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청 근위척탄여단 (2)
“제독 대인! 조선군입니다! 약 천 오백! 기병은 없습니다!”
부관이 상기된 표정으로 천리경을 들어 보더니 아오바이를 향해 외쳤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푸른색 옷을 입고 머리엔 검고 길다란 모자를 쓴 군사들이 보였다.
다만 다른 조선군과는 달리 서로가 어깨가 닿을 정도로 빽빽하게 서있는 것이 좀 의아할 뿐. 아오바이는 귀찮은 파리떼가 나타난 것 마냥 손을 저었다.
“조선군? 강화에 있는 놈들은 저 성에 다 모여있던게 아닌가? 저 놈들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거야!”
“제독 대인! 조선의 응원군 일 수도 있습니다!”
“응원군? 당장 성이 넘어가게 생겼는데 이제와서? 고작 일천 오백 가지고 뭐 어쩌겠다는 건지! 거기다 기병도 없이 저리 몰려있는데 몰살당하기 딱 좋겠구나!”
칼카 (방패차) 일천을 넘게 투입하여 이제 막 공성에 들어갈 차에 등장한 조선 응원군은 아오바이에겐 그저 귀찮은 장애물 하나가 추가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왕 싸우러 왔다니 홍이포 몇 번 쏴서 물러가게 해라!”
아오바이가 콧방귀를 뀌며 손을 젓자 부관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제독 대인.. 홍이포를 쏠 화약이 없습니다..”
“뭐?”
아오바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화약이 없다고? 대체 왜?
“상륙 첫날 화약을 실은 소선 한 척이 대파된 이후 화약을 모조리 걷어 다시 나누었지만.. 조총병은 서른 번 정도 쏠 화약을 갖고있었고 홍이포는 열 번 가량 쏠 화약이 있었습니다.”
“그거야 진작 그리 한게 아니냐?”
“헌데 조선놈들의 화포며 총탄이며 저항이 거센 바람에 대응하느라 화약을 많이 소모했으니, 지금은 조총병은 열 번 가량 쏠 화약이 남아있고, 홍이포는.. 남은 화약을 다 긁어모아야 한번.. 어쩌면 두번 정도 포격이 가능합니다.”
부관의 말에 아오바이는 끙 하는 소리를 내었다. 화포를 쓰지 못한다. 그렇다면 공성중인 병력을 빼야 하는가?
저 얇게 늘어선 조선 군사들은 아오바이가 보기에 그다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들이 노리고 있는 위치가 문제였다.
지금 청나라 군사들은 방패차를 앞세우고 공성진을 펼쳐 나아가려 하는데 저 조선 응원군이 취약해진 측면을 제대로 노리고 있었다.
적의 숫자야 겨우 일천 오백 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저 군사들에게 측면을 그대로 내어주게 된다면 전선은 자칫 붕괴 해버릴 위험이 컸다.
그렇다면 저 조선 응원군을 막을 방법이 영 없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공성을 펼칠때 기병의 역할은 작아진다. 아오바이는 부관에게 공성에 참여 하지 않고 예비로 남겨두었던 철기들을 모두 불러오라 명했다.
“철기 모두를 말입니까?”
부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능선에 나타난 조선군을 잡으려 예비로 남겨놓은 철기 팔백을 모두 소집하다니?
“그렇다 저 조선놈들이 감히 이쪽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정신을 쏙 빼줄 것이다. 철기가 당장이라도 들이칠 모습을 보이면 저 놈들도 함부로 움직일 생각 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저놈들이 조총탄을 쏟아내기라도 한다면 철기가 그대로 맞아 손해가 심할 것입니다!”
“그래서 네 녀석에게 저 정예한 상황기(鑲黃旗)를 맡기는게 아니겠느냐?”
“제독 대인..!”
아오바이는 그의 씨족이자, 최정예 팔기인 상황기를 직접 지휘하지 못한다는 것에 내심 아쉬웠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본대의 측면을 노리는 저 조선군 응원군의 기동을 차단시켜야 했다.
화약이 없어 화포를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 얇으면서도 강인해 보이는 푸른색 띠를 제압하려면 결국 철기가 답이었다.
겸사겸사 그를 따르는 부관도 이번에 군공을 세우게 해야 훗날 제독의 자리까지 오를것이 아닌가.
“조총은 걱정마라. 아무리 조선놈들이 총을 잘 다루고 화약이 많다 한들 저 총탄이 갑옷을 뚫고 들어온 적이 있더냐.”
여태껏 아오바이가 보아왔던 조총들은 백 보 안에서 맞아도 팔기가 입고 있는 갑옷을 뚫어낼 수 없었다. 어쩌다 가끔 운 없는 자들이 맞아 부상당하거나 말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그거야 뭐 전쟁터라면 흔히 있는 일이 아니던가.
다만 아오바이는 부관이 침착히 저 조선놈들을 견제 하기를 바랬지만 어떤지 팔기를 인솔하려는 부관의 표정과 목소리는 조금 들떠 있었던 것 같았다. 아오바이는 막 진형을 갖추어 떠나려는 부관과 상황기를 바라보며 신신당부했다.
“부관! 절대로! 적이 절대로 어떤 진형을 갖춰 나오더라도 휘말려선 안 되고 그저 적이 이곳으로 진격 하지 못하도록 견제 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러자 부관이 웃으면서 자신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제독 대인! 염려 놓으시지요. 제독 께서 순수 선발하여 데려온 상황기 일족이 아니겠습니까! 제독의 군령을 따라 적을 ‘견제’만 하겠습니다! 심려치 마십시오 대인.”
부관이 유독 ‘견제’ 에 힘을 주어 말한 듯 싶었지만, 아오바이는 그저 부관이 잘 해내길 바랬다. 또 그가 아는 부관은 충분히 잘 해낼 이였고.
“반드시 명심하라고! 상황기는 씨족 하나라도 잃어서는 안 되는 이들이야! 적이 어떤 술수를 부리든 반드시 말려들어서는 안 돼!”
“걱정 마십시오 대인!”
하며 부관이 씩씩하게 군례를 올리고 모여든 철기 앞에서 외쳤다.
“위대한 상황기 씨족의 전사들이여! 저 능선에 조선군이 보이는가!”
“예!”
“좋다! 저 놈들이 이쪽으로 오지 못하게 막는 동시에..”
부관은 철기병들을 바라보며 욕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이 감히 청나라를 넘볼 수 없게 ‘견제’ 한다. 알겠는가!”
‘견제’ 라는 의미를 알아들은 철기병들은 서로 음흉한 표정으로 창과 활을 매만졌다. 모르긴 몰라도 이 강화도 라는 섬에 온 이후 군공을 크게 세울 것만 같았다.
***
“사제왕이시여! 타타르의 기병들이 오고있습니다!”
어느새 영섭의 옆에 철썩 달라붙은 몰타 기사단장 마르탱이 능선 저 멀리 아래서 이쪽으로 다가오려는 기병들을 보며 외쳤다.
“저 놈들도 뭔가 급한게 있구나.”
굳이 능선에 있는 보병들을 상대하려고 저 귀한 기병을 따로 빼내어 급히 이쪽으로 보내는 걸 보면 분명 이쪽을 크게 의식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저들은 뭐가 급할까.
공성중에 측면이 공격당해 전열이 붕괴되는것이? 아니다. 척탄병과 화차의 순간 화력은 뛰어나지만 기동력은 좋지 못하다. 저 방패차를 돌려 이쪽으로 향했다면, 좀 더 어려운 싸움이 되었을 터.
그렇다면 왜 기병을 보내어 척탄병들의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것일까. 물론, 기병과 보병의 상성은 좋은 편이겠지만 화포와 보병의 지원 없이 기병만 단독으로 전개한다?
잠깐. 화포?
영섭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눈으로 적진을 훑으며 홍이포의 존재를 찾았다.
“정찰대장!”
영섭이 소리치자, 관목들 사이에 웅크리고 있던 정찰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 박경지(朴敬祉) 가 전하의 부르심에 왔사옵니다!”
“그래. 청군의 화포는 찾았느냐?”
“아까 정찰 초 하나가 들었기를, 두 각 (30분) 전에 마지막으로 적진에서 포성이 울리지 않았다 하였사옵니다!”
“그렇다면···”
적 방패차와 강화성 까지 거리는 아직 육백 보 즈음 남은 상태. 조금 과감한 지휘관이라면 공격준비사격을 멈추지 않았을 터.
영섭은 지난 생에서 월남에 있을 때 미군 수병 엥그리코 맨들이 떠들기를 Danger Close의 범위를 600미터라 하였던 기억이 났다.
지금 저 청나라 놈들이 쏘아대는, 훨씬 위력이 떨어지는 홍이포 정도라면 삼백 보 정도까지 공격자 우군의 피해 없이 성벽을 향해 포를 쏘아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적이 포를 쏘지 않는 것.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능선의 적에 포를 쏘지 않는 것. 그 이유는 딱 하나라 생각이 들었다.
화포에 어떻게든 화약과 철환을 넣으면, 포가 폭발하는 한이 있더라도 방포는 된다. 그리고 성에서는 도저히 홍이포가 있는 진지를 타격할 수 없을터이니 포를 다루는 자들도 그대로 있을 것이다.
남은 선택지는 하나.
‘놈들에게 화약이 없다!’
월남에서도 탄약과 물은 거의 매일 재보급 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저 놈들이 여기 강화도에 상륙한지도 벌써 열흘 가까이 되었을 터. 재보급이 될리는 만무할 터이니 지금 저들의 화약 재고 수준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화약이 없으니 포를 쏘지 못하는 것이고, 갑자기 등장한 보병들을 견제하긴 해야겠으니 서둘러 기병을 보내어 아군의 기동을 막으려는 셈이였다.
영섭은 이 가설만큼 적의 상황을 훌륭히 묘사하는건 없다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몰타 기사단장에게 외쳤다.
“마르탱 단장!”
“부르셨나이까!”
“기사단 전부를 중앙으로 모아주시게! 저 기병을 상대할 터이니!”
“왕이시여! 진실로 우리 기사단을 선봉에 세워주시는 것입니까!”
“그렇다! 다만 적의 공세가 집중될테니 단장은 절대로 방진을 풀어서는 안되네!”
“알겠나이다!”
***
아오바이의 부관이 상황기 팔백여를 이끌고 저 멀리 장창을 들고있는 조선 응원군 진영에 사백보 앞 까지 도달했을때, 갑자기 총탄이 날아들었다.
일격에 당황한 것은 부관뿐만 아니라 다른 상황기의 기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적이 쏜다! 거리 사백보!”
그들을 더 당황시킨것은, 사백보 넘는 거리에서 총탄이 날아와 갑옷을 뚫었다는 것이었다.
철기 하나 둘 피를 토하며 말에서 떨어지자, 부관은 저들도 영총이라는 것을 갖고있음을 눈치챘다.
“모두 물러나야한다! 저 조총 사거리 밖에서 저들을 견제하겠다!”
부관의 다급한 외침에 철기들이 서둘러 기수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철기 팔백여가 갑자기 기수를 반대로 하여 도망가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
앞선 말이 전열을 뚫고 후퇴해버린다면, 자연스레 대열 전체가 붕괴해버리고 말 것이었다.
“어서 신속히 거리를 벌려라!”
부관의 마음이 점점 조급해져겄다. 지금이야 저 총탄에 하나 둘 쓰러지는 것이지만, 점점 가까워질수록 조선군이 쏘아대는 총탄의 정확함도 크게 올라갈 것이다. 그 순간에 남아있는 철기가 몇이나 될까!
그때, 후퇴하려던 철기 하나가 크게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조선 왕이 저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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