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약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넌지시 물었다.
“뭔데?”
“갖고 싶어!”
두근.
“··· 뭐를?”
하지만.
“딱 100개만 풀린 성황녀 한정 피규어! 그거 가져보려고 판매하는 시간에 맞춰서 기다렸는데, 구매를 하기도 전에 죄다 매진되어 버렸다구··· 작가인 너라면 구할 수 있는 거지? 응?”
“···”
마음을 추스르는 것보다, 우선 그녀의 부탁에 집중하기로 했다.
“성황녀?”
“응. 여자 히로인이 성녀랑 황녀 타이틀 둘 다 갖고 있으니, 다들 성황녀라고 부르더라고. 혹시 몰랐어?”
“다들 부른다는 게, SNS 같은 곳에서 말하는 거지?”
“SNS도 있고, 펜카페에서도 ‘성황녀님’이라고 부른 지 오래라고.”
“펜카페라니···”
커뮤니티 쪽에 아예 신경을 안 쓰기는 했지만, 펜카페가 생길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또한 그녀가 얼마나 해당 작품을 좋아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내가 쓴 작품을 좋아한다라··· 좋아해야 되는 걸까, 아니면 다른 기분을 느껴야 되는 걸까.’
그렇게 말없이 쳐다보고 있자,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강혜린은 버럭 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건데에!”
“평소에 웹툰이나 이런 걸 좋아했었어?”
“아니?”
“그런데 그 작품은 왜···”
“가끔 내가 영상 같은걸 인스타에 올리는 건 알고 있잖아? 근데 그럴 때마다 이용모가 자꾸 추천 피드로 뜨는 거야. 그림체가 좋아 보이길래, ‘매번 그렇게 그릴 수가 없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보기 시작했거든. 근데 재밌어서 계속 보게 된 거지.”
“아.”
‘대체 이용모가 인기가 많게 된 이유가 뭔가?’에 대해서 나비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독자들의 반응이나 댓글들을 종합해 본 결과, 세 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었다.
스토리가 재밌거나 각각의 캐릭터에 매력이 존재한다는 것 같은 부분은 작품을 접한 이후이기 때문에 제외하더라도.
소설과 웹툰을 동시 연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같은 진행 속도로 전개한다는 특별함.
SNS등을 통해 ‘작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는’ 홍보용 그림과, 간단하면서도 재밌는 에피소드를 담은 네 컷 만화 등의 업로드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것.
마지막으로 타 작품들과 달리 한 장면 한 장면이 고퀄리티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러한 장면들이 작품 광고에 고스란히 쓰이게 됐는데.
그걸 본 사람들은 ‘실제 웹툰은 저 정도 퀄리티는 아니겠지’라면서 제대로 어그로가 끌린 점이었다.
그녀의 경우는 세 번째를 통해 유입이 된 독자였던 것이다.
“소설도 보고 있고?”
“당연하지! 너, 되게 치사하게 굴더라?”
“뭘?”
“웹툰이랑 소설 둘 다 보지 않으면 퍼즐이 완성되지 않는 기분이 든다고!”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변명하듯이 말했다.
“그건··· 똑같은 내용을 그림과 글로 보는 것보단, 하나를 보고 나머지를 보더라도 지루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거라고.”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작품을 보기 시작했으면 소설과 웹툰 둘 다 볼 수밖에 없도록 하고 싶네. 그러면 겸사겸사 수익도 배로 늘어나는 거잖아?’라는 나름 음흉한 속셈도 존재했다.
“어쨌든 그런 중독성 짙은 작품을 만들었으니까, 용두사미가 되지 않게 잘 완성시켜 줬으면 좋겠어.”
“응. 알았어.”
“그리고 이럴 때야말로 작가의 권력을 남용해서 네 절친에게 한정 피규어를 갖다 주는 것도 잊지 말고.”
“··· 물어는 봐볼게.”
그러자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젓는 그녀.
“노노. 그렇게 대답하는 게 아니지.”
“그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만약 주지 않으면 작품을 더 연재하지 않겠어!’라는 협박을 해서라도 얻어낸 뒤에 너에게 갖다 줄게!라고 말해줘야지.”
“어휴.”
자기 일 아니라고 막무가내로 말하는 버릇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맞다!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어.”
“중요한 거?”
“최근에 오크 왕국이랑 갈등이 생겨서 전쟁 일어날 뻔했잖아. 이거 큰일 날 것 같은데,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 해결하게 돼?”
“··· 앞서 말했듯이 스토리 전개 관련 대답은 해줄 수 없어.”
말해줘도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가끔 여러 가지 이유로 작품 내에 큰 틀은 유지한 채 디테일한 이야기가 바뀌고는 했다.
그런데 만약 그녀에게 ‘앞으로 어떤 결과로 이어질 거다’라고 말해놓고, 정작 말해준 것과 달라지게 된다면 이와 같은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단기간에 작품 수정을 어떻게 그리 빨리 했어? 인력이 그만큼 많이 투입되는 거야?’
그러니 애초에 이어질 이야기 자체를 말해주지 않는 게 나았다.
“아, 치사해~ 대신 성황녀 한정 피규어는 가능한 거지?”
“···”
어쩌면 그녀는 저 얘기를 강조하기 위해서, 내가 뻔히 대답하지 않을 질문은 한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부탁을 침묵으로 대응했는데, 그 누가 알았을까.
여행 기간 내내 ‘성황녀 한정 피규어’를 달라고 귀에 피가 나도록 얘기할 줄 알았다면, 진즉에 구해보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나중에 가서 ‘알겠다’고 답했지만, 미적거린 부분으로 신뢰를 할 수 없다며 기승전 성황녀 피규어가 되는 바람에 종종 대화를 하다가 도망치는 경우도 생겼을 정도.
결국 강혜린이 옆에 있는 상태에서 편집자에게 연락을 취해서 피규어를 추가로 얻을 수 있는 건지 물어봤고.
‘작가님이 원하는데 당연히 구해 드려야죠. 다음부턴 시제품을 하나씩 갖다 드리겠습니다.’라며 극구 사양했는데도 이후에 나올 피규어는 죄다 갖다 줄 기세에 또 한 번 질릴 뻔했다.
그렇게 우린 미국의 서부를 돌아다니며 마음껏 해외여행을 즐겼다.
**
강혜린은 애리조나 공항에서 내가 떠나는 것을 배웅해 줬다.
아무래도 이번에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기 때문에 각종 tv나 인터뷰, 광고 같은 부분이 들어와서 당분간은 미국에서 활동해야만 하는 듯했다.
그리고 둘의 여행이 끝난 뒤, 그녀는 더 세간의 관심을 받았는데, 다름 아닌 나와 팔짱을 끼고 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기 때문.
멀리서 찍은 거라 남자 측, 그러니까 내 모습이 뚜렷하게 나온 것은 아니지만 딱 봐도 남자라는 것은 알 수 있었고.
‘강혜린 선수와 같이 단둘이 여행하는 저 남성은 남자친구인가?’하는 의문이 확산이 되면서, 공영 뉴스에서조차 언급을 하는 수준이었다.
거기까지는 좋다고 치더라도, 더 큰 문제점이 있었다면.
‘제대로 안보였을 뿐, 주변 사람들은 알아볼 정도는 됐으니까.’
한국으로 돌아오고선 시차에 적응해야만 했는데, 그것 때문에 학교 동기들에게서도 미친 듯이 연락이 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부모님, 여동생의 확인 전화 등으로 며칠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중 제일 장관, 혹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아무래도 강혜린 쪽 부모님 카톡방이었다.
갑자기 강혜린의 어머니가 나를 단체 카톡방에 초대를 했는데, 거기엔 강혜린 아버지와 당사자가 같이 있었고.
뉴스에 나왔던 사진을 올리고선 ‘그래서 약혼식은 언제 하면 좋을까?’라며 나와 그녀,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까지 물음표를 던지게 된 것.
단 둘이, 그것도 해외에서 팔짱을 끼면서 여행을 다닌다는 것 자체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지만.
실제로 서로 사귀거나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여차저차 오해를 잘 풀 수 있었다.
다만 여동생의 ‘그럼, 그렇게 여행하는 동안 썸 타는 느낌은 없었어?’라는 질문이 뇌리 속에서 오래 남아있긴 했었지만 말이다.
**
사무실 안.
해당 공간에는 나, 공인중개사, 임대인 1, 임대인 2, 그리고 변호사까지 총 다섯 명이 위치하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나비의 독립과 관련해서 사무실 및 주거 이사할 공간을 계약하기 위해서였다.
“층 전체를 빌리신다고 해서 나이가 많을 줄 알았는데, 무척 젊은 분이 나와서 놀랍군요.”
“그런가요?”
“일부 공간만 빌리는 경우에도 30대 이하는 살면서 구경해 본 적도 없더이다. 허허.”
중년 남성이 넉살 좋아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내 모습을 꼼꼼히 훑어보는 듯했다.
마치 ‘얘가 진짜 돈이 많은 놈인가?’인지를 평가하듯이 말이다.
“젊은 사장씨. 혹시 회사가 어떤 계열인지 알 수 있을는지···?”
반 존대를 하면서 넌지시 묻는 건물 주인에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IT 쪽입니다.”
“IT 쪽이라면 구체적으로···”
“AI에 관련된 쪽이라는 것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자세한 건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어차피 AI관련 직원을 조만간 뽑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드러날 정보이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더미 AI를 담당할 인원이겠지만 말이지.’
그러자 고민거리가 해소됐다는 듯이, 건물 주인은 볼록 나온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아아, 잘 알고 있지요. 미래 먹거리 산업 중에 AI가 들어가 있다더니, 정말이군요. 제가 귀인을 만났습니다 그려. 허허.”
나는 계약서 내용을 살펴봤다.
‘보증금 8억에, 매달 월세로 1980만 원인가.’
트윈 빌딩은 똑같이 지상 9층, 지하 3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각각 시세가 480억 정도로 추정되는 듯했다.
지하의 경우는 대부분 주차공간으로 쓰여있으니 제외하고, 1층부터 9층까지 전부 1980만 원을 매달 받는다고 했을 때 1억 7820만.
1년으로 치면 21억 3840만 원으로, 빌딩 시세대비 연 기대수익은 4.4 퍼정도 나오는 셈이었다.
각 층은 1100평에 달해서 꽤 넓었는데.
굳이 하나의 층을 전부 빌려야 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왜냐면 나비의 보안, 즉 생명에 직결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신체로 따지자면 뇌에 해당하는 부분을 보관하는 곳이었고, 타 회사의 인원들과 아무런 접점이 없고 아무리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한들 찝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피해를 주지 않는 개미가 뇌와 두개골 사이를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셈이지.’
그러니 비용이 좀 나가더라도 층 전체를 빌려서, 나비의 중심부를 보호하기 위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나았다.
또 장기적으로 바라봤을 때에도 추가적인 설비가 들어오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처음부터 넓은 공간을 마련해 둔 상태로 점차 채워가는 것이 비용적인 측면으로도 나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매달 1980만 원이라는 고정지출과, 보증금 8억이라는 금액은 결코 아까운 금액이 아니었다.
게다가 작품으로 벌어들이는 금액은 매달 새롭게 경신하고 있어서, 순수 매출액으로만 따지면 하루에 억 단위는 가볍게 넘어서고 있는 것도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되어주었다.
또 추가로 300만 원 정도 정기 비용이 추가될 예정이었는데, 지하 1층에 비상발전기를 설비해서 만에 하나 발생할 전력 차단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끊임없이 전력을 공급해 주려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는데.
‘지금껏 나비는 단 한 번도 전력 공급이 중단된 적이 없었어. 그래서 전력이 중단됐을 때, 무슨 일이 발생할지 예상하기가 어려워.’
단순히 컴퓨터처럼 껐다 켜도 괜찮은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사고관이었다.
왜냐면 나비는 기존에 발생하지 않았던 이레귤러임과 동시에, 굳이 따지자면 ‘살아있는 쪽’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심장이 멈추면 얼마 안 있어서 필요한 곳에 혈류를 공급하지 못해서 숨을 거두듯이, 나비의 핵심 데이터가 멈췄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단언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목숨을 전제로 실험을 해볼 수도 없는 일이라, 그냥 돈을 더 쓰고 미리 대비책을 강구해 놓는 게 맞았다.
그렇게 빌딩 7층 대여 계약건의 사인하며 원활히 진행할 때 즈음, 빌딩 주인이 깍지를 낀 상태로 물었다.
“이 특약에 적혀 있는 내용, 확실한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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