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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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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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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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노쿠니 (4)

DUMMY

가스페르는 천으로 사슬낫을 닦고 있는 6군단장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빨리 끝내고 쉬고 싶으니까, 빨리빨리 죽어라.]


“제가 그 어처구니 없는 말을 들을 것 같습니까?”


[왜 나한테만 자꾸 이상한 놈들이 걸리는 거야. 편하게 죽으면 안돼?]


6군단장은 가스페르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중거리 싸움에 특화된 사슬낫이 가스페르의 눈앞에 현란하게 움직였다.


[으윽!]


가스페르는 「광휘의 발걸음」을 사용해 미세한 간격으로 그것을 피해 냈다.

하지만 「카구츠치 6형」을 발현한 군단장이 놀라운 적중력으로 가스페르를 위협했다.


촤악.

서걱.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강한 상대였다.

「신궁」이 발현되어 그의 활 실력은 누구라도 감히 얕볼 수 없는 정도였지만, 지금 이 전투에서 활은 그 어떤 무기보다도 무능했다.

원거리에 특화된 무기였기에 근거리나 중거리 싸움에서는 힘을 여실히 드러내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가스페르가 지신의 격에 맞서는 것 자체가 기적인 일이었다. 「관념화」가 가스페르에게 여러모로 굉장한 힘을 주고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던 것이었다.


“흐아!”


어쩔 수 없이 가스페르는 ‘인시터애로우’를 근접 무기의 형태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의 힘을 온전히 펼칠 수 없었고, 승부가 결정났다.


“크윽.”


사슬낫을 가지고 가스페르를 눕혀 목에 낫을 대고 있는 모양새가 되었고, 가스페르는 이를 필사적으로 밀어냈다.

낫이 그의 목에 닿기 직전. 가스페르는 어째서인지 자신이 여기서 죽을 것 같지 않았다. 겨우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다는 듯 「관념화」된 그의 스킬들이 포효를 뿜어냈다.

그 기세에 6군단장은 카구츠치의 격을 발현했음에도 뒤로 몇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하, 잔꾀를.]


그러나 6군단장에게있어 방금 그 저항은 별 의미 없는 발버둥일 뿐이었다.

이제 끝인가. 하며 생각할 그 순간.

그의 이마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가스페르에게는 언제든지 실현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나 6군단장에게는 달랐다.


[크아아악!]


그륽르륵.


그의 앞에서 미칠듯한 기세를 뿜어내던 격이 약해지며 6군단장이 기괴한 소리를 질렀다. 녹아가는 6군단장의 번뜩이는 눈빛은 가스페르에게 묘한 소름을 안겨주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든 가스페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6군단장의 영혼이 녹아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혼이 녹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죽은 인간들이 《관념》에오고 그 영혼이 영멸해 《관념》의 저승으로 오고, 다시 소멸해 무(無)로 돌아갈 때는 십중팔구 먼지의 형태로 흩어지기에 그저 천천히 눈을 감거나 녹는 등의 소멸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


이를 가스페르도 알고 있었기에 이 비의 정체를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스페르는, 이 비의 정체를 이미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


가만 보다 보면 우사는 싸움을 못 하는 것 같지만, 정확하다. 그것도 그냥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더럽게 못한다.

이는 우사가 약한 것이 아닌 싸움이 아닌 다른 쪽으로 격을 쌓았기 때문.

우사는 게임에서 흔히 말하는 힐러, 버퍼와 같은 특성을 지녔다. 주로 최전선에서 싸우는 신과 주민을 보조해 싸우는 역할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우사는 본신의 힘을 개방한 오오쿠니누시에게 마땅한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너 따위가 그러고도 천신이라 할 수 있는가?]


우사는 오오쿠니누시의 말에 반박도 못 하고 그가 휘두르는 서슬 퍼런 낫을 피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천신의 정보는 시스템 만천하에 퍼져 있다. 천신의 격에 심어진 강함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에.

같은 천신인 오오쿠니누시도 이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야, 나 패는 게 그렇게 재밌냐? 말도 안할 정도면 재미있기는 한가 봐?]


한순간에 우사의 태도가 천연덕스럽게 바뀌었다.

《관념》의 천신에게는 모두 시스템에 공개되지 않은 비밀이 하나씩 있다.

그리고 우사는 그가 필사적으로 지켜오던 몇 억 년의 비밀을 풀었다.


[시스템 방송(비공개)이 시작됩니다.]

[‘농사와 군무의 구름’이 입장합니다.]


천신은 스트리머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핫라인이 있기 때문에 스트리머에게 방송을 비공개로 켜줄 것을 부탁했다.


[스트리머: 이번 한 번뿐 입니다.]


[‘농사와 군무의 구름’이 설마 ‘그 격’을 발현할 것이냐 묻습니다.]


[그래 10억 년이면 오래도 숨겼지.]


우사는 마지막을 고하듯 오오쿠니누시에게 말했다.


[다음에 볼 때는 우리 쪽 지옥에서 보자?]


신은 당황망조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님! 움직이십시오!]


위험을 감지한 1군단장이 경고성을 발했지만 이미 늦었다.


[고유격 발현, 「존멸의 비」 대상 지정. ‘「네노쿠니」 거주자’.]


천의무봉의 격이 네노쿠니의 하늘을 먹구름으로 물들였다.


솨아아아아아.


양껏 쏟아지는 비를 보며 우사는 주먹을 굳게 쥐었다.


[이노야.]


그새 정신을 차린 이노가 주머니에서 빛나는 구를 꺼내 들었다.


“그래.”


이노의 손에 쥐어진 그것이 환한 광휘를 냈다. 그러자 어두운 칠흑의 네노쿠니가 잠깐 밝아졌다.


쿠어어어어엉!


이찬의 장막을 찢어낸 전천후 최강의 공룡이 네노쿠니에 현현했다.

그와 동시에 이노는 기절하여 우사의 품에 안겼다. 우사는 이노를 안고 오오쿠니누시를 지켜보았다.

그는 끝없이 내리는 비를 모두 화려한 움직임으로 피해내고 있었다.


[의미 없는 발악일 뿐이야. 네가 죽기 전까지 이 비는 멈추지 않아.]

[내가··········겨우 이 따위에!]


옆에 있던 1군단장은 벌써 전부 녹아내려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 와중 이노에 의해 소환된 공룡은 전쟁의 한복판으로 향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부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비를 피하지 못한 전장의 2군단장과 5군단장은 벌써 녹아 내리고 있었다.

「존멸의 비」를 발현해 이미 대부분의 적을 녹인 우사가 저 공룡을 소환한 이유는 하나였다.


[현재 방송 상태가 ‘공개’입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신 1’이 방송에 입장합니다.]

[다수의 신들이 해당 방송에 입장합니다.]


절대다수의 신들에게 그들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신 691’이 저 괴물은 대체 뭐냐고 묻습니다.]


벌써 방송의 시청신 숫자는 만 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만큼 우사와 이찬, 공룡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다수의 신들이 공룡에게 호기심을 가집니다.]


우사는 똑똑하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이 닥쳐와도 해결책을 빠르게 찾아낸다.

그리고 이것은, 우사가 찾아낸 가장 빠르고 확실한 해결책이다.

자신은 약하지 않다고, 성운 <태극>은 아직 건재하다고,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목표를 이룰 것이라고.

마침내 오오쿠니누시가 우사에게 저주하듯 말했다.


[넌 꼭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 소멸할 것이다·········!!]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마친 오오쿠니누시가 급히 「행간이동」을 사용해 어딘가로 이동했다.

그가 떠나가자마자 소나기처럼 떨어지던 비가 그쳤다.


[진짜 더럽게 힘드네.]


오오쿠니누시가 달아가는 것을 보자마자 우사는 다급히 방송을 종료했다.

하이라이트 정도의 짧은 방송 시간이었지만 신들에게 파급을 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띠링.


시스템의 최신 기사에는 벌써부터 우사와 이노, 이찬에 관한 글로 도배가 되어 가고 있었다.

웬만한 적을 모두 죽여버린 우사는 절벽의 끝에 걸터앉아 주인 잃은 네노쿠니의 성채를 바라봤다.


[세계의 멸망이라니.]


《관념》에 존재해선 안 될 ‘인간’ 세 명과, 이제야 조명 받는 중소 성운의 천신이 한 세계를 멸망의 길로 인도했다.

이는 차후 이찬의 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10대 사건 중하나인 <네노쿠니 멸망>이 된다.


***


이찬은 방금 일어난 일의 영문을 전혀 몰랐다.

아니, 어쩌면 짐작하고 있었다.


“비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하나밖에 없지.”


잠깐 비 그친 하늘을 바라보던 이찬은 흠칫 정신을 차리고 다시 성채의 내부로 들어갔다.


탓.


가볍게 착지한 곳에는 여전히 결박되어 축 늘어진 쿠에비코가 있었다. 그곳에는 미리 도착해 이찬을 기다리던 가스페르도 있었다.


“가스페르!”

“이찬! 이기셨습니까?”

“중간에 누군가의 방해가 있었지만, 뭐 거의 이겼죠.”


우쭐대는 이찬을 보며 가스페르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어? 왜 웃으시죠?”

“아아······아닙니다. 빨리 신부터 구하시죠.”

“그러죠.”


후다닥 달려가 이찬은 쿠에비코의 오른쪽의 수갑을, 가스페르는 왼쪽의 수갑을 풀어 주었다.


“쿠에비코! 괜찮으십니까?”


대답할 힘도 없는듯 피투성이의 쿠에비코는 지쳐있었다.


“일단 업고 나가시죠.”


가스페르는 재빨리 쿠에비코를 등에 업었다.

그때, 쿠에비코의 힘없는 왼쪽 손이 검지를 들어 무언가를 가리켰다.


“예? 왜 그러십니까?”


쿠에비코가 가리킨 손가락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날벌레도 없는 허공을 가리키는 쿠에비코를 보며 가스페르는 이를 무시하고 방의 문을 열어 나가려고 했다.

문을 향해 발을 내딛는 순간, 이찬이 가스페르를 막았다.


“이찬?”


이찬의 표정은 묘하게 겁에 질려 있었다.


“가스페르, 빨리 위로 나가세요. 빨리!”


가스페르는 생각할 일말의 틈도 없이 이찬이 발현한 「폭풍」을 정통으로 맞고 종전에 이찬이 3군단장과 싸울 때 냈던 구멍을 통해 밖으로 탈출되었다.

가스페르가 탈출하자마자 성채가 폭발하며 가스페르와 쿠에비코가 하늘을 날았다.

가스페르는 가까스로 쿠에비코를 낚아채 아래로 하강하여 무사히 착지했다.


“이찬!”


가스페르가 할 수 있는 것은 폭발과 동시에 무너지는 성채를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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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네노쿠니 (5) +1 23.06.12 53 1 9쪽
» 네노쿠니 (4) 23.06.11 56 0 10쪽
31 네노쿠니 (3) 23.06.10 49 0 10쪽
30 네노쿠니 (2) 23.06.06 56 0 9쪽
29 네노쿠니 (1) 23.06.05 46 0 9쪽
28 전지의 신 (7) 23.06.04 42 0 9쪽
27 전지의 신 (6) 23.06.03 4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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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전지의 신 (4) 23.06.01 52 0 10쪽
24 전지의 신 (3) 23.05.30 60 0 10쪽
23 전지의 신 (2) 23.05.30 66 0 10쪽
22 전지의 신 (1) 23.05.29 59 0 11쪽
21 페공전쟁 (3) 23.05.28 53 0 11쪽
20 페공전쟁 (2) 23.05.26 6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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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조력자 (5) 23.05.24 63 0 9쪽
17 조력자 (4) 23.05.23 6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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