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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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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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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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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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공전쟁 (2)

DUMMY

언젠가 우사는 그런 광경을 본 적 있었다. 어느 ‘스트리머’의 채널에서 보았던 광경. 그저 작은 스크린으로만 봤으나 그 위상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한 이종족이 최고위급의 신들을 압도하는 모습. 양손에 도를 쥐고 있던 그 사내는 어딘가로 급히 달려가는 듯 했다.

그가 칼을 한 번 휘두르자 지신급의 신들이 썰려 나갔다. 그 무위에 두려움을 느낀 천급의 신이나 주신, 창세신들은 그 전투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현세에 살고있는 평범한 존재에게 알려지지 않은 세상인 《관념》에서는 그 인간들을 ‘행동자’라고 불렀다.


-신계니, 신들의 세상이니 하는 것도 이젠 다 지난 일이지.


신을 멸하니, 세계의 끝에 도달하니, 뭘 구하니 하는 말은 모두 믿지 않았다. 우사가 보아왔던 모든 행동자들은 그 가능성을 채 발하기도 전에 신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그 힘을 발한다 한들 세상의 끝에 도달하기 전에 죽은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것이 어느새 1000년 전이었다. 그 이후 행동자는 어느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

인간. 그것도 살아있는 인간의 자격으로 신들을 부수고 세계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우사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저놈이 대체 누군


채널에 타자를 두드리던 우사는 허탈한 듯 채팅창에 쓰이다 만 문구들을 바라보았다.


***


“······사! ㅇ······사! 우사 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화들짝 상념에서 깬 우사는 전장의 상황에 대해 즉시 파악했다.


“우사! 출전을 허락해주십시오!”


상념에 빠진 우사를 깨운 사람은 부상을 입고 성벽 안에서 이를 갈던 병사였다.

어느새 지휘탑에 올라온 그는 전사의 제 1소대장을 역임하고 있는 호세무였다. 그는 아무래도 모든 군사들을 대표해 우사에게 항의하러 온 듯 보였다.

그 말을 방증하듯 호세무는 우사에게 역정을 냈다.


“아직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저희를 불러들이신 겁니까.”


[내 판단이었다.]


“당신의 판단이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아. 이미 병사들은 너무 지쳤어. 성벽 안의 힐러들도 지금 너희의 부상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야. 그런데 어떻게 나가서 싸우겠다는 거야.]


“이찬이란 분이랑 약속하셨지 않습니까. 다섯 시간을 버티기로. 그런데, 그런데 저희는 세 시간도 채 버티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대장님이 버틴다고 해도 저 막강한 병력을 세 시간 이상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


맞다. 사실 버티려면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막을 수 있었다. 아마 운사라면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운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군사 회수가 꼭 나쁜 것 만은 아니었다. 이것은 말하자면 일종의 신뢰.


[난 찬이가 올 거라 믿고있으니까.]


믿음으로만 시행되어버린 미친 전략. 그 전략에 방송을 시청하던 신들도 우사를 비난했다.


[‘농사와 군무의 구름’이 우사의 대책 없는 행동을 지적합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신 192’가 우사를 힐책합니다.]


“그 사람이 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도요?”


[아니. 걔는 올 거야. 걔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당신 같은 사람을 지휘관으로 세우다니. 국왕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불평하며 지휘탑을 내려가는 호세무의 눈엔 독기가 서렸다.

우사는 호세무를 무시하곤 전장의 흐름을 파악했다.


[뭔가 이상한데.]


우사는 이 행성에 온 뒤로 형언할 수 없는 수괴를 느꼈다.

신언이란 자신이 신임을 증명하는 열쇠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보다 낮은 격의 신 혹은 인간을 짓누를 수 있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페케니아의 인간들은 우사의 신언을 듣고도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는 현재 그의 상상력이 부족한 까닭도, 자신의 행성과 떨어져 있는 까닭도 있었으나, 그와는 다른 본질적이고도 고질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이는 우사의 생각을 두 가지 가설로 이끌었다.

첫째, 이곳의 모든 생명체는 우사보다 격이 높다.


-그건 말이 안 돼.


이는 주변만 둘러보아도 알 수 있는 진실.

당장 방금 올라온 호세무는 우사보다 격이 낮았다. 그런데도 호세무는 우사의 신언에 끄떡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둘째. 이곳의 생명체는 우사의 신언보다 더 높은 강도의 상상력에 익숙하다.


우사는 한 달 전 언젠가의 일을 회상했다.


***


때는 바야흐로 점심식사시간. 식사를 마치고 특제 과일 음료를 마시며 걸어가는 우사의 눈에 두 명의 병사가 눈에 띄었다.

정확히는 그들의 대화가 궁금했다.


“이번 마나 폭풍 언제 온대?”

“몰라. 듣기로는 8개월 뒤? 그쯤 온다는데?”

“이번엔 또 어떻게 막아야하나····.”


[뭔데? 뭐가 오는데?]


“충성!”


[경례는 됐고, 뭐가 오는데?]


“아 저희 행성이랑 동시에 만들어진 ‘마나 폭풍’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자연재해입니다. 진짜 폭풍은 아니고 공중에 떠다니던 마나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갑자기 폭풍 같은 기류를 뿜어낸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땐 모든 문이랑 창문을 닫고 마나 차단기를 켜 마나가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폭풍의 지속시간은?]


“때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론 3개월 정도 지속됩니다.”


[오. 신기하네. 훈련 잘하고 니들 고향은 지켜야지?]


“넵! 충성!”


***


우사는 비로소 이 행성의 비밀을 파악하는데 성공했다.

마나는 곧 상상력이다.

‘마나 폭풍’때의 공기를 맴도는 상상력의 질량과 밀도만 들어보아도 일개 인간들이 우사의 신언을 신언으로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엄청난 밀도의 ‘마나 폭풍’, 다시 말해 상상력에 평생을 살아온 그들은 최대로 약해진 우사의 신언을 듣고도 멀쩡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행성의 상상력이 네 명의 인간에게 깃들고 있었다.


소드마스터 프로네르의 오러가 깃든 검에 공룡들의 목이 수십씩 썰려 나갔다.

정령왕 가르타의 고유 정령이 거대한 크기로 변모하며 그것들을 짓이겼다.

대마법사 헤리네스의 고위급 마법이 흔적도 없이 그것들을 태웠다.

충격적인 것은 대군사 지휘관 플레라였다.

멀쩡한 공격기 하나 없을 것만 같던 그녀는 주변 바닥에 작게 원을 그리더니 그곳에 서서 손을 하늘위로 치켜세웠다. 그러자 땅속에서 무언가 흙을 파헤치며 올라왔다.


[플레라가 고유스킬 ‘스켈레톤 군단’을 발동합니다.]


그것들은 다름아닌 스켈레톤. 죽은 망령의 신체가 각자 무구를 들고 날아다니는 공룡을 격추시키고 달려오는 공룡의 다리를 베어 무력화 시켰다.


그러기를 역시나 또 두 시간 째. 결국은 그들도 지쳤다.

하긴 수만의 병사가 달려들어도 겨우 두 시간을 버텨내는데 그쳤다. 그들이 단신으로 두 시간 이상 버티는 것이 용한 수준.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공룡의 병력은 끝이 없었다. 최소 100만이 넘는 숫자의 끔찍한 괴수들이 자신의 죽는 것을 고사하고 달려들었다.

어느새 성벽의 바깥쪽에는 인간과 공룡의 시체가 쌓인 산이 만들어져 있었다.

분전 속에 프로네르가 사방을 쏘다니며 다가오는 공룡을 막아냈다. 그것도 한계에 이르자 우사가 한탄했다.


[이제 모두 한계인가.]


혼잣말로 중얼거린 우사는 하늘에 대고 말했다.


[야, 지금 우리 제한 풀렸냐? 지금쯤이면 풀렸을 거 같은데.]


[‘농사와 군무의 구름’이 아직 위에서 내려온 공문이 없다고 말합니다.]


[빌어먹을. 아직도 안 풀렸어? 역시 그때 갔을 때 따졌어야 했는데.]


무엇인가 불평을 늘어놓은 우사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지켜만 보았다.

프로네르의 검은 무뎌졌다. 검의 날도, 그의 마나도 다 닳아버려 공룡의 목을 한 번에 잘라내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마침내 지쳐버린 프로네르는 선 자리에서 검을 꽂아놓고 숨을 골랐다.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했다는 눈빛이었다.

이어 공룡의 아가리가 프로네르를 향했고, 프로네르는 눈을 감았다.

그때, 무언가 프로네르의 눈앞에 쿠웅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아까 프로네르를 삼키려던 공룡이었다.


대체 어떻게.

쓰러진 공룡의 머리와 등허리에는 수십의 화살이 박혀있었다.

프로네르는 그 화살의 출처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가스페르.”


허공에서 가스페르가 사뿐히 착지했다.


“늦진 않았군.”

“닥쳐라. 왜 나를 살린 거냐.”

“누군가의 부탁이지.”


누군가의 부탁이라는 말을 들은 프로네르는 헛웃음을 지었다.


“네가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준다고?”

“응. 내 생명의 은인이거든.”


가스페르의 말에 프로네르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설마 그 사람인가.”

“아마 맞을 거야.”

“네가 온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진 않을 거다.”

“나만 온 게 아니라면?”


그 말에 프로네르는 반사적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전투 중에 불어오던 역풍. 그 역풍 덕분에 프로네르는 조금이나마 그것의 진군을 늦추는 위안을 받았다.

그 역풍의 주인이 성의 가운데에 서 있었다.


[찬! 왔구나!]


“제가 돌아왔습니다.”


[현재 이찬이 고유스킬 「폭풍」을 발현 중 입니다.]


그의 주변으로 흐르는 심상치 않은 기류.


[너·······어떻게 된 거야?”]


“그냥 수련을 했죠.”


이찬의 격을 발산하자 반경 200미터 내외에 있던 모든 공룡들이 일제히 저 멀리 튕겨나갔다.


[그냥 수련을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씨익 미소를 지은 이찬은 순식간에 바람으로 된 장막을 펼쳐 공룡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했다.

공룡은 필사적으로 바람을 뚫어보려 애썼지만 헛된 노력일 뿐이었다.


“후, 이걸로 한숨 돌렸네요?”


[이상한 소리하지말고, 그동안 어디 있던 거야?]


“다 설명해 드릴 테니까 일단 내려갈까요?”


우사와 이찬은 초소로 들어갔다.


[자, 이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 보실까?]


천으로 지어진 작은 초소 안에는 프로네르를 비롯한 네 명의 수장과 이찬이 둥근 테이블을 놓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일단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전 두 달간 부재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훌륭히 성을 방어 해주신 점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개 소리. 죽을 뻔 했다. 널 믿은 내 잘못이지.”


정령왕 가르타가 날이 선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아무래도 정령왕씩이나 되는 존재가 한낱 짐승과의 전투에 밀려 헉헉댔다는 것부터 자존심에 누가 되는 일인 모양.


“화내실 것 없습니다. 이걸로 전쟁은 끝입니다.”

“뭐? 두 달씩 준비한 계획이 이대로 끝이라고?”

“아니. 것보다 어떻게 끝낼지부터 들어보지.”


성내는 가르타를 제지한 것은 대마법사 헤리네스였다.

이전의 발랄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차가운 오러를 내뿜고 있었다.


그 시각. 초소의 밖에서는 혹시 모를 침입을 대비해 우사와 가스페르가 경계하고 있었다. 우사는 가스페르에게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너, 존재격을 해방했군. 뭐지 ‘관념화’인가.]


“오. 역시 신은 신인가 봅니다. 바로 알아채시는군요.”


관념화란.

행동자만이 가지고있는 특권으로써, 평범한 인간들의 존재격을 해방시켜 줌으로써 세상의 진실을 깨우치는 능력.


[네가 가려는 길은 멀고 험하다. 이찬이 어떻게 ‘관념화’를 알아 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길은 개척되어 있지 않다. 죽을 수도 있다 아니, 죽을 것이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저지른 일이 아닙니다.”


[참. 인간이란 알다가도 모르겠군.]


다시 초소 안의 상황.

이어 이찬이 전쟁을 끝낼 계획을 설명하려는 순간.


쩌저적


이찬이 세워놓은 방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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