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쌀을 팝니다 (1) / 9. 19 수정
며칠 후 상참에서는 오랫만에 영의정 김육이 밝게 웃으며 영섭에게 말했다.
“영명하신 주상전하의 밝은 덕으로 충청을 제외한 올 해 칠도에 시행한 대동법이 큰 효과를 보았사옵니다.”
영섭은 옳다구나 싶어 김육을 바라보았다. 대동법의 효과를 팔도 전 백성이 알아야 아직 꺼지지 않은 산당 요인들의 불만을 완전히 잠재워 버릴 수 있다. 니들이 그렇게 반대했는데도 보아라. 이렇게나 효과가 좋지 않더냐? 하며 말이다.
“영의정은 상세히 고하라.”
“예 전하. 우선 각 지방에 공물을 대납하며 백성의 피를 빨던 상인들이 모두 몰락한것은 둘째 치고, 어느 지역 백성들에게 물어봐도 참 잘 된 법이라 하니 어찌 효과가 좋지 않다 하겠사옵니까?”
“그러한가. 각 지방에서 조운할 일도 없으니, 수령들이 노심초사 할 일도 없겠구나.”
“전하 말씀이 옳사옵니다. 다만 쌀 운송이 원할하지 않다 보니, 각 고을별로 쌀 가격이 일부 차이가 나긴 했사오나 감자 덕분에 백성들이 큰 근심 없이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사옵니다.”
“아무래도 길이 좋지 못한 것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길을 내고 보수하는 것은 재물이 많이 들고 사람도 많이 부려야 하니 시급한 길이 아니라면 새로 내어 보수하는 것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것이다.”
“과연 그러합니다 전하. 다만 기존에 나있던 길을 보수하여 수레가 다닐 수 있게 한다면 길을 새로 내는 것 보다야 적은 재물이 들어갈 것이고 수레를 굴리며 얻어질 것은 클 것이니 이를 공조판서와 논의해 보겠나이다.”
“경의 뜻대로 하시오.”
“하여”
우의정 원두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여전히 김육은 원두표를 못마땅해 하는 눈으로 바라봤지만, 어찌되었건 지금 조정을 이끌어가는 한당(漢黨)의 영수들이자, 그들은 질색하겠지만 단짝과 같았다.
“작년 세입이 쌀 백만 석이었사온데, 올 해 세입은 백 이십만 석에 달하옵니다. 이십만 석이 더하였사옵니다.”
영섭은 크게 놀랐다. 이십만석이 더 늘었다고? 작년 대비 이 할 가까이 세입이 늘어난 셈인데 어떻게 된 것인지 의아했다. 단지 공물을 쌀로 바꾸어 받았을 뿐인데 이십만석이나 늘어난 것은 믿을수가 없었다.
“우의정은 상세히 고하라.”
“예 전하. 작년 각 지역 상단들을 불러모아 하교하신 일을 기억하시옵니까?”
영섭이 기억을 더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쇄국을 풀어 자유무역을 선언한 덕에 대마도 도주라는 놈이 와서 엉엉 울며,
“주상전하의 빛나는 덕은 태양과 같고 변방 대마도를 헤아리는 깊이는 저 바다와 같으니 이 어찌 요순임금의 재림이 아니겠사옵니까? 주상전하 천세 천세 천세!”
찬양해대는데 영섭이 오히려 부끄러워해 견딜 수 없었던것 까지.
“대마도주 종씨가 입궐한 이래 그렇게나 입이 귀에 걸린적은 처음 보았지.”
영섭이 그 장면을 회상하며 말했다. 원두표도 그 자리에 있었던 터라 살짝 얼굴이 붉어지고는 말을 이었다.
“과연 그러했사옵니다. 경상도 내상과 전라도 병상이 작년에 전하께옵서 하교한 직후부터 대마도와 왜국 장기현으로 쌀을 가져다 매매하였사온데 이문이 두 배 가까이 되었다 하였습니다.”
영섭은 뭘 어떻게 팔았길래 두배씩이나 이익이 남았는지 아까보다 더 의아해 했다. 아직은 세계 무역이라는 개념이 정착될 시기는 아니다. 수요와 공급이 워낙 불균형하니 적당한 재화를 팔아치우면 큰 돈이 되는 시기기도 했지만 쌀은 그러한 품목이 아니지 않는가?
“우의정은 그 연유를 아는가?”
“자세한 것은 내상 대방 조철현과 병상 대방 박희재가 입궐하면 상세히 고하라 하였습니다만,
올 해 왜국에 가뭄이 심하여 농사가 제대로 되질 않았다 하니 때마침 들여온 아국 쌀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하옵니다.”
영섭은 충분히 일리있는 이야기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지금 세기는 소빙하기 시대였고, 툭하면 가뭄이니 우박이니 거기에 절기에 맞지 않는 비에 눈에.. 농사가 생각보다 잘 안되는게 당연한 시대였다.
“하여 내년에도 왜국으로 쌀을 보내어 매매하기로 약조하였는데 왜국 각 지역 영주, 그러니까 왜국 말로 다이묘라 불리는 자들이 앞다투어 아국 쌀을 사겠다며 대마도주를 압박했다 하였사옵니다.”
영섭은 대충 감이 왔다.
올해 농사도 망할거 같으니까 조선쌀이라도 잔뜩 쟁여둬서 민심을 진정시켜보겠다는 심산일 터. 비싸게 받을 수 있을 때 부지런히 팔아야 했다.
지금 전국 팔도에서 일년에 두번씩 자라는 감자가 없었더라면, 분명 조선도 사정이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매년 기근에 이를 구휼하기 위한 구휼미 조달에, 또 다른 지방에서 기근이 발생하면 다른 지방에서 쌀을 가져와 구휼하고..
이렇게 스스로 덫에 걸리게 되어 훗날 경술년과 신해년에 대 참사가 벌어지게 될 터였다.
우의정 원두표는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
“올 해는 전라 병상이 매매한 미곡이 십일만팔천여석, 경상 내상이 매매한 미곡이 팔만칠천여석 도합 이십여만석이 조금 안되는 양인데,
왜국에서는 미곡 삼분지 일 석(100근)에 은자 한 냥 하고도 오 할 정도라 하였사옵니다.
이는 은자 팔십칠만냥, 대략 팔천칠백관이온데, 삯이며 용선료며 들어간 비용을 제외하면 팔천사백관 정도가 총 매출이요 이 중 이 할을 세금으로 납부한다 하였사옵니다.”
“그렇다면 병상과 내상이 낸 세만 하더라도 은자 십칠만냥 가까이 되겠구나.”
영섭이 속으로 암산을 하며 답하자 원두표가 크게 놀라 말했다.
“전하께옵서 산학에 그리 밝으신지는 처음 알았사옵니다. 무튼 병상과 내상이 각 도에서 미곡을 매매할 때 한 석에 은자 두 냥정도에 매입을 하였다 하니 그 이문이 대단하였사옵니다.”
“그렇다면···”
영섭은 팔꿈치를 용상에 대고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조총을 팔만정 정도 만들어 뿌릴까?’
영섭이 고민을 마치고 중신들을 바라보니 중신들 모두가 뜨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하, 진실로 그러하시겠사옵니까?”
“우의정은 무슨 뜻인가?”
“송구하옵니다 전하. 소신 듣기로, 전하께옵서 조총 팔만여정은 능히 만들겠구나 하셔 그 의중이 맞사온지 여쭈었나이다.”
“혼잣말이었으니 우의정은 더 거론치 말라.”
원두표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계속 말했다.
“걷힌 세가 크게 늘어난것은 양 상단의 공이 크기도 하였지만,
각 도 농협 역시 상단에 쌀을 매매하는것이 이문이 많이 남음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쌀을 재배하였기 때문이옵니다.”
영섭은 순간 자기가 제대로 들은게 맞나 생각했다.
“그러니까, 우의정이 고한즉, 생활을 이어가려 쌀을 재배하는게 아니라 농협에서 상단에 팔기 위해 쌀농사를 권한다는 말인가?”
“맞사옵니다 전하. 각 도 농협 집정들이 이야기하길,
‘생활을 이어가는것은 감자로도 충분하니 전하께서 지시한 지상과업을 완수하려면 쌀은 적당히 남겨두고 나머지는 팔아치우거나,
비탈을 개간하여 남새를 심는 등 은자를 확보해 하루라도 더 많은 소작농을 자작농으로 해방시켜야 합니다.’
하며 앞다투어 은자 얻을 일이라면 뭐든지 재배하려 하고 있사옵니다.”
그러자 영섭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영섭이 처음에 의도한, 농협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키우자 함은 그저 감자를 보급하고 농정신편을 보급하여 굶주림과 기근의 신속한 퇴치였다.
다만 지난날 회덕현 만민공동회가 끝나갈 무렵, 그 분위기에 취해 던졌던 두 마디 말이 화근이었다.
“굶주림과 기근은 그저 쌀과 감자를 많이 수확하여 저장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농사지을 땅이 없으면 감자와 쌀을 심는들 무슨 소용이겠느냐!”
“내가 여기 감자를 가져 왔으니 당장 오늘의 굶주림으로부터는 해방될 것이다. 하지만 그대들이 스스로 농사지을 땅을 가진다면 내일의 굶주림에서도 해방될 것이다!”
하니 회덕 농협 회원들 그리고 공동회에 모여있던 모두가 이에 깊은 감명을 받아 각 지 농협을 결성한 뒤에 소작농 해방이라는 대의를 선전하며 활동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영섭은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지만, 신경쓸 일도 많은데 기왕 알아서 굴러가는거 방해는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농협의 독려로 각 회원이 더 좋은 쌀을 생산해내기 위해 경쟁한다면, 품종개량도 그만큼 빨리 이뤄질 것이요.
훗날 인디카를 들여와 통일벼 같은것을 만들수도 있을 것이었다.
통일벼와 전국 방방곡곡 잘 자라는 감자, 그리고 언젠가 화학비료만 개발된다면 - 더 이상 이 땅에서 굶주리는 자는 없을 것이리라 영섭은 생각했다.
“참으로 장한 일이다. 해방도 중요하지만, 생활을 이어가려면 많은 은자가 필요한 터. 우의정은 이를 더욱 장려하되 흉년으로 미곡이 적어 가격이 폭등하는 일이 없어야 할것이다.”
“예 전하 그리 하겠사옵니다.”
그 때 마침 상선이 영섭에게 전라 병상 대방 박희재가 입궐했음을 알렸다.
“소신 박희재가 주상전하를 뵈옵니다.”
“바쁜사람 이리 저리 오라가라 하여 내가 민망하구나.”
“아니옵니다 전하. 무릇 상인이라면 어디든 가야함이 그 이치에 맞는것이옵니다.”
영섭은 중간에 ‘돈 되는 일’ 이 생략되었음을 알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저 군신관계처럼 보이지만, 지금부터는 철저히 돈이 오가는 싸움이었다.
“방금 우의정의 보고를 받아 그대가 큰 성과를 냈음을 알겠다. 참으로 잘 된 일이다.”
“그저 전하의 하해와 같은 성은이 아니었으면 감히 그러지 못할 일이었사옵니다.”
“그렇다 한들 저 교활한 왜인들과 통상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은 아닌즉, 여기 있는 관료들도 쉽게 하지 못할 일일터. 병상 모두 노고가 많았겠구나.”
하니 박희재가 진심으로 감동했다는 표정으로 영섭에게 말했다.
“전하의 말씀이 참으로 옳사옵니다. 통상이란 무릇 서로 이익을 취할 때 가한것이라 매 순간이 살얼음을 걷는것과 같았사옵니다.”
“그래. 후일 이런 경험을 헤아려 서책으로 내어 참된 상인을 양성하는데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영섭은 기왕 돈 열심히 버는거 상업 전문 교육기관까지 설립하라는 뜻을 넌지시 내지으며 박희재에게 말했다.
“반드시 그러하겠습니다 전하.”
“하여, 전라에서 도성까지 오는 길이 만만치 않았을텐데. 세를 언제까지 내겠다는 것을 고하러 걸음한 것 것은 아닐 터.”
“정말이지 전하의 심려는 소신이 감히 따라갈 수 없는듯 하옵니다.”
하며 박희재가 두손두발 들었다며 더 바짝 부복하고는 고했다.
“다름아니라 이번에 왜국 장기(長崎)현에 쌀을 매매하러 갔을 때였사옵니다.
쌀을 매매하고 필요한 물목을 싣던 중 스스로 명나라 수군 도독이라 칭하는 자가 찾아와 청나라 오랑캐를 치려 하니 조공으로 쌀을 바치라 하여,
일개 상인으로 사사로이 나라의 통상에는 간섭할 수 없다 하였사옵니다.”
하니 중신들은 순간 술렁이며 소란하였다. 영섭은 의아한 표정으로 박희재에게 물었다.
“명나라 수군 도독이라 하였는가?”
“예 그렇사옵니다. 이름은 정성공(鄭成功)이라 하였고 명의 달력이라며 소신에게 주며 반드시 전하께 알리라 하였사옵니다.”
상선이 이를 받아들고 펼치니, 상단에 永曆四年 이라는 글씨가 선명히 적혀있었다.
순간 중신 모두가 넋이 나간듯한 모습으로 네 글씨만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작가의말
쌀 1/3석당 은자 가격은 다음의 문헌을 참고하였습니다. (1.46 tael per picul in nagasaki, 1649 War, Trade and Piracy in the China Seas (1622-1683))
9.19 수정입니다. 내용 보충, 제목 수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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