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청 근위척탄여단 (6)
“1대대장!”
“신 김체건 여기있사옵니다! 하문하시옵소서!”
“적이 오십 보 거리에 들어오면 진천뢰를 던지고 터지는 것을 본 이후에 적진에 돌입해야 한다!”
“그리 하겠나이다!”
“다른 대대장들도 마찬가지다! 청군들이 방패차를 앞세워 전진하니, 오십 보 안에 들어오면 진천뢰를 던진다! 분명 저놈들이 방패차 뒤에 숨어 총이나 활을 쏠테니 각 대대 화포 중대에서는 소완구는 일백 오십부에서부터, 총통기 화차는 일백보에서부터 방포토록 하고 사선으로 교차하여 화망을 펼친다! 알겠느냐?”
“예 전하!”
“포군대장!”
영섭의 군령은 거침없었다. 김체건이 대대를 지휘하려 떠나자 마자 즉시 포군대장을 불렀다.
지금껏 제대로 전투 한번 치르지 않아 청동 컬버린들이 반들 반들 윤이 나 있었지만 그것은 포군대장들과 군사들이 그만큼 관리를 잘 했다는 뜻이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화포들은 전개가 끝났느냐?”
“예! 홍이포 열 문을 여단 후미에 배치시켰고, 즉시 방포가 가능합니다!”
“화약과 포탄은?”
“화약은 각 포대당 사백 근(240kg)을 부려놓았고, 한번 방포할 적에 화약 열 근(6kg)을 사용하니 사십회 방포할 양은 되겠습니다! 포탄은 진천뢰 서른 개와 철환 스무개를 부려놓았습니다!”
포군대장의 물 흐르는듯한 보고에 영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15분에 두 번 정도 방포를 하도록 조련했으니, 삼십분이면 네 번은 충분히 방포가 될것이다. 그렇다면, 컬버린 10문이면 삼십분동안 사십여발의 폭발성 포탄이 적진으로 떨어지게 될 터.
“알겠다. 깃발을 올리면 즉시 적 대열에 방포하도록 하라!”
“예 전하! 군사들에게 일러 방포토록 하겠습니다!”
“기병중대장!”
“신 여기있습니디!”
“그대들은 절대 척탄대대 없이 단독으로 돌격하지 말도록 하라! 훗날 모두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혹 그런 멍청이가 있습니까?”
“저 멀리 서역의 내이(內吏) 라는 장군이 그랬다지. 무튼 그대는 절대 그래서는 안되네!”
“명심 하겠습니다 전하!”
“치중대대장!”
“소신 신속이 여기 있사옵..”
공조판서, 아니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영섭이 직접 친정하는 근위척탄여단의 보급 일체를 떠맡게된 신속이 울먹거리며 영섭을 바라보았다.
군량부터 먹는물, 말 먹는 건초며 화약 재고관리에 머리가 터져나갈 지경이었는데 그제 군사들이 춥다며 숯을 지급해달라 하는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더니 각 대대장들이 잔뜩 화를 내며 그를 ‘면신례’ 해버린 후에 군사들은 희희낙락하며 치중대대에서 숯을 뜯어갔던 일이 있었다.
영섭도 그 사건을 모르는건 아니었지만, 당장 눈 앞의 전투가 급하다 보니 지금은 눈 감고 군사들의 편을 들어준 것이다.
“치중대대장이 항상 고생이 많아. 군수라는게 원래 그렇지. 얼마나 노고가 많은지 내가 잘 알고 있어.”
“전하! 그렇다면..!”
신속이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눈을 반짝였다. 제발 이 지옥같은 치중대대에서 벗어날수만 있다면! 그는 차라리 감자 농사에 대한 경연을 들으며 직접 농사짓던 때가 훨씬 나았노라 단언할 수 있었다.
시도때도 없이 찾아와 “내놔!” 하는 저 비렁뱅이 거지떼 같은 것들에게 더 이상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그의 치중대대원이 다른 척탄대대에 길을 잘못들어 전달해야 할 화약이며 쌀이며 죄 뜯기는 것은 예사였고, 저 정찰대라는 왈패놈들은 한술 더 떠 치중대대의 수레를 야습(!) 하여 소금 절인 쇠고기 백여근과 탁주 스무동이, 담뱃잎 다섯 근을 그대로 챙겨 달아났었다.
이튿날 신속이 정찰대장을 찾아가 천인공노할 짓이라며 따져보았지만 입에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산적 두목같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정찰대장의 답변이 가관이었다.
“치중대원들이 우리더러 ‘자기들을 보호해주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냐’ 며 이런 저런 물목을 챙겨줬는데, 어찌 자진 납세한 ‘보호비’ 를 챙기지 않겠소? 치중대장도 이해하시오.”
신속은 하도 어이가 없어 그저 포기하고는 치중대대로 돌아와 울분을 삭일 뿐이니, 대대원들이 그를 찾아와 위로해주었던 일도 있었다.
물론 그 일도 영섭은 알고 있었지만, 정찰대장이 몰래 영섭에게 담배며 건넨게 있던 터라 그저 헛기침만 할 뿐이었다.
“자네 말곤 적임자가 없어. 그럼 고생하게, 후일 넉넉하게 챙겨줌세.”
“전하! 이런 법도는 없사옵니다!”
“그대가 치중대대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겠네.”
영섭이 손짓하자 신속은 다시 한번 풀이 죽은 채 치중대대로 돌아갔다. 그를 바라보는 몇몇 군사들의 눈에서는 안타까운 시선이, 또 몇몇은 더 뜯어먹을 거 없나 하는 시선이었지만.
영섭이 청나라 군사와 결전을 앞두고 각 대대장들을 불러다 직접 군령을 하달한 이후 직접 척탄 1대대로 나아가려 할때,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사제왕이시여..”
저 동방 몰타 기사단과 십자군 일행이 영섭을 무슨 전쟁의 신이라도 된 것 마냥 환희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 육군 대위 피에르 드 기는 하나님께 맹세코 진실로 사제왕 전하보다 더 뛰어난 기사를 본 적이 없었나이다. 타타르의 중갑기병들이 들이닥칠 때, 사실 우리 모두는 이제 죽은 목숨이라 생각했나이다. 그런데 사제왕 전하께서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를 축복해 주셨으니, 그 간결하고 단호한 신성력이 기사단에는 사자의 심장과도 같은 용맹함을 갖게 해주셨고, 저 사악한 타타르 중갑기병들을 물리치게 한 것이 아니겠나이까!”
“아니 축복한 것은 맞는···”
“사제왕 전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그 옛날 용맹했다는 헤라클레스의 헌신과도 같으니, 이 어찌 찬가와 찬송을 아끼지 않겠습니까! 아아! 저 피에르는 참으로 감복했나이다. 법복을 벗고 종군을 택할때 까지만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물음이 있었지만 이제 저는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것도 아닌..”
“이제 곧 타타르 군사들과 결전에 나선다 들었습니다. 사제왕이시여! 당연히 저희 기사단과 사제들 그리고 십자군들을 최선봉에 세워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겠나이다. 사제왕 요한이자 몰타 성당기사단의 수호성인이시며 위대한 동방성지 사울의 수호자이신 조선 국왕 폐하! 신이시여 국왕 폐하를 축복하소서 (God save the king!)”
하며 피에르와 동방 몰타 기사단 전원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데, 영섭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했다.
***
영섭이 몰타 기사단원들에게 의해 고통(?) 받고 있을 때, 반대편 진영에 있던 아오바이는 문자 그대로 고통받고 있었다.
“이 한족 돼지같은 새끼가! 그게 무슨 소리더냐? 성벽에 뭐? 뭐가 있다고?”
“제..제독대인! 참말입니다! 저 멀리 있는 적들이 성벽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방패차는 얻다 팔아먹고 저 민병대한테 쫒겨 전열까지 무너진것이더냐!”
“대인! 방패차는 성벽에 돌입한 동시에 저들이 포를 쏘아 모조리 파괴당했습니다! 대인께서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웃기는 소리 마라! 내가 보았거늘 저 성에는 화포도 없는데 어찌 포가 있더냐? 네 놈이 저들과 싸우기 싫어 작당하는 것이지!”
“대..대인! 작당이라니요!”
“네놈같은 한족 돼지같은 새끼가 대 청나라와 황제폐하를 갉아먹는 쥐새끼같은 놈들이지. 네놈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있는데 들어보겠느냐?”
“대이···”
방금 전까지 강화성 공략에 나섰던 녹영군 도사는 말을 채 잇지도 못한 채 목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패잔병들과 군교들은 그저 이 상황이 너무나도 무섭고
자신들도 목이 날아갈까봐 잔뜩 움츠렸다.
“잘 들어라. 방금 전 나는 적의 간자 하나를 베었다. 세상에 어느 장수가 패하고도 패한 이유를 주절 주절 늘여놓더냐? 전열을 정비하여 다시 공성에 나선다. 지휘는···”
아오바이는 주변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군교들을 슥 훑더니 그나마 괜찮아보이는 수비 군교 하나를 찝어 불렀다.
“네가 하도록 해라.”
“대인! 반드시 해내이겠습니다!”
“좋다. 가서 용맹을 떨치거라.”
“헌데 청이 있습니다 대인!”
“그래 무엇이든 말해보거라.”
“화약을 좀··· 얻어갈 수 있겠습니까? 방금 전 공격으로 조총에 쓸 화약이 모두 동났습니다.”
순간 아오바이는 말문이 막혔다. 조총에 쓸 화약도 없으면 남은건 칼과 창, 그리고 정말 한줌밖에 남지 않는 화살과 활임을.
사실 그도 특이하게 생긴 조선 군사들이 성벽에서 무언가 검은 덩어리를 던지는 것을 보았다. 그게 터져나가는 것도 하나 하나 모두 보았다.
그럼에도 그가 참장의 목을 베어버린 것은 공포가 전염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확실히 저 성벽 위에 새로 나타난 조선군은 굉장히 강했다.
만약 자신들에게 화약이 충분했던들 저 성을 제대로 공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모두에게 인식시킨다면 어느 누가 당당히 나아가 싸우겠느냐 하는 것이다.
믿었던 방패차마저 힘없이 저 포탄인지 뭔지에게 단 한발에 산산조각나는 것을 보고 아오바이는 공성을 지속하는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각했다.
다만, 이 모든 사실 - 청나라 군사가 약하다! 라는 것을 인정하고, 순순히 병력을 물리게 된다면 그 다음은?
돌아왔던 길을 따라 배가 있는 곳 까지 후퇴를 하려면 반드시 이 성으로 접근했던 좁은 흙길을 다시 따라 걸어야 한다.
올때야 엄정한 군기와 함께 질서라는게 있었지만 우리가 패배하여 도망갈 때에는 어찌할 것인가. 누가 이들을 지휘하고, 통제하고,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질서있게 후퇴할 것인가?
아직 이 진영에 남아있는 군사는 못해도 칠천명이 넘었다. 이들이 일순간 후퇴한다 하면 서로 밟혀죽을게 뻔할 것이고, 성벽에 있는 조선군과 저 멀리 능선에서 넓게 진영을 펼쳐 다가오는 조선군이 과연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을 것인가?
아오바이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대인? 대인?”
수비 군교가 무언가 걱정스럽다는 눈으로 아오바이를 계속 불렀다.
“잠시 상념에 빠졌느니라. 화약이 없다고 싸우지 않을 것인가? 창을 쓰고 칼을 쓰고 이마저 없다면 돌이라도 깨어 쓰거라! 언제부터 대청의 군사들이 화약이 없다고 싸우질 못하였느냐? 정 화약이 필요하다면 적을 죽이고 적의 것을 취하면 될 일이 아닌가?”
수비 군교는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아오바이를 바라보았다가 이내 포권을 하며 물러갔다.
“모두가 일당백의 정신으로 조선군을 참살하겠나이다.”
그렇게 다시 한번 강화성 공성을 하러 나간 군사들이 정확히 반 각 (7분)도 채 되지 않아 백기를 올리고는 조선군에 항복해버렸으니 아오바이는 갈갈이 날뛰면서도 이제 남은 선택지는 딱 하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동쪽에서 진군해오는 저 조선군 본영을 깨뜨리거나 교착상태로 만든 후, 해가 진 이후를 틈타 신속히 철수하는 것이었다.
“각 도사들은 모든 군사들을 모아 동쪽에 나타난 조선군에 맞서 싸운다! 성에서 나올 응원군을 견제하는 것은 상황기에서 맡을 터이니 녹영군 전부는 조선군을 요격하라!”
아오바이는 성에서 군사들이 나오지 않을거라 확신했다. 저들도 잔뜩 움츠려 있을 터. 녹영군이 조선군과 맞서 싸우는 동안 한 줌 남은 상황기는 여차하면 아오바이와 함께 전속력으로 돌격할 것이다.
그게 조선군으로 향하는것이 아닌게 유일한 문제일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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