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연재수 :
159 회
조회수 :
7,812
추천수 :
30
글자수 :
723,372

작성
23.06.18 18:00
조회
44
추천
0
글자
9쪽

복마전 (2)

DUMMY

고요하고 적적한 어딘가.

사용처를 알 수 없는 검은 어둠들이 안을 적절히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정중앙에는 납치 당해 행방이 묘연했던 아윤이 곳곳에 어둠이 점철된 전투복을 입고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었다.

이찬에게 몇 달간 굉장한 일이 반복된 것만큼, 아윤에게도 적잖이 많은 기연이 계속되었다.


“후······.”


아득한 깊이의 한숨을 내뱉은 아윤은 이곳에 처음 당도했던 날을 떠올렸다.


***


키 큰 성인 남성의 형상을 한 검은 무언가가 아윤의 손을 잡고 새카만 통로를 통해 어딘가로 향해가고 있었다.

몇 번인가 손을 뿌리쳐 보려는 시도를 했으나 그것의 악력이 너무 강한 탓에 이를 뿌리치기란 쉽지 않았다.

어둠이 걷히자 굉대한 드래곤의 머리를 지붕으로 덮은 굉장히 높은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래의 아윤이라면 틀림없이 바깥으로 도망쳤을 테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끼이익.


무엇에 홀린 듯 아윤은 본능에 가까운 행동으로 문을 열었다.

문을 통해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미칠듯한 외압이 아윤을 짓누르며 퍼뜩 정신을 차렸다.


덜컹 덜컹.


빠른 상황 판단 능력을 통해 문을 열고 나가야겠다 라는 생각을 한 아윤이 뒤를 돌아 문을 열려고 시도했으나, 이미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겁에 질린 아윤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륵. 그르륵.


아윤의 뒤에서는 흉측한 울음소리와 걷는 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아윤의 두려움과 역겨운 울음소리와 걸음이 멎은 것은 거의 동시였다.

아윤이 뒤를 돌아보자 그 많던 괴물들이 아윤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작게는 강아지 형태의 괴수부터, 크게는 이 공간을 꽉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동물의 형상을 한 괴수까지.

머리를 조아리는 그것들의 가운데로 길이 나 있었다.

그것은 2층으로 가는 계단으로 이어진 통로였다. 아윤은 망설임 없이 그 길을 걸었다. 가는 도중 두 번 정도 뒤를 돌아보았다.

이 계단을 오른다면 두 번 다신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럼에도 아윤은 계단을 올랐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몸이 가벼워졌다. 마치 새처럼 드넓은 창공을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신이 맑아졌다. 지금이라면 그 어떤 지식도 머리에 저장할 수 있었다.

시야가 금색으로 물들었다. 모든 세상의 비밀을 그녀의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 모든 기이한 증상들이 서서히 수그러들었다. 이와 동시에 아윤은 긴 계단을 걸어 올라 2층, 3층을 건너뛰고 4층으로 도달했다.

말이 4층이지 사실 탑의 최상층이었다.


철퍽.


아윤이 4층의 바닥을 밟자 주변에 피가 고였다.

이곳에 처음 입장했을 때 느껴졌던 뜨겁고 역겨운 느낌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아윤은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느끼지 못한 것일 터였다.


[환영하네.]


탑의 최상층에서 그 격의 주인이 아윤을 향해 갈채를 보내며 다가왔다.

아윤은 이를 피하지 않았다. 탑에 당도했을 때 의식되던 감정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드디어, 이곳에 주민이 당도하였나.]


뿌듯한 표정을 한 잘생긴 얼굴의 남자가 아윤의 시선에 맞췄다.


[반가워. 나의 안식처 「쿰란」에 온 걸 환영해.]


“이곳은 어디죠? 당신은 누구죠?”


아윤이 사내에게 질문했다.

그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겠다는 듯한 표정을 싱긋 지은 사내가 아윤을 데리고 발코니로 향했다.

그곳에는 테이블과 마주보는 의자가 위치했고, 그 위에는 차와 다과가 정갈히 대기하고 있었다.


[앉아.]


사내가 앉았고, 이어 아윤이 사내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사내가 손짓하자, 발코니의 문에서 차를 들고 있던 시녀들이 모두 밖으로 나갔다.


[일단 나를 소개하지.]


발코니의 바깥에 보이는 무수히 많은 별을 보곤 아윤을 향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나는 벨리알. 현 마계 68위의 마신이자, 네가 살게 될 곳의 주인이야.]


그가 바로 아윤을 납치한 장본인이자 불과 암흑, 남색의 마신인 벨리ㅇ—


[남색은 빼 줘. 요즘은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


불과 어둠의 마신. 벨리알이었다.


“절 왜 납치했죠?”


아윤의 첫 번째 질문은 당연히 납치 이유였다.


[처음부터 납치할 생각은 아니었다. 회유할 생각이었지. 근데 가만 들여다보니 말이 잘 통할 녀석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내가요?”


[아니, 네 옆에 있던 인간 남자.]


아윤이 납치 당하기 전 같이 있던 남자라고 하면 이찬뿐이었기에 인간 남자는 분명 이찬을 말하는 칭호일 것이었다

답변을 마친 벨리알이 홀짝 차를 마셨다.


[한 잔 해. 차가 식겠어.]


“괜찮아요.”


정중히 벨리알의 제안을 거절한 아윤이 두 번째 질문을 건넸다.

벨리알은 딱히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괜히 별명이 ‘예의의 마신’이 아니다.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가 뭐예요?”


[꽤나 침착하네? 이런 경험 꽤 해봤나 봐?]


“처음인데요?”


당돌한 그녀의 모습에 벨리알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곰곰이 고민하던 벨리알이 무언가를 깨달았다.


[아. 그렇네, 「관념화」인가?]


그 단어의 뜻을 모르는 아윤이 침묵했다.


[그래.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되지.]


고개를 끄덕인 벨리알이 직전에 했던 아윤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내가 널 데려온 이유는 하나야. 마계 정복.]


마계를 정복한다는 것은.

72마왕이 균형을 유지하며 함께 이루고 있는 세계관인 마계를 정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왜죠?”


[왜긴. 권력 때문이지. 세상에 권력을 탐하지 않는 ‘존재’는 없어.]


“인간이나 마신이나 똑같네요 아주.”


[그런가?]


“제가 마계를 정복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죠?”


[넌 우리 전력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할 거야. 다른 마신들은 해이해져 있고 우린 전쟁을 준비하고 있지. 마신들의 병력 대부분은 공개되어 있지만, 넌 달라. 네가 정체를 숨기고 다른 마신들의 소굴에 잠입해서 그곳을 정복한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전쟁은 이긴 거나 다름없어.]


“내가 그 제안을 거절한다면요?”


[딱히 별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난 널 풀어줄 거고 이 모든 건 없던 일이 되겠지.]


“그럼 전 나가보겠—“


[하지만, 네가 나간다면 다신 지구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뭐요?”


[이곳은 나의 격 없이는 나갈 수 없게 되어 있어.]


아윤은 벨리알의 말에서 ‘격’이 게임이나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스킬’과 비슷한 것임을 단번에 추측했다.


“내가 여기 있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죠?”


[널 잃은 그 남자애가 널 구하러 올 테고, 넌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잠시 고민하던 아윤이 결심을 내렸다.


“좋아요. 마계 정복, 도와드리죠.”


[잘 부탁한다?]


“예. 근데, 말 놓아도 돼요?”


[안 될 건 없지.]


“한번 힘 내보자!”


아윤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신 벨리알은 세계관을 정복하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


[그럼 이제 격을 수련해 볼까?]


벨리알은 아윤에게 자신의 고유격 대신 전투용 공통격인 「불꽃 생성」과 「어둠 다루기」를 전해주었다.


[너는 지금부터 이 격 두 개를 가지고 수련할 거야. 고유격 안 준다고 짜증 내지마. 고유격은 원래 주민이 되어야 전수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관리성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해서 네 정체가 드러나.]


차근차근 격과 그 격 활용법을 전수해준 벨리알이 아윤에게 격을 발현할 것을 요청했다.


[이 두 격은 내가 사용하는 고유격이랑 같은 계열이라 이걸 익혀 놓으면 나중에 내 고유격을 발현할 때도 훨씬 편할 거야. 한번 해봐.]


화르륵.


그녀의 손바닥에서 모닥불 정도의 뜨거운 불꽃이 생성되었다.

벨리알은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들고 아윤에게 말했다.


[너. 재능있네.]


아무리 격을 발현하는 데 편의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격을 능숙하게 발현하기란 쉽지 않다.

「관념화」의 영향인지 아니면 아윤의 재능 덕인지 아윤의 격 사용 숙련도는 웬만한 신의 주민보다 뛰어났다.

몇 분을 불 옆에 있어 뜨거운 벨리알이 말했다.


[큼큼. 자, 불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두 번째 꺼내 봐.]


벨리알에게서 받은 두 번째 격인 「어둠 다루기」를 꺼낸 아윤이 탑의 바깥에 있던 어둠을 조금 뜯어와 동그란 구 형태로 만들었다.


[물건이네, 물건이야.]


경탄을 연발한 벨리알이 아윤에게 적절케 격을 전수해주며 아윤을 훈련시켰다.


[재능 미쳤네 진짜. 가르칠 맛난다.]


“이제 좀 힘든데 쉴까?”


온종일 격을 발현해 지친 아윤이 벨리알의 안내를 받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뭘 봐?”


[뭐? 잘 쉬라고 인사하러 온 거잖아.]


벨리알이 아윤을 방으로 안내하고 발코니로 향해 아까 먹다 남은 차를 마저 마셨다.


[에이. 다 식었네.]


차를 한 번에 모두 마신 벨리알이 바깥을 내려다 보며 아윤의 파란만장한 첫날이 저물었다.

그러나 아윤은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지레 짐작했을 수도 있다.

파란만장한 나날은 이것이 끝이 아닐 것임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미지의 편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0 복마전 (7) +1 23.07.09 47 1 10쪽
39 복마전 (6) +1 23.07.08 41 1 11쪽
38 복마전 (5) +1 23.07.02 45 1 9쪽
37 복마전 (4) 23.07.01 50 0 10쪽
36 복마전 (3) 23.06.26 47 0 10쪽
» 복마전 (2) 23.06.18 45 0 9쪽
34 복마전 (1) 23.06.17 48 0 11쪽
33 네노쿠니 (5) +1 23.06.12 53 1 9쪽
32 네노쿠니 (4) 23.06.11 55 0 10쪽
31 네노쿠니 (3) 23.06.10 49 0 10쪽
30 네노쿠니 (2) 23.06.06 56 0 9쪽
29 네노쿠니 (1) 23.06.05 46 0 9쪽
28 전지의 신 (7) 23.06.04 42 0 9쪽
27 전지의 신 (6) 23.06.03 44 0 9쪽
26 전지의 신 (5) 23.06.02 48 0 10쪽
25 전지의 신 (4) 23.06.01 52 0 10쪽
24 전지의 신 (3) 23.05.30 60 0 10쪽
23 전지의 신 (2) 23.05.30 66 0 10쪽
22 전지의 신 (1) 23.05.29 59 0 11쪽
21 페공전쟁 (3) 23.05.28 53 0 11쪽
20 페공전쟁 (2) 23.05.26 65 0 12쪽
19 페공전쟁 (1) 23.05.25 64 0 10쪽
18 조력자 (5) 23.05.24 63 0 9쪽
17 조력자 (4) 23.05.23 60 0 11쪽
16 조력자 (3) 23.05.22 63 0 11쪽
15 조력자 (2) 23.05.21 68 0 10쪽
14 조력자 (1) 23.05.20 72 0 11쪽
13 투쟁 대회 (7) 23.05.19 111 0 12쪽
12 투쟁 대회 (6) 23.05.18 99 0 9쪽
11 투쟁 대회 (5) 23.05.18 90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