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초를 비료로 (2)
경연에 참석한 영섭이 운을 떼었다.
“오늘은 염초 만드는 것과 이를 정제하는 법식을 논할 것이다.”
영의정 김육이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야 라는 표정으로 영섭을 바라보았다.
“허나 전하. 이미 지난 인조대왕 시절 정두원(鄭斗源)이 북경에 사신으로 갔다가 염초 굽는 법을 배워 가지고 왔고, 이에 그 법을 전수하여 익히게 하여 그 용도를 넓혔습니다.”
병조판서 이완이 말하자 좌의정 정태화가 거들었다.
“병판의 말이 가 하다 하겠습니다. 또한 지난날 이서(李曙)라는 자가 ‘신전자취염소방언해’ 라는 서책을 내어 그 과정을 세세히 알렸습니다.
서책에 따르면 취토(取土 : 흙 모으기)’, ‘취회(取灰 : 재 받기)’, ‘교합(交合 : 섞기)’, ‘사수(篩水 : 물 거르기)’, ‘오수(熬水 : 물 달이기)’, ‘재련(再煉 : 다시 달이는 법)’, ‘삼련(三煉 :세 번째 달이는 법)’, ‘예초(刈草 : 풀 베기)’, ‘교수(膠水 : 아교 넣기)’, ‘합제(合製 : 섞어 찧기)’ 로 되어있어 책을 읽은 모두가 염초를 구워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영섭이 그런게 있었냐는 표정으로 중신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서책이 있었는가?”
“예 전하.”
침묵.
영섭이 즉위 후 처음으로 말문이 막히자 중신들은 당장 경망스럽게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욕망을 억눌렀다.
이 얼마만에 통쾌한 승리던가. 그간 벌벌 떨던 나날에서 해방되-
“그런데 왜 나라에 염초가 부족했던 것인가?”
침묵
중신들이 생각하기에
‘그래. 화약 만드는 법도 알고 체계화 되어있는데 병자호란때는 왜 화약 없어서 못 싸웠는가?‘ 하는듯 하였다.
병조판서 이완이 말했다.
“이는 염초를 굽는데 많은 폐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폐단이라?”
그러자 정신을 차린 영의정 김육이 나서 말했다.
“염초 굽는 폐단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신은 우선 그 한두 가지를 들어서 논하겠사옵니다.
각도 관청 근처 고을이라면 그래도 괜찮다고 하겠으나, 관청에서 먼 곳에 사는 고을 백성들이 겪는 폐단은 매우 심하옵니다.
염초를 채취할 수 있는 흙은 없는 곳이 없는데, 취토장(取土匠)이 뇌물을 받은 곳에서는 있는 것을 없다고 하여 조금만 취하고,
뇌물이 없는 곳에서는 없는 것을 있다고 하여 잡토(雜土)를 많이 파내니, 소나 말이 잇달아 끊임 없이 싣고 오지만, 이를 쓸 데가 없었사옵니다.
그러나 도리어 취토장이 ‘내가 파낸 흙이 아니라.’ 핑계하고 잘못을 흙 싣고 온 사람에게 돌리는 일이 또한 많았사옵니다.
또 각 지방관은 염초 굽는 실적에 따라 나라에서 논의하여 상을 주고 격려하는 은전이 있기 때문에,
비록 백성들을 사역 시키는 것이 기한이 있지만 그 기한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소출이 다른 고을에 비해 배가 되도록 조정에 보고하니 이 어찌 큰 폐단이 아니라 하겠사옵니까?”
그러니까, 초석을 구울 흙을 얻으려 취토장이라는 관리를 파견했더니 뇌물을 받아먹고선 정작 좋은 땅은 파헤치지 않고 엉뚱한 땅만을 파헤쳐 쓸모없는 흙만 긁어오는데다,
지방관을 평가할 때 초석을 구워 올리는 것도 점수에 포함시키니 백성들을 들들 볶았다는 것이다.
김육이 말을 끝내자 예조판서 김자점도 거들었다.
“소신이 지난날 청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에 각 고을에거 염초의 폐단에 대해 들었습니다.
큰 고을은 으레 사십 근을, 중간 고을은 삼십 근을, 작은 고을은 십오 근을 달마다 장만하여 바칩니다.
이에 각 도을에서는 도저히 염초를 구워 만들 수 없으므로 모두 면포로 사는데, 염초 한 근 값이 두 필이나 되어 생활을 지탱하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오늘날 나라를 보면 포수와 총수의 수는 적은 듯하고 염초의 수는 많은 듯하니, 충분히 염초를 대어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영섭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염초 만드는 폐단이 이리도 널리 퍼져있으니 이를 마땅히 폐하는게 옳은 것이라 하겠다.”
그러자 병조판서 이완이 크게 놀라 영섭에게 말했다.
“전하! 스스로 염초굽는 것을 그만두는 것은 군국의 사무를 포기하는 것이요, 나라의 운명을 스스로 풍전등화에 갖다놓는 것이니 통촉하여주시옵소서.”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영섭이 조선에 와 들어본 두번째 ‘통촉’ 이었다. 또다시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붙잡고 영섭이 말했다.
“아니, 방금은 폐단이 심하다 하였고 이제는 이를 폐하려 하니 나라를 스스로 버린다 하니 중신들의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니 병조판서 이완이 말했다.
“염초 굽는 폐단이 심하기는 하오나, 백성들로 하여금 염초 굽는 것 외엔 방도가 없는것이 사실인지라..”
영섭이 의아해 하며말했다.
“왜국과 전란이 없어진 지 오십년이 넘었으니, 이들과 통상하여 염초를 사오는 것은 어떠하겠는가?”
그러자 영의정 김육이 말했다.
“분명 왜인들은 은자 되는 것이라면 뭐든지 파는 족속들이니 염초 또한 팔 것이니, 그렇게 되면 군국을 저 왜인들의 손에 놀아나는 꼴이나 다름없다 하겠사옵니다.”
우의정 원두표도 김육을 거들었다.
“지금이야 전란이 없지만, 지난 천년간 역사를 짚어볼 때, 나라에 힘이 없고 혼란할 때 항상 왜가 침범하여 백성과 재물을 해하였사옵니다.
만약 왜가 나쁜 마음을 먹어 다시 조선으로 칼을 향한다면, 그 때는 우리 스스로가 염초를 구워 화약을 만든다 하여도 늦은 것이옵니다.”
하니 영섭이 스스로가 잘못 생각했음을 깨닫고 말했다.
“과인이 군국에 아직 심려가 깊지 못하였다.”
패배를 인정하고, 넘어갈건 넘어가야 했다. 여기서 더 우겨야 본전도 못 찾을게 분명했다.
반대로 중신들은 오늘이 무슨 날이냐며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애써 숨겼다.
영섭이 저리 힘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니 쥐어짜이듯 살아온 지난 이 년여가 눈앞에 스쳐지나가는 듯 했다.
이를 더 몰아부쳐, 여러 지역에 흩어져 세력을 키워가는 근왕파 농협과 각지 상단들의 기세를 좀 꺾어놓으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중신들이 다가올 미래를 낙관하며 있을 때 영섭이 말했다.
“그러하면, 각 지역에서 어떻게 하면 염초를 더 쉽게 구워 군국에 보탬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자 예조판서 김자점이 말했다.
“지난 선조대왕 시절 바다 흙으로 염초를 구워내는 일을 도감군과 명나라 사람들이 합하여 시도해 보려 하였으나 실효를 얻지 못하다가, 명나라 서천(舒川)사람 임몽(林夢)이 염초를 구워내는 일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험하여 성공을 거두었던 일이 있습니다.
당시 도감으로 찾아와 말하기를 ‘어떤 곳에 가서 흙을 구워보기를 원한다.’ 하니 관원을 대동하여 남양도호부 인근 바닷가로 데리고 가 굽도록 하였더니 닷새 사이에 바다 흙으로 구운 염초 한 근과 함토, 바다 흙을 합하여 구운 염초 세 근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로 화약을 만들어 시험삼아 쏘아 보았더니 성능이 뛰어나 쓸 만하였으므로 모두가 기뻐하였는데,
필요한 바다 흙은 반드시 사람과 말들이 밟고 다닌 염전에서 취하고 바닷가의 숲이 많은 지역을 찾아서 많은 양을 구워낸다면 힘도 덜고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거라 하였습니다.
전례를 따라 바다 흙과 바닷가 숲 흙을 캐어내 초석을 구워낸다면 앞서 백성들에게 가해지는 폐단 역시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 입니다.”
영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참으로 좋은 방안이다. 당시 임몽이라는 자가 남긴 염초 굽는 법식이 도감에 남아있는가?”
하니 병조판서 이완이 말했다.
“소신 훈련대장으로 임하였을 때, 예판이 언급한 일을 들은 적 있사옵니다. 허나 상세한 법식은 알지 못했으므로 사람을 시켜 굽는 법식을 상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혹 시급히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 인근 고을 백성들을 채비하여 또 다른 폐단이 생기지 않게 해야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허면 바닷가 고을이 아닌 곳은 어떻게 하면 백성들에게 가해지는 폐단을 줄이면서도 염초를 구울 수 있겠는가?”
하니 중신들이 제각기 으음 옛 일에.. 하며 누구 하나 시원하게 답하는 자가 없었다.
“좋은 법식이 없겠는가.”
중신들이 여전히 서로 눈치만 보기에, 보다못한 영섭이 말했다.
“하여, 내가 고민해본 바가 있으니 중신들은 들어라.”
영섭이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려 하는지, 영의정부터 귀가 쫑긋했다.
“으레 염초굽는 흙을 모을 때 변소 근처 흙이나 처마 밑, 아궁이에 있는 흙을 긁어모은다.
다른 흙이 아닌 이 흙에서 염초가 나는 까닭은 쥐, 개, 닭 같은 짐승의 분변과 타다 남은 재, 석회가 오랫동안 가라앉아 그 흙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공조판서 신속이 순간 깨달은게 있어 말했다.
“짐승의 분변이라 하셨사온데, 그렇다면 사람의 분변또한···”
“그렇다. 사람의 분변을 흙과 재, 석회에 오랫동안 가라앉히면 이 역시 염초를 굽는 흙이 될 것이다.”
그러자 병조판서 이완이 고개를 갸우뚱 하며 말했다.
“전하, 여지껏 전하께서 하교하신 법식으로 염초 굽는 것은 그 유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청나라에 있을 적, 자초신방(煮硝新方) 이라는 서책에 쓰여있었다. 그 책으로 하여 청인들이 사람 분변이 녹아있는 흙을 캐어 염초 굽는것을 보았다.”
하니 이완이 고개를 숙이며 어쩔줄 몰라했다.
“소신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되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배울 것은 배워야지 않겠는가.”
영섭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하여 각 도 농협 집정들에게 일러, 마을마다 만민공동변소를 설치하겠다.”
그러자 중신 모두가 순간 잘못들었나 하는 표정으로 영섭을 바라보았다.
“만민공동변소라 하셨습니까?!”
영의정 김육이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렇다. 공동변소로 하여금 마을 사람들의 분변을 모두 모아 감자마저 심을 수 없는 거친 땅을 골라, 그 위에 염초밭을 일궈내면 될 것이다.”
“전하, 지난번 경연 때 하교하신바, 사람의 분변 또한 좋은 거름이라 하셨사온데 이를 한데 모아 염초 만드는데 쓴다면 거름으로는 쓰지 못하는게 아니겠사옵니까?”
“영의정이 잘 이야기 하였다. 염초밭을 일군다 하더라도, 염초란 기물은 본래 습에 취약하여 청에서도 쉽게 구워내지 못 한 것이다. 허나 염초를 굽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기운이 어디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염초를 소출하지 못한 염초밭 흙은 거름으로 써도 가 할 것이다.”
그러자 좌의정 정태화가 말했다.
“허나 전하 농사짓는 고을에서야 공동변소가 있으면 농사짓는데 도움이 될 것인즉, 도성과 같은 농사 짓지 않는 고을이라면 오히려 또다른 폐단이 되지 않겠습니까?”
영섭이 웃으며 말했다.
“좌의정의 말에 일리가 있으나, 사람들이 분변을 마구 내다버리므로 우물물이 짜고 냇다리 석축에 사람 변이 더덕더덕 말라 붙어있는 것은 보지 못하였는가.
이를 한데 모아 농사짓는 고을로 보낸다면, 도성은 청결해질것이요, 우물물은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며, 농사짓는 고을은 거름이 생기거나 염초를 구울 수 있게 되니 어찌 폐단이라 하겠는가.”
“허나 전하께서 하교하신대로 한다면, 누가 공동변소에 분변을 모을 것이며, 누가 분변을 땅에 뿌려 일궈내겠사옵니까?”
영섭이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나라에 죄 지은 이들이 있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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