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트키 들고 무한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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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흔캐
작품등록일 :
2023.07.09 00:40
최근연재일 :
2024.03.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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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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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연화

DUMMY

긴 잠에서 깬 여자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낡은 초가집의 방 한 켠에 누워있던 그녀에게 무늬가 없는 단촐한 홑이불이 덮여 있었다.


몸을 어느정도 움직여 보고 그녀는 즉시 자신의 몸을 더듬어보았다.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들은 하나도 만져지지 않았다.


문 밖에 있는 마루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한울의 대사자 어쩌고 하는 거, 마을에 들를 때마다 해야 합니까?"

"대우가 달라지지 않느냐?"

"거 어째 거짓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영 슴슴합니다."

"한울이란 실제 있는 나라인가요?"

"나는 들어본 적 없는 나라네만."

"나도 그래. 동극제 님이 그렇게 말하실 때마다 뭔가 나도 옆에서 '무엄하다, 예를 갖추지 못할까' 라고 해야 할 것 같고··· 어쨌든 개운치는 않아."


여자는 문으로 기어갔다. 왼쪽 옆구리에 난 상처가 시큰하게 아파왔다.

그녀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구멍이 숭숭 뚫린 창호지문을 통해 바깥을 살펴보았다.


촛불도 켜지 않은 채 네 사람이 마루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은 달빛에 의지해 바구니에 담긴 쑥과 콩, 햇감자 등을 먹고 있었다.

남자가 셋, 여자가 한 명이었다.


그 중 흰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여자가 번개같이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지켜보던 여자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지만 흰 옷을 입은 여자는 곧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여자가 보아도 아름답지만 어쩐지 차가운 인상을 주는 여자였다.


그녀는 겨우 진정하고 문에서 떨어져 앉아 숨을 가다듬었다.

그런 그녀의 귀에 몸이 건장한 남자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럽게 퍽퍽하구만."

"그래도 양은 많이 주지 않았나."

"그러게, 인심은 퍽퍽하지 않아서 다행이구만."

"익혀 먹지 못하니, 세 분은 많이 힘드시겠습니다."


넷 중 유일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연기가 나지 않게 하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역귀들을 어지간히도 두려워하는 모양이야."

"그러고 보니 기가 약해진 건가? 다른 마을에서는 저 여자만 나타났다 하면 픽픽 쓰러지더니."

"매구의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겠느냐. 가만히 있어도 늙은이나 어린아이들은 다가오지도 못하니."

"덕분에 괜한 오해로 경을 칠 뻔한 적이 몇 번인지 원,

그것만 아니었어도 한 달은 빨리 도착했을 겁니다."

"기를 조절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라 하셨더랬지. 이제 어느 정도 조절하게 된 게 아니신가?"

"아뇨, 아직···."

"그럼 기가 약해진 게 맞네 뭘, 그 늙은이들 하나도 기절시키지 못하는 걸 보니.

정 뭐하면 나가서 토끼라도 잡아먹고 와. 배고파서 사람이라도 잡아먹으면 안 되니까."

"여기 마을 사람들이 역귀를 자주 접한 만큼, 역귀에 대한 내성이 생겼을 수도 있겠구먼."


그들을 지켜보던 여자는 이내 그들이 마지막에 한 말을 이해했고 자기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켰다.

뒤늦게 입을 막았으나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그 중 건장한 남자가 일어나 웃으며 그녀에게 걸어왔다.


"일어나셨군. 매일 죽 쑤어 먹이기도 여간 일이 아니었는데."


그녀는 나무로 만든 문의 약한 부분을 뜯어내어 그 조각의 끝을 그에게 겨눴다.

낡은 집이라 좀먹어 잘 부서지는 나무조각에 불과했지만 끝부분은 날카로웠다.


그녀보다 머리 두 개는 넘게 키가 큰 남자는 그녀의 서슬퍼런 눈을 보고 뒤로 물러났다.


"말하는 걸 들으니 그 여자는 역귀지? 네놈들 전부 역귀들이냐?"

"아, 이런."


로구쇠는 머리를 긁었다. 그는 동극제에게 말했다.


"비상식량이 우리가 하는 말을 들어 버린 것 같습니다만."

"뭐라고?"

"너무 놀리지 말거라, 로구쇠. 환자가 아니더냐."


여자는 나무조각의 날카로운 끝을 자신의 목에 가져다대고 눌렀다.


"역귀들에게 욕을 당하느니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겠다."


당황한 일동이 여자를 말렸다.


"우리는 역귀가 아니다. 겨우 건진 목숨을 그런 식으로 버리지 말거라."


여자는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그럼 저 여자는 무어냐? 사람을 기절시키고 역귀에 대한 내성이 어쩌고 하던데?"

"···이 여자는 역귀가 맞다. 사정이 있어 잠시 동행하고 있지."

"사람 모습을 한 역귀가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고? 지금 나를 가지고 노는 것이냐?"

"이봐, 같은 혼조 사람으로서 유신에 걸고 맹세하는데 우리는 사람이야. ···저 여자만 빼고."


로구쇠는 그렇게 말하고는 작은 바구니에 먹을 것을 담아서 건넸다.


"너도 혼조 사람 맞지? 난 로구쇠다. 숟가락 잡을 힘도 없을 텐데 무리하지 말고 좀 먹어."


그녀는 나무조각을 내리지 않고 한 손으로 바구니를 잡아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물었다.


"언비다. 내가 며칠이나 누워 있었지?"

"나흘 정도."

"같이 떠내려온 책이 한 권 있지 않았나?"

"어허, 이거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줬더니 보따리를···"


로구쇠가 눈을 부라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그냥 물어본 것뿐이다. 이곳은 어디지?"

"난설의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네만."

"나흘에 북동쪽이라고···? 젠장, 멀리도 왔군."

"듣자듣자하니 이 친구 말버릇이 고약하구만."


로구쇠가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언비는 바짝 긴장하여 나무조각을 치켜들었으나 로구쇠는 두꺼운 손으로 나무조각을 붙잡아 잘게 부숴뜨렸다.


"험하게 하지는 말게.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을 게야."

"괜찮아.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혼조 사람들은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말을 잘 듣거든."


그리고 그는 큰 주먹을 번쩍 들더니 언비의 머리를 툭 내리쳤다.

그 기세에 잔뜩 얼어 목을 움츠렸던 언비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은 충격에 눈을 떴다.


"뭐라도 좀 먹어라, 그게 먼저야. 그리고 나오면 고맙다는 말부터 해라."


언비는 말없이 바구니를 방으로 가져가 구석에서 먹었다. 두녹이 물을 가져다 주었다.


이윽고 언비가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지금은 보답할 방법이 없으나 나중에 확실히 갚겠다."

"어떻게?"

"나는 바라안에 있는 아지랑이 공방에서 일하고 있다.

그곳으로 찾아가면 내 이름으로 만든 물건들이 있을 거야. 그 중 아무 거나 가져가도 좋다. 그걸로 사례를 하지."

"촌장이 말한 근처의 큰 도시란 게 바라안이었나?"


"그래, 맞아." 언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한 도시인지요?"


매구의 질문에 두녹이 대답했다.


"무할에서 가까운 자치도시이자 최대의 공업도시라네.

숟가락부터 병장기까지 안 만드는 물건이 없다고들 하더군."

"공업도시라 해도 어린애가 만들어봐야 도리깨나 만들었겠지 뭘."


로구쇠의 말에 언비는 발끈했다.


"바라안에서는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다."


동극제가 입을 열었다.


"큰 공업도시라면 사람을 가벼워지게 만드는 도구나 이능자가 있을 수 있겠군."

"도시의 특성상 사람이 아니라 물건에 힘이 깃드는 이능자가 많을 테니, 그건 가봐야 알 법합니다."

"그래. 가 볼 가치는 있겠군."


"행운을 빈다. 그럼 난 이만."


언비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그녀는 고통을 참아가며 구석에 굴러다니던 버려진 신발을 찾아 신었다.


"벌써 떠나려고? 어차피 우리도 그 쪽으로 가게 됐는데, 같이 가면 되잖아?"


로구쇠의 말에 언비가 고개를 저었다.


"역귀와 함께 다니는 자들을 어떻게 믿지? 목숨을 구해준 건 물론 고맙지만, 더 이상 함께 다닐 생각은 없다."

"그 역귀는 피를 질질 흘리면서 기절해 있는 너를 나흘 동안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어쨌든, 목숨을 구해줬다고 해서 내 처우가 당신들 손에 달린 건 아니야. 마을 사람들한테 그 여자가 역귀라는 걸 말하지 않는 것만도 감사히 여겨라."

"그 싸가지하고는. 이러니까 혼조 사람들이 거칠고 싸움밖에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거 아냐."

"나는 혼조 태생이 아니다. 어머니가 혼조 사람일 뿐."

"아, 그러세요. 어차피 바라안으로 가는 동안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을 텐데, 그냥 같이 출발하지그래."


"아니, 나는 다시 난설로 돌아간다."

"뭐?"

"뭐라고?"


일동은 깜짝 놀라 언비를 바라보았다.


"중요한 책을 두고 왔어. 그걸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 정말 내가 발견된 곳 근처에서 책을 본 적 없나?"


두녹이 말했다.


"자네는 맨몸으로 떠내려왔네. 그리고 책이라면 이미 물에 젖어서 쓸모없게 되었을 텐데."

"그 책엔 물을 밀어내는 이능이 걸려 있다."

"책 하나를 찾으러 난설 근처로 돌아간다고? 내 주먹에 맞아서 머리가 이상해졌나?"


언비는 로구쇠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등을 돌려 길을 떠나려 했다.


"잠깐만 기다려."


로구쇠가 마당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는 언비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세상에 목숨보다 중한 책이 어딨어?"

"너희들은 어차피 이해 못 해. 그리고 나는 난설의 안쪽까지 혼자 힘으로 갔었다.

그 날따라 어찌된 일인지 역귀들이 다니던 길로 다니지 않아서 들킨 것뿐이야."


언비는 말문이 막힌 일동을 한번 둘러보고 길을 떠났다.

로구쇠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동극제를 바라보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머리를 세차게 긁었다.


그가 동극제에게 말했다.


"동극제 님."

"여동생 생각이 나서 그러는 것이지?"

"······."

"다녀오거라. 바라안에서 기다리겠다."


동극제는 품에서 난설의 지도를 꺼내 로구쇠에게 건넸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말거라."


지도를 받아든 로구쇠는 고개를 숙이고 언비가 간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두녹이 말했다.


"매구를 저 쪽에 함께 보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녀가 있으면 잡귀들은 달라붙지 않을 것이고, 동극제 님을 다시 찾아오는 것도 수월할 듯한데."

"저 아이는 저 때문에 떠나는 것이니, 제 동행을 달가워하진 않을 듯합니다."

"매구의 말이 맞다. 그리고 로구쇠는 맺힌 은원이 있으니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는 게 낫겠다."

"별 일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군요."


*


로구쇠는 마을의 밖까지 걸어간 언비를 따라잡았다.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언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볼일이 남았나?"

"···아니, 나도 갑자기 난설에 가고 싶어져서 말이야."


언비는 단번에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 혼자 말인가? 그 여자가 나를 감시하라고 시키던가?"

"사실 그 여자한테 조종당하고 있었는데, 너의 그 싸가지 없는 행동을 보고 정신이 들었어."

"뭐?"

"농담이야."

"실없는 놈이로군. 밸도 없이 역귀랑 붙어 있는 놈다워."


로구쇠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귀의 왕을 죽이기 위해서 같이 여행하고 있었던 것뿐이야."

"뭐라고? 네놈들이 부아거를 어떻게 죽인다는 말이냐?"

"동극제 님의 청경엔 그럴 수 있는 힘이 있거든."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

"말해도 믿지 못할 거면서 왜 물었냐?"

"···물어본 적은 없다만."


그리고 두 사람은 말없이 난설로 향하는 밤길을 걸었다. 침묵을 깨고 로구쇠가 입을 열었다.


"이름이 연화였어."

"뭐라고?"

"예전에 담력을 시험한답시고 난설 근처로 갔다가 역귀들한테 잡아먹힌 내 여동생 이름이 연화였다고."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거지? 네 철없던 여동생과 나를 같은 취급하는 건가?"

"그냥 그렇다고."

"······."


이윽고 언비가 입을 열었다.


"따라오는 건 상관없다만 역귀들이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한다면 네 수작인 걸로 알고 죽이겠다."

"참고로 널 물에서 건져준 게 바로 나야."

"쫌생이 같은 놈이로군. 고맙다는 말도 사례도 했을 텐데. 대체 언제까지···!"

"그러니까 넌 오래 살아 있어라."

"······."


일행은 둘로 갈라졌다. 동극제와 두녹, 매구가 최대의 공업도시 바라안으로 향했고, 로구쇠와 언비의 행선지는 그 정반대인 난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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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강한 충격 24.01.29 14 0 12쪽
20 비상 24.01.28 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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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무서운 남자 24.01.26 17 0 13쪽
17 송곳니 24.01.25 24 0 12쪽
16 실종, 그리고 폭발 24.01.24 19 0 13쪽
» 연화 24.01.23 23 0 13쪽
14 1,500킬로그램 24.01.22 26 0 13쪽
13 불신과 균열 24.01.21 25 0 14쪽
12 금지된 구역으로 24.01.20 32 0 11쪽
11 믿을 수 없는 제안 24.01.19 3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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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천년여우 24.01.16 4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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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00살이 넘은 꼬마 23.07.09 146 1 11쪽
1 새로운 시대 23.07.09 254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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