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트키 들고 무한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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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흔캐
작품등록일 :
2023.07.09 00:40
최근연재일 :
2024.03.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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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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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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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천년여우

DUMMY

"그래서 감옥에 이십 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던 건가요? 당신은 그렇게 나이가 많아 보이진 않는데."

"그건 다른 시대에서 있었던 일이오."


희는 눈을 치켜떴다.


"당신, 자꾸 시대가 어쩌고 하는데 그게 어떤 뜻이죠? 시간을 다루는 이능자 같은 건 없다고 했는데."

"나는 시간을 다루지 않소. 당신들과 살아가는 시간이 다를 뿐.

시간이 거대한 물살이라면 나는 상류로도 갔다가, 하류로도 가는 나뭇잎일 뿐이지."


"그러면 당신이 이 시대 저 시대를 떠돌면서 여행하는 사람이라는 거죠?"

"그렇소."

"그럼 이 시대로 오기 전에는 어느 시대에 있었어요?"

"지금을 기준으로 500년 전쯤."


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 할머니처럼 특이한 사람을 보면서 자라지 않았으면 벌써 예전에 헛소리로 치부했을 텐데."


그리고 희는 입을 열었다.


"믿을게요, 한 배를 탄 입장이니까.

당신 때문에 나도 도망자 신세가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음, 난 이만 다음 시대로 가야겠군' 하며 떠나지는 않겠죠."

"지금은 그럴 계획이 없소."


희는 지금은? 하며 남자를 흘겨보았다. 그리고 곧 표정을 풀더니


"어쨌든 좋아요, 전 희예요. 우리 할머니를 천강에서 보셨겠죠."


하며 손을 내밀었다. 남자는 검이라고 부르시오, 하며 손을 맞잡았다.


"그거 진짜 이름이 아니죠?"

"그렇소."

"왜 하필 검이에요?"

"당신이 희라고 했으니."


희는 잠시 생각하다 곧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이름은 뭐예요?"

"너무 긴 여행이라 잊었소."

"세상에 자기 이름을 잊는 사람도 있나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더군."

"우리 할머니는 600년 넘게 살아도 잘만 기억하시던데."

"겉보기에는 어린 소녀에 불과하더군."


희는 그 말에 놀라 검의 어깨를 붙잡았다.


"당신 우리 할머니를 봤어요?"


검은 영문을 모른 채 대답했다.


"이미 알고 있던 게 아니었소?"


"우리 할머니는 식솔들에게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요."


그리고 희는 검을 잡은 손에 힘을 풀고 떨어져 앉았다.


"아니, 아마 그 소녀도 할머니의 대리인 중에 하나였겠죠. 할머니가 하는 말을 바로 전달해줄 수 있는 이능을 가진 사람들이면 다 대리인으로 쓰시니까."

"하지만 그 소녀는···"


그 때 길게 늘어지는 울음소리를 내며 솟날수리 한 마리가 동굴 안으로 날아들어왔다.


희는 기다렸다는 듯 솟날수리를 팔에 앉혀 쓰다듬고는 다리에 매어진 대롱에서 쪽지를 꺼내 읽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 읽은 쪽지를 모닥불에 던져 넣으며 말했다.


"이제 출발하죠. 매영강으로 간다는 거,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않았죠?"


검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희는 남은 토끼고기를 솟날수리에게 주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소매에서 작은 쪽지를 꺼내 몇 자 적어넣었다.


검은 토끼고기를 물고 멀리 날아가는 솟날수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추실은 당신이 새를 다루는 이능자라 했지."

"사실 전 새를 다루는 이능자가 아니긴 하지만요. 호패에는 그렇게 새겨져 있죠."

"이능을 속인 거군."

"원래 동물을 다루는 이능자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짓말이에요. 훈련된 동물을 쓰면 속여넘길 수 있거든요."

"그럼 당신의 진짜 이능은 무엇이오?"


희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보면 모르시겠어요? 사실 저는 매혹의 이능자랍니다. 어릴 때부터 저만 지나갔다 하면 남자들이 침을 질질질··· 얼굴 한번 보려는 남정네들이 동구 밖까지 줄줄줄···"


남자는 할 말을 잃고 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런 남자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제 산길을 따라 걸어야 해요. 얼른 따라와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해가 질 때까지 산을 걸었지만 사람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정도 걸었으면 심마니 한 명이라도 보일 법도 한데."


"우리는 사람을 마주치지 않을수록 좋은 게 아니었소?" 검이 반문했다.


"산을 벗삼아 살며 마을로 잘 내려가지 않는 사람들이니, 호패가 있으면 뺏기 가장 좋잖아요."


그리고 희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상하다. 천강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산도 아닌데, 왜 이리 조용하지."


"당신은 이 산에 와본 적이 있소?" 검이 물었다.


"단여는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인 나라라, 산을 끼고 사는 사람들도 오늘 이 산이 내일은 저 산이라고들 하던데요.

아직 이름도 없는 산도 많아요."


으슬한 바람이 불어왔다.


"범이라도 나오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고 희는 불을 밝힌 설기를 눌러 끄고는 달빛에 의지해 걸었다.


그러기를 잠시, 희가 멀리서 빛나는 불빛을 발견하고 손짓했다.

민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었다.


"사람 사는 집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하죠? 가 볼까요?"


검이 살짝 웃으며 물었다.


"여자의 직감으로 봤을 때는 어떻소?"

"배고프고 졸려서 오늘은 파업이에요."

"내 경험상 이런 깊은 산중에 저리 홀로 선 집은 가지 않는 게 좋소."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냥 지나치죠."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불빛은 가까워지지 않았다.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이상함을 느꼈다.


"저만 어떤 생각이 드는 게 아니죠?"

"나도 그렇소."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

"풀벌레 소리도, 새 소리도 들리지 않소."


주변은 고요했다.

희가 머리에서 비녀처럼 생긴 피리를 뽑아서 길게 불었다.

청명한 소리가 산을 타고 밤하늘 높이 올랐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들도 파업했나 본데요." 희가 뭉툭하게 말했다.


"잠시 기다리시오."


검은 청경을 뽑아 길 옆에 있던 나무를 단칼에 베었다. 나무가 큰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하지만 산은 여전히 조용했다.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 없었다.


"잘 드는 칼이네요." 희가 말했다.


"칼은 베는 도구이니 칼의 모습인 청경은 못 벨 것이 없소."

"원래는 다른 모습인가요?"

"책의 모습일 때도 있었고, 종의 모습일 때도 있었소.

책의 모습일 때는 읽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종의 모습일 때는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소."


그렇게 말하며 길을 돌아드는 두 사람 앞에 검이 베었던 나무가 나타났다.

잘린 면이 너무나 깔끔해서 원래 그런 식생인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이럴 줄 알았어."


희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추적자가 따라붙은 걸까요? 환각을 보여주고 눈을 흐리게 해서 잡으려는 거라면···"

"그건 아닌 것 같소."


검이 손을 들어 두 사람의 앞을 가리켰다. 흰색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여자가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렇게 모습을 드러낼 이유가 없지 않겠소."


희는 벌떡 일어나 허리춤을 한참 뒤적거렸다.


"젠장, 내 칼은 금랑에 잡힐 때 빼앗겼는데."


검은 품에서 휘가 주었던 은장도를 꺼내 희에게 주었다.


"급한 대로 사용하시오. 당신의 할머니가 준 거라오."


은장도를 뽑아들고 싸울 태세를 취한 희와 다르게 검은 허리에 찬 청경의 손잡이에 손을 얹고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희는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는 듯 점점 안색이 푸르게 변하더니, 이내 목이 졸리는 소리로 말했다.


"이상하다···정신을 유지할 수가···"


희는 머리를 세차게 저으며 은장도로 본인의 허벅지를 찔렀다. 연붉은 도복의 아랫단이 금세 새빨갛게 젖어들었다.


"차려야 하는데··· 기절하면···"


그리고 희는 무릎을 꿇고 모로 쓰러져 기절했다.


쓰러진 희와 멀쩡하게 선 검의 몇 걸음 앞에서 멈춰 선 여자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동극제 님."


뜻밖에도 검이 태연하게 말했다.


"이 시대에서는 검이라고 부르시오."


여자는 흑단 같은 치렁치렁한 머리를 옆으로 넘겨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당신에게는 오래간만이 아니겠군요."

"역시 당신이었군, 매구."

"옆에 계신 분은···"

"일행이오. 강대한 기에 눌려서 정신을 잃었군."


매구라 불린 여자는 피가 배어나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희의 허벅지를 바라보며 검에게 물었다.


"조금, 마셔도 괜찮을까요?"

"아니, 치료를 부탁하겠소."


검은 희를 들쳐업고 매구와 산길을 걸어갔다.


"이런 산중에 계실 줄은 몰랐군."

"마침 근처에 있었습니다. 오셨다는 걸 느꼈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요."

"내가 이 쪽으로 올 줄 어떻게 알았지?"


매구는 짧게 웃었다.


"밤은 깁니다. 천천히 이야기 나누시지요."


그리고 세 사람은 멀리 보이던 초가집에 도착했다.

더 이상 길이 뒤틀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검이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원래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했소?"


매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검은 희를 마루에 기대 앉힌 다음 부엌으로 가서 아궁이에 불을 때었다.

매구가 그런 검에게 약과 흰 천을 가져다주었다.


"식사와 잠자리는 필요 없으시지요?"


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뒷마당에서 우물물을 길어와 희의 상처를 씻은 후 약을 바르고 흰 천을 감아주었다.

상처가 깊지 않아 며칠이면 나을 듯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어 찬기가 가신 안채에 희를 눕히고 검은 밖으로 나왔다.

이내 매구와 검은 작은 사랑방에 호롱불 하나를 켜 놓고 마주앉았다.


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직 기를 조절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나 보군."

"이제는 꽤 능숙하게 할 줄 압니다."

"조금 조절해 주었으면 일행이 저렇게 다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저보다 약한 생물을 위해줄 마음은 없습니다." 매구의 눈에 푸른 안광이 잠시 비추었다.


"이러나저러나 역귀로서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군."


매구는 살며시 웃었다.


"티를 많이 벗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아직 한참 부족하오."

"다음에 뵈었을 때 옆에 일행분이 계시다면 조절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다음에 볼 일이 없어야 좋은 사이 아니오."

"아직 천신을 찾아 떠돌고 계십니까?"


검은 고개를 끄덕이고 되물었다.


"당신이야말로, 부아거를 죽일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소?"


매구는 예, 하고 고개를 숙였다.


"역시 역귀들로선 죽일 수 없고 사람의 힘이 있어야 할 듯합니다."

"정확한 방법은 모른다는 말이군."

"부아거를 만나셨습니까?"

"저번 시대에서 만났소. 난설이 멸망한 이유가 부아거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은 것 같더군."


매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난설을 멸망시켰다면 인간의 힘으로도 죽일 수 없었다는 이야기 아니오?"

"그를 만나셨다면서 자세한 얘기는 듣지 못하셨습니까?"

"그렇소."

"부아거는 난설을 멸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가 난설에 무언가를 하려 한 것은 맞지만 결과적으로 난설이 먼저 멸망해 버렸습니다."

"이 엽전을 이용해서 말이지?"


검은 품 속에서 마지막 하나 남은 엽전을 꺼냈다.

매구가 엽전을 받아들고 살펴보았다.


"덕분에 이 시대에 오자마자 다른 시대로 날려갈 뻔했소."


매구는 엽전을 돌려주었다.


"저도 이 엽전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는 나에게 나라 하나를 살 수 있을 거라며 주었는데, 영 쓸모가 없군.

당신이 하나 가지시겠소?"


"지금이야 쓸모가 없지만," 매구는 고개를 들었다.


"역귀가 완전히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 나라 하나를 살 수 있겠지요."


그녀의 눈에서 푸른 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했다.


작가의말

매구미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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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강한 충격 24.01.29 14 0 12쪽
20 비상 24.01.28 1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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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무서운 남자 24.01.26 18 0 13쪽
17 송곳니 24.01.25 24 0 12쪽
16 실종, 그리고 폭발 24.01.24 20 0 13쪽
15 연화 24.01.23 23 0 13쪽
14 1,500킬로그램 24.01.22 26 0 13쪽
13 불신과 균열 24.01.21 25 0 14쪽
12 금지된 구역으로 24.01.20 32 0 11쪽
11 믿을 수 없는 제안 24.01.19 33 0 13쪽
10 500년 전 24.01.18 3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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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여우 24.01.16 42 1 12쪽
7 의기투합 24.01.15 54 1 12쪽
6 오해와 해방 24.01.12 5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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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00살이 넘은 꼬마 23.07.09 14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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