신지혜. 아니, 쟤네들이 왜 여기에 있어?


“지금 뭐 하는 거야?”


“네가 언젠가 놀러 오라고 해서 말이야. 그리고 혼자 오면 역시 좀 그러니까 너희 형도 데리고 와봤지.”


타석에 들어선 채로 배트를 붕붕 돌리는 한태범을 구경하고 있는 신지혜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투수 두 명, 그리고 나와 캐치볼을 하고 있던 경식이까지 다가와 형의 투구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어 있었다.


“아, 빨리 던지는 거 보게 좀 비켜봐요.”


야, 경식아. 형이야...


역시 이렇게 보니까 형의 위상이 대단한가 보긴 싶었다. 고교 야구계에서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중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그래...”


나는 쭈굴대며 뒤로 물러났다. 젠장, 내가 힘이 없어서...


“투구를 알려주마.”


형은 자신 있게 팔을 들어 올리고는 힘차게 공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파앙!


“우와 방금 공 휘는 거 봤어?”


“어떻게 한 거지?”


파앙!


“야, 이렇게 보니까 진짜 떠오르는 것 같네.”


“라이징 패스트 볼...”


과연 대단한 공이다 싶었다. 빠른 직구와 뚝 떨어지고 휘어지는 변화구들. 형을 상대하는 타자들은 대체 무슨 기분일까?


“이씨, 저걸 치면 나도 진짜 미친놈이지.”


한태범은 여러 차례 배트를 붕 돌려보았지만 계속해서 허공만을 계속 때려내고 있을 뿐이었다.


“딱 한 번만 더 부탁드립니다!”


한태범이 기를 쓰고 공을 노려보면서 외쳤다. 형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공은 또다시 수영이의 미트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총알과도 같은 속도! 하지만 용케 한태범의 배트는 거의 비슷한 궤도로 휘둘러지고 있었다.


탁!


“됐다!”


한태범이 공을 친 순간 주먹을 쥐어 들며 외쳤다.


그렇게 높게 뜬 공은, 대충 1루 쪽에 서 있던 누군가가 글러브를 들어 올려 잡아냈다.


“되긴 뭐가 돼! 내야 플라이!”


그걸 보며 김수영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대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이익...”


한태범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대로 타석에서 나갔다. 좀 불쌍하다, 야. 우리 팀인데 좀 응원 좀 해주지.


“그래도 꽤 놀랐어. 내 공을 맞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


“정말이요?”


그리고 다시 눈에 띄게 좋아지는 한태범의 기색. 말 한마디로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녀석을 보니 역시 응원할 필요 따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다들 훈련 따위는 잠시 멈춰두고 형의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 심지어 코치까지도 형의 모습을 보러 가까이에 다가와 있었다.


“역시 우성 오빠는 대단하네. 벌써 너희 팀 먹힌 것 같은데?”


신지혜가 옆에서 킥킥대며 웃었다.


“아니, 코치님! 저희 훈련 안 해요?”


나는 어느새 형 옆으로 다가가 있는 코치를 향해 따졌다.


“응? 뭐, 방우성 선수잖냐. 미래의 슈퍼스타를 보는 건 우리 팀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겠어?”


그렇게 말하면서 웃으며 형과 대화를 하는 모습에 나는 왠지 눈꼴이 시렸다.


“혹시 다음에 칠 사람 있어?”


그러자 순식간에 손을 드는 선수들. 하지만 나는 이들을 모두 비집고 나가 배트를 직접 붕붕 휘둘렀다.


“내가 쳐준다.”


나는 얼마 전까지는 바로 타자였다. 비록 투수로 전향을 하긴 했지만!


“오케이. 그럼 총 다섯 번 던질 테니까 한 번이라도 치면 네가 이기는 거야.”


“아니, 승부를 한다는 얘기는...”


그건 좀 부담스러운데... 하지만 내 의사와는 다르게 주변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이야, 형제 대결이다!”


“비록 한 쪽으로 밸런스가 쏠려 있지만!”


이씨. 뭔가 이상한데.


“뭐 걸려 있는 건 아니지?”


나는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그러나 형은 의미심장한 웃음만을 지을 뿐이었다. 아, 불안한데.


“뭐, 그러면 그렇게...”


찜찜한 느낌을 받으며 나는 나무 배트를 들고 그렇게 타석에 들어섰다. 김수영이 포수를 보고 있었다.


“야, 좀 쉬운 코스로 주면 안 되냐?”


“응 안돼. 너희 형은 눈치가 빨라서 다 알아채고는 그리로 안 던지거든.”


거 참. 정이 없군. 여기서는 어쩔 수 없다. 오로지 나의 개인 능력, 운에 기댈 수밖에!


“다섯 번이면 거의 타석 2개쯤이니까 그중 한 번은 칠 수 있겠지...”


나의 중얼거림을 들은 형은 피식하며 웃었다.


“나한테 다섯 번의 투구는 타석 4개야.”


아주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말들을 계속하는군. 나는 그 말에 대강 대답하며 재촉했다.


“예이, 빨리 던지기나 하쇼.”


간장, 아니 긴장되는 순간! 형의 팔이 위로 솟는 순간, 순식간에 공 한 개가 미트의 정중앙에 꽂혔다.


파앙!


“스트라이크!”


어우 씨, 뭐야. 총알인가? 나는 애써 침착하며 모자를 다시 고쳐 썼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파앙!


...보였다! 내가 지는 미래가! 어떻게 저게 사람이 던지는 공인지 모르겠다.


파앙!


파앙!


“역시 그른 것 같지?”


“저걸 치는 게 더 신기하지...”


주변에서 친구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달아 미트로 꽂히는 공들. 엄청난 페이스에 나는 배트 한 번 휘두르지 못했다. 어쩌다 휘둘러도 허공만을 흔들 수밖에 없는 공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승산이 있는 점은 변화구는 던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4구 연속 빠른 직구.


이번에 어떻게 집중하면 때려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공은 내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은 채 또다시 날아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공만큼은 이상하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마치 과거에 사진 한 장처럼 남아있는 그 장면처럼.


공의 실밥 하나하나가 보일 정도로 주변이 느려지는 기분. 점점 더 느려지다가, 어느 시점이 다가오자 순간 완전히 멈춰있는 듯한 기분.


이거다!


나는 온몸의 힘을 끌어다가 멈춘 공을 향해 배트를 휘둘렀다. 그런데-


공이 어째 떨어진다...?


타악!


공은 외야로!


외야로.


“외야 플라이!”


과거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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