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연재수 :
159 회
조회수 :
7,805
추천수 :
30
글자수 :
723,372

작성
23.06.10 06:00
조회
48
추천
0
글자
10쪽

네노쿠니 (3)

DUMMY

3군단장의 손에 들려진 카타나가 위협적인 불길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양손에 사슬낫을 쥔 6군단장이 가스페르를 노려봤다. 방의 제일 뒤에는 양손이 결박된 채 정신을 잃기 직전의 누군가 있었다. 희미한 달빛이 비치는 것을 보아하니 츠쿠요미의 측근 쿠에비코가 맞는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여기서 갈라집시다. 저 붕대를 제가 맡죠.”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놈 보통이 아닙니다.”

“아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할 수 있다고.”


가스페르가 폭발하듯 튀어나가 6군단장을 데리고 ‘인시터애로우’를 소드 폼으로 변환해 몰아붙이고는 성채의 밖으로 창문을 와장창 깨며 나갔다.


“이러면 우리도 나가야 할 거 같은데?”

“그러네.”


순식간에 움직여 성채의 옥상으로 올라온 둘은 스산한 어둠이 가득찬 공간에서 생사를 결정짓는 결투를 시작했다.


“고유격 발현, 「폭풍」, 「유척당지지」, 「정벌」, 「한계 돌파」, 「중력장」”


방심할 틈 따위 없다.



풍백의 고유격 「폭풍」이 이찬의 전신과 '기도'에 깃들었다. 광개토대왕의 고유격인 「유척당지지」와 「정벌」이 그의 격을 한층 더 높게 끌어올려 주었다.

마지막으로 「한계 돌파」가 그의 근육을 미세하게 증폭시켜 근력을 올려주고, 「중력장」의 중력이 3군단장의 움직임을 미세하게나마 억제했다.

시작부터 자신의 전력을 발현한 이찬은 현재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격을 갖추었다.


“네놈들이 여길 어떻게 온지는 대략 알고 있다. 네놈이 행동자이기 때문이겠지. 우리 행동자는 등장하자마자 처형되는데 넌 어떻게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지?”


이 이야기는 이찬이 달빛의 신인 츠쿠요미에게 들은 것과 정반대의 것이었다.


“내가 다른 신에게 들은 바로는 일본 성단에도 행동자가 있다고 했는데?”

“어떤 신을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위에 고위급 신이라면 다 노망난 노인네들뿐이다. 자꾸 옛날 얘기만 해대서 믿을 게 못 된다니까.”

“·········.”

“진짜 쓸데없는 얘기만 하네. 우리가 이렇게 한가하게 이야기나 나눌 사인가?”

“아니지.”


3군단장이 자신의 고유격을 발현했다.


[고유격 발현, 「카구츠치 3형」.]


격을 발현하자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신언으로 변했다.

물론 신언에 내성이 있는 이찬에게 신언의 유무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뿐이랴. 카타나에만 휘감겨 있던 불길은 어느새 그의 몸을 모두 휘감고 있었다.

이것이 군단장들이 그 위치에 있을 수 있는 이유이자 그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원인이었다.


콰앙.


그때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을 정도로 동시에 3군단장과 이찬이 맞붙었다. 이찬의 기도와 3군단장의 카타나가 동시에 충돌하며 파찰음을 토해냈다.

가진 모든 격을 발현한 이찬과 하나의 격을 발현한 군단장이 백중한 전투를 벌였다.

이찬은 한 세계관의 저승이 미치는 영향력을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분명 격의 크기는 같거나 내가 우위였는데.’


이찬은 홍길동과 싸웠던 때를 생각했다.

비록 이찬과 홍길동 모두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격의 크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비교하는 것은 어려웠으나 체감상 눈앞의 적은 홍길동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격을 가진 존재였다.

지신이 된 홍길동과 비슷했던 군단장의 격 크기는 어느새 이찬을 훌쩍 넘을 만큼 커져있었다.

이찬은 문득 우사와 풍백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하는 것이 떠올랐다.


-신은 자신의 세계관, 행성과 멀어질수록 약해진다.

-신이나 신의 주민을 상대할 때는 절대 그들의 행성에서 싸우지 마라.


물론 이찬은 그 말을 모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냈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잘 들어 놓을 걸.’


이찬의 모습은 마치 수업을 듣지도 않고 시험 시간에 후회하는 학생 같았다.

눈앞의 적은 자신의 행성 한 가운데에서 싸우기 때문에 격의 크기는 날이 갈수록 커져 갈 것이었다. 반면에 이찬은 마땅히 자신의 행성이라고 할 곳도 없으며 풍백마저 부재중인 상황.

이보다 악조건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찬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격을 더 크게 발현하여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하하! 항복하지 않는 의지 하나는 높게 사겠다. 하지만 네놈에게 승산이란 존재하지 않아!]


“그래. 어쩌면 그렇겠지.”


갑자기 군단장의 시야에서 이찬이 사라졌다.


[뭐냐?]


그때, 그의 어깻죽지에서 ‘푸슉’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군단장의 몸체가 아래로 눌렸다.


[대체 뭐냐!]


그가 가진 의문의 표정이 당혹스러움으로 변해가는 것에는 그리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찬은 「풍화」를 사용해 몸을 숨기고, ‘기도’ 또한 숨겨 이찬에 관한 그 무엇도 보이지 않게 했다.

그리고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잠시 동안만 모습을 드러내 베고, 또 다시 숨었다. 이를 반복하며 어느새 근육으로 이루어진 3군단장의 다부진 몸에는 무수히 많은 생채기가 둘러싸고 있었다.


[으아아!!! 빌어먹을!!]


물론 군단장도 가만히 맞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카타나를 이용해 원을 그리며 넓은 범위로 타격했으나 「풍화」를 사용한 이찬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게 이찬이 마무리 일격을 가하기 위해 목을 노리려는 찰나.


[잡았다.]


군단장의 팔이 정확히 이찬의 목을 틀어 잡았다.


[쥐새끼 같은 놈.]


이찬의 목을 잡은 군단장은 그대로 이찬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컥컥대며 일어난 이찬은 역시 만만찮은 상대임을 다시금 느꼈다.


크와어어어어엉.


그때, 성채의 정면에서 무언가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포효와 동시에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3군단장은 그 소리에 그치지 않고 이찬의 목에 카타나를 빠르게 휘둘렀다. 이찬은 그 빠른 속도에 반응하지 못했다.

그저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질끈 눈을 감는 것뿐. 그리고 이찬이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을 때, 귀에 때려 박히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아아아악!!!!!!]


그것은 3군단장의 외침이었다.

비를 맞은 3군단장의 온몸이 타듯이 소멸하고 있었다.

이찬은 그 끔찍한 광경을 보자마자 뒤를 돌아 우사와 이노가 있는 곳을 치어다봤다.


"우사······!"


***


이노와 우사는 절벽의 가장자리에서 전투의 동태를 살폈다.

압도적 우세를 점하고 있던 몇 분 전과 달리 지금은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모두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공룡의 목을 썰고 다니는 빌어먹을 군단장들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공룡은 무한대에 가깝게 생성되고 있었고 그 하나하나당 전투력이 어마어마하게 높았기에 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시간만 계속 끌어 줄 수 있다면, 나머지는 이찬과 가스페르의 몫이었기에 우사는 은은하게 안심했다.

그런데 그때, 절벽의 아래쪽에서 무시무시한 열기가 올라왔다. 반사적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자 군단장들이 고유격을 발현해 있었다.

우사는 문뜩 저 군단장들의 이름을 되뇌었다.


[카구츠치 정예병.]


그들 일본 신화 속 카구츠치의 설화를 계승 받아 온 존재들.

그들의 진가는 그들의 고유격을 발현했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하나의 고유격 만으로 다른 격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불세출의 고유격.」


격을 발현한 2군단장이 무기를 들고 가로로 일 획 긋자 그 방향에 놓여 있던 공룡들이 정확히 자로 잰 듯 반으로 갈라졌다. 툭하고 떨어진 공룡들의 사체가 산을 이루고 그들이 흘린 피가 바다를 만들었다.

이 광경을 지켜볼 수 없던 이노는 절벽에서 몸을 멀리했다.

우사는 이노의 친구로서 이 광경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우사가 아래를 보며 격을 발현하려는 순간, 이찬과의 약속 이 떠올랐다.


***


“우사. 이번에도 당신은 격을 발현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왜 나만 격을 발현하지 말라는 거야?]


“신 아니십니까. 체통을 지키셔야죠.”


[하······그래, 알겠는데. 나도 판단이라는 걸 할 줄 아니까 내 판단 하에, 격을 발현해야 되면 난 망설임 없이 싸울 거야.]


***


[미안하다. 이번엔 약속 못 지킬 거 같아.]


그때, 울창한 절벽 뒤의 숲에서 무언가 부스럭댔다.

어딘가 격이 느껴진 우사는 반사적으로 그곳에 격의 파동을 날렸다. 그러자 무언가 숲의 밖으로 빠져나왔다.


[누구냐.]


우사가 이노를 지키며 정체불명의 사내에게 물었다.


[하하, 역시 신이라 그런가 눈치는 더럽게 빠르시네요.]

[뭐?]


풀숲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카구츠치의 1군단장이었다.

멀끔한 정장의 옷매무새를 보아하니 우사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너 같은 놈 혼자 날 상대할 수 있을 거 같나?]

[아니죠, 아니죠. 저 혼자로는 생체기 하나 못 낼 겁니다.]


1군단장이 꼬리를 내릴 만큼 지신과 천신의 차이는 어마무시했다.


[하지만, 제 뒤에는 당신도 감당하기 어려운 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뭐?]


다시 한 번 풀숲이 부스럭거리며 누군가가 흉흉한 격을 온 지표면에 깔고 입장했다.


[오랜만이군, 우사.]


나타난 누군가는 온 몸에 새카만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너······.]


우사는 단번에 그의 정체를 알아냈다.


[오오쿠니누시냐······?]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 세계관의 주인이자 한때 천상의 신들과 혈투를 벌였던, 오오쿠니누시였다.

현재 자신의 세계관에 있는 상상력을 모두 흡수한 신은 우사와 같은 천신과 확연히 달라 보였다.

어떤 존재가 대결 구도에 놓이면 발동되어 상상력의 한계를 줄이거나 늘리는 관리성의 격인 「상상력 균제」도 오오쿠니누시의 상상력을 감당하기 힘들어했다.


[찬아······. 잘하면 여기가 내 무덤일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미지의 편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0 복마전 (7) +1 23.07.09 47 1 10쪽
39 복마전 (6) +1 23.07.08 41 1 11쪽
38 복마전 (5) +1 23.07.02 45 1 9쪽
37 복마전 (4) 23.07.01 50 0 10쪽
36 복마전 (3) 23.06.26 47 0 10쪽
35 복마전 (2) 23.06.18 44 0 9쪽
34 복마전 (1) 23.06.17 48 0 11쪽
33 네노쿠니 (5) +1 23.06.12 52 1 9쪽
32 네노쿠니 (4) 23.06.11 55 0 10쪽
» 네노쿠니 (3) 23.06.10 49 0 10쪽
30 네노쿠니 (2) 23.06.06 55 0 9쪽
29 네노쿠니 (1) 23.06.05 45 0 9쪽
28 전지의 신 (7) 23.06.04 42 0 9쪽
27 전지의 신 (6) 23.06.03 44 0 9쪽
26 전지의 신 (5) 23.06.02 48 0 10쪽
25 전지의 신 (4) 23.06.01 52 0 10쪽
24 전지의 신 (3) 23.05.30 60 0 10쪽
23 전지의 신 (2) 23.05.30 66 0 10쪽
22 전지의 신 (1) 23.05.29 59 0 11쪽
21 페공전쟁 (3) 23.05.28 53 0 11쪽
20 페공전쟁 (2) 23.05.26 64 0 12쪽
19 페공전쟁 (1) 23.05.25 64 0 10쪽
18 조력자 (5) 23.05.24 63 0 9쪽
17 조력자 (4) 23.05.23 60 0 11쪽
16 조력자 (3) 23.05.22 63 0 11쪽
15 조력자 (2) 23.05.21 68 0 10쪽
14 조력자 (1) 23.05.20 72 0 11쪽
13 투쟁 대회 (7) 23.05.19 111 0 12쪽
12 투쟁 대회 (6) 23.05.18 99 0 9쪽
11 투쟁 대회 (5) 23.05.18 90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