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트키 들고 무한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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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흔캐
작품등록일 :
2023.07.09 00:40
최근연재일 :
2024.03.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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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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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00년 전

DUMMY

희는 방 안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에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깼다.

나른한 몸을 일으키려던 그녀는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움찔하며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깨끗하게 간 흰 천이 다리에 매어져 있었다.


그녀는 밖으로 나왔다. 검이 대청마루에 앉아 미음을 끓이고 있었다.


"안 잤어요?"


희가 물었다. 검은 미음을 저으며 대답했다.


"나는 가끔씩만 자도 괜찮소."


검은 희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다리를 살피던 검이 말했다.


"몸은 좀 어떻소?"


희는 다리를 굽혔다 펴 보였다.


"깊게 찔린 게 아니라서 괜찮아요. 걷는 데도 문제 없구요."


검은 미음을 그릇에 담아서 희에게 건넸다.


"간밤에 추적이 따라붙었소."

"그 여자 말인가요? 그러고 보니 그 여자는 어디로 갔죠?"


희는 미음이 담긴 그릇을 받아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주변에 인기척은 없었다.


"목적을 이루고 떠났소."

"당신이 물리친 건가요?"

"아니, 도움을 받았지. 우리가 오던 길을 더듬어 가 보니 남자 세 명이 죽어 있더군."

"그럼 그 여자가···?"

"그녀는 역귀요."


희는 미음을 뜨던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역귀는 기본적으로 짐승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요?"

"역귀를 보신 적 있소?"

"여러 번 보기야 했죠. 두 발로 걷는 역귀를 본 적도 있지만, 도저히 사람의 형상은 아니었어요."

"사람과 비슷한 모습일수록 강한 역귀라고 생각하시오. 어제는 운이 좋았소."


희는 기억을 더듬어 보는 얼굴이 되었다.


"책에서 읽은 적은 있어요, 사람 모습을 한 역귀가 있다고. 하지만 그건 그냥 전승이나 설화라고만 생각했는데."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일 일이 좀처럼 없었을 거요."


희는 검에게 간밤에 있었던 일을 물어보았다. 검은 매구와 나눈 대화를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희가 입을 벌리고 검을 쳐다보았다.


"500년 전에 그녀가 당신을 찾아왔었다구요? 부아거를 죽이기 위해서?"

"내가 그 시대에 떨어졌을 때 나는 역귀 무리 한가운데에 있었소.

청경의 힘을 썼지만 끝도 없이 몰려드는 역귀들을 피해 도망쳤지. 그리고 어찌 알았는지 그녀가 나를 찾아왔소."


검은 지나간 기억을 떠올렸다.


*


남자는 오두막 안에서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몸 여기저기에 깊게 난 상처에서 나온 피가 바닥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남자는 옆에 아무렇게나 내버려뒀던 푸른 뿔피리를 집어들었다.


이윽고 누군가 문을 열고 살며시 안으로 들어왔다. 치렁치렁한 머리를 옆으로 늘어뜨린 여자였다.


여자는 천쪼가리 몇 개를 몸에 걸치고 있었다.

도저히 복식이라고 불러줄 수 없는 모양새가 옷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남자는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뿔피리를 손에 쥐고 잘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여자에게 말했다.


"누구냐? 사람이면 대답하고 귀신이면 물러가라."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여자는 걸어오던 걸음걸이 그대로 다가와서 왼손을 남자의 배에 쑤셔넣었다.

물건을 집어들듯이, 한 치 망설임도 없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배에서 피투성이가 된 손을 뽑았다. 남자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쓰러지는 남자의 귀에 여자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쓸 만한 놈인 줄 알았는데,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만도 못한 놈이었잖아."


아쉽다는 듯 피가 묻은 손을 핥는 여자의 뒤로 문이 다시 열렸다.

여자가 돌아보니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방금 전까지 땅에 쓰러져 있던 남자로,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여자는 놀라서 남자가 쓰러져 있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핏자국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남자가 손에 쥔 푸른 뿔피리를 강하게 불었다. 낮은 울림이 오두막 주위로 넓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는 뿔피리에서 입을 떼고 말했다.


"제기랄, 역시 아직······."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훌쩍 다가선 여자가 남자의 머리를 손으로 쳐 날려 버렸다.


여자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해 보았다.


"···환각은 아닌데, 어찌 된 일이지?"


그리고 여자는 귀를 쫑긋했다. 누군가 오두막 밖의 그루터기에 꽂혀 있던 도끼를 흔들어 뽑고 있었다.


그녀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옆에서 도끼가 그녀의 머리로 짓쳐들었다.

그녀는 아무런 방어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도끼가 그녀의 머리에 부딪쳤으나 그녀의 머리카락이 더 강했다.

도끼는 날이 부러졌고 부러진 날이 하늘로 높게 솟구쳤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녀의 머리를 내려친 사람은 방금 전의 그 남자였다.


"보기에는 사람인데, 너도 역귀인가?"


남자가 물었다.


여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너야말로 무어냐? 분명히 두 번을 죽였는데."


남자는 도끼를 거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나는―"


하지만 여자는 그가 입을 열자마자 그의 목을 쳐서 날려 버렸다.


그러나 곧 주위에서 한번 더 같은 사람의 기척이 느껴진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는 몸을 날렸다.

지척에서 남자가 그녀에게 등을 보인 채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달려들어 남자의 목을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또다시 같은 기척이 느껴졌다.


그녀에게는 곧 이것이 마치 놀이처럼 생각되었다.

굴 밖으로 고개를 내민 너구리나 토끼를 사냥하듯이, 그녀는 새로 나타나는 남자를 죽이고 또 죽였다.


깊은 산 속이었다.

그는 되살아나기를 반복하면서 어디론가 향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죽은 남자의 주변에서 같은 기척이 느껴지면 쫓아가 도망치는 남자의 살을 찢어내고 뼈를 갈랐다.


그러기를 여러 번, 그녀가 슬슬 득이 없는 이 놀이가 질린다고 생각할 때쯤,

남자가 멀리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처럼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여자는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남자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남자가 서 있던 곳은 높은 절벽의 끄트머리였다.

두 사람은 함께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

여자가 남자의 목덜미를 물어뜯었고, 남자는 그런 여자의 뒤통수를 누르며 몸을 뒤집어 그녀가 아래로 향하게 했다.


이윽고 두 사람이 한데 뒤엉켜 까마득한 절벽 밑의 바위에 부딪혔다.

여자는 죽지 않았다. 강한 충격을 받은 그녀는 잠시 그대로 누워 있었다.


어디선가 남자가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왔다.

여자는 누운 채로 고개만 돌려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푸른 뿔피리가 낮게, 스스로 울었다.


맑으면서도 어둡고 부드러우면서도 혼탁한 소리였다.

남자는 여자를 마주 바라보며 뿔피리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그녀는 보지 못했지만 남자가 뿔피리를 강하게 불자 그를 기점으로 맥동하는 푸른 구가 물결처럼 확대되며 번져 나갔다.


하늘이 울리고 땅이 흔들리는 진동이 잦아들자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남자는 뿔피리를 내리고 여자가 있던 쪽을 흘깃 보더니 걸음을 옮겼다.


*


그 여자는 매구였다. 매구는 눈을 떴다.


주위는 아무 것도 없는 암흑이었다. 빛도 없었고, 소리도 없었고, 공기도 없는 듯 그녀는 공중에 떠 있었다.


몸을 구속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나 발을 까불어 봐도 땅은 디뎌지지 않았고, 손을 휘저어 봐도 잡히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소리를 내어 보려 했으나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머리가 향하는 곳이 하늘인지, 발이 향하는 곳이 땅이 맞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으나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만져 보려 했으나, 손이 자신의 몸을 그냥 스쳐 지나간다는 것에 놀랐다.

손이라고 생각하고 휘두른 것도 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암흑의 일부였다.

암흑이 곧 그녀였고 그녀의 자아는 암흑 속에 분산되어 떠다녔다.


천 갈래 만 갈래로 정신이 찢어져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고통은 없었다. 그 공간에 무언가 있다면 그녀의 정신 하나였으나, 정신은 원래 형태가 없는 것이었으므로 그 곳에는 본디 아무 것도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눈을 깜박이는 감각도, 숨을 쉬는 감각도 없었다.


그녀는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으나, 그리고 실제로 지나간 시간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으나 그녀는 매우 오랜 시간을 그 곳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매구는 눈을 강하게 찌르는 빛에 눈을 떴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 끼어 있었고 세차게 장대비가 오고 있었다.


그녀는 몸에 천쪼가리를 걸친 모습 그대로였으나 지금 그녀에게는 그 천쪼가리조차 태산과 같은 압력으로 그녀를 내리누르는 듯 무겁게 느껴졌다.


그녀는 잘 움직이지 않는 손을 움직여 천쪼가리를 벗어던졌다.


그녀는 세상에 날 때의 모습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자극도 없는 깊은 어둠에서 너무나 오랜 시간을 갇혀 있었기에,

실체를 되찾고 나자 몸을 스쳐 지나는 바람이, 맨살을 때려대는 빗방울이, 울어대는 벌레와 새 소리가 몇천 배로 증폭되어 그녀의 몸을 가시처럼 찔러대는 듯했다.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마저 용암을 들이마시는 듯 고통스러웠다.


이 모든 것이 태어나자마자 살육과 피밖에 없는 생을 살아온 그녀에게 너무나 생소한 감각이었으므로 그녀는 생애 처음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하지만 그녀 역시 궤를 벗어난 생물이었으므로 그녀는 곧 눈을 떴다.


몸의 말단부터 조금씩 움직여 본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예민해진 몸에 그 언제인가 몇 번을 죽였던 그 남자의 기척이 느껴졌다.

아주 멀리에 있는 듯했으나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남자의 기척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세 달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매구가 남자를 발견한 것은 북쪽, 눈이 녹지 않는 높은 산에 있는 마을에서였다.

싸락눈이 날려 태고부터 쌓인 눈에 더께를 얹고 있었다.


남자의 옆에는 노인과 건장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남자의 일행으로 보였다.


남자는 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통을 벗은 채 큰 석비에 끌과 정으로 무언가를 새기고 있었다.


그의 동료인, 온 몸이 근육질인 건장한 남자가 먼저 매구를 발견했다.


눈이 쌓인 길을 매구는 얇은 저고리와 치마만 걸친 채 맨발로 걸어오고 있었다.


매구가 남자에게 다가가려 하자, 건장한 남자가 그녀를 막아섰다.


"이 엄동설한에 웬 정신 나간 여자람? 훠이, 훠이! 저리 가거라."


그리고 끌로 석비에 무언가를 새기던 남자도 매구를 발견했다.

그의 눈이 놀람으로 커지는 것이 멀리서도 똑똑히 보였다.


"로구쇠, 길을 비켜라." 뒤에서 남자가 말했다.


"아는 분이십니까, 동극제 님?"


로구쇠라 불린 건장한 남자는 매구에게 잔뜩 불신의 눈빛을 보내며 비켜주었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남자는 물었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웃통을 벗고 석비에 걸터앉아 있던 남자는 목에 걸어두었던 푸른 뿔피리를 끌렀다.


매구는 두 손을 들어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였다.


"이번엔 싸우려 온 것이 아닙니다."


"하면?" 남자가 물었다.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남자는 부드럽게 웃었다. 뿔피리는 여전히 손에 든 채였다.


"나를 또다시 죽이러 온 것이 아니고?"


그 말을 듣고 로구쇠라는 건장한 남자가 등 뒤에 걸고 있던 쌍창을 빼들었다.


매구에게 로구쇠는 손가락 하나로도 짓눌러 죽일 수 있는 남자였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싸울 마음은 없습니다. "


매구의 말을 들은 동극제는 비석에서 일어났다.


"자세한 이야기는 자리를 옮겨 듣겠다. 따라오지 말거라, 로구쇠."


매구는 동극제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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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강한 충격 24.01.29 14 0 12쪽
20 비상 24.01.28 14 0 11쪽
19 무서운 여자 24.01.27 20 0 12쪽
18 무서운 남자 24.01.26 17 0 13쪽
17 송곳니 24.01.25 24 0 12쪽
16 실종, 그리고 폭발 24.01.24 19 0 13쪽
15 연화 24.01.23 23 0 13쪽
14 1,500킬로그램 24.01.22 26 0 13쪽
13 불신과 균열 24.01.21 25 0 14쪽
12 금지된 구역으로 24.01.20 32 0 11쪽
11 믿을 수 없는 제안 24.01.19 33 0 13쪽
» 500년 전 24.01.18 39 0 13쪽
9 학살 24.01.17 41 1 12쪽
8 천년여우 24.01.16 41 1 12쪽
7 의기투합 24.01.15 54 1 12쪽
6 오해와 해방 24.01.12 56 1 12쪽
5 치트 아이템을 빼앗기다 24.01.11 65 1 11쪽
4 낯선 도시 천강 24.01.10 74 1 11쪽
3 이름 없는 남자 24.01.09 88 1 11쪽
2 600살이 넘은 꼬마 23.07.09 147 1 11쪽
1 새로운 시대 23.07.09 254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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