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
이렇게 장영실이 강철을 가져가 자신이 원하는 태엽을 만드는 용도로 사용하려 했으나.
그는 그 강철을 가져가고 얼마 되지 않아 강철을 챙긴 채 다른 업무에 투입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계 만드는데 쓸 줄 안 강철인데···.”
“곧 있으면 주상전하께서 오시기로 하셨는데 전하의 앞에서도 그런 말을 할 것인가?”
“그, 그런 것이 아니라···.”
“계속 불평불만을 이야기할 거면 자네는 그 시계를 만들러 떠나게. 자네 외에도 이 물건을 만들고자 하는 이가 많다는 것 알고 있겠지?”
황보인의 말을 들은 장영실은 묵묵부답으로 눈앞에 보이는 물건을 향해 망치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정인지가 말한 것처럼 지금 장영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물건은 그런 마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많은 물건을 최초로 제작했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장영실에게도 탐나는 것이었다.
그러니 장영실은 정인지의 말에 어떤 토를 달지 않은 채 일을 진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영실, 그가 지금 만드는 물건은 조선이 그토록 원하던 산업혁명의 시작을 알린 물건.
증기기관이었으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증기기관을 지금 만들어낼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는데 벌써 증기기관을 만들 어낼 줄이야.”
“얼마 전 제대로 된 강철을 만들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증기기관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석탄을 통해 끓어오르는 증기를 동력으로 바꿀 피스톤과 실린더.
이것들이 증기를 통해 생기는 온도와 압력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용기가 필요하고.
이 용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강력한 탄성을 가지면서, 그 온도와 압력에 버틸 수 있는 재료가 필요하다.
그러는 데 필요한 재료.
그것 중 하나가 근래에 만들어진 강철이었다.
그렇기에 초강법으로 만들어낸 강철이 아닌 제대로 된 강철이라 할 수 있는 제강법으로 만든 강철이 나온 지금.
증기기관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저나 이거 만드는 거 가능하겠나? 지금까지 자네가 한 것을 보면 쉬운 일은 아닌 듯싶어 보이는데.”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닐 거 같습니다.”
제대로 된 강철이 나온 것을 생각하면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강철을 비롯한 금속을 다루는 능력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장영실이 다른 이들보다 많은 금속을 만졌다는 것.
그렇기에 다른 이들이 금속을 다룰 때 생기는 문제점을 잘 파악하기는 했지만.
아직 처음 다뤄보는 물건이기에 그런 것인지 문제가 많았다.
“이런 것을 보면 태엽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 같은데.”
“...솔직히 그럴 거 같기는 합니다.”
지금 실린더를 만드는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닌데 태엽을 만드는 것은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이를 생각한다면 지금 태엽을 만들었다고 해도 문제가 생겼을 것이 분명했다.
“흠,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게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을 무렵 세종이 도착했다.
이에 일하고 있던 이들이 세종에게 예를 표하고자 하자 세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을 바라봤다.
“내가 그대에게 듣기론 얼마 후면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 들은 것 같은데 아니었나?”
“소신의 예상과는 달리 야장들이 강철을 다루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사옵나이다.”
“이전보다 더 단단해져서 그런 것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으로 보이옵나이다.”
세종은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들었다.
지금 그들의 말대로라면 증기기관을 양산하는 것은 어려운 일 아닌가.
물론 지금 당장은 증기기관을 만들기 위한 역청탄 수급이 안정적이지 않기는 하지만.
몇 년 후에는 역청탄 수급이 순조로워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많은 증기기관을 만들 이들이 필요할 터인데.
지금 증기기관을 만드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어려워보였다.
세종이 이리 생각하는 게 표정에 드러나서 그런 것인지 장영실이 그에게 다가왔다.
“전하, 지금 증기기관을 만드는 것이 어렵기는 하나 나중에는 괜찮아질 것이옵나이다.”
“지금 만들어지는 증기기관을 전국 팔도에 보급할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 이런 상황도 문제 아닌가?”
“그것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사옵나이다.”
“문제 될 것이 없다?”
장영실은 자신이 집현전에서 배워온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소신이 물레방아의 설계도를 만들어낸 후, 이전보다 물레방아를 만드는 것이 쉬워지지 않았사옵나이까.”
장영실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한 물레방아가 퍼지기 시작한 때.
장영실의 설계도를 본 이들은 이 물레방아를 통해 가공된 목재를 바탕으로 새로운 물레방아들을 만들어냈다.
장영실은 이를 언급한 것이다.
“그것은 나무를 가공해서 만드는 물레방아니 그런 것 아닌가.”
세종은 장영실의 이런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지금 나오는 강철을 가공하기도 어려운 상황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증기기관이 나온다고 할지라도 새로운 증기기관을 만드는 것이 쉬워질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이런 세종의 생각을 들은 장영실은 증기기관을 만든 이후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하, 그런 것은 걱정할 것이 아니옵나이다.”
“걱정할 필요가 아니다?”
“증기기관을 만든 후에는 강철을 가공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있사옵나이다.”
“강철을 가공할 수 있는 기계?”
“그렇습니다. 이를 공작기계(工作機械)라 하옵나이다.”
공작기계.
각종 기계를 만들기 위한 기계.
그렇기에 새로운 기계를 가공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물건이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망치를 비롯한 다른 도구들로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공작기계를 바탕으로.
지금보다 많은 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공작기계가 무엇인가?”
“기계를 만들어내는데 도움이 되는 어미 기계 같은 것이라 생각하시면 되옵나이다.”
“어미 기계라, 허, 그런 물건이 있는지는 몰랐는데.”
“공작기계 중에는 이미 조선에 존재하는 물건도 있사옵나이다.”
“조선에 존재하는 물건?”
조선에 존재하는 공작기계,
바로 도자기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물레였다.
이를 최근에 알게 된 장영실은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공작기계를 만들었다.
선반이라 불리는 공작기계였다.
이 선반은 다른 물건들을 깎을 때 많이 사용되는 물건으로.
과거 강철을 바탕으로 이 물건을 만들어 나사를 깎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선반 같은 아직은 만들어지지 않은 많은 공작기계가 존재한다.
이를 생각한다면 증기기관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
새로운 증기기관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쉬워질 것이 분명한 일이었다.
“그러니 이러한 공작기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증기기관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할 것이옵나이다.”
“그리된다면 지금의 공장이 면포를 생산하는 것처럼 만들어지는 것이 쉬워질 것이다?”
“그렇사옵나이다. 전하.”
이를 들은 세종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영실이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그의 생각이 맞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대가 그리 여긴다면 그럴 터겠지.”
세종이 그리 말한 후 가만히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황보인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증기기관의 성능을 올리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예, 아직은 역청탄을 얻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 그리해야겠습니다.”
증기기관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강철이 발목을 잡는 지금.
많은 증기기관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지금 당장은 증기기관의 성능을 올리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나았다.
“그나저나 지금 만들고 있는 증기기관은 누구의 증기기관을 바탕으로 한 것인가?”
“뉴커먼의 증기기관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뉴커먼? 그자의 증기기관보다는 제임스 와트? 그자의 증기기관을 바탕으로 만드는 것이 낫지 않은가?”
뉴커먼은 최초의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증기기관을 만들기는 했다.
그러나 몇 년 후 제임스 와트가 개량한 증기기관을 만들었으니.
이를 바탕으로 증기기관을 만들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그자의 증기기관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지금 보이는 것처럼 제대로 된 증기기관을 만들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와트의 증기기관보다 과거의 증기기관이니 만드는 것이 쉬울 것이라 판단한 것인가?”
“그렇사옵나이다.”
처음으로 증기기관을 만들기에.
아직 증기기관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장영실은 지금 상황에서 만들기 쉬운 난이도의 증기기관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뉴커먼의 증기기관인 것이었다.
“그래도 만드는 난이도는 비슷하지 않았겠는가?”
“지금도 증기기관을 만드는 난이도가 어려우니, 조금이라도 쉬운 난이도를 택한 것이옵나이다.”
황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는 기술자가 아니기에 장영실의 말이 옳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대화가 끝날 즈음 세종은 증기기관을 바라봤다.
“슬슬 만들어진 것 같군.”
세종의 말을 들은 장영실과 황보인은 고개를 증기기관으로 돌렸다.
세종이 말한 것처럼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 것이다.
“전하, 지금 만들어진 물건은 아직 완벽한 것이 아니니 멀리 물러나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위험한 것인가?”
“잘못해서 파편이 나와 전하의 옥체(玉體, 왕의 몸)에 상처를 낼까 두렵사옵나이다.”
그 말을 들은 세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물러난 후.
장영실은 증기기관을 가동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반성 코크스와 물을 넣어라!”
그렇게 반성 코크스와 물이 들어간 후 증기기관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증기다! 증기가 나온다!”
“오, 정말로 증기가 나오는 물건이었군.”
“저기 보십시오, 실린더와 피스톤이 저리 빨리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까!”
증기기관이 처음 움직이는 모습을 본 이들이 지금 상황에 감격하고 있을 때.
세종은 증기기관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산업혁명의 시작점이라 말하는 것이 가능한 증기기관을 만든 것을 보고 놀란 것이다.
“드디어 산업혁명의 길에 도착했군.”
미래의 기술을 통한 3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 흐른 지금.
조선은 산업혁명의 시작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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