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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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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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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노쿠니 (5)

DUMMY

허억. 허억.


우사는 텅 빈 네노쿠니의 황야를 달렸다.

초당 어마무시한 상상력을 소모하는 「존멸의 비」의 사용 여파로 상상력이 모두 바닥난 우사는 그 흔한 운신 격도 발현할 수 없었다.

그의 품에는 잠에 든 이노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제발.]


우사는 절벽에서 한숨 돌리며 쉬고 있던 중이었다. 이제 편안하게 쿠에비코를 행성으로 돌려보내고 이찬이 강해질 방법을 추궁하면 모두 해결될 일이었다.


우르르르르.


그러나 성채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우사는 이노를 품에 꼭 안고 달려갔다.

이찬과 가스페르가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 길고도 끝없는 황야를 달렸다.

마침내 그곳에 도달했을 때, 무너진 성채의 바깥에는 좌절한 가스페르가 넋이 나간 채로 무너진 잔해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옆에는 쓰러진 채 의식이 없는 누군가도 같이 있었다.


[가스페르!]


우사가 가스페르를 부르며 달려가자 가스페르의 빈 허공을 바라보던 눈이 우사에게 향했다.


“우사·····.”


가스페르의 공허를 바라보던 눈은 우사를 보자마자 울먹이는 눈이 되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이찬이········저 안에 있습니다.”


[뭐?]


대충은 요량하고 있었으나 그 말을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니 그에게도 적잖은 충격이 전해졌다.

다급히 성채의 잔해로 달려간 우사는 벽돌 하나하나 전부를 일일이 손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상상력의 고갈로 어떤 격도 발현하지 못하는 우사의 돌 나르기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 돌을 나르는 속도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제발·······제발.]


간절한 음절을 연신 내뱉으며 우사는 무너진 돌을 치웠다.


[크윽!]


종전에 오오쿠니누시에게 맞은 중상 때문에 그릇마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벽돌을 치우는 것을 본 가스페르가 정신을 차리고 우사와 벽돌을 같이 치웠다.

그럼에도 붕괴된 성채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끝없는 성채의 잔해들을 계속해서 치우고 있을 때 눈앞에서 고막이 찢어질 듯한 폭발음과 함께 성채가 조각나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퍼어어엉.


현재 격을 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가스페르가 우사, 이노, 쿠에비코를 업고 「광휘의 발걸음」을 사용해 날아드는 잔해들을 모두 피해냈다.

무수히 많은 잔해들을 피하느라 하나를 놓친 가스페르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러나 가스페르는 잔해에 맞지 않았다. 갑자기 잔해들이 바람에 의해 그 자리에 멈추며 그제서야 모든 서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찬····?”


고유격 「폭풍」을 발현해 허공에 떠 있는 이찬과 그 맞은편에서 미칠듯이 타락한 격을 사방으로 뿜어대는 공허가 있었다.

네노쿠니와는 다른 결의 사악한 격이었다.

오히려 가스페르가 목전에 만났던 군단장들보다 강했다. 그것도, 비교가 안 될 만큼 강했다.

가스페르에게는 그것이 격의 기류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우사의 눈에는 그것이 영혼의 형태로 보였다.


[저 격은······!]


이찬과 그 영혼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신경전은 이찬의 선공으로 종료되었다.

이찬이 영혼을 데리고 빠르게 일행의 너머로 날아갔고, 우사는 단번에 저 영혼이 이 성채를 무너뜨린 범인임을 알아챘다.


***


이찬과 가스페르가 쿠에비코를 구하기 위해 성채에 재진입했을 때, 이찬은 수상쩍은 무언가가 있음을 감지했다.

그리고 쿠에비코를 구속하던 족쇄를 풀자 그 무언가가 형체를 드러냈다.

검은 드래곤의 날개를 달고 있었지만 얼굴은 도깨비의 형상을 한 복면에 의해 가려져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붉은 눈을 부라리며 섬뜩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것을 볼 수 있는 건 이찬뿐이었다.

그리고 이를 빠르게 눈치챈 이찬이 가스페르에게 쿠에비코를 넘기고 「폭풍」을 발현해 둘을 동시에 바깥으로 방출시켰다.

그리고 가스페르가 성채의 밖을 나가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곳이 일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흐앗!”


이찬은 「한계 돌파」를 발현해 무너지는 성채의 잔해를 버텨냈다.

그럼에도 이찬의 온몸 구석구석에는 피가 낭자했고, 잔해들은 댐에 홍수가 난 듯 끝없이 밀려들었다. 마침내 붕괴가 멈추자 이찬에게는 겨우 몸을 겨눌 수 있는 공간만이 주어졌다.


‘함부로 밀어냈다간 매몰되겠어.’


그때, 이찬의 귀에 나지막이 들려오는 속삭임이 있었다.


포기해.

여기서 살아갈 방법은 없어.

천천히 죽음을 맞아.


환청에 가까운 감미로운 목소리의 속삭임을 들으며 이찬은 어딘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라고 생각하냐?”


이찬은 「폭풍」을 최대치로 발현하여 성채를 철거 용도의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듯 잔해가 사방으로 튀게 했다.

그리고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무너지는 잔해들을 「폭풍」으로막아내며 나지막이 속삭인 환청의 주인을 응시했다.

그 옆에는 가스페르와 상상력의 대부분을 잃은 우사, 잠든 이노, 기절한 쿠에비코까지.

이곳에서 싸우면 인명피해는 불가피할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찬은 영혼의 팔을 부여잡고 일행들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갔다.

의외로 영혼은 별다른 저항없이 이찬의 뜻에 협조했다.

끝없이 날아가던 이찬은 뒤를 돌아보곤 아무도 없음을 인지했다.

이찬은 멈추어 꽉 쥐던 영혼의 팔을 던지며 놓아주었다.


“당신 누구야?”


영혼은 가볍게 땅을 딛고 멈추었다.


··············.


이찬의 질문에 영혼은 답이 없었다.

이에 심기가 불편해진 이찬은 ‘기도’를 허공에서 뽑아 들고 영혼에게 달려가 찌르기 자세를 취했고, 망설임 없이 찌르기를 내질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영혼은 오른손, 그중에서도 검지만을 뻗어내 이찬의 찌르기를 저지했다. 하지만 기도에 휘감긴 「폭풍」의 여파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복면이 훌렁하고 벗겨졌다.

그리고 그 영혼의 얼굴은 지금 이찬이 가장 보고 싶은 얼굴이었다. 아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긴 갈색의 생머리만 보아도 이찬은 그 사람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했다.


“임아윤········?”


연갈색의 눈동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새빨간 불꽃 같은 눈동자가 대체하여 자리하고 있었다.

당황하여 아무 말도 하지못하는 이찬의 눈앞에는 무표정의 아윤이 이찬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가 왜 여기에········?”


그 격의 정체는 불온한 마기(魔氣)였다.

벨리알이라는 빌어먹을 68위의 마왕이 아윤을 납치한 이후로 처음 보는 아윤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외형이 변화한 것은 물론 이찬을 알아보지 못하는 듯 적개심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에 이찬은 잃어버렸던 투쟁심을 다시 한번 불태웠다.


“벨리알!!!!”


목놓아 외치는 벨리알의 이름에 반응한 것인가, 아니면 이찬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인가. 아윤은 주먹을 휘둘러 이찬의 기도를 가볍게 날려버렸다.

턱하고 바닥에 꽂힌 기도가 희미한 격을 발했다.

그래도 이찬은 포기하지 않았다.

묵혀 놓았던 감정의 골을 내비치는 주먹이 아윤이 있던 허공에 작렬했다.

아윤은 그 주먹을 가볍게 피했다.

무게중심이 과하게 앞으로 쏠린 이찬이 그대로 넘어졌다.

이찬은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 아윤에게 달려갔다.


“으아!!! 제발!!”


휘두르는 이찬의 주먹을 가볍게 피해내고는 주변에서 뜨거운 불꽃을 발현했다. 이찬은 또다시 분에 못 이겨 넘어졌다.

그 불꽃이 어찌나 뜨겁던지 불꽃의 색깔이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찬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저항의 여지조차 없었다.

질끈 감은 눈 사이로 희미하게 이찬의 기억 속 마지막 아윤의 모습이 비쳤다.

급격히 주변의 온도가 낮아졌다. 이찬이 눈을 떴을 때, 눈앞에 아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애초에 아윤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고요함만이 네노쿠니를 감돌았다.

이찬은 넘어진 채로 굳었다.

일어날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일어날 의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이찬은 꽤나 많은 손실을 보았다. 상상력의 소모, 일행의 부상. 시스템의 과한 관심.

그러나 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먼저 아윤을 구하겠다는 의지가 확연히 상승했다. 그리고 진짜 아윤의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죽일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에 목을 베었을 거야.


이찬의 일격을 한 손가락으로 막은 것부터 격의 차이는 확연했다. 그럼에도 아윤은 이찬을 죽이지 않았다.

이것으로 이찬을 막으러 온 아윤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찬!”


그때,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스페르와 우사였다. 각각 이노와 쿠에비코를 업고 달려오는 모습에 이찬은 울컥했다. 그러나 이찬은 울지 않았다.

아직 울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아직 해결해야할 과제가 남았기 때문이었다.


“가스페르! 우사!”


달려오는 이들을 맞으며 이찬은 밝게 웃었다.


***


['그건 있었어?]


아윤이 누군가의 곁에서 약간의 피가 흐르는 자신의 오른손 검지를 감싸며 말했다.


“거긴 없었어.”


[······그래? 그럼 다른 곳으로 가봐야 하겠네.]


마신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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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네노쿠니 (3) 23.06.10 49 0 10쪽
30 네노쿠니 (2) 23.06.06 5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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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전지의 신 (6) 23.06.03 4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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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전지의 신 (2) 23.05.30 6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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