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청 근위척탄여단 (4)
“척탄대대 전진! 적 기병대를 완전히 섬멸한다!”
영섭의 명에 바위처럼 아무런 미동도 않던 척탄 3개 대대가 천천히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파총 김체건이 지휘하는 1대대를 시작으로, 2대대와 3대대가 뒤이어 전진하니, 멀리서 보면 푸른색 거대한 해일이 덮쳐오는듯 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중대는 대열을 유지하라! 전하께 몹쓸 모습을 보여서는 아니된다!”
김체건은 선두에 서서 칼을 뽑은 채 악을쓰며 대 보병 대형으로 전진하는 그의 대대를 직접 지휘했다.
어느 누구 하나 표정을 찡그릴 법도 했지만, 당장 저 앞에 어찌할 바를 몰라 임금님께 달려드는 저 불충한 청나라 철기를 떼내야 했다.
임금님의 신하된 자로서 적이 감히 임금님을 위협하는데, 대대장의 악쓰는 소리는 그저 어머니의 자장가와 다를 바 없었다.
“중대! 열맞춰! 첫 열과 끝 열 간극을 좁히거라!”
“알겠소이다!”
군사 일백 오십을 한 몸처럼 지휘하기란 절대 쉬운일이 아니다. 그저 앞으로 가라고 지시하더라도, 일백 오십인 모두 걸음이 다르기 때문에 대열을 맞추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놈이 오른발을 내미느냐! 중대! 발맞춰! 왼발! 왼발! 왼발!”
그리고 아무리 훈련을 많이 받았다 하더라도, 잔뜩 긴장한 상태라면 발걸음이 꼬이는 일도 있다.
그런 자들이 하나 둘 생겨나면 결국 중대 전체의 대열이 제멋대로 들쭉날쭉 해진다.
이렇게 느슨해진 대열은 기병들에게 손쉬운 먹잇감이 될 거라는 것은 중대장도, 대대장 김체건도 잘 알고 있었다.
“군악대! 근위대 전진가를 연주하게!”
그렇다면 언제까지고 지휘관들의 고함소리에 의지하여 대열을 흐트리지 않을 수는 없으니 김체건은 군악대를 불렀다.
그는 전투를 할 때 왜 곡조(음악)가 필요하냐 영섭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 때 영섭은 직접 야전에서 겪어보면 알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겼었다.
군악대가 곧바로 근위대 전진가를 연주하자, 전장에는 북 소리와 대금의 날카로운 곡조가 연주되기 시작했다.
북을 빠르게 쳐내리자 둥둥거리는 것이 심장뛰는듯 하니 들쭉날쭉할뻔할 대열도 차분해졌고, 발이 맞으니 중대별 간극도 적당한 수준으로 되돌아왔다.
어느새 매끄러우면서도 강렬한 일자 (ㅡ) 대형을 이루며 척탄 1대대는 저 아래에서 완전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청나라 기병대를 향했다.
***
“저건 또 뭐란 말이냐!”
철기를 지휘하던 군교가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척탄병 대대를 발견한 것은 조선 왕에게 첫 번째 돌격이 실패하고 나서 대열을 재정비 하려는 찰나였다.
“조선 응원군입니다요!”
“이 멍청아! 내가 그걸 모르겠느냐! 조선에 저런 군사가..대체..”
군교는 저 멀리 천천히 밀려오는 푸른 색 파도, 아니 장벽같은 것을 잠시 관찰했다. 군사들은 전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고, 발걸음은 수백명이 한 사람인 것 처럼 움직였다.
척, 척, 척, 척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북소리와 피리 그리고 종이 아닌 무언가를 쳐대어 쾅 쾅 하는 소리가 연신 울려대니 덩달아 그의 마음도 급해졌다.
저들 모두가 총병인듯 총구를 이쪽으로 한 상태로 천천히 걸어오는데 그는 처음 출항했을때, 사고로 깊은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던 군사 하나가 생각났다.
검고 푸른 바다에서 허우적 거리던 모습에서, 그는 처음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알 수 없는 무서움을 느꼈었다.
군교를 태우고 있던 군마는 왜 오늘따라 그의 주인이 몸을 덜덜 떨며 등줄기가 뜨근해지는지 궁금했지만 순간 엄청난 충격이 머리를 울리며 땅에 쓰러져버렸다.
“군교 나으리가 맞았다!”
“그럼 상황기는 이제 누가 지휘하느냐!”
“내가 나서겠다!”
그때, 심기일전하며 부지런히 달려온 부관이 소리치자, 다른 철기들의 얼굴이 붉어지며 성을 내었다.
“부관! 네놈은 상황기 일족도 아니지 않느냐!”
“그럼 다 같이 죽자는 것인가?”
“저 조선놈들에게 죽어도 한족 놈의 지휘를 받을순 없지!”
“뭐..뭐라고?”
“위대한 상황기 일족이여! 죽어도 당당히 죽도록 하자!”
“이야아아아!”
다시 한번 부관은 홀로 남겨진 채, 이제 삼백도 채 안남은 철기들이 저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는 조선군을 향해 돌격해나갔다.
조선 군사들과 거리는 대략 삼백 보 가량. 아까 조선왕에게 돌격했던 거리보다 더 짧았지만, 저들에겐 이 용맹한 돌격을 막아낼 창도 방패도 없었다.
그저 무표정하게 걸어오는 총 든 군사들 뿐. 적이 철기를 향해 총을 겨누고 쏘기 전에 순식간에 휘몰아 치면 저 보병들이야 순식간에 걸음아 나살려라 하며 도망갈 것이었다.
삼백 보, 적은 무표정한 채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백 오십 보, 적은 아무말 없이 멈춰선 채 이쪽을 바라보았다.
이백 보, 적이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일백 오십 보, 적 조총들이 불과 연기를 가득 뿜어냈다. 누가 쓰러지고 누가 살았는지는 모른다.
일백 보, 적은 여전히 무표정한 채 그들의 총을 장전하고 있었다. 어찌하여 도망하지 않는가! 어찌하여!
팔십 보, 적이 길게 늘어서있던 끝과 끝에 있던 수레에서 엄청난 불꽃과 연기가 피어올랐다. 조총을 든 이 수백이 일시에 쏘아대는 것 같았다.
삼십 보, 우리는 진흙탕에 말과 함께 쳐박혀 죽어가고 있다. 여전히 조선군의 수레에서는 굉음과 함께 철기들을 죽이고 있다. 우리중 단 한 기라도 적에게 닿았을까?
쓰러지던 상황기 철기들의 바램과는 달리, 그들은 척탄 1대대 삼십 보 앞에서 총통기(문종화차) 여섯문이 쏘아대는 화망에 걸려 한 기도 빠짐없이 완전히 전멸해버렸다.
그저 진흙탕과 더운 피, 허연 기름기, 사람 시체와 말 시체가 뒤엉키고 오줌냄새와 유황 냄새가 서로 뒤섞여 이곳이 연옥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라도 알아챌 수 있을 뿐.
“애초에 이럴수 밖에 없는 일이었던가.”
부관은 그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진흙탕에서 죽어가고 있는 철기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했다. 저들이 내 지휘를 따랐더라도!
아무리 멸망한 명나라의 장수 아비를 두었다곤 했지만 엄연히 유격 (오늘날 중령~대령 사이) 벼슬을 하고 있던 그였다.
“아버님. 결국 이리 될 일이었습니다. 멸망한 나라의 멸망한 족속에게 출세따윈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은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푸르렀다. 눈부신 햇살이 비추며 겨울이 끝나감을 알렸다. 부관은 그저 무력함을 느끼며 말에서 내려 다른 말들이 잔뜩 헤집어놓은 진창 위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충성을 바칠 나라가 사라졌음에, 출세할 기회가 영영 사라졌음에.
그때, 부관은 뒤통수에 차가운 쇳덩이가 닿았음을 느끼고 천천히 일어서며 고개를 돌렸다.
“통변하라. 네놈이 철기를 이끈 장수더냐?”
영섭이 권총을 쏘려는 채 통변에게 말하자 통변은 진땀을 흘렸다. 부관은 뜻밖에 만주 말이 아니라 명나라 말이 들려오자 놀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이제 네놈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죽겠느냐 살겠느냐?”
그러자 부관이 냅다 영섭에게 큰 절을 올리며 엎드린 채 울먹였다.
“소인, 지난날 명나라의 장수 이영방(李永芳)의 장남 이연경(李延庚)이라 합니다. 철기를 지휘하려 했으나, 한인이라는 이유로 저들에게 거부당하여 홀로 남겨졌습니다··· 오늘 조선왕 전하를 만나게 되었으니 제게 기회를 주신다면 조선에 귀순하여 지난날 잘못을 뉘우쳐 청나라에 대항하여 싸우겠나이다.”
순간 영섭과 주변에 있던 장수들 모두가 이연경의 말을 통변한 것을 듣고는 당황하고 어이없어했다. 같은 족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하들로부터 지휘권이 박탈당한 장수라니! 영섭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가. 네 아비가 현명한 아들을 두었구나. 정찰대장! 이 자를 치중대대로 데려가 정양케 하라! 통변은 정찰대장을 따라가도록 하라!”
“옛! 신 박경지 전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때 저기서 정찰대 하나가 헐레벌떡 영섭에게 달려와 외쳤다.
“전하! 1대대에서 화약과 연자(탄환)을 청하였사옵니다!”
“치중대대장은 무얼 하는가? 어서 화약과 화차 연자를 내어주지 않고!”
“예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정찰대 일부는 각 대대와 영섭 사이의 전령 역할을 하며 분주히 오고갔다. 통신기라는 개념조차 없을 이 시대에, 결국 인편과 깃발, 소리가 없다면 통신이라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저 정찰대가 조금 고단하고 괴롭겠지만 저들이 바빠야 여단 전체가 한 몸처럼 분주히 움직일 수 있다.
끊임없이 고함치고,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고, 팔이 떨어져나가도록 깃발을 흔들어야 지휘관의 지휘가 먹히는 시대다. 그렇지 않고서는 영섭의 목소리가 저 아래 중대까지 전달될 수 없다.
물론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이를 소홀히 하면 영섭 주변에 있는 수백 군사들만 제대로 지휘가 가능할뿐, 수천 군사들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신속한 치중. 군수지원에 있다. 영섭은 한번 전투 이후 적의 추가 위협이 없다면 즉시 화약과 탄환을 보급받도록 대대장들을 철저히 조련시켰다.
특히 화약과 탄환은 대대장이 직접 그 수를 셈하여 자신의 대대에 얼마만큼의 화약과 탄환이 있는지, 얼마나 소모할 예정인지 등 화약과 탄환이 없어 전투를 못 하는 경우가 없게 했다.
그 결과 1대대장 김체건은 전투가 끝나기가 무섭게 정찰대원을 붙잡아다 거의 윽박지르듯이 화약과 탄환을 구해오라 했던 것이었다.
다만 그 대상이 치중대대장이 아닌 영섭이었다는게 문제였지만.
“1대대는 현재 위치에서 화약과 연자를 보충한다! 2대대와 3대대는 진군 대형으로! 1대대는 보충이 끝나면 3대대 뒤를 따라 진군한다!”
영섭이 간단히 명을 내리니 깃발이 휘날리고, 정찰병들이 각 대대장들에게 달려갔다.
이내 1대대는 그 자리에 멈춰선 채 치중대대가 끌고온 수레에서 화약을 내려 서로 나누고 화차를 정비했다.
2대대와 3대대는 어느새 대 보병 진형에서 가도 위로 올라와 진군대형을 갖추니, 그 모습이 여간 정예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여단!”
“대대!”
“중대!”
“강화성을 향해 진군한다! 서둘러라! 선두는 2대대가 맡는다!”
영섭은 청군 기병과 척탄병들이 맞붙었을 때, 저들이 원거리 무기를 투사한 후 돌격해왔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고는 몸서리가 쳐졌다.
그저 저들이 아무런 공격 없이 그대로 달려와 전멸했으니, 그 즉슨 척탄병들과 총통기(문종화차)의 진형이 무엇인지 전혀 개념을 못 잡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이 전투를 저 멀리에 있는 청군 장수도 분명 보았을 터. 저들이 어떻게 대응하려 하는지 영섭은 갑자기 궁금했다.
이제 영섭의 근위척탄여단과 아오바이의 본영은 이천 보 가량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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