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트키 들고 무한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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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흔캐
작품등록일 :
2023.07.09 00:40
최근연재일 :
2024.03.05 19:00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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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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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00살이 넘은 꼬마

DUMMY

남자는 칼을 집어넣었다. 뽑힐 때와 같은 소리를 내며 칼이 칼집 속으로 들어갔다.


그 때 남자의 뒤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돌아본 남자의 앞에는 이제 스물이나 되었을까 싶은 여자 하나가 서 있었다.


여자는 활동하기 편한 짧은 연붉은색 도복을 입고 있었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틀어올려 비녀를 꽂아 잡아둔 모양이었다.


둘은 잠시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여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하면 좋은지 배운 적은 없었는데."


그리고 둘은 다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왜 불렀냐구요? 제가 있다는 건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어―"

"아닌 밤중에 아녀자 홀로 웬일이냐구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어요."

"난―"

"걱정 마세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그냥 서로 못 본 셈 치고 지나쳤으면 좋겠는데."


남자는 여자의 말이 완전히 끝나고 나서도 잠시 기다렸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특이한 이능을 쓰시던데, 은랑에 몸담은 사람은 아니죠?

하긴 은랑의 일원이면 그렇게 눈에 띌 짓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


남자는 말하기를 포기하고 여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여자는 입을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몸을 돌려 텅 빈 출입국을 지났다.


여자는 남자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숨 쉬는 법을 잊었던 사람처럼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숨을 멈춘 채 볼을 부풀리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여자는 이내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그래, 여기서 귀신들이랑 같이 밤을 보내는 것보다야 귀신을 따라가는 게 더 낫겠지."


늦은 밤, 조금만 걸어가면 성도였으므로 그녀는 발을 내딛었다.


사위는 조용했다. 조각달의 도움을 받아 성도로 걸어가는 길은 여전히 외길이었다.


여자는 머리에 꽂아두었던, 비녀처럼 생긴 동색 피리를 꺼내 불었다.

이내 소쩍새 한 마리가 날아와 그녀의 어깨에 앉았다.

그녀는 품에서 조그마한 붓과 종이, 작은 대롱을 꺼내 달빛에 의지해 몇 자 적은 후 새의 다리에 묶어 날려보냈다.


성도에 다다른 그녀는 돌다리 초입에 멈춰선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모른 척 머리를 옆으로 내려뜨려 얼굴을 가린 채, 종종걸음으로 남자의 옆을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를 불러세웠다.


"기다리시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여자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동행을 부탁하고 싶소."


여자는 멈추어섰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남자에게 걸어왔다.

그녀는 짐짓 울 것 같은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런 무기를 가지고 하는 말이 부탁으로 들리지 않는 건 알죠?"


남자는 허리춤에서 잠자는 칼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여자에게 말했다.


"이름은 청경이라 하오."

"당신 이름이요? 칼 이름이요?"

"칼 이름이오."

"그렇군요. 천강에 들어가면 또 그걸 쓸 건가요?"


남자는 눈썹을 약간 들어올렸다.


"그게 무슨 소리요."

"출입관리국 사람들한테 한 것처럼 말이에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게 자주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오."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자는 도시를 향해 달음박질했다.

남자는 멍하니 멀어지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다리를 반쯤 건너다가, 여자는 다시 뛰어서 되돌아왔다. 그리고 남자에게 물었다.


"그럼 언제쯤 쓸 수 있어지는데요?"

"상황에 따라서 다르지. 방금 전처럼 불필요한 충돌을 막으려면 안내가 필요할 것 같아 동행을 부탁한 거요. "


남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여자는 불신을 잔뜩 머금은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까 지금 도망쳐봤자 당신이 천강 안에서 그 칼을 쓰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출입국 사람들처럼, 나도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거잖아요."

"당신에게는 청경의 힘이 통하지 않소."

"저한테는 안 통한다뇨?"

"청경의 힘이 통하는 사람이었으면 당신도 방금 전 그 사람들과 같이 사라졌어야 하오."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자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쏜살같이 도시를 향해 달려 남자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사람들을 그렇게 대수롭지도 않게 죽이는 놈이랑 동행 따윌 해줄까 보냐, 하는 말이었다.


남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부산스러운 여자군."




*




남자는 단여의 수도, 천강으로 들어섰다.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는 큰 강을 몇 줄기 끼고 있었다.

강을 건너는 돌다리 초입에서 성도로 들어가는 다른 다리가 까마득하게 보일 만큼 천강은 커다란 도시였다.


남자는 다리를 지나 술과 잠자리를 제공한다는 간판이 걸린 주막으로 들어갔다.

주막에서 키우는 늙은 개가 남자를 보고 굵직하게 짖어댔다.

이내 주막 한 켠에서 문이 열리고 아낙네 하나가 눈을 비비며 몸을 내밀었다.


"일찍도 잠을 깨워주시는그려. 엽전 세 닢이오. 온돌에 쓸 나무까지 하면 닷 닢."


남자는 말했다.


"정보를 취급하는 자를 알고 싶소."


아낙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하품을 하며 말했다.


"야밤중에 대뜸 홍두깨 두드리는 소리군. 날 밝은 뒤에 다시 오시오."

"정보를 취급하는 자를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만 알려주면 되오. 늦은 밤에 실례가 많소."


아낙은 그제서야 잘 안 떠지는 눈을 들어올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차림을 위아래로 훑고 여자는 말했다.


"뭐야, 금랑 사람이기라도 하오? 가까운 산기슭에 푸른 대문이 있는 집으로 가시오.

천강에서 정보가 오가는 곳은 그곳밖에 없으니."


여자는 불툭 내뱉고 문을 강하게 닫았다. 더 이상의 대화는 거절하겠다는 의사표시였다.

늙은 개는 그 때까지도 시끄럽게 짖어대고 있었다.


남자는 발걸음을 돌려 달빛에 의지한 채 산기슭으로 향했다.

천강은 산에 기대어 세워진 도시라 근처 산기슭에서 푸른 대문을 가진 집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대문 너머로는 기와집 몇 채가 소담하게 늘어서 있었다.


남자는 휘라고 적힌 명패를 확인한 후, 대문 앞에서 팔짱을 낀 채로 서서 잠이 들었다.


*


이내 누군가 그를 깨웠다. 황색 무명 옷을 입은 사내가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모양새로 남자의 발을 빗자루로 툭툭 치고 있었다.


"이보시오, 귀신이오? 서서 자는 사람이 다 있담. 귀신이면 대답하고 사람이면 물러가시오."


남자는 천천히 눈을 떴다. 비를 든 채 남자를 보는 사내의 눈이 겁에 질려 있었다.

사내는 다시 크게 소리쳤다.


"귀신이면 대답하고 사람이면 물러가라!"


"반대다, 이놈아."


누군가 사내의 어깨를 뒤에서 장대로 툭 쳤다. 사내는 뒤를 돌아보고는 굽신거리며 인사했다.


"귀한 손님이 올 거라 하지 않았느냐." 라며 인사를 받은 사람은 예닐곱 살로 보이는 여자 꼬마아이였다.


꼬마는 자신의 키만한 싸리비를 들고 있었다.


"반갑소, 휘라고 하오. 날도 추운데 안으로 들지요."


고풍스러운 말투로 본인을 소개한 꼬마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꼬마의 뒤를 따라 걸었다.


바깥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문을 들어서자 규모가 큰 장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앙에 호수라고 봐도 좋을 큰 연못이 있었고, 연못에서 나온 물줄기가 식당이나 욕탕으로 보이는 건물로 이어져 있었다.

건물들은 모두 밤새 내린 눈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길을 걸으며 휘가 남자에게 말했다.


"원래 난 밖으로 나서지 않소. 대리인을 써서 대화하지.

원체 겉모습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이 믿지 못하더군."


"보기보다 나이가 많으신 것 같군."


"육백 살이 조금 넘었다오."


윤기나는 돌과 나무로 장식된 정원을 지나 안쪽 가장 큰 기와집으로 들어서자,

소나무와 매화나무가 가지를 드리운 마루에 하인 하나가 서 있었다.

그는 다과가 얹어진 식탁을 들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십니까?"


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쪽 사랑방으로 남자를 안내했다.

하인은 들고 있던 식탁을 방에 내려놓으며 휘에게 말했다.


"중한 일이 있으면 알리겠습니다. 편하게 말씀 나누십시오."


휘는 치마저고리를 뒤로 펄럭이며 자리에 앉았다.


"방금 다과를 내온 사람은 이 방에서 어떤 말을 해도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해주는 이능자라오. 편하게 말씀하시오."

"알겠소."

"귀한 손님이시니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들으면서 대화하는 게 어떻소."


남자는 고개를 저어 거절하고 물었다.


"내가 왜 귀한 손님이오?"

"당신이 내 오랜 질문의 해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같아서."

"당신의 오랜 질문이 무엇이기에?"


휘는 다과와 차를 들어서 먹었다. 그 나이 소녀들이 그럴 법한 활발한 식사였다.


"그래도 순서가 있지 않겠소? 나는 정보상이고 당신은 나를 찾은 손님인데.

먼저 질문하시오."


"나는 천신을 실제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소."


다과를 먹던 그녀는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레가 들렸는지 격하게 기침했다.

한참 기침한 후에, 그녀는 속을 가라앉히기 위해 차를 들어 마시며 말했다.


"천신을 실제로 만날 수 있게 해 달라는 말인가?"

"만나는 법을 아는 사람을 알려줘도 괜찮소."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건가? 신을 만나는 방법 따위가 어디 있소."


그리고 소녀는 남자를 위아래로 살폈다.


"신을 만나서 무엇 하시려고?"

"내가 왜 죽지 못하고 떠돌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남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휘는 얼굴을 약간 찌푸리고 말했다.


"죽지 못하고 떠돈다고···? 당신 이능자인가?"

"나는 이능자가 아니오. 겉모습이 그래보여도 당신 말대로 당신은 꽤 오래 사신 것 같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거라 믿고 말하겠소."


남자는 옆구리에 찬 칼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차고 있는 이 칼이 청경이오. 당신은 청경이 무엇인지···"


휘는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시던 차를 뿜고 말았다. 남자는 말 없이 얼굴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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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머리를 쓰다 24.02.04 12 0 16쪽
26 비명 24.02.03 12 0 12쪽
25 코끼리 24.02.02 16 0 13쪽
24 사투 24.02.01 15 0 12쪽
23 초대 24.01.31 15 0 10쪽
22 잊혀진 도시 24.01.30 14 0 12쪽
21 강한 충격 24.01.29 14 0 12쪽
20 비상 24.01.28 13 0 11쪽
19 무서운 여자 24.01.27 20 0 12쪽
18 무서운 남자 24.01.26 17 0 13쪽
17 송곳니 24.01.25 24 0 12쪽
16 실종, 그리고 폭발 24.01.24 19 0 13쪽
15 연화 24.01.23 23 0 13쪽
14 1,500킬로그램 24.01.22 26 0 13쪽
13 불신과 균열 24.01.21 25 0 14쪽
12 금지된 구역으로 24.01.20 32 0 11쪽
11 믿을 수 없는 제안 24.01.19 32 0 13쪽
10 500년 전 24.01.18 38 0 13쪽
9 학살 24.01.17 40 1 12쪽
8 천년여우 24.01.16 41 1 12쪽
7 의기투합 24.01.15 54 1 12쪽
6 오해와 해방 24.01.12 55 1 12쪽
5 치트 아이템을 빼앗기다 24.01.11 65 1 11쪽
4 낯선 도시 천강 24.01.10 74 1 11쪽
3 이름 없는 남자 24.01.09 87 1 11쪽
» 600살이 넘은 꼬마 23.07.09 147 1 11쪽
1 새로운 시대 23.07.09 254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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