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드는 자와 거스르는 자 (1)
영섭의 지시로 긴급하게 소집 된 총력전 회의는 몇 시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상황파악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당장 도성으로 들어오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강화유수 정세규가 보낸 장계와 정족산에서 승군들이 보낸 장계가 도착하고 나서야 영섭과 신하들은 조금씩 강화도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전하. 강화도 분오리에 청나라 배 칠십 척이 항행하여 포격을 일삼고 그 근처에 정박하였다 합니다. 분오리 돈대와 후애 돈대에서는 청 함대를 포격하여 소선 두 척을 침몰시켰으나 포대 군사들은 모두 절멸하였으며, 해안에 상륙하는 적 군졸들을 상대로 덕포리 사는 이들이 돌격대를 조직하여 적병 삼백을 넘게 쏘아 맞추었다 합니다.”
강화유수 정세규가 보낸 장계를 읽어내려가자 처음에는 함대의 출현과 해안포대의 분전 그리고 덕포리 돌격대의 용감한 전투가 담겨있었다. 이백 남짓 백성들이 정예한 청군 삼백을 넘게 쏘아 맞추었다니! 관료들 중 누구 하나 덕포리 사람들을 찬탄해 마지 않았고, 영섭과 다른 이들은 전쟁이 이와 같이 흘러가길 바랄 뿐이었다.
“청나라 배에서 상륙한 군세가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웠지만 지난날 병자년의 사례를 참고해 볼 때 강화도에 상륙한 청의 군세는 만 오천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만오천이라. 병판, 지금 강화도에 있는 우리 군사는 얼마나 되는가?”
“강화 유수 정세규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군사 일천 오백이 있고 국민 돌격대로 조직된 백성들이 이천이라 합니다. 합이 삼천 오백 입니다.”
“이들로 만 오천의 적을 맞서 싸워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이완은 답 대신 그저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청나라 군사 중엔 아무래도 철기병이 많을 터이니 강화성이나 주변 산성에서 농성한다면 해볼만한 싸움이지 않을까 싶구나.”
“전하, 이번 강화도에 침노한 청군의 병종의 구성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정족산 승군이 보내온 장계에는 말 탄 이들이 몇 없었다 하였으니···”
영섭은 순간 자기가 조금 들떠있음을 깨달았다. 기병을 운용하지 않는 군대라면 결국 강화성까지 오는 도중 협곡이며 산성이며 거쳐오다 지리멸렬하게 될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아마도 녹영이 주축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완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하자 영의정 김육이 의문을 표했다.
“우리에겐 오히려 잘 된 거 아니오? 철기병이 몇 없다는 것은 그만큼 상륙한 이들이 정예한 군사들이 아니라는 뜻일 터.”
“아닙니다 대감. 녹영이 주축이라면 강화도는 청군이 완전히 점령하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뭐라? 청나라가 완전히 점령한다 하였는가!”
“병판은 그게 무슨소리인가?”
영섭까지 나서서 그에게 물으니 이완은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시작했다.
“아뢰기 송구스러운 마음이나, 녹영으로 하여금 마을을 불태워가며 강화성을 향해 공성 한다면 단지 종친이나 피난온 궁궐 나인 하나쯤을 사로잡는게 아니라 강화도 전체를 지배하겠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어찌 그런지 연유를 고하라.”
“청나라 철기병은 그 모양이 날렵하여 번개같이 기동을 할 수 있고 보통 군사라면 의주에서 한성까지 열 하루가 걸리거늘 그 거리를 나흘도 안되어 달려갑니다. 허나 기병은 단지 이런 습격을 할 때 유용한 병종이라 점령한 땅을 지키는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점령한 땅을 지키거나, 점령을 공고히 하려면 결국 보군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녹영군이 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녹영이 강화에 상륙했다는 것은, 보군으로 하여금 강화를 완전히 점령하겠다는 뜻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완전히 점령하겠다?”
“그렇습니다. 얼마가 됐든 우리의 진지에서 농성을 하겠다는 뜻이라 사료됩니다. 또한 강화도를 점령한다면 모든 물산이 한성으로 오는것을 막아버릴 수 있습니다.”
한양으로 향하는 뱃길을 막아버린다는 말에, 영섭도 순간 아차 싶었다.
“물산이 막힌다는 것은 곧 도성 안에서 큰 혼란을 일으킬텐데.”
“바로 그렇습니다 전하. 쌀이며 무명이며 모조리 막히게 되면, 도성은 큰 곤란에 빠지게 될것입니다. 물론 지난 대경장 이후 한양까지 올라오는 각 대로가 넓혀지고 보수되었지만 물산의 흐름은 조운선에 비할 바가 아니니 공급은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만약 저들이 강화도를 점령한다면, 여기 한양으로 오는 물산을 막는다고 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그러자 공조판서 신속이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달도 안 될 것이옵니다.”
“한 달이 채 안될 거라니?”
“한 달 도 길게 잡은 것이옵니다. 지금 도성 안에 사는 이들이 십삼만에 달하는데, 당장 식량 수급 부터가 문제이고, 겨울에 심은 감자를 수확하려면 아직 한 달은 더 있어야 하옵니다..게다가 겨울 감자는 그 알이 작고 배고픔만 면하게 해줄 정도이니 도성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 데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온데다..”
“충분히 알아들었다.”
결국 참상을 막아내려면, 청군을 강화도에서 몰아내는 수 밖에는 없다.
“고양군에 있는 초모된 이들을 강화도에 상륙시켜 청적과 맞서 싸우라 하면 어떠하겠는가?”
그러자 병조판서 이완이 처음으로 영섭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젓기를,
“전하. 지금 고양군에서 조련중인 군사를 강화로 돌려 청군을 막는데 쓴다 하교하셨지만··· 이는 분명 크게 패 할 것입니다.”
고양에서 조련중인, 총력전을 위해 초모된 이가 십삼만 명 즈음이었으니, 그 중에 만 명을 돌려 강화도 방어에 투입하자는 영섭의 제안에 이완이 제동을 건 것이다.
영의정 김육부터, 모여있던 모든 이들이 이완의 말에 크게 놀라 그를 제지하려 했지만 영섭은 표정이 살짝 구겨졌을 뿐. 오히려 이완이 왜 그러는지 이야기나 들어보기로 했다.
“병판.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들은 싸울 준비가 되질 않았습니다.”
“준비가 되질 않았다고?”
“송구하오나, 먼저 고양에 있는 군사들은 전하의 하교에 따라 청군의 철기병을 막아내기 위해 저 서역 승려 기사단이 고안한 태시오 (테르시오) 라는 진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태시오 진법으로 조련한지 채 달포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이들에게 지급할 장창이 하란타에서 제물포 상관을 통해 올 예정이라 지금 당장은 고양군 근처에 나무란 나무는 모조리 베어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영섭은 짧은 신음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테르시오 진법이 기병을 상대로 강점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장창 만드는 법이 소실된지 벌써 수백년이 지난 조선에서 이를 단기간에 부활시키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수석총을 다룰 군사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은 산짐승을 잡거나 하며 총 쏘는 일은 잘 하나 그 뿐입니다. 전하께서 하교하신대로 군사 백 이십을 사십 명씩 세 열로 늘여 총을 쏘는 진을 기초로 조련하고 있지만 서로가 총쏘는 것을 자신하여 일제방포를 따르지 않고 먼저 쏘거나, 총을 쏜 이후에 대열에서 황급히 이탈하려는 자가 많았습니다.
특히 훈련도감 마군 두 개 초로 하여금 청의 철기병을 묘사하여 사각 진법으로 대응토록 하였는데, 끝까지 진을 지킨 이가 백에 열이 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어찌 이들을 바로 강화도로 진군하여 적을 막아라 하겠습니까? 굳이 이들로 하여금 싸우게 한다면···.”
이완은 말끝을 흐렸다. 그 다음 말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섭도 상황이 그 정도였는지 몰라 그저 입을 닫고 침울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영섭은 지난 삶에서 6.25 사변 때 마냥 무작정 장정을 모아 총 주고 굴리면 알아서 군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월남에 갔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가 단단히 잘못 알고 있던 것이, 사변 때는 독립군이니, 황군이니, 미군이니 하며 실전경험이 풍부했던 이들이 주축되어 싸우는 동시에 군사들을 훈련시킨 것이었고
월남전때도 사변때 초급장교로 참전했던 이들이 고급 장교들이 되어 그때 경험을 십분 활용한 동시에 실전을 겪으며 노하우를 전수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어느 누구 하나 실전 경험 없이 산짐승 몇 잡은 이가 다른 이를 가르치고 있었고, 그나마 장교라고 불릴만한 이들은 그 수준이 형편없었다.
거기에 영섭이 생각하는 전근대의 전쟁이란, 그저 창이나 총을 꼬나들고 빽빽하게 뭉쳐 돌격하거나 열을 갖추어 연속 사격을 하며 나아가면 이기는 전쟁이라 생각했다.
그게 틀린 이야기는 아닐테지만 수백 수천 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한 덩어리처럼 뭉쳐 기동하는 것은 엄청난 훈련량을 필요로 한다.
거기에 적의 화살과 탄환이 쏟아지는 와중에 내가 죽을 것을 알고, 그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며 앞으로 전진하며 동시에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왕에 대한 충성심으로만 해결될 성질이 아니었다.
적을 향해 나아가면 ‘죽을 수도’ 있지만, 대열에서 이탈하거나 군교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반드시 죽는다.’ 라는 의식을 철저히 심어줘야 했다.
영섭은 이 부분을 어렴풋하게 지난날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반감 또한 있었기에 차마 이완에게 지시하지 못한 것이었으니,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그렇다면 병판. 강화도를 지킬 방책이 없는가?”
“지금 도성으로 올라오고 있는 수어청을 강화도로 보내어 방어하는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청군이 김포와 인천부로 온다 하면 이들을 막을 수 있는 군사가 없습니다. 특히 제물포가 청군에게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이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물포가 청군에게 점령당한다면, 네덜란드에서 올 초석이며 수석총이며 장창이며 모두 고스란히 청에게 넘기게 될 것이다. 그럼 이 전쟁도 끝이다.
“또한 훈련도감은 지금 고양군 훈련소에 주둔하였으니, 어영청으로는 도성을 수비 해야 할진대, 적의 규모가 아직 짐작 된 바가 없으니 수어청의 배치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전하, 아뢰기 참으로 민망 하오나..”
예조판서 김자점이 쭈뼛쭈뼛거리며 앞으로 나와 영섭에게 말했다.
“소신, 지난날 군사를 이글고 청적과 맞선 적이 있습니다. 소신에게 고양에서 초모한 이들 중 일천 오백을 뽑게 해주신다면 이들로 하여금 강화도 백성들과 함께 맞서겠습니다.”
“일천 오백을 뽑는다? 강화에 들이친 군사가 최소 일만이 넘을텐데 어찌..”
“전하, 산성에서는 한 명이 능히 백 명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강화성 군사들을 이끌고 산성에서 농성한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잠잠히 듣고있던 이완도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말은 아니오나, 일천 오백은 너무 적지 않소이까 예판?”
“하여 소신이 직접 일천 오백을 뽑게 해달라 한것이오 병판. 군재에 출중하고, 날랜 이들을 가려 뽑아 산성에서 농성한다면 잡병 일만 쯤은 능히 상대할 수 있지 않겠소?”
“그것도 그렇지만···”
그때, 영섭은 별 다른 수가 없다는걸 깨닳았다. 잃어도 김자점과 군사 천 오백이요, 이기면 대박이나 다름없는 일이니 밑져야 본전이니, 영섭은 김자점에게 말했다.
“예판 김자점을 강화방어사(江華防禦使)에 임하니, 그대는 고양군에서 날랜 군사 천 오백을 뽑아 강화유수 정세규를 지휘하여 청적을 물리치도록 하라.”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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