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초, 설탕, 송귀 (3)
“하여 월범하여 태조폐하의 묘에 감히 입에 담지도 못할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조선인 둘을 잡으려 하니 그대는 상국의 충실한 신하로서 협조하라.”
봉천에서 왔다는, 청나라 칙사와 청병들은 시종일관 고압적인 태도로 의주 부윤 홍처후를 몰아세웠다. 혼란스러웠지만, 침착하고 냉정하게 그는 답했다.
“황제폐하와 칙사께서 얼마나 놀라시고 그 분노가 치미는 일인지를 소방에서도 그 예와 덕이 있는 나라라 잘 알고 있습니다. 일찍이 동서고금에 이러한 일이 없었던 만큼 칙사께서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일러주신다면 여기 의주성 뿐만 아니라 한성에 계신 임금님께서도 마땅히 협조하라 하실 것입니다.”
“자세한 전말? 본관더러 감···”
웅성거리는 소리에 청나라 칙사가 고개를 돌려보니, 딱 보아도 조총 든 조선군이 수백 모여들고 있었다. 그 미묘한 표정의 변화를 알아차린 홍처후가 돌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말했다.
“평소 높으신 상국 칙사께 대접할 일이 없어 슬피 있던 나날이었습니다. 부디 안으로 드셔서 가르침을 주시길 청합니다.”
“정 그러하면.. 앞장서라.”
하며 칙사와 홍처후가 의주성 관아에 들어가고, 홍처후는 재빨리 의자 하나와 차를 내어왔다. 칙사이 이를 보고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 곳은 조선에서 변방이라 들었는데, 의자와 차가 있다니 놀랍구나.”
“교역이 발달한 곳이라 그렇습니다. 온갖 물목이 모여 거래가 이루어지니 이런 의자며 차며 구할 수 있었습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칙사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차의 향기만큼이나 상국의 은혜가 아름다울진대, 어찌 조선에서는 국경을 사사로이 넘어간 월범인들을 냅두어 그런 사고가 있게 한단 말인가?”
하며 칙사가 얼마전 있었던 청 태조 누르하치의 묘와 묘비가 화전을 맞아 폭파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청나라 복식을 한 조선인 둘이 사탕(설탕)을 봉천까지 와서 팔다가 팔기군에게 꼬리가 밟혀 줄행랑 친 이야기, 둘 다 송씨 성을 썼고 한 사람은 장사만큼 힘이 셌다는 이야기 등등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봉천에서의 사건을 보고받으시던 날, 황제폐하깨서는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다는 소문이 있었으니 지금 조정이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인지를 이제 알겠느냐?”
하며 칙사가 차 한 모금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다만, 그 자들이 조선인인지, 어떤 의도를 갖고 그런 짓을 벌인 것인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으니 신중할 것을 황제폐하께서는 지시하셨으니 어찌 그 은혜가 하해와 같지 않겠느냐? 하여 본관을 칙사로 임명하시어 사건의 진상을 확실하게 조사할 것을 명하셨다.”
홍처후는 그제서야 조각들이 하나 둘 맞아떨어지며 자신이 감당할 일이 아님을 깨닫고는 몸서리쳤다. 그는 무릎을 꿇고 칙사에게 물었다.
“상국의 은혜가 이래도 깊은 줄 미처 알지 못하였습니다. 마땅히 이를 해결하려 상국의 칙사께서 오셨으니, 저희 의주성에서는 어떻게 상국을 모시면 되겠습니까? 혹 군사를 풀어 수색을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칙사가 가소롭다는듯 웃으며 말했다.
“월범한 자들의 색출과 수색은 나와 청병들이 할 것이다. 너희 조선에서는 의주성 안에 군사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지낼 곳을 선별하여 제공토록 하여라.
또한 송씨 성을 가진 모든 사람을 내일부터 이곳으로 모아 조사할 것이니 너는 여기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청병을 두려워하거나 도망가지 말 것이며 혹 조사를 받는 자가 있거든 성실히 임할것을 명하라.”
하니 홍처후가 다시금 엎드리며 말했다.
“대인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하여 홍처후는 의주성 백성들에게 청병을 보아도 도망가지 말 것이며, 이들이 오게 된 까닭을 상세히 방을 써붙여 알림으로서 송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나와 조사를 받을 것을 지시했다.
이튿날 부터 사흘간 의주성 안에 송씨 성을 가진 사람은 모조리 나와 조사를 받았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이에 칙사는 송씨 성을 가진 사람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장사를 해본 자 이거나 중강상시에서 물목을 매매 했던 경험이 있던 자라면 모두 조사를 받았다.
의주성 사람들은 난데없는 청나라 군사의 등장에 지난날 호란의 기억이 떠올라 혼란스러워 하고 무서워 하였지만,
이들이 어떤 이유로 여기에 왔는지, 또 어떤 이유로 이들이 화가 났는지를 알고선 모두가 부끄러워 하였으니, 의주성 백성들 중에 청병의 조사를 거부하거나 칙사의 요구를 거스르는 경우는 없었다.
한 달이 지나도록 조사에 진전이 없자, 칙사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홍처후를 불러 일갈했다.
“중강상시에 한 번이라도 갔던 모든 이들을 불러서 조사를 하였는데 어찌 한 사람도 범인과 연관된 사람이 없단 말인가? 이는 상국을 모멸하는 것이냐?”
그러자 홍처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인께서는 부디 노여움을 푸시기 바랍니다. 다만 조사하지 않았던 이들 중에 송씨 성을 가진 사람이 둘 있습니다.”
그러자 칙사가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송시 성을 가진 자가 둘이라?”
“예 그렇습니다 대인.”
“왜 진작 그대는 나에게 고하지 않았느냐?”
“그들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칙사가 무슨 개가 짖는 소리를 하냐고 눈을 흘겼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사람이 아니라니? 조선에는 짐승에도 성을 쓰느냐?”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 둘을 송귀라 부르는데 지난날 역모죄로 팽형을 선고 받아 삶아진 후에 이곳까지 오게 된 자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송씨라는 성만 남았을 뿐 이름도 재산도 관직도 아무것도 그 기록이 남아 있지 아니한 자들입니다.”
칙사는 여전히 불신에 찬 눈이었지만 딱히 검증할 방법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둘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
그러자 홍처후가 답했다.
“분명 그들이 저지른 일을 알 것이니 산 속 암자라던가, 계곡에 숨어 상국에서 스스로 물러나기만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일부터는 의주성 주변 강과 산 모두를 수색하여 이 둘을 체포도록 하겠다. 그대는 조선군 정병 일백을 뽑아 수색하는 청병을 지원하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대인.”
***
한편 그 즈음 머리를 완전히 민 송시열과 송준길은 승려 행세를 하며 상황을 지켜 보았다.
당장이라도 한성으로 향해 도망 갈 것을 주장하는 송준길과 승려 행세를 하며 계곡에서 은신해 있다가 저 청병들이 물러 갈 때까지 기다리자는 송시열이 팽팽히 맞섰다.
“이보게 여기는 너무나 위험하네. 한성으로 돌아가 후일을 도모 하는 게 맞지 않겠나?”
“어찌 그런 생각을 하는가? 이대로 도성으로 돌아 간다면 진정 그때는 송귀가 아닌 송 알갱이가 되지 않겠나? 머리를 깎아 승려가 되기로 한 몸 저들의 눈을 피해 일을 도모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일세.”
“저들이 우리를 찾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지금껏 한 달을 넘게 도망을 왔네.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도성으로 숨어 들어야 우리 목숨도 온전히 보전 할 수 있을 것일세!”
“하지만 여기서 도성까지는 너무나도 먼 걸음이야. 우리에게 말이 있는가 노새가 있는가. 그 먼 거리를 걸어 가려면 필요한 것이 많은데, 남은 건 아무것도 없네.”
하며 송시열이 한숨을 쉬며 이어갔다.
“산 속에 아직 산군들이 많이 남아 있으니 요행을 바란다면 청병들이 산군의 노호성에 스스로 겁먹어 이리까지 오지 못하고 물러 가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없이 여기에 있을 것인가?”
“대책이라. 근처에 화전민 부락이 있다는 걸 아는가?”
“화전민 부락은 처음 듣네만···”
“전에 버섯을 얻으러 간 적이 있네. 화전을 일구는 것 뿐만 아니라 짐승들을 사냥하는 부락 이었지.”
“짐승을 사냥 하는 부락이리고?”
“그렇네. 이들에게도 조총 한 자루는 있겠지. 사정을 설명하고 총과 화약을 얻어오면 청병이 여기까지 올라오더라도 충분히 맞설 수 있네.”
“시열! 자네 정말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청나라 군사와 맞서 싸우겠다고?”
“살아남아야 하네. 어떻게든 살아남아 이 송귀라는 이름 대신 모든 것을 되돌려야지 않는가? 내가 화전민 부락에 가서 총과 화약을 얻어 오겠네.”
***
그 사이 홍처후는 한성으로 장계를 보내 사건의 전말을 영섭에게 알렸다.
영섭은 홍처후에게서 온 장계를 열어 보고 뒷목이 땡기는 느낌을 받았다.
이 조선 땅에 와서 감자 농사를 지으며 겨우 기근을 막고,설탕을 도입해 모자란 열량을 보충 하고, 못 먹는 자들은 카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든 선교사의 짐을 지워 구빈원을 세워 먹게 했다.
이제서야 좀 먹고 살만 해졌는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저 빌어먹을 송귀놈들에게 물어 보고 싶었다.
영섭은 한숨을 내쉬면서 중신들에게 말했다.
“그대들도 지금 상황이 시급하고 중한 것을 알것이다. 이를 어쩌면 좋을지 허심탄회하게 고하도록 하라.”
그러자 영의정 김육이 나서 말했다.
“전하. 이번 일은 동서고금 그 어느 곳에서도 없던 일이옵니다. 화전이라는 병기가 누르하치의 묘와 묘비를 깨뜨린 일은 참으로 놀랍고 황당한 일이지만, 반대로 인조대왕께서 계신 저 장릉에 떨어졌다면 그 느끼는 분노와 원망은 상상이 되지 않사옵니다.
하오니 홍처후로 하여금 청나라 군사들이 송귀들을 찾는데 도움을 주시고 마땅히 은자를 내어 이들을 위로하고 쉬게 해야 할 것이옵니다.”
그러자 예조판서 김자점이 고개를 끄덕이면 말했다.
“영의정의 말이 참으로 옳다 여겨집니다. 일찍이 송시열 일당이 저지른 일에 대해 사형을 하지 못한 것이 오늘날 원죄가 되었습니다.
하여 이들을 체포 후에 진정 죄가 있다면 낱낱히 밝혀 부관참시 하여 이들이 존재 했다는 모든 기록을 지워버리게 해야 합니다.
동시에 이 송귀들을 찾는 청나라 칙사에게 은자, 고기, 술, 비단을 베풀어 상국을 모시는데 모자람이 없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이번에 군의 법식을 새로 고쳐 만든 영격기병대와 영격총수병을 파견하여 칙사를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병조판서 이완이 발끈하며 말했다.
“아직 누구의 죄가 명확히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섯불리 신식군을 파견하는 것은 이르다 할 것입니다.
전하, 지난날 신식군제를 도입한 이후 영진신서와 영격신서로 병력을 조련하였지만, 영격총수병은 이천명을 조련하였고, 영격기병은 이제 겨우 일천이 넘었습니다.
이들은 이 나라 조선에서 가장 정예한 강병들입니다. 상황이 위급하며 중한 것은 알지만 당장 파견하는 것 보다는 이들로 하여금 신식군을 확장하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이때 우의정 원두표가 나서서 말했다.
“전하, 우선 의주성에 있는 군사들로 하여금 칙사를 도와 지원토록 하고 은자와 술 고기를 베풀어 칙사과 병사들을 위무하는 게 시급할 것입니다.
이후 필요하다면 예조판서 김자점으로 하여금 사죄사를 꾸려 이들을 접견하고 이들이 요구하는 바를 들어주어 난관을 극복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영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중신들의 의견은 잘 알았다. 예조판서 김자점은 나의 명을 따라 의주성으로 가서 사죄사로서 칙사과 청병들을 위무하고 결코 조정의 의도가 아니었음을 알리도록 하라.
세부 인선과 필요한 물목은 김자점에게 일임하도록 할 터이니 김자점은 나라의 운명과 백성들이 위급함함을 알고 저들을 접대하도록 하여라. 또한 칙사에게 서신을 보낼 것이니
김자점은 칙사에게 나의 뜻을 잘 전해주기 바란다.”
***
열흘 뒤, 예조판서 김자점이 정사가 되어 구성된 사죄사가 의주성에 도착하였다.
김자점은 칙사를 접견하여 소방으로서 사죄의 뜻을 올리며 동시에 영섭이 쓴 서신을 건네주었다.
칙사가 서신을 뜯어보니, 유려한 필체가 척 보아도 왕의 글씨임을 알 수 있었다.
‘···하여 비록 죽은 자이기는 하나 마땅히 조선의 혼령에 의해 초래된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 황제폐하와 칙사께서 겪으신 고통을 생각하며 소방은 통석의 념을 금할 길이 없음을···’
칙사는 한참을 ‘통석의 념’ 이라는 것이 대체 무슨 뜻인지 싱글싱글 웃는 김자점만 멀뚱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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