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최근연재일 :
2021.08.25 00:21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911
추천수 :
88
글자수 :
118,855

작성
21.08.16 23:56
조회
133
추천
2
글자
12쪽

잠시, 대회 전의 일(4)

DUMMY

“뭐야, 여긴 왜 왔어.”


부르지도 않았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등장이었다, 그러나 정작 신지혜는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우성 오빠도 이 근처에서 경기하니까 겸사겸사 응원하러 왔어.”


그러고 보니 형도 대회 기간이었군. 같이 훈련을 하고 있을 때 직접 말해줬었다. 기간이 겹치는 것은 알았지만 장소도 비슷한 줄은 몰랐다.


흠. 딱히 날 보러 온 것은 아니었군.


“아, 그래.”


나는 왠지 시원섭섭한 감정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네 지금 경기하는 거 아니었어? 왠지 한가해 보이는데.”


지금 막 와서 대회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한가해 보이다니... 사실 한가한 것은 맞았다. 미리 준비되어있는 연습용 운동장이 적어서 우리는 오후 훈련만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일부터니까.”


“그렇구나...”


하지만 대회를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약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마냥 놀 수만은 없겠다.


“그러면 우성 오빠 경기는 오전이니까 좀 볼 수 있지 않을까?”


정신을 가다듬고, 아니면 혼자서 러닝훈련이라도 진행하면서 몸 상태를 끌어올려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 대회인 만큼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음...”


그래도 잠깐인데. 혹시 괜찮지 않을까. 문득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으으, 안돼!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어쩔 수-”


“아니, 생각해보니 너도 곧 있으면 대회 시작하는데. 어쩔 수 없겠네.”


신지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못 간다고 말할 참이었다. 역시 이 시점에서 팀의 에이스가 놀러 다닐 수는 없는 법이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나는 머리를 조금 긁적였다.


그때, 숙소의 입구 쪽으로 걸어 나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코치님이었다.


“응? 여기서 뭐하냐 성우야? 그리고 넌 저번에 방우성 선수랑 같이 다니던...”


“아, 신지혜라고 합니다.”


신지혜는 재빠르게 코치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여기서 뭐 하고 있어?”


“그냥 성우 오빠 경기 보러 가기 전에 잠시 얘 응원할 겸 들린 거예요.”


“흐음. 그렇구나.”


코치님은 잠시 턱수염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더니 말을 이어갔다.


“마침 잘됐네. 지금 얘도 데리고 그 경기 보러 가려고 했었거든. 같이 가지 않을래?”


“예?”


뜻밖에도 코치님은 우리를 보고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




우리를 태운 승용차가 형이 있는 경기장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코치님은 운전대를 잡고 바로 옆의 조수석에 타 있는 나에게 말했다.


“너는 투수로서의 실전 감각이 다른 뭣보다 가장 떨어져 있단 말이지. 애초에 투수가 된 지 1달여밖에는 안 지났으니까.”


“그렇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전 감각이라.


“그래서 너는 더 많은 경기를 봐둘 필요가 있어. 특히 실력 있는 투수의 움직임을 말이야.”


그래서 내가 지금 차를 타고 신지혜랑 같이 경기를 보러 가고 있는 거구나. 그렇게 뜬금없는 이유는 아니었군.


“방우성 선수는 아마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면 아마 바로 콜업되서 경기를 뛸 수 있을 정도의 수준 있는 투수지. 너희 형이기도 하고. 아무튼, 잘 봐 둬라.”


코치는 우리 형을 치켜세우며 이야기했다.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었다. 늘 형은 대단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형이 말했던 그 어처구니없는 상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프로에서 형제 대결이니, 양대산맥이니.


대체 어떻게 생각을 했으면 지금의 나를 두고 거기까지 따라오라는 것인가.


“...열심히 봐 둬야죠.”


그래도 따라갈 수 있을 만큼은 따라가 보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 그걸 위해서는 열심히 보고, 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쟤는 벌써 자네. 피곤했나?”


코치님이 문득 유리 너머로 푹 자는 신지혜를 보며 말했다. 음. 저건 피곤하다기보다는.


“옛날부터 멀미를 심하게 했거든요. 그래서 차만 타면 저래요.”


한 번은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다가 하마터면 학교 얘들이 많이 타고 있는 그 한가운데에서 토를 하는 대참사가 날 뻔했다.


그 이후로 녀석은 학교나 시내 같은 약간 거리가 있는 곳을 갈 때도 늘 걷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잘 아는구나.”


엇. 뭔가 잘못 걸린 것 같은데.


“어릴 때부터 자주 본 녀석이라서요.”


“그렇겠지.”


코치님은 뭔갈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아, 진짜.


“사실 너 딱히 안 데려갔어도 됐었어.”


내가 부루퉁하게 고개를 돌리고 창문 밖을 바라보자 코치님이 말했다.


“그런데 딱 보니까 가고 싶어 하는 게 티가 나더라고.”


아무래도 전의 대화 내용을 다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인식하니 문득 부끄러웠다. 티가 많이 났나.


“대회 딱 하루 전날인데 안 가는 게 맞지 않았을까요?”


나는 문득 모르는 체하며 말했다. 이 대화 주제를 더 끌고 가면 곤란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야 뭐. 그렇긴 하지.”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고는, 한마디를 추가했다.


“그래도 사실 야구가 전부는 아니잖냐. 인생의 전체를 보면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코치님의 얼굴은 왠지 씁쓸한 기운이 감돌았다. 코치님도 뭔가 나름의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나는 모를 이야기이지만.


나는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이 싫어 일부로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거 대회 전날에 코치님이 하실 말씀은 아니지 않나요.”


“그건 그렇긴 하지.”


코치님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문득 앞 거울을 통해 신지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설마 깨어있던 것은 아니겠지?


이러한 걱정을 잠시 마음속에 품었지만, 움찔거리는 기색도 없이 곤히 자는 모습에 다시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차는 계속해서 달려갔다.


우리는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형이 출전하는 대회 경기장 앞에 도착했다.


“자, 다 왔다. 일어나.”


“어... 벌써 왔네...”


신지혜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밖에 나서니 거대한 경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고등학생 정도 되면 꽤 큰 곳에서 경기하는구나.”


나는 그렇게 중얼거려보았다. 저번에도 구경하러 온 적이 있어서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은 경기의 모든 요소가 관찰의 대상이었기에, 마음가짐이 다르니 새삼 다르게 보였다.


“너도 저기서 곧 뛰게 될 텐데 뭘.”


신지혜가 날 쿡 찌르며 말했다. 나는 괜히 아프지도 않았는데도 찔린 곳을 문질렀다.


“모르는 일이지.”


고등학생 때도 계속 야구를 이어갈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정해져 있는 듯싶었다.


“내가 보기엔 너 계속 야구하면서 살아갈 것 같은데.”


녀석은 나를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그렇게 말했다.


“무슨 확신인지 모르겠네.”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하면서 우리는 관중석에 들어갔다. 역시 아직 예선 경기였기에 경기를 보러온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애초에 고교야구의 인기 자체가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었지만.



“한적하고 좋네.”


“난 이왕이면 경기장이 꽉 차있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코치님이 자리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마 한 8강 정도 되면 TV에서 직접 중계도 해주는 모양인데요.”


“에잉, 난 관중석에 사람이 있는 게 더 좋아. 그래야 고교야구도 좀 발전을 할 텐데.”


잡담을 나누는 사이, 경기장에 서서히 선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명 고등학교와 서신포 고등학교. 참고로 형이 있는 팀은 하명 고등학교였다.


“하명 대 서신포라. 서신포가 아무리 약팀이라지만 솔직히 한 개 빼고 객관적인 지표로는 비등비등한 팀들이지.”


어라? 분명 작년에 8강인가 4강까지 갔는데 하명 고등학교가 약팀인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비슷하긴 하죠. 성적 차이는 많이 나지만.”


신지혜가 코치님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우성 선수 하나 차이가 그렇게 큰 거지. 저기 재작년에 우성 선수가 없을 때까지만 해도 대회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팀이었거든.”


“흐음.”


그랬구나. 나는 팀도 그런대로 강한 팀인 줄 알았다.


“저기 수비적인 지표는 좋지만, 타격이 영 꽝이라서 말이야. 보통 이기는 경기들을 보면 대부분 1대 0, 아니면 2대 0. 뭐 이런 식으로 이길 때가 많지.”


“사실 보면 수비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죠.”


그렇게 신랄한 말들을 쏟아내는 두 사람을 보니 문득 형이 불쌍해져 오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싸움을 하는 거야, 형.


“그래도 아마 내년 되면 좋은 영입들이 많이 생기겠지. 네 형의 이름값으로.”


코치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뭐야. 왜 날 봐.


“음, 뭐. 그렇겠죠.”


“아, 경기 시작했다.”


신지혜는 나를 툭 치고 경기를 바라보게 했다.


1회는 하명고의 수비. 시작하자마자 형이 마운드 위에 올라서는 모습이 보였다.


“씨이, 우승을 노리려면 예선에서는 좀 아껴줄 필요가 있는 거 아니야?”


신지혜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하명고의 감독이 서 있는 자리를 째려보았다.


잠시 뒤. 경기 시작이 선언되었고, 형은 경기의 첫 구를 쏘아 보냈다. 멀리서도 묵직하게 들려오는 미트 소리.


“스트라이크!”


그리고 경쾌하게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이 울려 퍼졌다.


“캬, 언제봐도 우성 선수 공은 엄청나단 말이야.”


코치님의 감탄에 힘입었는지 형은 연달아 두 개의 공을 빠르게 투구하여 순식간에 첫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었다.


“아웃!”


“오늘 우성 오빠 컨디션이 좋은 모양이네.”


“그러게.”


이런 말을 하는 사이 순식간에 쓰리 아웃. 삼진 두 개에 플라이 아웃 하나로 총 6개의 공으로 첫 이닝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나와 있는 하명고의 타자. 굉장한 집중력으로 서신포 투수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삼진 한 개에 플라이 두 개...”


완전 비슷하구만. 이러면 힘들여서 공을 던져봤자 보람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어디랑 완전 똑같네.”


이를테면 기로 시작해서 경으로 끝나는 중학교 말이다. 참고로 중간 글자는 없다.


완벽한 투수전. 그렇게 불릴 정도로 빠르게 끝나가는 이닝들 속에서 드디어 6회에 서신포고의 첫 주자가 나왔다.


“저걸 놓치냐.”


내 입에서는 저절로 그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주 간단한 뜬 공을 놓친 한 우익수 덕분이었다.


그렇게 주자는 2루까지. 그런데도 형은 아주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여유가 넘치는 게 아니라 그냥 받아들인 거래. 자기가 직접 그렇게 말했거든.”


신지혜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해주었다. 아... 정말 행복한 야구를 하고 있구나. 여유가 아닌 환장 수비를 너무 맛봐서 이제는 무덤덤해진 형의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방망이에도 맞추지 못하게 아예 다음 주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이닝을 마무리하는 모습이었다.


그대로 0대 0으로 9회 말까지 끌려간 경기. 타석에 형이 이번에는 방망이를 휘적이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 3타수 3안타. 그런데 득점 없음...”


팀의 추가적인 안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야, 그나저나 오늘 홈런 한 방 때리면 싸이클링 히트 아니냐? 괴물이네 완전.”


코치님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이제 홈런이 한 방 나온다면...


따아악!


경쾌하고 묵직하게 울린 타격음.


“어어? 이쪽으로 오는데?”


쿵!


덥썩!


엉겁결에 홈런볼을 손에 쥐게 된 신지혜. 그리고 이쪽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형이 보였다.


...설마 의도적으로 여길 향해 홈런을 때린 건 아니겠지. 정말 사람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카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본선 +1 21.08.25 56 0 11쪽
22 예선(5) 21.08.23 64 1 12쪽
21 예선(4) 21.08.21 89 1 12쪽
20 예선(3) 21.08.20 94 1 11쪽
19 예선(2) +1 21.08.19 115 3 13쪽
18 예선 21.08.18 110 2 12쪽
17 잠시, 대회 전의 일(5) 21.08.17 121 1 12쪽
» 잠시, 대회 전의 일(4) +1 21.08.16 134 2 12쪽
15 잠시, 대회 전의 일(3) +1 21.08.14 152 2 12쪽
14 잠시, 대회 전의 일(2) 21.08.13 151 2 11쪽
13 잠시, 대회 전의 일 21.08.12 160 1 12쪽
12 연습 경기(5) 21.08.11 160 2 13쪽
11 연습 경기(4) 21.08.10 172 1 12쪽
10 연습 경기(3) 21.08.09 197 1 12쪽
9 연습 경기(2) +4 21.08.07 235 2 12쪽
8 연습 경기 21.08.06 267 1 12쪽
7 시작 21.08.05 300 3 12쪽
6 평범한 동생(5) +1 21.08.04 295 4 12쪽
5 평범한 동생(4) +1 21.08.03 310 8 11쪽
4 평범한 동생(3) 21.08.02 343 8 11쪽
3 평범한 동생(2) 21.07.31 403 13 12쪽
2 평범한 동생 21.07.30 454 14 12쪽
1 프롤로그 21.07.30 530 15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