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트키 들고 무한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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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흔캐
작품등록일 :
2023.07.09 00:40
최근연재일 :
2024.03.05 19:00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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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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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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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새로운 시대

DUMMY

늦은 밤, 그칠 것 같지 않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한 나라의 외곽, 성문을 지나기 전에 있는 요금소 안에서는 관원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둘 중 나이가 어린 관원이 심심해 죽겠다는 얼굴로, 책을 읽고 있던 나이든 동료에게 말했다.


"내기나 할까요?"


"무슨 내기?" 그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간단하게, 다음에 오는 사람이 여자일지 남자일지, 어떻습니까?"


나이든 관원은 웃으며 말했다.


"남자라는 것에 걸겠네."

"하긴, 이 늦은 밤에 여자 혼자 지나다닐 일은 없겠죠?"

"자네도 남자가 온다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그러지 않을까요?"

"여자가 온다는 것에 걸어 보게. 확률이 낮은 승부에서 이기는 게 짜릿한 법 아니겠나?"


젊은 관원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안전한 승리가 좋습니다만."

"내일 있을 축제 때문이지? 어지간히 돈이 급한가 보군."

"내일 술과 이길 확률이 낮은 승부를 해야 해서요. 군자금은 많을수록 좋지요."


나이든 관원은 보던 책에서 눈을 떼고 말했다.


"그러면 다음에 올 사람이 어느 나라의 엽전을 쓸지 내기하는 건 어떤가?"

"좋지요, 저는 단여에 걸겠습니다. "

"그럼 나는 혼조의 돈을 쓴다에 걸겠네."

"어, 웬일로 이길 확률이 낮은 쪽에 거십니까?"

"나도 술과의 승부에서 이겨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내 복수를 하려는 청년이 있다니 여간 기특한 일이지 않나."


젊은 관원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럼 한 닢씩을 걸되 다음에 오는 통행자가 혼조의 돈을 쓴다면 제가 세 닢을 드리지요.

무할의 돈이라면 다섯 닢, 그 외 다른 나라의 돈을 쓰면 열 닢··· 어떻습니까?"

"좋아, 저기 마침 사람이 오는군."


그의 동료가 창 밖을 가리켰다. 젊은 관원은 창에 눈을 바싹 가져다대고 바깥을 바라보았다.

과연 멀리서 여행자 한 명이 달빛에 의지해 눈이 내리는 설원을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둘 중에 이번 여행자를 맞이할 차례는 젊은 쪽이었으므로 그는 털모자를 머리에 비벼 쓰며 바깥으로 나왔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나오는 추운 날씨였다.

눈을 헤치고 걸어온 여행자가 얼굴이 보이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관원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엽전 두 닢이오."

"이곳을 지나면 어디로 가게 되지?"


여행자인 남자가 대뜸 물었다.


"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지나려 하시오?"


관원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관원은 양손을 비비며 남자를 위아래로 훑었다.

추운 날씨임에도 여행자는 도포 한 자락만을 입고 오른편에 칼 한 자루를 차고 있었다.


"이곳은 단여의 수도, 천강으로 들어가는 길이오."


"단여라······."


남자는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성문을 올려다보았다. 사람 키의 몇 배 높이인 성문이 산을 양 옆에 끼고 높게 서 있었다.


"단여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아주 멀리서 오신 분이신가?"


그렇게 말하며 관원은 요금소 안에 있는 동료를 돌아다보았다. 제가 진 것 같은데요, 관원은 입모양으로 동료에게 말했다.


"가지고 있는 엽전이 한 가지밖에 없는데, 두 닢을 내면 되겠소?"

"일단 줘 보시오, 적당히 거슬러 줄 터이니."


남자가 내민 것은 일반적인 크기인 엽전이었다.

그러나 다른 엽전과 다르게 중앙에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엽전의 안쪽에 얇은 띠처럼 음각된 원이 있었는데, 그 원과 바깥 테두리 사이에는 온갖 부조가 양각되어 있었다.

그래서 엽전은 전체적으로 동심원을 이루는 모양이었다.


관원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엽전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그에게 돌려주었다.


"처음 보는 엽전이군. 이런 돈은 받지 않소."

"그런가, 알겠소. 늦은 밤에 실례했소."


여행자는 관원이 내민 엽전을 돌려받고 몸을 돌려 눈이 내리는 설원을 향해 걸어갔다.

관원은 서둘러 요금소로 돌아왔다.


"이야, 아슬아슬하게 내기에서 지지 않았네요."

"돈을 주는 것 같던데, 다른 나라의 돈을 쓰면 열 닢이라고 하지 않았나?"


젊은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멸망한 나라의 화폐도 아니고, 처음 보는 엽전입니다. 장난을 치는 건지···."

"어떤 돈이었길래?"


그는 엽전의 생김새를 말해주었다.


"설마···."


나이 든 동료는 그렇게 말하곤 요금소 뒤편에 있는 창고에서 책을 한 권 가지고 왔다.

일을 처음 시작하는 관원들에게 나누어주는, 온갖 화폐가 기록된 화폐도감이었다.

젊은 관원이 놀라며 물었다.


"세상에, 그 책을 아직도 가지고 계십니까?"

"옛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게 나이 든 사람들 아니겠나."


그리고 그는 책에 더께로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가장 뒷장을 펼쳐 보여주었다.


"이렇게 생긴 엽전이 맞나?"


그곳엔 그가 본 것과 똑같은 엽전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긴 역사에서 단 한번만 나타났던 엽전이었다.

그것을 한참 바라보던 젊은 관원은 본인의 뺨을 세게 꼬집어 보았다.


"저희가 귀신에 홀린 건 아니겠죠?"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구먼."

"그러면 어쩌죠? 다시 불러와서 체포조가 올 때까지 대기시킵니까?"

"아니, 일단 통과시키고 출입관리국에 처분을 맡기는 게 낫겠군."


그는 그 말을 듣고 동료를 빤히 쳐다보았다.


"······."

"···왜 그러는가?"

"···제가 합니까?"

"그러면?"

"안내는 제가 했으니, 지부사 님께서······."


지부사는 지긋이 그를 바라보았다. 젊은 관원은 한숨을 쉬었다.


"다녀오지요, 먼 길일 듯하니 차나 한 잔 부탁합니다."


그는 다시 모자를 둘러쓰며 밖으로 나와 여행자가 걸어간 깊은 밤의 동토를 바라보았다.

횃불이 비추는 작은 공간 너머로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그는 옷깃을 굳게 여미었다. "제길."


그는 요금소 뒤켠에 세워진 썰매에 탔다.

장치를 조작하자 썰매의 앞에 있는 등이 켜지며 썰매가 소리 없이 앞으로 미끄러졌다.

관원은 설원에 찍힌 발자국을 보고 여행자가 갔을 법한 방향으로 썰매를 몰았다.


"거 발 한번 더럽게 빠른 놈이로군."


그는 추위를 잊기 위해 오늘 처음 본 여행자를 꽥꽥 욕하며 썰매를 몰았다.

그러다 곧 그는 자신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남자를 발견하고 썰매를 세웠다.


관원은 머쓱하게 썰매에서 내려 여행자에게 말했다.


"저··· 착오가 있었소. 당신은 지나가기에 충분한 돈을 건넸소."

"그렇다면 지나가겠소."


그것으로 끝이었다. 여행자는 몸을 돌려 요금소 방향으로 걸어갔고, 관원은 썰매를 타고 먼저 요금소로 돌아왔다.


지부사가 데운 술을 건넸다.


"차보다는 술이 나을 것 같아 좀 데워 놓았네."

"와, 제 맘을 어찌 아시고. 그런데 근무 시간에 술 마셔도 괜찮습니까?"

"특수한 상황 아닌가."

"하긴 그렇지요."


이윽고 여행자가 요금소로 다가와 다시 엽전을 건넸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돈을 받았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자 지부사는 책과 엽전을 비교해 보았다. 과연 같은 모양이었다.


"이게 600년 만에 나타난 역귀의 엽전이란 거죠?"


젊은 관원이 벌레를 집듯이 엽전을 두 손가락으로 집어들었다.


"아니, 697년이니까 거진 700년만이지."

"출입국에는 연락하셨습니까?"

"지금쯤 비상이 걸렸을걸세."


*


"이거 골치 아프게 됐군."


출입관리국의 장, 초로의 대부사는 멀리서 걸어오는 남자를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의 옆에서 내리는 눈을 막기 위해 우장을 대신 들고 있던 부관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칼을 차고 있지 않나. 무기를 든 이능자들은 성가신 법이라."

"이능자가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역귀의 엽전을 가지고 있던 자가 평범한 자일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군.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게."


그는 등 뒤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그리고 저 치들 좀 안 보이는 곳에 있으라고 해."


늦은 새벽임에도 상주하는 인원들이 전부 잠에서 깨어 몰려나와 입구 주변에서, 창문을 통해 각자 이리저리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요. 역귀의 엽전을 가진 자가 오고 있다는데, 얼굴 한번 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속옷 바람으로 구경하는 놈도 있는데?"

"···일이 끝난 다음에 징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부관은 몇백 걸음 앞에서 걸어오는 남자를 유심히 관찰하다 말했다.


"역귀는 아닙니다. 사람인 듯한데, 옆구리에 찬 칼 말고는 위협이 될 만한 물건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좋아, 상황을 좀 지켜봐야겠군."


남자가 가까이 오자 출입관리국의 말단 병졸 하나가 그의 앞을 막았다.


"멈추어라!"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숲에 울려퍼졌다.

요금소에서 출입관리국까지 이어지는 길은 숲에 난 외길이었고, 출입관리국은 숲에 있는 공터에 세워진 큰 건물이었다.

병졸은 걸음을 멈춘 남자에게 이어서 말했다.


"이곳은 출입관리국이다. 호패를 보여라."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없소."


"신분을 증명할 사람이나 물건이 있나?"


다시 고개를 젓는 남자를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병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요금소에서 낸 엽전이 어떤 엽전인지 알고 있나?"

"알고 있소."

"그 엽전을 어떻게 얻었지?"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말해도 믿지 못할 거요."

"믿고 말고는 이쪽에서 정한다."

"역귀의 왕에게 직접 얻었소."


남자의 대답에 그와 대화하고 있던 병졸을 포함해 창문과 입구 주변에서 엿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상황을 지켜보던 대부사 옆에 있던 부관도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신병자로군요. 우연히 어디선가 얻은 엽전이었나 봅니다."


남자와 대화하던 병졸이 웃음을 그치며 대부사를 쳐다보았다. 처분을 내려달라는 눈이었다.


대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얘기는 안에서 듣겠다. 칼을 내려놓고 오라를 받으라."


남자의 옆 풀숲에서 매복해 있던 출입관리국의 병졸들이 삽시간에 남자를 에워싸고 창칼을 겨눴다.

훈련이 잘 된 병사의 모습이었다.


남자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군. 돈을 내라기에 돈을 냈고, 지나가라기에 지나왔을 뿐인데.

비키지 않으면 베겠소."


남자를 둘러싼 병졸 중 한 명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역귀의 왕을 만난 얘기 좀 자세하게 듣고 싶다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인가?"


다시 왁자지껄한 웃음이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남자는 웃지 않았다. 고개를 한 번 주억거리고 남자는 말했다.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베겠다고 한 말은 허세가 아니오.

한 번만 더 경고하겠소. 당신들의 눈 앞에 있는 것은 확실한 죽음이고 나는 이렇게밖에 될 일이라 생각지 않소. 길을 비키시오."


"이해를 못 했군. 그 엽전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는 옥에 갇혀도 할 말이 없다."


누군가 말했다.


"이해를 못 한 건 당신들이오."


남자는 허리춤에 찬 칼을 역수의 자세로 뽑았다. 물 속에서 엽전 꾸러미 수백 개가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칼이 뽑혀 나왔다.

칼은 푸른색이었고, 칼날 부분에 물결치듯 홈이 파여져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자의 주변을 에워싼 병졸들이 창칼을 바투 잡았다.


"당신에게 상황이 친절하지 못하다는 걸 인정하겠소."


대부사가 그렇게 말하며 부관에게서 우장을 받아들고 앞으로 걸어나왔다.


"하지만 나라의 녹을 먹는 파수꾼이 나라에 해가 될 수 있는 존재를, 싸우면 몰살당할 것이 분명하니 통과시켰다고 말한다면, 그 순간에 우리는 존재의의를 상실하는 거요.

살아도 산 게 아닌 상태가 되는 거지. 그러니 양해 바라오."


그리고 대부사는 남자를 제압하라는 명령을 짧게 외치려 했다.

그러나 남자가 더 빨랐다. 그는 또박또박 한 글자씩 씹어뱉듯이 말했다.


"당신들의 의기를 존중하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역수로 쥐고 있던 칼로 눈 앞의 공간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베었다.


그 자리에서 단 한 사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이능자만이 그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칼이 그저 허공을 짧게 가른 것으로 보였을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가 칼을 들어 베기 시작할 때부터 남자를 중심으로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푸른 구가 형성되는 것을 그는 보았다.


칼이 아주 미세한 거리를 움직일 때마다 물결치며 맥동하는 구의 크기가 몇 배씩 확장되었기 때문에 그 찰나의 순간이 그에겐 영영 가지 않을 시간처럼 느껴졌다.


아주 짧은 사이에 시야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커진 구의 밑부분에 해당하는 절반은 땅을 통과해 들어갔고, 윗부분은 하늘을 전부 덮을 만큼 확장되었다.

동시에 땅이 울리고 하늘이 요동치며 마침내 눈에 닿는 모든 사물이 맥동하는 푸르고 투명한 구에 삼켜졌다.


그리고 채 발을 떼지도 못한 출입관리국원 모두는 시대에서 사라졌다.

죽지 못하는 남자의 새로운 전생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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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머리를 쓰다 24.02.04 12 0 16쪽
26 비명 24.02.03 12 0 12쪽
25 코끼리 24.02.02 16 0 13쪽
24 사투 24.02.01 15 0 12쪽
23 초대 24.01.31 14 0 10쪽
22 잊혀진 도시 24.01.30 14 0 12쪽
21 강한 충격 24.01.29 14 0 12쪽
20 비상 24.01.28 13 0 11쪽
19 무서운 여자 24.01.27 20 0 12쪽
18 무서운 남자 24.01.26 17 0 13쪽
17 송곳니 24.01.25 23 0 12쪽
16 실종, 그리고 폭발 24.01.24 19 0 13쪽
15 연화 24.01.23 22 0 13쪽
14 1,500킬로그램 24.01.22 25 0 13쪽
13 불신과 균열 24.01.21 24 0 14쪽
12 금지된 구역으로 24.01.20 31 0 11쪽
11 믿을 수 없는 제안 24.01.19 32 0 13쪽
10 500년 전 24.01.18 38 0 13쪽
9 학살 24.01.17 40 1 12쪽
8 천년여우 24.01.16 41 1 12쪽
7 의기투합 24.01.15 53 1 12쪽
6 오해와 해방 24.01.12 55 1 12쪽
5 치트 아이템을 빼앗기다 24.01.11 65 1 11쪽
4 낯선 도시 천강 24.01.10 73 1 11쪽
3 이름 없는 남자 24.01.09 87 1 11쪽
2 600살이 넘은 꼬마 23.07.09 146 1 11쪽
» 새로운 시대 23.07.09 254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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