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이 신입은 해냅니다.
“이번에 신입이 들어온다면서?”
중앙전장 사천지부는 때 아닌 신입 채용으로 소란스러웠다.
점심시간, 탕비실에 직원들이 모였다.
전장이란 직장은 매우 보수적이라 계획에 없는 일을 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만큼 특채는 이례적이었다.
“게다가 파락호 출신이래.”
단발머리 투자조 직원이 입을 가리며 소곤거렸다.
“지부장은 왜 그런 삼류잡배를 왜 데려오는 건지······.”
짧은 머리의 대출조 직원이 성이 난 듯 투덜거렸다.
낙하산 인사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출신마저 비천했다.
마음에 들 건더기가 없었다.
“배정은 어디로 될 것 같아요?”
전장 일은 창구와 추심, 대출, 투자 등으로 나뉘었다.
뱃살 두둑한 창구직원이 묻자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추심이겠지.”
“추심 아니겠어?”
질문을 했던 직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긴, 갈 곳이 거기밖에 더 있겠어요? 차라리 잘됐네요. 추심이 하는 일이 워낙 힘이 든데······.”
다양한 손님과 마주하는 창구도 힘겹기는 마찬가지지만, 추심은 대개 밑바닥까지 간 이들을 만나는지라 직원들은 특히나 꺼렸다.
“그래도 지부장은 철저히 능력 위주로 사람을 가리잖아요. 특별히 뽑을 정도면 능력이 대단한가 보죠?”
“칫! 파락호 출신이면 그래 봐야 협잡꾼이지.”
대출조 직원이 혀를 차며 답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부터 신세를 지게 된 금민재라고 합니다.”
“처, 처음 뵙습니다. 자, 장인워워라고 합니다.”
‘워워는 또 뭐야?’
대출조 직원의 얼굴이 휴짓조각처럼 구겨졌다.
추심으로 갈 거라 생각했던 낙하산 인재가 대출로 온 것이다.
“지부장님의 특별히 데려온 인재니까 네가 사수로 잘 챙겨줘.”
조장은 그 말만 남기고 영업을 하러 나갔다.
대출조 직원은 속으로는 조장에게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토해 내면서도, 겉으로는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빌어먹을 사회생활.’
대출조 직원은 신입으로 들어온 금민재와 장인원을 살폈다.
키가 멀대 같이 크고 앞머리가 벗겨진 장인원은 전장에서 일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나마 쓴다면 경비대로 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이놈은······.’
금민재란 사내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키가 작았다.
그러나 세월의 풍파를 정통으로 받은 얼굴은 40대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았다.
“흠흠! 일단 영업이란 걸 해 봐야지. 그래!”
직원이 종잇조각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업체 여섯 곳을 적었다.
하나같이 규모가 큰 업체였고, 아직 중앙전장과는 거래를 트지 않은 곳이었다.
“일단 거기에 있는 곳들 찾아가서 영업을 해 봐. 안면을 트는 것도 좋고, 대출을 받아오면 더 좋고.”
그는 두 사람이 일을 제대로 할 거라곤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대출을 받아오겠어? 그래도 연습은 되겠지.’
***
“역할 놀이도 당문 정도 규모가 되면 인피면구까지 쓰는구나.”
장인원은 나란히 걷는 당연우를 흘끗흘끗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한 달 전 만화루에 일일 경비로 고용됐던 그는 우연한 계기로 당연우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이튿날 다시 만난 막내 공자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인피면구를 뒤집어쓴 그는 걸음걸이나 태도, 손동작까지 영락없는 하류 잡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재능이란 게 이런 걸까?’
당문 공자가 연기 재능을 어디에 써먹을 진 모르겠지만, 장인원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나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함께 만화루에 추심꾼으로 고용돼 악독 채무자가 숨긴 비자금을 빠짐없이 찾아내고 빚을 받아내면서 당연우는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펼쳤다.
‘머리가 얼마나 좋은 거야?’
장인원은 겨우 열다섯 소년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원래 놀려면 제대로 놀아야 하잖아요?”
“그래도 중앙전장의 사천지부에 들어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중앙전장은 상계에 대해 문외한인 장인원도 알 정도로 대기업이었다.
중원 전체를 대상으로 전국에 지점을 둔 거대 금융 기업이었다.
“그래 봐야 지부인데요. 뭐 대단할 게 있나요?”
‘당문의 공자님께서야 그렇게 보이시겠지만······.’
중앙전장이라면 돈으로 거대 문파를 휘두를 정도로 막강했다.
삼류 무사인 장인원에게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처럼 하늘과 같은 곳이었다.
“그것보다 선배들의 눈이 곱지 않았죠?”
뒤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당연우 앞에서도 반쯤 욕이 섞인 언사를 보였다.
“선배가 대출을 받아오라고 한 업체는 전부 여섯 곳이에요.”
당연우가 장인원에게 쪽지를 건네며 말했다.
태산대장간, 명강의원 등 모두 당가타에 오랫동안 자리를 잡은 곳이었다.
당연히 빚을 낼 이유가 없는 곳이기도 했다.
“이건 텃세 아닌가요?”
선배들이 대출을 받아오란 곳들은 당가타에 온 지 불과 석 달도 되지 않은 장인원도 알 법한 곳이었다.
그러면서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당문의 공자가 찾아간다면 그들은 필요 없는 돈이라도 빌릴 이들이었다.
“역경을 맞아 이겨 내는 모습······ 멋지지 않나요?”
‘역시 놀이인가?’
그렇다면 당연우는 당문의 이름을 팔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굳이 빚을 질 이유가 없었다.
‘에휴, 눈칫밥은 나만 먹나 봐.’
장인원이 선배들의 눈살에 시달릴 걸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
“태산대장간은 오랫동안 당가타를 지켜온, 그러니까 수호신 같은 곳입니다.”
태산대장간에 도착한 나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부터 내뱉었다.
조사 하나 하지 않았지만 필요한 정보는 어차피 눈앞의 주인이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들이 모르는 걸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크흠! 뭐 우리가 오랫동안 당가타에서 장사해 온 건 맞지.”
얼굴에 금칠하자 태산대장간의 무안한 듯 주인이 헛기침했다.
“노사께서도 아시다시피 대장장이란 게 검을 잘 만든다, 창을 잘 만든다 해서 다 명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먼저 눈앞의 장인이 생각하는 이론에 동조하면서 그의 관심을 끌었다.
장인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명검을 만들었다고 명장이 아니다. 명검만 만들려고 하지 마라. 그건 그가 매일 같이 입에 담는 말이었다.
“최근 철암당에서 새로운 의료기기를 개발한 건 아시죠?”
최근 철암당이 개발한 의료기기가 장안의 화제였다.
태산대장간이 당가타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장간인 만큼 그런 소문에 특히 민감했다.
“그야 그렇지 작은 금속관에 그물 같은 걸 달았더군. 실물을 봤는데 그거······ 쩝.”
태산대장간의 주인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
현재 태산대장간에서는 만들 수 없는 물건이었다.
‘무림 고수를 몇 날 며칠 닦달해 만든 거니까.’
내가 직접 당중수를 졸라 만든 물건이었다. 특히 그물을 만든 건 일반적인 금속이 아니었다.
체내에 들어가면 점차 녹아 끝내 몸 밖으로 배출되는 금련강이라는 물질이었다.
금련강이 본래 독으로 쓰이던 재료인 만큼 철암당은 의독당의 도움을 받아 제작됐다.
나는 그 부분을 언급하며 주인을 자극했다.
“변화가 없으면 도태되는 게 이 바닥입니다. 태산대장간도 이제 본격적으로 새로운 물질을 연구해야 할 시대입니다.”
이번엔 위기감을 조성했다.
당가타에는 실력에 자신 있는 대장장이들이 많이 찾았고 대부분이 텃세를 못 이기고 실패하지만, 간헐적으로 자리를 잡는 일도 있었다.
그들이 하나둘 쌓여 가며 당가타는 사천에서 뛰어난 장인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들 하나하나가 태산대장간에게는 경쟁자이자 위협이었다.
“태산대장간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다른 대장간과 다르게 스무 명이 넘는 장인들이 소속된 대규모 대장간입니다. 그렇다면 그 장점을 살려야죠.”
나는 장인원에게 필기구를 부탁했다.
그리고 대장간 주인 앞에서 태산대장간의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내가 경제부에 소속된 경험은 없지만, 경제사기범을 만난 일은 제법 있었단 말이지.’
그리고 그런 사기꾼들의 수법이나 기술이 사람을 현혹하는 기에는 건실한 투자설계사들보다 더 뛰어난 법이다.
「그야 그렇긴 하지······ 틀린 말도 아니고, 그 중앙전장의 직원이 하는 말이니까.」
사내의 시선이 사업계획서로 향했다.
그가 마음이 기우는 것을 느낀 나는 쐐기를 박았다.
“굳이 지금 결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다른 곳에서도 설명해 드려야 하거든요.”
“다른 곳? 설마 영금대장간의······.”
영금대장간은 당가타에서 태산대장간과 쌍벽을 이루는 거대 대장간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을 본 대장간 주인이 결심을 내렸다.
“계약서는 가져왔겠지?”
이후에 찾은 의원은 전문분야라 더 쉽게 대출을 권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후 연달아 여섯 업체를 모두 다니자,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어갔다.
그때까지 호위 겸 보조로 따라다니던 장인원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공자님, 정말 당연우 공자님이 맞으십니까?”
「사기꾼보다 더 사기를 잘 치는 사람이야. 이런 사람이 명문세가의 자제라고? 차라리 사파의 거두라고 해도 믿겠어.」
나는 그의 생각을 읽고는 실소했다.
상대방의 욕심과 걱정이 훤히 보이는데, 영업을 못 하면 그게 더 문제다.
욕심을 자극하고 위기를 부추기면 그 어떤 강골도 버텨 낼 수 없었다.
“그러면 인원 아저씨는 제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
장인원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사기꾼, 그런데 진짜 얼굴은 이미 봤는걸? 그렇게 어린아이가 지금과 같은 신산귀모와 같은 지모를 보인다고?」
내 눈엔 그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굴러가는 게 빤히 보였다.
나는 웃으며 그의 등을 때렸다.
“기왕 노는 거 아주 철저하게 놀아야죠.”
“주, 전장 사천지부라도 먹으실 생각입니까?”
그가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문의 장난질은 그 규모부터 다르구나.」
입을 쩍 벌리는 장인원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걸로 되겠어요?”
지부 따위로 배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
“대출조로 보냈다고? 아니. 왜?”
지부장이 금민재가 배속된 곳을 보곤 신경질을 내며 물었다.
인사조장이 진땀을 흘리며 변명했다.
“그것이······ 지부장님께서 특별히 데려온 인재라 하셔서.”
정예들이 모인다는 중앙전장에서 투자와 대출 쪽은 특히나 더 뛰어난 인재가 모였다.
인사조장은 금민재나 장인원을 보지도 않은 채 두 사람을 대출조에 배정했다.
“하아······ 인사조장 그렇게 안일하게 살래?”
“죄송합니다.”
인사조장은 그런 지부장의 태도가 억울했다.
지부장을 믿고 좋은 부서로 보냈다가 도리어 욕을 먹었다.
“하지만 잘했어. 이런 건 결과가 중요한 거니까.”
“네?”
“잘했다고. 네가 일을 거지같이 처리했는데 그놈들 공이 네 과를 덮었다고!”
인사조장은 지부장이 칭찬을 하는 건지 화를 내는 건지 그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지부장이 어리바리한 인사조장을 돌려보내고 계약서를 다시 한번 살폈다.
한 자 한 자 노려봐도 바뀌는 건 없었다.
“태산, 명강, 금정까지? 들어온지 하루만에 여섯 곳에서 대출을 받아왔어. 미친······.”
금민재가 배속 첫날 보인 정신 나간 결과에 지부장은 욕이 나올 정도로 감탄했다.
그런 그의 시선에 한 장의 서찰이 담겼다.
“이건······.”
결사에서 보낸 서찰이었다.
지부장이 조심스럽게 안을 펼쳤다.
안에는 단 한 자의 글만이 적혀 있었다.
‘실(實)······ 열매를 보란 건가? 재촉이 너무 심하군.’
당연해가 가주가 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현 소가주가 무공만 뛰어날 뿐, 가주로서 됨됨이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성은 충분했다.
“조급함은 일을 그르치거늘······.”
지부장이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어찌 됐든 결사의 명을 거역할 순 없었다.
다음날 지부장이 고급 객잔 별실에 당연해를 초대했다.
당연해는 뚱한 표정으로 지부장을 만났다.
‘너 따위가 감히 오라 가라 명령질이야?’
그는 지부장의 초대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부장은 당연해의 표정에서 언짢음을 읽고 작은 상자부터 내밀었다.
“공자님, 이렇게 어려운 발걸음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 돈으로 풀지 못한 앙금은 없었다.
상자 안 찬란하게 빛을 토하는 황금을 보고는 당연해도 기분을 풀었다. 계속 틱틱 거리기에는 너무도 많은 금액이었다.
“공자님, 이제 첫째 공자를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부장은 그의 마음이 풀어진 것을 확인하고 본론을 꺼냈다.
신변잡기나 하며 질질 끌다가 당연해의 기분만 다시 잡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형을? 하긴 때가 됐긴 했지.”
당연강은 너무 오랫동안 소가주로 있었다.
그의 부족한 능력은 둘째치고 슬슬 그의 자리를 흔들지 않는다면 더욱 견고하게 자리를 잡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방법은 있나?”
“인공 공청석유를 준비했습니다.”
공청석유는 자연의 기운이 응축된 영약이었다. 마시는 것만으로도 최소 일 갑자의 내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만큼 무림인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만한 물건이었다.
“이를 사천의료학회를 통해 보낼까 싶습니다.”
당연해가 지부장의 계획을 눈치채고는 미소를 지었다.
“의료학회면······ 막내도 함께 잡자, 이건가?”
최근 당연우의 명성이 그의 귀에 딱 거슬릴 정도로 들려오고 있었다.
지부장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답했다.
“잡초가 더 자라기 전에 뽑으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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