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트키 들고 무한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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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흔캐
작품등록일 :
2023.07.09 00:40
최근연재일 :
2024.03.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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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9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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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남자

DUMMY

휘는 작은 손으로 천을 들어 입가를 닦았다. 그리고 말했다.


"내 질문은 당신이 500년 전의 기록에 있는 동극제가 맞냐는 것이었는데."

"···그 이름은 버렸지만, 내가 맞소."

"···과연 당신이 내 오래 묵은 의문의 해답이었군."

"혹시나 하고 말했을 뿐인데, 내 옛 이름까지 어떻게 알지?"


"옛 문헌을 보면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이 대량으로 사라졌다고 기록되는 일이 있소.

정보상 일을 오래 할수록 그런 일들이 대체 왜 일어나는지 궁금해졌소. 진짜 신이 데려가기라도 하신 건지."


그리고 휘는 이어 말했다.


"대부분 옛날에 일어난 일들이라 시간이 지나며 신화처럼 희석되었지만, 나 스스로는 그게 누군가의 의지가 작용한 결과라는 결론을 내렸소."

"당신이 생각한 게 맞을 거요."

"그런 관점으로 가장 최근의 기록과 말로 전해지는 전승을 샅샅이 뒤져보았소.

그러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직전 그 근처에 청경이라는 기묘한 물건을 소지한 동극제라는 남자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소."


남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때 청경은 칼의 모습도 아니었는데, 대단하시군."

"출입국에서 웬 여자애 하나를 만났을 거요."


남자는 소란스러웠던 여자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애가 바로 나의 손녀라오. 그 애에게 출입국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설마했는데, 역시 당신은 귀한 손님이 맞았군."

"귀한 손님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대리인을 물리고 직접 나오신 거요?"

"여자의 감에 오래 산 노인의 감을 더한 결과라고 해 두지."


휘는 차를 들어서 마셨다.

남자도 차를 한 잔 마시며 말했다.


"동행을 요청했는데, 듣지 않더군. 겁을 많이 먹은 것 같던데."

"역귀가 창궐한 이후로 영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니잖소."

"역귀가 있는 시대에서는 확실히 좋은 대우를 못 받더군."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죽지 못하고 떠도는 이유를 알고 싶으시다고?"

"나는 저주를 받았소. 죽지 못하는 저주지. 죽어도 금방 다른 장소, 다른 시대에서 살아나게 되오."

"그 저주를 내린 게 천신이라 그를 찾는 거요?"

"그렇소.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는지 정말 모르시오?"

"내가 아무리 오래 살았다 한들 설마 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겠소?"


남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역시 이 시대도 마찬가지군."

"이 시대, 라는 게 무슨 말이오?"

"나는 흐르는 시간을 살지 않소. 이 시대 저 시대를 떠돌며 여행하고 있지."

"그 말인즉 죽을 때마다 몇 년씩을 건너뛰며 사신다는 거요?"

"그렇소."


그녀는 정보상 일을 오래 한 사람답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참으로 신기한 사람이군. 나보다 신기한 사람이 아직 있을 줄이야."

"나도 600살이 넘은 사람은 처음 보는군."


휘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지금 시대에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소?"

"그건 내가 당신에게 먼저 물어야 할 말이오. 이 시대에서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연왕은 아시오?" 휘가 물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왕은 당연히 알고 있소."


"연왕 사후로 697년이 지났소."


남자는 속으로 셈을 해보다 말했다.


"그럼 당신 말대로 나는 500년쯤 전에서 건너온 셈이로군."

"500년을 바로 건너뛰셨다고?"

"그렇소. 그 전 여행은 지금 기준으로는 천 년쯤 전이었을 텐데, 그 여행은 짧았던 터라 확실하진 않소."


남자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죽지도 않고 몇백 년을 건너뛰며 여행한다는 얘기를 듣고도 놀라지 않는군."


휘는 어깨를 으쓱하며 소매가 널널한 저고리를 살짝 들어 보였다.


"당신도 이런 꼬마와 얘기하고 있잖소."

"그것도 이능의 한 가지인가?"

"아주 천천히 나이는 먹고 있소만, 이게 내 이능인지, 부작용인지는 모르지. "

"그럼 당신은 죽지 않소?"


"글쎄, 주변 사람들은 픽픽 죽어 나가는데, 나는 죽을 뻔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군.

죽음을 빗겨가는 이능의 부작용으로 이런 몸이 된 건지, 이런 몸이 된 부작용으로 죽음이 빗겨나가는 건지."


휘는 일어나서 문을 열어 바깥으로 나갔다.

바깥의 소리가 문이 열리는 틈새로 확 비집고 들어오며 소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 들어왔다.


그리고 휘는 청경을 찬 남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당신은 죽음을 많이 겪어 보았겠지?"


남자도 따라 일어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없이 겪어 보았소."


휘가 대청마루로 내려서며 말했다.


"좀 걷지 않겠소?"


*


둘은 연못가에 난 길을 따라 걸었다. 휘의 장원에는 쉰 호가 족히 넘어 보이는 기와집들이 산허리를 타고 가지런히 서 있었다.


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출입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으니, 추적을 피할 수는 없을 거요.

미안하지만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 주구려."

"그 자리에는 당신의 손녀 한 명밖에 없었을 텐데."

"거기에는 짐승, 새, 벌레들도 있었지 않소? 이능자들을 너무 얕보지 마시오."

"그도 그렇군. 천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는 곳이나 행방을 알 만한 다른 정보상들을 알려주시오. 곧바로 떠나겠소."

"아마 모든 정보상들 중에 내가 그 조건에 가장 가까운 사람일 거요."

"당신은 천신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하지 않았소?"

"당연히 알 수 없지만, 당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고 있소."


휘는 이어 말했다.


"지금 시대에 천신을 섬기는 신전은 없지만, 천신을 숭배하는 부족이 있다오.

주거지를 옮겨 다니며 생활하고 밖으로 본인들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아는 사람조차 손에 꼽지."


"어디로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소?"


"여기는 단여의 수도인 천강이고 그들은 주로 혼조 근처에서 생활하니, 혼조 근처로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거요.

물론 수많은 유랑 부족 중에 천신을 섬기는 그 부족을 찾아야겠지만."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것만 가지고는 찾기가 어렵소."

"알려드리기 전에 염치불구하고 하나만 더 묻고 싶소. 오랜 의문이 하나 더 있는지라."

"물어보시오. 아는 정보라면 대답해 드리겠소."


휘는 남자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난설이 왜 멸망했는지 당신은 정확히 알고 계시오?"


남자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이내 대답했다.


"연왕이 태어날 때 이능을 통제하지 못하고 한 나라를 깡그리 태워버린 거라 알고 있소만."

"갓난쟁이의 이능이 그 넓은 나라를 통째로 태워버릴 만큼 강할 수가 있소?"

"이능이 아니라 부작용일 수도 있지 않겠소?"


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오래 전승되어온 말 속에 언제나 희미한 진실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오.

그런데 연왕 사후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연능왕이 아닌 연왕으로 불린다는 것은, 사람들도 그게 이능으로 인한 게 아니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뜻 아니겠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당신을 만나고 나서 든 생각인데, 혹시 당신이 그 시대에 있었던 것이 아니오?"


"나는 그 시대에는 없었소." 남자가 잘라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소?" 휘가 말했다.


"한 나라가 통째로 불타 버리고, 그 자리에 역귀가 창궐하기 시작해 한 나라가 역귀의 소굴이 되어버렸다는 게.

그리고 그 자리에 역귀의 왕이라 칭하는 자가 나타났다는 게, 도대체가 한 사람의 이능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소."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뜸을 들이다, 이내 천천히 말했다.


나는 500년 전, 부아거를 만났소.


그 말에 휘가 입을 떡 벌리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말하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 말했다.


"그도 연왕도 시대의 희생자일 뿐이오. 이 모든 게 시작된 이유라면 그건 아마 나일 거요.

당신들이 이능을 가지게 된 근원까지도."


그리고 그들은 휘의 집 앞에 있는 대문에 도착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대답이 되었소?" 남자가 물었다.


"그러면 결국 당신도 난설이 왜 멸망했는지는 모르시는 거군."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이능에 한계는 없다는 것뿐이오."


휘는 땅을 쳐다본 채 말이 없었다. 남자는 입구를 지키고 있던 하인 중 한 명에게 말 한 필과 지도를 요청했다.

하인이 휘의 눈치를 보고 축사로 걸음을 옮겼고, 남자는 휘에게 웃으며 말했다.


"오래 품은 의문을 하루에 두 개나 해결하려고 하셨소?"


"그래도···."


"자, 어디로 가면 그 부족을 만날 수 있는지만 알려주시오."


하인이 말 한 필을 끌고 돌아왔다. 그는 품에서 지도를 꺼내어 말의 고삐와 함께 남자에게 넘겨주었다.

휘는 작은 붓으로 지도에 위치를 표시해 주며 말했다.


"왼쪽 위가 우리가 있는 천강이고, 혼조는 남쪽 아래, 무할은 오른쪽 바다 건너에 있소.

당신은 이 길을 따라 단여의 동쪽 끝자락으로 가시오.

매영강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거기 내 손녀가 있소.

어디로 가야 그 부족을 만날 수 있는지 그 아이가 안내해 줄 거요."


휘는 까치발을 들고 지도를 손으로 짚으며 남자에게 길을 알려준 다음 품에서 작은 은장도 하나를 꺼냈다.


"이 은장도를 보여주면 도와줄 거요."

"그 손녀의 이름은?"

"매영강에 들어가면, 알기 싫어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요."


휘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하인을 시켜 말의 등자를 고쳐 매어 주었다.


"그럼, 잘 가시게." 휘가 말했다.


남자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말에 훌쩍 뛰어 올라탔다. 그가 출발하기 전 휘가 남자를 불렀다.


"동극제라는 이름은 버렸다 하셨지. 다른 이름을 알려줄 수 있으시오?"


남자는 산 아래 수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시대에서 쓸 이름은 아직 정하지 못했소."


그리고 그는 말을 달려 산 아래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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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머리를 쓰다 24.02.04 12 0 16쪽
26 비명 24.02.03 12 0 12쪽
25 코끼리 24.02.02 16 0 13쪽
24 사투 24.02.01 15 0 12쪽
23 초대 24.01.31 15 0 10쪽
22 잊혀진 도시 24.01.30 14 0 12쪽
21 강한 충격 24.01.29 14 0 12쪽
20 비상 24.01.28 14 0 11쪽
19 무서운 여자 24.01.27 20 0 12쪽
18 무서운 남자 24.01.26 17 0 13쪽
17 송곳니 24.01.25 24 0 12쪽
16 실종, 그리고 폭발 24.01.24 19 0 13쪽
15 연화 24.01.23 23 0 13쪽
14 1,500킬로그램 24.01.22 26 0 13쪽
13 불신과 균열 24.01.21 25 0 14쪽
12 금지된 구역으로 24.01.20 32 0 11쪽
11 믿을 수 없는 제안 24.01.19 33 0 13쪽
10 500년 전 24.01.18 38 0 13쪽
9 학살 24.01.17 41 1 12쪽
8 천년여우 24.01.16 41 1 12쪽
7 의기투합 24.01.15 54 1 12쪽
6 오해와 해방 24.01.12 56 1 12쪽
5 치트 아이템을 빼앗기다 24.01.11 65 1 11쪽
4 낯선 도시 천강 24.01.10 74 1 11쪽
» 이름 없는 남자 24.01.09 88 1 11쪽
2 600살이 넘은 꼬마 23.07.09 147 1 11쪽
1 새로운 시대 23.07.09 254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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