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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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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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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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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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의 신 (4)

DUMMY

눈에 보이지 않는 구속력이 그들에게 작용했다. 몸에 닿는 촉감 때문에 그 구속은 어쩐지 촉수를 닮아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몸에서 상상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일행 중 가장 격이 낮은 이노가 먼저 기절했고, 직후 가스페르가 일말의 저항도 못한 채 발버둥치다 기절했다.

<태극>의 천신인 우사는 나름 버티는 듯 했으나 결국 상상력이 다한 것인지 축 늘어졌다.

그러나 또 이찬만은 달랐다. 살짝 기력이 없는 것을 빼면 별다른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당황한 것인지 달빛이 목소리를 내었다.


[너는 어째서 내 「달빛 구속」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냐.]


한 마디의 신언으로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목소리에 담긴 상상력의 정도가 얼마냐고 한다면, 패시브 격인 「통역기」가 꺼져 그 신언이 일본어로 들릴 정도였다.


“고유격 발현!! 「폭풍」!”


이찬이 순식간에 ‘기도’를 소환하고 그것에 「폭풍」을 감은 후 눈에 보이지 않는 「달빛 구속」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보이지도 않던 것들이 잘려 나가며 후두두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이찬은 기절한 셋을 낚아채 바닥에 뉘었다.


[네놈들 어디서 온 것이냐. 스사노오의 측근인가.]


스사노오.

일본 신화의 풍신(風神)이자 해신(海神), 뇌신(雷神)이다.

달빛의 반응으로 보아 최소 두 고위급 신이 분열 중인 것이 분명했다. 아마 이찬이 바람 계열의 격을 사용하는 걸 보고 스사노오의 측근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이찬은 열리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 달빛에 대고 외쳤다.


“저희는 그 누구의 측근도 아닙니다. 그저 다른 신의 행성으로 가던 중 우연히 휘말린 것뿐입니다.”


[신원을 밝혀라.]


피부에 닿는 감각만으로는 <태극>의 옥황상제와 같거나 그보다 조금 못한 격이 담긴 것 같았다.

그러나 상황 자체가 달랐다.

옥황상제는 자신의 그릇을 드러내어 신언을 발하였고, 눈앞의 신은 그릇의 조각마저 보이지 않은 채로 신언을 발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명백한 적의를 품고 있었기에 그 평가는 하늘과 땅 차이로 갈라졌다.

둘 모두 자신의 온전한 격을 발현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으로써 절대적인 격의 크기는 눈앞의 신이 더 크다는 소리였다.


“저희를 보내 주십시오. 반드시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용무는.]


기어코 나온 그 질문. 이 신과 허수아비 신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마당에 함부로 신명을 밝혔다간 송장이 될 것이 뻔했다.

그때, 신이 의외의 말을 했다.

[그런데 네놈들 하나 빼고 셋이 인간이군. 혹시 우리 성단의 행동자인가?]


행동자.

그 질문에 이찬은 화색이 돌았다. <태극>에만 행동자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 성단에도 행동자가 있는 모양.


“예 그렇습니다.”


후사는 미래의 자신이 치뤄 주기를 간절히 부탁하며 이찬은 일본 성단의 행동자를 팔았다.


[그렇군.]


순식간에 이찬을 억압하던 상상력이 씻은 듯 소멸했다.


“허억, 허억.”


가쁜 숨을 몰아쉰 이찬은 방금 쌓인 신뢰도를 바탕으로 도박을 시도했다.


“저희는 지금 허수아비 신의 행성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마 우사가 깨어 있다면 당황하며 노발대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사는 없다. 그 말은, 이찬에게 도박의 수가 열려있다는 것.


[허수아비 신이라면·······쿠에비코를 말하는 것인가?]


이찬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신에게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쿠에비코라·······공교롭군.]


‘성공이다.’


이찬의 도박이 성공했다. 눈앞 신과 쿠에비코는 같은 편이었던 것이다.


[재밌군. 쿠에비코에게 용무가 있는 행동자가 있다니. 우리 성단의 행동자에게 호의를 베풀겠다. 내 직접 쿠에비코의 행성으로 보내주지.]


“과분한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마음에 드는군. 아, 쿠에비코에게 내 안부를 잘 좀 전해주게. 만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둥그런 달이 기괴한 형태로 변모했다. 이찬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저것을 생명의 감정표현으로 변환시킨다면, 그것은 분명 ‘웃음’이었을 것이다.

쓰러진 셋과 이찬은 눈 깜짝할 새도 없이 이동되었다.

격이 다른 격. 그 격이 이찬 일행을 휘감았다.

이찬이 도착한 곳은 한 스산한 초원이었다. 햇빛도 달빛도 들지 않는, 마치 세상과 동떨어진 행성 같았다. 마치 멸망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 어두운 세상이었다. 희미하게 비치는 불빛들의 사이로 허수아비가 세워져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초원의 사이사이에 세워진 허수아비가 이찬에게 공포를 각인시켰다. 인간이라면 반드시 유전자에 심어져 있는 원초적 공포. 그런 허수아비가 열댓은 훌쩍 넘는 수로 존재했다.

다행인 것은 저 멀리 밝은 불빛을 내는 한 가옥이 있었다는 것.

이찬은 이노와 가스페르를 어깨에, 우사를 등에 메고는 힘들게 그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바스락 바스락


걸어가던 중간에 의문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버린 이찬은 그런 소리를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그렇게 희미하게 보이는 희망을 붙들어 매고 걸어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이찬이 도착한 곳은 일본의 전통가옥인 료칸이었다. 이찬은 집안에 있는 신이 제발 착한 신이기를 빌면서 문을 두드렸다.


“누구십니까?”


이찬이 문을 두드리자 즉각 반응한 사람이 문을 열어주었다.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은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이찬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안으로 들였다.


“이 시간에 영혼이 어떻게····.”


다급히 이찬을 한 쪽 방에 쉬게 한 다음 여성은 밖으로 나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누군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미닫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무언가 안으로 들어왔다.

벽에 기대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찬은 고개를 들었다.

이찬은 그것을 보자마자 식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곳에는 아까 바깥에서 보았던 형태와 같은 허수아비가 이찬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찬이 겨우 격을 꺼내려는 순간.

허수아비가 말했다.


“반갑습니다 이찬 님. 현재 「허수아비 천국」의 총괄을 맡고 있는 괴뢰 카카시입니다.”


멀대 같은 키와 얇은 나무로 이루어진 신체는 영락없이 허수아비였으나 그것의 목소리는 굉장히 젊고 굵었다.

이찬은 체력이 다해 그것에 대거리할 힘도 없었다.


“피곤하신가 보네요. 일단 쉬십시오. 추후의 이야기는 다시 깨어나신 뒤에 하도록 합시다.”


이찬은 그 이야기를 모두 채 듣기도 전에 기절해버렸다.


“대체 어떻게 저 숲에서 살아온 걸까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분명 ‘눈먼 까마귀’들이 이곳으로 오게 했을 리 없는데요.”


이찬은 잠결에 그런 대활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너무 피곤하고 나른했기에 신경 쓸 틈조차 없이 기절했다.

그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이찬이 눈을 떴을 때, 이찬은 정갈한 매트리스의 위에 다소곳이 놓여있었다. 목 밑에서부터는 푹신한 이불이 기분 좋은 향을 내며 그를 덮고있었고, 목 위로는 파묻힐 것처럼 포근한 베개가 그를 받쳐주고 있었다.

방금 눈을 떴지만 바로 다시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은 환경이었다. 기절하기 전엔 잘 몰랐지만 이곳은 굉장히 멋진 곳이었다. 목재로 된 방의 내부와 향긋한 꽃내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집이었다.

이찬은 일어나며 고통의 신음을 내뱉고 방문을 열었다.


“으으.”


방문의 뒤로 대게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 같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한 허수아비가 아침식사를 세팅 중이었다. 그 식탁의 양 옆으로는 우사와 이노, 가스페르가 넋 놓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일행들에게로 이찬이 다가갔다.


“뭐 하십니까?”


[어, 일어났냐? 얼마나 힘들었던 거야. 며칠을 내리 자고 있었다니까?]


이찬은 자신이 그만큼 잠을 잤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때 이찬의 등 뒤로 무언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간밤에 잠은 편히 주무셨습니까?”


기절하기 직전 만났던 얼굴이었다. 허수아비마다 미세하게 얼굴은 다 달랐지만 이 허수아비만큼은 확실히 기억할 수 있었다.

다른 허수아비들은 모두 무표정의 얼굴이었으나 이 허수아비는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 같은 그림이 큰 특징이었다.

이찬은 당황하지 않고 인사를 받아주었다.


“덕분에 잘 잤습니다. 헌데 이곳은 어디입니까?”

“이곳은 쿠에비코 님의 행성입니다. 「허수아비 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행동자 이찬이시여. 며칠 전 제 소개를 했으니 기억하실 겁니다.”


자신의 정보를 꿰뚫고 있는 허수아비에 이찬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시스템에 그의 정보는 차고 넘쳤기 때문이었다.


“예, 반갑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들려온 허수아비의 문장은 이찬의 표정을 경악으로 물들이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친우를 구하기 위해 기어코 복마전에 향하려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


그것은 분명 아윤에 관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것에 관한 정보가 시스템에 노출되었더라면 당연히 이찬도 끄덕이며 동의했을 것이지만, 이 정보만은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이는 이찬이 옥황상제에게 부탁했던 두 번째 부탁으로, ‘아윤의 정보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옥황상제는 이러한 정보들을 자신의 주민을 시켜 모두 막아냈을 것이고, 그렇기에 또 당연히 이 영혼들은 절대 아윤을, 아윤에 관한 정보를 몰라야 할 것이었다.

그것이 <태극>의 역할이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눈앞에 있는 허수아비는 정확히 그것을 꿰뚫고 있는 것인가. 그것도 아윤의 존재뿐 아니라 상세한 내용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이찬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시는 겁니까?”

“현재 쿠에비코 님은 출타 중이셔서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찬 님께 드릴 쪽지를 하나 남기고 가셨죠. 읽어 보시겠습니까?”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찬은 그때 그 쪽지를 읽지 말아야 했다고 후에 이야기했다.

쪽지를 열고 글자를 읽어내려 갈 때마다 이찬은 질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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